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3-28
하루에도 수십권의 책들이 만들어져 시장에 나온다. 이 책들이 세상에 나오기까지 수많은 편집디자이너의 손을 거치지만 누구 하나 그들에게 주목하지 않았다.
우리는 왜 지금까지 편집디자이너의 존재를 인지하지 못했던 걸까?
그동안 주목받지 못했던 편집디자이너를 위해 말줄임표, 반프랑, 보류 세 명이 <월간편디>를 펴냈다. 그들은 스스로 B급이라고 하지만 그 속에는 유명한 이들만 주목하는 현시대에 대한 신랄한 비판과 스스로 목소리를 내기 위한 결의가 담겨 있다.
편집 디자이너를 위해 편집 디자이너가 만든 편집 디자인 잡지를 만나보자.
<월간편디>는 어떤 잡지인가요?
말줄임표 예전부터 편집 디자이너를 위한 매거진을 만들고 싶었어요. 왜냐면 유명한 매거진에서는 유명한 사람들만 다뤄요. 잘된 디자인을 보여주지만 정작 그걸 직접 디자인하는 사람에 대해서는 알려주지 않더라고요. 그래서 직접 디자인한 사람들을 알리기 위해 시작하게 되었어요.
훌륭한 오너도 중요하지만, 그 밑에서 일하는 사람도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분들이 있으니깐 좋은 디자인이 나오는 거니깐요.
잡지를 구체화하고 작업을 하다 보니 혼자서는 다 할 수가 없었어요. 그래서 같이해줄 사람을 모집했고 저랑 뜻이 같은 반프랑과 보류가 합류해서 멤버가 꾸려지게 되었습니다.
원래 알던 사인가요?
말줄임표 네, 원래 친분이 있는 사이였어요. 제가 <월간편디>를 기획하고 있다고 관심 있냐고 물었더니, 두 분이 굉장히 적극적으로 참여 의사를 밝혔어요.
처음 만들어지는 잡지라서 선뜻 용기가 안 났을 것 같은데요.
반프랑 최근 재미있는 기획의 매거진이 많잖아요. 그래서 저도 한번 만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어요. 그런 와중에 좋은 제의를 주셔서 적극 참여했어요.(웃음)
아직 나이가 어려서 잘 모르는 부분도 있지만, 책을 만들면서 많이 배울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리고 더 나아가서 ‘디자인계를 더 발전시킬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보류 다른 주제의 잡지였으면 참여를 안 했을 것 같아요. 주변에서 “너 무슨 디자인해?” 물으면 “편집 디자인해”라고 대답하면 어떤 일을 하는지 잘 모르는 경우가 많았어요. 그렇다고 일일이 설명하는 것도 힘들고요. 그런데 <월간편디>가 있으면 그런 질문에 “나 이런 디자인해!”라고 명쾌한 답을 줄 수 있을 것 같았어요.
최근 출판계가 불황이잖아요. 유명 매거진도 폐간되는 시대에 소수인 편집디자이너를 위한 잡지를 만들기란 쉽지 않은 결정이었을 것 같아요.
말줄임표 저희가 하게 된 이유는 정말 필요한 내용이기 때문이에요. 진작에 나왔어야 하는 책인데 돈이 안 된다는 이유로 아무도 만들지 않았던 거 같아요.
많은 출판사가 잡지를 만들지만 그건 사명감보다는 돈을 벌기 위한 수단이라고 생각했어요. 잡지에 붙는 광고로 수익을 올리는 시스템이니까요.
저희 책은 광고가 많은 잡지가 아니에요. 그래서 많이 팔아야 해요. 그러기 위해서는 대형 서점에 입점해야 하는데 오프라인 서점은 이제 책을 판다는 개념보다는 책을 보고 가는 카페처럼 변했어요. 그래서 저희를 알리기 위해 크라우드 펀딩(텀블벅)에 참여하게 되었어요. 이곳에는 디자인에 관심 있는 분들이나 편집디자이너가 많이 들어오거든요.
사실 많은 분이 “이런 책을 왜 만드냐?”고 말하기도 해요. 저는 본인들은 시도조차 하지 않으면서 왜 그런 소리를 하는지 이해가 안되요. 꼭 필요한 책이기에 돈이라는 것을 넘어 책임감을 가지고 시작했어요.
어떤 내용이 담겨있나요?
반프랑 편집디자이너의 모든 것을 보여주기 위해 많은 것을 넣었어요. 취준생부터 신입과 경력디자이너의 이야기, 디자이너의 가족과 인쇄소의 하루 그리고 디자이너가 키우는 애완동물까지 정말 사소한 것부터 진지한 이야기까지 모두 다뤘어요.
또 블라인드 토크라고 뒷이야기 섹션도 있어요. 막연하게만 알고 있던 편집디자이너에 대해 샅샅이 알려주는 느낌으로 작업했습니다.
취재와 글, 디자인까지 모두 하신 거에요?
반프랑 네, 다 했어요. 작업하면서 가끔 SNS에 작업하고 퇴근하는 영상을 올렸어요. 대부분의 퇴근 시간이 11시였어요. 디자이너가 이렇게 산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어요.
보류 디자이너와 야근은 숙명과도 같은 존재죠.(웃음)
책 소개에 B급, 감성의 쓰레기통이라는 표현을 썼어요. 재밌고 신선한 표현이지만 조금은 과격하다는 생각도 들었어요.
말줄임표 앞서 말한 것처럼 잡지에는 유명한 분들만 나오잖아요. 그럼 ‘평범한 우리는 언제 주목을 받지?’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우린 매일 작업만 해야 하나?’ 디자이너가 만든 거로 이들은 이렇게 주목받는데 정작 디자이너들은 가려져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조금은 반항심이 들었어요.
‘그래 너희는 A급이냐? 난 B급이다. 너희들이 하지 못한 우리만의 감성을 다 보여주겠다.’고 생각했어요.
요즘은 단순한 디자인을 고급스러운 디자인이라고 해요. 저는 편집 디자인이라는 것은 아트웍과 미적인 감성 그리고 실용성도 들어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너무 단순하게만 디자인을 하면 정해진 틀에서 벗어날 수 없어요. 우리만의 디자인을 하고 싶었어요.
사람들이 봤을 때는 아무것이 아닌 것 같아도 우리에게는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서 B급, 쓰레기 감성이라는 말을 썼어요.
보류 사실 알고 보면 B급이 아니에요. B급인 척하는 A급입니다. 저희 책을 보시면 깜짝 놀라실 거에요. 정말 열심히 만들고 있거든요.
말줄임표 모두를 만족시키는 디자인은 아니에요. 편집디자이너를 위한 잡지인데 다른 사람들까지 만족시킬 이유가 있을까? 생각이 들었거든요.
이 책을 통해 편집디자이너란 직업을 이해할 수 있고 공부할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다고 생각했어요. 아트웍 중심의 매거진이 한국에 많이 없어서 저희가 그 역할을 하려고 해요.
별색잉크나 폰트자 같은 굿즈도 인상적이에요. 굿즈 구성은 어떻게 정해지고 제작되었나요?
반프랑 디자이너에게 실용적인 것을 만들고자 했어요. 폰트자는 대부분의 편집디자이너가 자료조사를 할 때 편집물을 스캔하고 인디자인에 넣어서 간격을 확인해요. 그 과정이 매우 번거롭고 시간도 오래 걸려요. 바로바로 사이즈를 확인하고 싶은데 그렇게 못하잖아요.
그래서 바로바로 확인할 수 있는 폰트자를 기획했어요. 많은 분이 공감하고 좋아하더라고요.
말줄임표 디자이너들이 디자인만 하고 인쇄 감리는 잘 안 나가요. 디자인 용어도 잘 모르는 경우도 많고요. 심지어 인쇄를 대형 문구점에서 인쇄하는 거로 아는 사람도 있어요. 그래서 저희가 조금이나마 알게 하자는 생각에 만들게 되었어요.
실제 잉크를 보여주고도 싶었어요. 그래서 이번 창간호에 사용된 Pantone 802C을 알루미늄 케이스에 따로 담았습니다. 보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자신의 작업물에 응용해 보길 바라면서요.
굿즈 - 폰트자
굿즈 - 미니어쳐 잉크
<월간편디>는 편집디자이너가 보는 책이잖아요. 내지 디자인에 더 신경 쓰였을 것 같아요.
반프랑 저희가 하고 싶은 재미있는 디자인을 했지만, 기본적인 자간과 행간은 다 맞췄어요. 하고싶은 디자인만 하면 그냥 가벼운 책이 잖아요.
보류 저희 잡지는 B급인 척하는 교과서에요. 보기에는 재미 위주의 책 같지만, 그 안에는 자간과 행간 다 신경을 썼어요. 그리고 책 하단에 사용된 폰트와 내용을 다 게재했어요. 편집 디자인을 처음 시작하는 사람들이 교과서처럼 이 폰트를 이 사이즈로 제작하면 이런 느낌이라는 걸 알 수 있었으면 해요.
B급인척하지만 교과서인 책이 맞는 것 같아요.
지금 다음 호도 준비 중이신가요?
반프랑 이름이 <월간편디>지만 사실 계간지에요. 월간지로 만들고 싶었는데 아직은 조금 힘에 부치는 것 같아요. 일 년에 4번, 3월 6월 9월 12월에 출간될 예정입니다.
보류 계간지지만 월간지처럼 일하고 있어요.(웃음)
오프라인에서는 만날 수 없나요?
말줄임표 자료 조사를 나가고 싶지만, 시간적 여유가 없는 디자이너를 위해 저희 자체적으로 자료 조사실이라는 이름의 실험실을 계획 중이에요. 그곳에서 <월간편디>를 만나실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리고 5월부터 2호 펀딩을 시작할 예정입니다. 그때 많이 관심 가져 주시고 참여해 주셨으면 해요.
후원자들이 이 책을 어떻게 사용하길 바라나요?
반프랑 학생과 취준생에게는 교과서처럼, 현직 디자이너들에게는 리프레시가 될 수 있는 책이 되고 싶어요.
보류 평범한 디자이너가 만든 평범한 디자인잡지이니 많이 공감해 주시고 정보도 얻어 가셨으면 좋겠어요.
마지막으로 하실 말이 있나요?
말줄임표 앞으로 <월간 편디> 같은 책들이 많이 생존했으면 좋겠어요. 이런 독립 서적이 스스로 자생할 수 있는 환경이 되었으면 해요.
요즘 편집 디자인 자체가 서야 할 곳이 많이 줄었어요. 없어지지 않고 편집디자인에 대해 알려줄 수 있는 책이 되었으면 합니다.
보류 진짜 월간지가 되면 좋겠어요.
에디터_ 김영철(yckim@jungle.co.kr)
사진제공_ 월간편디(m.pyeon.d@gmail.com)
인스타그램 @m.pyeo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