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7-24
서울디자인재단 권희대 홍보팀장은 처음 만났을 때부터 좀 남다른 느낌이었다. 뭐랄까, 예술가적 기질이 느껴졌다고 해야 할까.
재단에 몸을 담고 있으면서도 풍겨지는 자유로움, 여유, 미소 같은 것은 그에게 특별한 무언가가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했다. 역시나 그는 남달랐다. 페이스북에 글을 쓰고, 인스타그램에 사진을 올리는 그의 활동들을 보며 과거 디자인 매거진의 기자로 활동했던 그의 이력이 떠올랐다.
처음 그를 알게 됐을 때부터 그가 디자인 매거진 기자 출신이라는 걸 알고 있었지만, 언젠가 그에게 칼럼 기고를 부탁하고 그가 쓴 글을 접하게 됐을 때 받았던 ‘충격’은 쉽게 가시지 않았다. 술술 읽히는 글을 너무나도 잘 쓰는 것이 아닌가! 물론 ‘선배 기자님’이니 당연한 일일 수 있지만, 에디터는 그 글 앞에서 한없이 작아지고 부끄러워졌다.
그렇다. 그는 글을 참 잘 쓴다. 그의 필력은 그를 알고 있는 많은 사람들이 이미 잘 알고 있는 사실이다. 사진도 두말할 것이 없다. 한 번 읽기 시작하면 눈을 뗄 수 없이 잘 읽히는 재미난 글에 사진을 더해 그가 책을 냈다. 서울디자인재단의 홍보팀장이 아닌 글을 쓰는 작가로 데뷔한 거다.
<15라운드를 버틴 록키처럼-세상이라는 ‘링’위에서, 오늘도 그로기 상태일 당신에게>, 권희대 지음, 책밥상
책의 제목은 <15라운드를 버틴 록키처럼-세상이라는 ‘링’위에서, 오늘도 그로기 상태일 당신에게>. 제목처럼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보내는 글이다. 이곳저곳을 다니며 보고 느낀 자신의 감정들을 간결하게 적어 나간 그의 글은 읽는 이들에게 세상을 새롭게 바라보게 한다. 짧지만 감동이 있는 글이 마음을 어루만진다.
서울디자인재단 권희대 홍보팀장
권희대 팀장, 아니 권희대 작가의 책 쓴 이야기가 궁금했다. 그에게 인터뷰를 요청했다. 인터뷰는 서면으로 이루어졌다. 메일로 질문에 대한 답을 전달하며 그는 ‘글에 들어가 있는 ㅎㅎ 부분을 그대로 살려달라’고 주문했다. ‘마이너리그 1등 문장가’가 되고 싶다는 그다웠다.
Q. 먼저 독자들을 위해 작가님에 대한 소개 부탁한다.
매일매일 라운드를 뛰듯 살아가고 있는 그저 이 시대의 평범한 직장인입니다. 물론 록키처럼 피를 뚝뚝 흘리지는 않지만 세상이라는 링 위에서 많은 직장인처럼 즐겁고, 힘들고, 보람차고, 어렵다고 느끼는, 복합적인 감정들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예전부터 그런 감정들을 글로 표현하고 싶었습니다. 그것도 잘 세공된 문장으로 쓰고 싶었습니다. 우리나라 직장인 중에서는 가장 감동적인 글을 쓰는 ‘마이너리그 1등 문장가’가 되는 꿈을 꾸는 사람입니다.
<어느 좋은 날>, 권희대
<일본 기차 여행>, 권희대
Q. <15라운드를 버틴 록키처럼-세상이라는 ‘링’위에서, 오늘도 그로기 상태일 당신에게>를 출간했다. 어떤 책인가?
한마디로 여행책입니다. 물론 제목 어디에도 여행의 느낌은 없죠. 제목만 보면 권투나 싸움의 기술, 혹은 역경극복을 가르쳐주는 처절한 자기계발서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 책은 사람 여행책입니다. 여행지에서 만난 이 시대의 보통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특별할 것 없고, 가진 것 없는 사람들이 자신의 이름으로 주어진 인생의 길을 꾸역꾸역 걸어가고 있는 이야기입니다. 결국 패배하더라도, 승리 이상의 것을 얻은 록키처럼 말이죠. 제가 그들을 보면서 느꼈던 아스라한 감동을 책을 통해 전하고 싶었습니다. 결국 우리 자신들의 숨겨진 이야기이기도 하니까요.
Q. 책을 출간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브런치와 페이스북에 틈틈이 글을 썼는데, 그 글을 보신 책밥상의 전지운 대표님께서 제안을 해주셨습니다. 발랄하고 산뜻한, 마치 브런치 카페의 메뉴 같은 이 시대의 출판 트렌드와 다른 글을 책으로 내자고 과감하게 제안해주신 대표님께 지금도 고마운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비슷한 연령대라 같은 감성을 공유한 것 같아요. 죽이 잘 맞아서 대표님과 제가 만들고 싶은 책을 열심히 만들었습니다.
<중도에서>, 권희대
Q. 언제부터 글쓰기를 해왔나?
서른 살 전에는 글쓰기에 대해 그다지 생각해보지 않았습니다. 글쓰기는 100미터 달리기 선수처럼 특출난 재능을 타고나야 하는 거라고 생각했죠. 하지만 어느 순간 글을 잘 쓰고 싶었습니다. 아주 오래 전 평범해 보이던 친구가 글로 누군가를 감동시키는 것을 보았을 때, 사람이 할 수 있는 가치 있는 일 중에 하나가 바로 이런 게 아닐까, 하고 느낀 순간부터였을 거예요. 그 후로 외국어를 배우듯 글을 썼습니다. 위대한 문장가들을 흉내 내며, 때론 좌절하고, 때론 희열을 느끼며 그렇게 써오니 어느 순간 제가 100미터 트랙을 달리고 있더군요. 그다지 숨찬 줄도 모르게요. 물론 그렇다고 100미터를 10초에 돌파하는 뛰어난 선수가 되었다는 뜻은 아닙니다.
<프로스테판의 모래 언덕>, 권희대
<여행지에서 만난 소설>, 권희대
Q. 사진도 찍는데, 사진과 글은 어떤 의미인가?
사진과 글은 제게는 시소같은 관계입니다. 글이 잘 써질 때는 사진에 그다지 흥미를 느끼지 못하다가도, 글이 막힐 때 카메라를 들고 나가면 마음의 드는 사진을 건지곤 합니다. 그리고 사진은 글로 다 표현하지 못하는 어슴푸레하고 모호한 감정을 보여주는 효과적인 도구입니다. 때론 무언가를 쓰고 싶어도 써지지 않을 때가 있죠. 그럴 때면 이미지에서 그 답을 찾곤 합니다.
Q. 숏폼 에세이를 썼는데.
요즘에는 숏폼 동영상이 대세잖아요? 그만큼 미디어의 콘텐츠를 대하는 사람들의 호흡이 짧아진 것 같습니다. 문학에서 가장 짧은 것은 시라고 할 수 있지만, 시의 리듬감을 익히지 못하면 제대로 읽어내기 어렵습니다. 산문에서도 시가 주는 여운을 독자들에게 전하고 싶었습니다. 가능한 읽기 쉬운 방식으로 짧게 쓰다보니 숏폼 형식이 되었습니다. 물론 예외적인 것도 있지만, 글 한편 당 일반적인 에세이보다는 짧습니다.
<인제 겨울>, 권희대
<이 겨울 강원도>, 권희대
Q. 글쓰기, 사진 촬영 등의 작업과 서울디자인재단 홍보팀 업무와 연관성이 있다면?
서울디자인재단은 DDP를 기반으로 다양한 디자인 사업을 펼치고 있습니다. 서울을 경쟁력 있는 도시로 만들기 위해 전문적인 사업을 실행하는 디자인 특공대인 셈이죠. 하지만 시민에게 우리가 하는 일을 알리는 게 쉬운 일은 아닙니다. 예를 들어 시민들이 보고싶어 하는 게 멋진 외관의 자동차라면 우리가 다루는 건 복잡한 부품을 결합시키는 엔진을 작동시키는 일이니까요. 일반 시민이 그런 과정을 흥미진진하게 보지는 않을 거예요. 그런데 디자인의 결과물과 과정은 그런 면이 다분하고요. 홍보팀을 맡은 사람으로 시민과의 소통을 위해 소프트한 문화와는 또 다른 분야인 디자인 전문용어를 어떻게 하면 쉽게 풀어내고 전달할까 고민하다보니, 이렇게 사진까지 들어간 감성에세이까지 쓰게 되었습니다. 소통이 점점 어려워진다고 느끼면 나중에 어떤 일까지 하게 될지 저도 모르겠습니다 ㅎㅎ.
Q. 독자들에게 전달하고 싶은 메시지는 무엇인가?
우리 모두 마음의 식스팩을 만들자입니다. 힘들고 어려운 시기를 살아가려면 건강한 몸만큼이나 마음의 건강도 중요한데, 하루 아침에 이루어지는 것은 아닐 겁니다. 매일매일 조금이라도 훈련하다 보면, 마음에도 근육이 붙어 힘든 일들을 저 멀리 던져버릴 수 있는 힘이 생기지 않을까요? 마음에 모래주머니 달기가 필요하죠.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다면 책을 읽어보시면 알 수 있을 겁니다 ㅎㅎ.
Q. 작가로서 앞으로의 계획은?
앞으로도 직장에 열심히 다니겠습니다 ㅎㅎ. 우선 본업에 충실하고 휴식을 취한 다음에 글을 쓰고 싶은 마음이 스멀스멀 올라올 때 다시 글을 쓸 생각입니다. 글이 잘 써지지 않을 때는 다시 카메라를 들고 밖에 나갈 생각이고요!
인터뷰어_ 정석원 편집주간(jsw@jungle.co.kr)
에디터_ 최유진 편집장(yjchoi@jungle.co.kr)
사진제공_ 권희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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