우선 배경에 대해 ● 베를린 장벽해체 이후 세계는 순식간에 급변했다. 그 때까지 세계를 지배해 왔던 이데올로기와 냉전구조는 붕괴되었고, 자본주의 체제가 승리하면서 정보의 해제와 금융시장의 글로벌화가 시작되었다. 종전에는 국방통신시스템이었던 인터넷의 보급으로 일반대중의 커뮤니케이션의 방식도 일변했다. 경제의 자유화와 중국을 포함한 사회체제의 변화로 사람들의 이동이 자유로워졌으며, 물자도 이동하기 시작했다. 이제 우리는 지구상 어디에 있어도 정보를 얻을 수 있게 되었고, 시차는 있지만 전자테크놀로지 덕분에 세계가 동시에 생활을 영위할 수 있게 되었다. 이처럼 글로벌리즘 시대의 인간들은 지역 및 국경, 습관, 언어, 종교를 넘어 상호교환 가능한 매체들 속에서 산다. 인터넷 덕분에 매체들의 경계는 사라져 세계는 평면화되고 획일화되었다. New York, Tokyo, Seoul, Beijing에서 스타벅스의 커피를 마시고, Amazon.com에 들어가 전 세계의 읽을거리를 다운로드하며, 일본 애니메이션과 게임을 즐기고, 음악과 영화를 다운받으면서 세계 어디서든지 같은 일상을 보낼 수 있게 되었다. 글로벌화의 혜택으로 대다수의 현대인이 비슷한 음식을 먹고, 비슷한 옷을 사며, 비슷한 것을 보고, 비슷한 사고를 하면서, 비슷한 환경에서 살게 되었다. 그러나 글로벌라이제이션의 유일한 채널이던 미국의 지배가 종식되고, 테러와의 싸움으로 새로운 대립이 시작되었다. 세계 시장경제의 발전은 지역격차를 낳아 다수의 빈곤층이 출현했고, 인터넷을 이용한 국제범죄도 늘어났다. 결국 모든 것이 평등하게 된 것은 아니다. 우리들은 이 글로벌라이제이션 속에서 살며, 이미 거기서 벗어날 수 없는 불행 속에 빠져버리고 말았다.
커뮤니케이션의 증대 ● 우리는 예술 관련 일에 종사하고 있다. 급속히 진전되는 정보화 사회, 국제전의 증대, 광주 비엔날레를 위시해 부산 비엔날레, 베이징 비엔날레, 광저우 비엔날레, 칭다오 비엔날레, 싱가폴 비엔날레, 후쿠오카 비엔날레, 요코하마 트리엔날레, 츠마리 트리엔날레등 아시아 지역에서도 90년대부터 국제전이 급증한 것은 문화의 글로벌화를 의미하는 것이다. 아시아에서 민주화 운동과 국제전이 때를 같이 하고, 사람들의 이동이 글로벌라이제이션의 흐름을 타면서, 아시아에 자유를 가져온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이와 같은 문화의 국제화, 혹은 민주화는 앞에 언급한 이데올로기의 붕괴에 따른 커뮤니케이션의 증대에 의해, 예술가들의 작품이나 사고방식에도 영향을 미치고 세계화시켰다. 물론 지역 격차를 뛰어넘는 커뮤니케이션은 인터넷을 이용한 정보의 교환으로 가능해졌다. 팩시밀리나 전화, 편지와는 달리, 인터넷은 엑셀 수식과 PDF를 사용한 화상처리를 할 수 있으며, 비디오넷으로 만 배 이상의 정보를 순식간에 보낼 수도 있게 되어, 그 결과 세계는 수 초안에 확실한 정보를 주고 받을 수 있게 되었다. 통신 속도의 발달로 사람들의 생활 양식은 시간상의 이동개념에서 공간상의 이동개념으로 변화되었다. 시간에 대한 사고, 원근의 거리 개념을 소멸시켰고, 인터넷은 24시간 지구상에서 Google을 움직이고 있다. 인터넷의 보급뿐만 아니라 휴대폰의 발달 또한 사람들의 커뮤니케이션을 한층 증대시켰다. 지구상에서 교신되는 커뮤니케이션이 눈에 보이는 전자파라면, 우주에서 바라본 지구는 사람들의 커뮤니케이션의 전자파가 작열하는 천체일 것이다. 매일 원폭이나 f07101304d수폭 이상의 에너지가 방출되고 있을 것이다. 커뮤니케이션의 증대가 사람들의 생활을 풍요롭게 하고, 예술 작품 역시 사람들의 커뮤니케이션 도구로 그 역할이 바뀌어, 작품의 표현은 강도 높은 메시지를 지니게 되었고, 보다 다수의 사람들을 향해 있으며, 사회환경의 문맥 안에서 작품을 제작하는 경향이 강해졌다고 하겠다.
사회와 개인을 맺는 것 ● 이처럼 글로벌화된 매체가 넘쳐나는 생활 환경 속에서 우리가 잃어버린 것은 무엇인가? 예술을 통해 세계의 존재방식을 더 사유해 보는 게 필요하지 않을까. 여기에 네 명의 일본 예술가들을 소개하고자 한다. 그들에게 공통되는 것은 인간을 모티프로 그들이 살고 있는 환경과 마음의 균형(심정)을 테마로 하고 있는 점이다.
현재 New York을 거점으로 활동하고 있는 모모요 도리미츠 ● 도리미츠의 작품 「Inside Track」 은 글로벌기업에 종사하는 기업가들, 세계를 무대로 일하는 기업전사의 모습을 한 오피스 워커 로봇(공업제품)이, 마루에서 네발로 기는 포복 자세로 전진한다. 이 작품은 기업의 최전선에서 쉬지 않고 일하는 샐러리맨을 전사의 모습으로 만들어, 전장(회사내부)을 이동한다. 어디에나 있는 듯한 그 전사들, 유머러스하며, 시니컬하게 보이는 Mr.Mark, Mr.Lee, Mr.Gunter는 비지니스를 시작한다. 이 작품은 광주 비엔날레(2004)에 출품한「Horizons」시리즈를 한층 발전시켜, 장소를 비지니스 오피스 안으로 옮겨 상황을 전개시키고 있다. 광주 비엔날레에서는 백 개 이상의 슈트를 입은 병사인물상, G.I.Joe들이 중동지역에 매장된 오일을 둘러싼 쟁탈전을 노골적으로 보여주었다. 백 개의 샐러리맨 상들은 단 세 개의 배터리의 힘으로 소리를 내며 움직이기 시작한다. 싸우는 전사(회사원)가 벽에 부딪치거나 백색의 빌딩을 들이받아 건물을 부수면서 전진해 간다. 배터리가 떨어지면 비지니스는 중단된다. 넥타이는 단정히 매고 있으면서 하반신은 느슨하게 질질 끄는 자세, 뒷모습은 관람객들을 비추면서 그들을 웃을 수도 없게 한다. 그들 덕택에 천연자원을 지니지 못한 일본과 한국의 경제는 유지되며, 중동 원유의 혜택을 입어 우리의 매일의 생활이 지속되고 있다는 사실에 생각이 미친다. 우리들은 비행기나 차에 타면서, 석유를 원료로 한 천을 이용한 옷을 입으면서, 생활의 전부를 중동의 석유에 의존하며 산다. 그래서 우리는 이 백개의G.I.Joe들에게 성원을 보내고 싶은 기분이 되고 마는 것이다. 도리미츠는 1990년대 도쿄에서 「미야타 지로」라는 샐러리맨 로봇을 만들었다. Made in Japan 의「미야타 지로」역시 일본에서 포복 전진하며 도쿄의 거리에서 활약한다. 사회적 지위를 지닌 기업전사 Mr.Mark, Mr.Lee, Mr.Gunter 그리고 MR.미야타는 글로벌라이제이션 속에서 살아 남는 아버지상이 되어 귀염성스런 기분과 증오스러움이 섞여, 비극의 드라마가 되어 우리에게 호소해 온다. 틀림없이 한국의 관객들도 이 로봇 기업가들을 보고 웃을 수 없을 것이다. 실제로 아프간 인질사건은 이와 같은 중동의 유전 쟁탈전에서 비롯된 비극이었으며, 민간인이라고 할지라도 국가의 비극이 되는 상황을 우리는 연일 뉴스를 지켜보았던 것이다. 도리미츠가 추구하는 커뮤니케이션은 비극의 아버지 상이긴 하지만, 일벌레 인간이 인간적이고 씩씩하게 사는 보통 사람들에게 보내는 메시지로 읽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