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하사탕》전은 ‘한국미술의 세계화’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국립현대미술관이 기획하여, 2007년과 2008년에 걸쳐 칠레 산티아고현대미술관과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 국립미술관을 순회했던 전시이다.
중남미 지역에 한국현대미술이 본격적인 규모의 전시로 소개된 것은 이 전시가 처음이었다. 중남미 관객들에게 한국은 역사와 문화는 생소하나 경제적인 교류의 확대로 관심이 증대하고 있으며, 군부 독재체재의 종식과 민주화의 완성 과정에서 공유하는 일련의 역사적, 정서적 경험이 있다는 점에서 이 전시는 현지의 뜨거운 호응을 받았다. “완전히 새롭고 충격적인 한국미술”이라는 평가와 함께, 칠레의 유력 신문인 『라 세군다(La Segunda)』는 이 전시를 ‘2007년 최고의 전시’로 선정하기도 하였다.
전시의 기획은 ‘한국작가들은 1980년대 이후 어떠한 시대적 상황에서 작업해왔는가?’라는 물음에서부터 출발하였다. 다시 말해 ‘작가들의 작업에 영향을 미쳐온 정치 사회 문화적 맥락은 어떠한 것인가?’ ‘작가의 개인적 사유, 경험, 기억이 공적인 역사와 접합되는 방식과, 또 그 결과로서 산출되는 예술작품은 양상은 어떠한가?’가 주된 관심사였다.
전시의 제목 ‘박하사탕’은 이창동 감독이 1999년 제작한 영화에서 차용한 것이다. ‘박하사탕’은 소리내어 발음하는 그 순간에 이미 우리에게 각인된 사탕 맛의 원초적 기억을 끌어낸다. 그 달콤 싸한 맛은 ‘처음’이라 신선하고 짜릿하지만 모든 후발자들에 의해 얼마든지 점령되고 전복될 수 있는 여린 가치, 젊음, 순수를 상징한다. 23명의 출품 작가들은 영화 ‘박하사탕’의 주인공 김영호와 동시대를 살아왔다. 이 작가들은 주로 1960, 70년대에 출생하였으며, 80년대 이후 한국현대사의 가장 치열한 격변의 시기에 성장하였다. 이들은 정치적 소요와 이데올로기의 충돌 속에서 경제적 풍요를 향유한 80년대와, 이념적 갈등이 해소된 자유로운 환경에서 대중 소비문화의 확산을 체험한 90년대를 보냈다. 이들은 또한 격동의 20세기를 마감했으며, 새로운 세기에 발을 내딛으면서 자본, 정보, 문화의 세계화 시대를 맞이한 세대들이다.
전시의 구성은 한국 현대사의 광범위한 영역들과 연관된 첨예한 문제들을 다루는 세 개의 섹션으로 이루어졌다.
제1부 ‘메이드 인 코리아' 는 80년대 소위 ’이데올로기의 시대‘에서 90년대 이후 다원주의 시대로 이행하는 과정에서, 이데올로기에 대한 접근 태도의 변화를 다룬다. 즉, 한국적 특수 상황 하에서 80년대까지 남북분단, 군사주의, 국가주의, 민족주의, 민주주의, 자본주의의 이데올로기들이 중첩된 채 경직되게 전개되어 오다가 90년대 세계화 시대로 진입하면서 이데올로기에 대한 보다 유연해진 접근방식을 보여준다.
제2부 ’뉴 타운 고스트‘는 고도 경제성장과 함께 급속도로 추진되어온 도시화에 따른 사회 구조, 삶의 방식의 변화와 도시 속 일상에 대한 시각경험을 보여준다. 이 섹션에서는 또한 80년대 후반 이후 도시의 생성과 발전 이면에 잠재된 채 은폐되어온 여성, 소수자, 인권, 환경 문제 등 광범위한 사회적 부조리들에 대한 관심을 다룬다. 즉, 거대 담론 보다는 미시적, 단편적인 영역과 무엇보다도 개인의 삶에 대한 관심으로 인한 도시문화의 재구성을 중점적으로 살펴보게 된다.
제3부 ‘플라스틱 파라다이스’는 물질적 풍요의 시대인 90년대 이후 대중 소비문화의 폭발시기에 형성된 새로운 감성의 표출로서의 시각문화에 대한 탐구이다. 전통, 모던, 포스트모던이 다층적으로 공존하는 한국 대중문화의 독특한 혼종 양상과 세계화 시대에 타 문화와의 상호작용 속에서 형성되는 다양성, 문화의 생산, 분배, 소비 메커니즘의 문제 등이 이 섹션의 주요한 주제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