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5-07
[북유럽의 한국인 디자이너를 만나다]
‘스칸디나비아 디자인 이야기’를 연재하면서 독자들로부터 많은 메일과 피드백을 받고 있다. 무엇보다 북유럽 디자인에 대한 관심도가 높음에 놀랐고, 생각보다 많은 디자이너들이 글로벌한 디자이너가 되길 꿈꾸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졸업을 앞둔 예비 디자이너부터, 이미 현업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디자이너들까지 그 관심은 뜨거웠다.
지금까지 다양한 매체를 통해 해외에서 활동하는 우리 디자이너들의 이야기가 소개된 바 있지만, 북유럽에서 활동하는 한인 디자이너의 소식은 접하기 어려웠다. 이에 ‘북유럽의 한국인 디자이너’ 시리즈를 기획하게 되었고 지난 몇 개월에 걸쳐 각 분야에서 주목받고 있는 그들을 만나 인터뷰했다.
이번 기사는 그 최종회로 그들은 과연 어떤 이유로 머나먼 북유럽으로 오게 되었는지, 디자인 종주국인 그곳에서 디자이너로 살아간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지, 현지에서 경험하는 스칸디나비아 디자인의 생생한 이야기와 해외 진출을 꿈꾸는 후배들에 대한 조언까지 담아보았다. 유화성 제품 디자이너, 이진호 건축가, 최근식 가구 디자이너가 참여해 주었다.
그들의 목소리가 북유럽뿐만 아니라 해외로 향하려는 예비 글로벌 디자이너들에게 의미 있는 울림이 되길 바란다.
공통질문
● 본인 소개를 부탁한다
● 북유럽을 선택하여 오게 된 이유가 있는가
● 북유럽에서 건축가로 산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 스칸디나비아 디자인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 디자이너에게 꼭 추천하고 싶은 곳이 있다면
● 북유럽 진출을 희망하는 후배 디자이너들을 위한 조언 한마디
유화성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 BYMARS studio / www.mars-hwasung.com
본인 소개 부탁한다
스톡홀름을 기반으로 BYMARS studio로 활동하며 한국의 AGO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를 맡고 있는 유화성이다.
북유럽을 선택하여 오게 된 이유는
해외 진출이 목적이었다. 2008년 유학을 계획할 당시 스칸디나비아 디자인에 매력을 느끼고 호기심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북유럽을 선택한 이유보다는 정착하게 된 이유가 더 명확할 것 같다. 호기심과 해외 진출을 위한 현지답사(?)의 개념으로 시작한 유학 생활이었지만 결국 이곳에 정착하게 되었다. 사회적 안정감이 첫인상으로 좋았지만 무엇보다도 상식대로 흐르는 사회 분위기가 좋았다. 배운 대로, 옳다고 믿는대로 실천에 옮기며 살아가는 이곳의 모습이 좋다.
스웨덴에서 디자이너로 산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직업적 소신은 더 강하지만 ‘일’이 일상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한국에 비해 가벼운 것 같다. 이곳에서는 인하우스 경험이 없기 때문에 실제 경험을 얘기할 수는 없지만, 전반적으로 디자이너라고하면 하드 워킹보다는 직업과 삶이 조화를 이루는 모습이다.
스칸디나비아 디자인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절제가 강조된다고 생각한다. 형태적인 표현의 절제가 아니다. 이들은 ‘라곰(Lagom)’같은 이상적인 가치관을 추구한다. 사치를 기피하는 성향이 두드러진다. 이러한 가치관이 디자인에도 많이 반영된다. 이러한 가치관은 형태를 구성하는데 드러나기보다는 사물을 정의할 때에 많이 반영된다. 보통 ‘스칸디나비아 디자인 합리적이고 기능적’이라고 표현하는 부분들이 그것일 것이다. 하지만 표현에 있어서는 과감하다. 과시를 위한 장식적인 표현이 아니라면 틀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움을 포용한다.
디자이너에게 꼭 추천하고 싶은 곳이 있다면
National Museum의 실내 정원과 레스토랑, Moderna Museet, Svenskt ten, CIRKUS by MARS, Torso n Towers by MARS
CIRKUS by MARS
Torso n Towers by MARS
이진호 디자인 리드 / 덴마크 건축사무소 BIG / www.big.dk
본인 소개를 부탁한다
현재 덴마크 건축사무소에서 디자인 리드로 활동하고 있는 이진호라고 한다.
북유럽을 선택하여 오게 된 이유가 있는가
북유럽을 선택했다기보다 BIG이라는 회사를 선택하고 온 이유가 더 크다.
덴마크에서 건축가로 산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결과물만큼이나 과정에서 의미를 많이 찾으려 한다. 적어도 내가 경험한 북유럽에서 건축가는 가장 평등한 환경에서 논리적 사고로의 작업을 요구한다. 직급과 경력에 상관없이 모든 생각은 존중받아야 하고 누구든 자율적으로 의견을 내고 디자인을 할 환경이 주어지는 것이다. 그렇기에 북유럽 건축 또는 디자인은 좀 더 자유로운 결과물들이 만들어진다고 생각한다. 반면 건축가로서는 그렇기에 더 많은 책임감과 의무감이 부여되는 것도 현실이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이 근사한 결과물보다 더 큰 의미가 있는 것 같고, 그래서 북유럽에서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하고 있다.
스칸디나비아 디자인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덴마크 건축의 가장 영향력 있었던 두 건축가를 뽑자면, 아르네 야콥센(Arne Jacobsen)과 요른 웃손(Jørn Utzon)이라고 생각한다. 아르네 야콥센은 완벽에 가까운 디자인으로 수많은 건축과 제품을 남겼고 지금도 그 섬세함은 볼수록 놀라운 반면, 요른 웃손의 건축은 명확히 설명되지 않는 감동과 영감을 남긴다. 이러한 합리성과 창의성이 공존하는 장이 스칸디나비아의 건축디자인이라고 생각한다.
디자이너에게 꼭 추천하고 싶은 곳이 있다면
8 Tallet(Copenhagen), ARC ski slope(Copenhagen), Lego House(Billund), Urban Rigger(Copenhagen)
북유럽 진출을 희망하는 후배 디자이너들을 위한 조언 한마디 부탁한다
기존의 북유럽 건축가들이 만들어온 토대 덕분에 더 자유로운 생각과 표현의 기회가 주어진다고 생각한다. 반면 건축이 많은 관심과 문화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하기에 그만큼 다양한 평가와 냉정한 비판도 존재하는 것 같다. 양면적인 환경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즐길 수 있다면 북유럽에서 많은 경험을 할 것을 추천한다.
Copenhill, Copenhagen (Denmark) ⓒ BIG
TSP : The Spiral, New York (USA) ⓒ BIG
8 Tallet (Copenhagen, Denmark) ⓒ BIG
최근식 가구 디자이너 / Studio Kunsik / kunsik.com
본인 소개를 부탁한다
현재 스웨덴에서 가구 디자이너로 활동하고 있는 최근식이라 한다. 2015년 스웨덴 남부의 도시 말뫼(Malmö)에 독립 스튜디오 겸 아틀리에를 설립해 지금까지 작업을 이어오고 있다. 다른 나라보다 북유럽을 선택하여 오게 된 이유는 한국에서 일을 할 때부터 잘 만들어진 덴마크와 스웨덴 가구들의 제작 방식이 궁금했던 차에 스웨덴에 가구 제작 방식을 장인들로부터 도제식으로 배울 수 있는 예술공예 학교가 있어서 처음 스웨덴에 오게 되었다.
북유럽에서 디자이너로 산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스웨덴 사람들은 디자이너나 아티스트의 작업을 높이 평가하고 좋아하는 경향이 있다. 예술계 종사자가 아니더라도 관심도가 전반적으로 높은 편이고, 작가의 유명도를 떠나 그 작업에 대한 스토리를 들여다보려고 하는 사람들이 많은 듯하다. 감사하게도 내 작업에 대해서도 관심을 주거나 구입을 원하는 연락을 종종 받는다. 업계 종사자가 아닌 분에게도 연락이 오는 걸 보면 신기하기도 하다. 사람들의 그런 관심과 소비는 디자이너나 작가들이 자기 작업에 집중하고 꾸준히 작업을 이어갈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 같다.
스칸디나비아 디자인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다양성의 편견 없는 공존이라고 본다. 디자이너들은 자신의 의도를 어떠한 제한도 두지 않고 자유롭게 사물로 표현하고 대중은 있는 그대로 그것을 받아들이고 취향에 따라 선택을 한다. 이러한 저변이 스칸디나비아 디자인을 더욱 풍부하게 만드는 근간이 아닐까. 북유럽 브랜드들로 대표되는 스칸디나비아 디자인은 생산성과 사용성을 고려한 산업 디자인 영역에서의 디자인으로 그것은 이곳 전체 디자인의 일부분이라고 생각한다.
디자이너에게 꼭 추천하고 싶은 곳이 있다면
북유럽으로 온다면 볕이 좋은 주말, 공원에 앉아 좋아하는 책이나 음악을 들으며 한낮을 보내보길 추천한다. 사람들의 일상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어떤 주말을 보내고 있는지 볼 수 있어 좋을 것 같고, 낯선 곳에서 보내는 평범한 하루에서는 의외로 느끼게 되는 것도 많은 것 같다. 말뫼의 장소를 추천한다면 Ribersborg 해변이나 Slottsparken, Pildammsparken 같은 장소가 될 것 같다.
북유럽 진출을 희망하는 후배 디자이너들을 위한 조언 한마디 부탁한다
본인이 좋아하는 또는 좋아할 수 있는 작업을 했으면 한다. 시작 단계라면 논리보다는 가슴으로 생각하며 앞으로의 계획을 짜면 좋을 것 같다. 해외에서 활동을 하는 것에 대한 장점도 있고 동시에 단점도 있지만 그것 자체에 대한 어떤 메리트는 없다고 생각한다. 본인이 좋아하는 작업을 더 집중해서 잘할 수 있는 곳이 어디인지가 가장 중요하다. 원론적인 얘기 같지만 사실 가장 중요한 부분인 것 같아 강조하고 싶다.
Facet ⓒ Kunsik
The Mirror ⓒ Kunsik
for Projekt Produkt ⓒ Kunsik
- 에필로그 -
총 4부로 진행된 이번 ‘북유럽의 한국인 디자이너’편을 기획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바로 호기심에 반짝이는 그들의 눈이다. 호기심(Curiosity)은 자신만의 세이프티 존(safety zone)을 벗어나게 해주는 중요한 열쇠다. “Push the boundary”라는 말이 있다. 경계를 허물어야만 변화가 일어나고 비로소 성장한다는 것. 주저하며 그 경계선 앞에 서성거리고만 있다면 당신에게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부디 여러분 앞에 놓인 다양한 모습의 경계선들을 주저 없이 뛰어넘기 바란다. 성장과 발전은 결코 우연의 산물이 아니기에.
글_ 조상우 객원편집위원(www.sangwooch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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