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08-04
매년 10월에 열리는 독일 ‘프랑크푸르트 도서전’은 단순한 책 잔치 이상의 의미를 가진 문화 월드컵이며, 독특한 점은 매해 ‘주빈국’을 선정한다는 것이다.
프랑크푸르트의 주빈국으로 선정된 나라는 2천5백㎡ 규모의 전시공간을 독점적으로 활용할 수 있게 되며, 그 해 8백-1천회의 문화행사를 독일 전역에서 개최할 수 있는 기회를 부여 받는다. 또한, 주빈국의 문학은 노벨 문학상의 관문이 되기도 하여 더욱 관심을 끌게 된다.
따라서, 프랑크푸르트 도서전에서 주빈국을 선정하는 기준은 무엇보다 각국의 도서 발전 가능성과 주빈국으로서의 성공 가능성, 그리고 현재 국내 도서의 활발한 외국으로의 진출 등과 국제적 관계를 고려해 결정하게 된다.
이처럼 프랑크푸르트 도서전의 주빈국으로 선정된다는 것은 국제적으로 많은 의미를 지니게 되는데, 2005년 우리나라가 프랑크푸르트 주빈국으로 선정되었다는 것은 우리나라의 국제적 위상을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되는 시점이다.
허나, 우리가 프랑크푸르트 주빈국으로 선정됨을 뿌듯해하기 전에 국내 문학과 서적 시장에 많은 선결과제를 안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왜냐하면, 4월말 집계된 통계에 이르면 현재까지 외국어로 번역된 한국 문학은 1천6백여 종에 불과하며, 이 중 국내 출판사가 내국인을 위해 펴낸 책을 빼면 7백여 종. 현재까지 확인 가능한 책은 4백50여 종이 채 안되는 상황이며, 일부에서는 노벨문학상은 커녕 프랑크푸르트 도서전의 주빈국 부스를 채울 기본 컨텐츠조차 걱정해야 할지 모른다는 우려까지 제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심지어, ‘한국 주빈국’ 행사에 내놓기로 했던 ‘한국의 책 100권’ 가운데 일부 도서가 번역자를 구하는 과정에서 다른 책으로 교체되었다는 안타까운 소식이 들려 오기도 하였다.
이런 미흡한 준비과정 속에서 최근 한림 출판사를 통해 발행된 ‘한국 현대 단편 문학시리즈’에 대한 반가운 소식이 들려왔다.
이문열, 최인호, 이청준, 오정희, 서영은, 박완서, 김승옥, 황석영, 김지원 등 우리 문학을 이끌어온 거장들의 단편 소설을 훌륭한 이중주 파트너인 그림(일러스트레이션)과 함께 스튜디오 바프에서 기획한 것이다.
기획에서 제작까지 무려 8년이라는 긴 세월을 지내며 각고의 노력을 쌓아온 그들의 야심작들을 소개한다.
또한, 이와 같은 작업이 프랑크푸르트 도서전의 주빈국으로 유럽과 세계에 우리의 문화예술을 소개하는 훌륭한 소통창구가 되는 그 첫 걸음이 되길 바란다.
취재 : 권영선 기자 (happy@yoondesign.co.kr)
1997년 11월 작가의 인지도/문학성/한국적 정서/국제시장을 겨냥한 보편타당성/재미 등의 관점에서 신중히 고려된 총 10편의 단편 소설들이 선정되었다.
각 작품과 훌륭한 조화를 이룰 수 있을 만한 일러스트레이터들과 문학 토론을 겸한 아트디렉션으로 이 작업을 시작하게 되었고, 번역을 위한 번역자 선정부터 수정, 보완에 이르기까지 총 출판에 걸린 시간은 무려 8년이란 긴 시간이 걸렸다.
기획에서 제작에 이르기까지의 본격적인 북 프로듀싱의 작업 그 자체가 하나의 '저작권'을 발생시킬 수 있는 선례가 되었다는 점에 있어서도 의미 있는 작업이라 할 것이다.
2004년 6월 그 중 5권이 먼저 출간되었으며, 2004년 말 5권이 추가로 출간될 예정이다.
황량한 초 현실의 공간 속에 '남자 역'의 남자와 '여자 역'의 여자가 무대 위에 등장을 하고 이야기가 진행된다.현실이 남긴 환상에 대한 목마름도, 환상이 되돌려 준 현실에 대한 배반감도 잠깐, 남과 여는 무엇에도 갈등하지 않으며 자기만의 공간 속에 자기만의 방식대로 살아가는 것만이 유일한 방법임을 확인한다.
영원히 두 겹으로 존재할 수 밖에 없는 남과 여의 노래에 대한 여운으로 연극적인 설정의 피날레를 장식한다.이 작품은 나에게 완전한 느낌으로 와 닿았다.
시간도 장소도 필요 없는 슬픔. 내가 느끼는 그런 슬픔이었다. 나의 본성을 그리워 하지만 그것도 잠시뿐, 또다시 잊혀지게 되고 나의 겉 모습으로 살아가는 것처럼 이 두 사람도 그런 깊은 슬픔을 가지고 헤어진다.
꿈처럼 신비로우며 무한한 가능성이 있지만 길을 잃어버린 마음처럼 나에게는 익숙함과 편안함이었다.
단지 스토리를 있는 그대로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일러스트레이터 스스로의 시각으로 새롭게 접근할 수 있다는 점이 매력적인 도전으로 느꼈다.
최인호 소설에 대한 평론들을 찾아 읽어가며 작가와 소설의 의도를 조금씩 이해해 가기 시작했고, 소설이 발표됐을 당시의 시대 상황들을 유추해가며 여러 가지 작업 방향들을 모색해 가기 시작하였다.
이러저러한 접근 방법들을 다양하게 시도하다가 결국 직설적으로 개미의 입장에서 인간과의 관계를 설정하고 그것을 시각화하기로 결정하였다. 가식적이거나 장식적인 것들을 최대한 배제하고 직접적인 방법으로 표현하기로 하였다.
처음 시작은 텍스트를 최대한 배제하고 자신만의 시각으로 접근을 시도하였으나 결과적으로는 다시 텍스트와 잘 맞아떨어지면서, 독창적인 표현과 함께 일러스트레이션 본연의 설명적 기능도 만족시키는 프로젝트가 된 것 같아 매우 흡족하였다.
이번 작품에서 표현하고 싶었던 부분은 한국 어머니의 모성이었다.
겉으로 드러내지 않고 가슴속에 한을 품고 살아가는 우리들 어머니의 내면세계를, 한국적 정서를 독자들에게 전달하고 싶었다. 섬세한 필체로 어머니의 사랑을 너무나 애절하고 감동적으로 보여준 이글을 사실적인 표현을 통해 인물의 감정과 상황을 표현하였다.
구도나 색상에서도 정적이고 암울한 느낌이 들도록 했고, 당시의 시대적 상황이나 분위기의 재현을 위해 직접 촬영한 사진들과 사진집 등을 자료로 참고로 했다. 이제껏 해온 작품들 중에서 가장 한국적인 내용을 담은 작업이어서 그림을 그리는 동안 제 자신을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다.
서영은의 ‘산행’은 84년 ‘이상문학상’ 우수작이라는 것 말고는 내게 낯선 글이었다.
하지만 그 글속에서 의미하는 산행의 행위는 내겐 낯선 것이 아니었다.
간절하게 무언가를 바라지만 그저 무념의 상태가 되어야 어떤 것이든 얻게 되는 상황 묘사가 과거와 현재의 나를 관통하는 듯했다. 소설 속의 여주인공 상황의 고립감.
그건 어쩌면 중산층 진입을 갈구하는 욕망에서 나온 것이고 남편의 잡역부로의 회귀 또한 깨달음이란 핑계로 마련한 도피처 같은 것으로 느껴졌다. 그래서 그 둘의 상황이나 감정을 동상이몽처럼 그려내고 싶었다. 그러다 보니 산행이라는 소설에 맞춰 한 작업이 예전의 그림, 이미지들의 반복처럼 그려지게 되었다.
아무리 내가 나를 떼어 놓을 수 없다고 하더라도 같은 이미지로 안일하게 접근하는 것은 아닌지 책이 나오고 나서 알아차리게 되었다.
무언가를 내놓을 때는 공감대와 독창성의 조화를 염두해 두어야 하는데도 항상 소홀하게 나를 내놓는 것은 아닌지 새삼 두려워진다. 다음에도 소설을 적극적으로 해석하는 그림 작업이 나올 수 있다면 그때에는 좀 더 내 자신에 솔직한 그림. 내 손이 덜 무겁게 표현하는 그림을 그리고 싶다.
남주현의 그림은 '신식'이다.
그리고, 구차한 삶 속에 남주현식의 '신식'으로 꾸는 꿈에는 사춘기 소녀의 가슴 속처럼 야릇한 두근거림이 배어있다. 소녀들에게 '신식'은 막연한 어른 흉내이며, 혈색이 창백한 이층집 남자이며, 알록달록한 양갈보의 레이스 속옷들이며, 미제 비스킷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신식'은 어둡고 혼란스러운, 길고 지루한 겨울과 같은 성장기를 견딜 수 있게 하는 기다림이다.
- 이나미 북 프로듀서-
이번 프로젝트의 컨셉은 무엇인가?
'일러스트레이션'을 책의 또 다른 축으로 삼아 편집을 하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국제적인 의사소통을 위해 영문번역을 삽입하게 되었고, 이 과정에서 단편소설이 주는 짧은 물리적인 느낌을 해소하고 단편소설의 독자적인 탄생을 가능하게 하였다.
단편소설을 택한 특별한 이유가 있는가?
나는 어릴 적부터 소설을 매우 좋아했다.
오랜 시간동안 내가 즐겨 읽던 소설의 공통점은 그것들이 '장편'이 아닌 '단편'이라는 점이다. '디자이너'라는 직업의 속성이 그러하듯 무언가 간결하게 압축되어 있는 이야기의 형태 속에 더 많은 상징과 의미, 여운을 느낄 수 있는 단편소설의 형식에 보다 매력을 느꼈기 때문일 것이다.
장편소설과는 달리 한편으로는 치밀하기도 하고 또 다른 한편으로는 텅 비어있는 것 같기도 한 단편소설을 따로 묶어 책을 내고 싶고 싶었다.
책과 어울리는 일러스트이션이라는 것이 많이 생소한데 어떤 식으로 진행이 되었는가?
글과 그림의 이중주를 훌륭히 연주하게 하기 위하여는 각 소설의 성격에 부합하는 스타일의 일러스트레이터와의 접목이 무엇보다도 중요하였다.
이를 위하여는 평소에 눈 여겨 보아두었던 작가들과의 친분이 큰 장점으로 작용하였다.
아직 아무런 현실적인 장치가 마련되지 않은 상황에서 이 프로젝트에 대한 작가들의 공감대를 끌어내는 것에 중점을 두었다.
내 나름대로의 계획에 따라 미리 정해둔 일러스트레이터들에게 나의 이 실험적인 프로젝트에 대해 제안하기에 이르렀고, 다행이도 일러스트레이터들의 반응은 호의적이었다.
우리는 일종의 '스터디 그룹'을 만들어 이주일에 한번씩 모여 이러저러한 문학토론을 겸한 스케치 작업을 시작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게 벌써 8년이나 된 97년 겨울의 일이다.
이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가장 어려웠던 것은 무엇인가?
이 프로젝트는 일사천리로 진행되지 않았다.
눈앞에 닥친 일들에 쫓겨 그 이후로 이 프로젝트는 나의 '진행 중' 폴더 속에 꽤 오랜 시간 묻혀 있다가 2002년 8월 우연한 기회에 다시 수면 위로 떠올라 출판사와 출간 계약을 맺으면서 멈추어 있던 호흡을 계속하게 되었다. 그 이후로도 출간까지는 본 작업을 위해 많은 시간이 소요되었다. 2004년 6월 계약된 10권의 시리즈 중 5권이 먼저 탄생되면서 그 때의 꿈이 현실화되기에 이르렀다.
프로젝트를 마치면서 느낀점…
이 프로젝트에 대해 꽤 흡족한 결론에 다다를 수 있었다.
‘소설의 내용을 단순히 답습하는 그런 그림이 아닌, 원래의 계획에 근접한 글과 그림의 '이중주'로서의 화음을 이루어낼 수 있다.’라는 북 프로듀서로서의 확신을 얻게 되었다.
실제로 일러스트레이터 곽선영의 경우, 이 때의 실험작업을 통해 얻은 그림들이 바로 최종 출간된 책에 삽입된 그림이 되었을 정도로 실험작업의 성과는 흡족하였다.
영화를 제작하는 감독처럼, 오케스트라의 지휘자처럼 기획에서 글, 그림, 디자인, 인쇄, 제본에 이르기까지 한 사람의 일관된 감각으로 만들어 내는 책을 꿈 꾸어 왔다. 이런 나에게 있어서 이 책을 만드는 일은 오래도록 가슴 두근거리는 일이 아닐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