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10-15
30년이 넘은 오래된 오목공원이 시민의 휴식공간으로 재탄생했다. ‘공원의 미래를 엿보다, 오목공원 리노베이션’이라는 명칭으로 새로운 모습을 갖추게 된 오목공원이 ‘대한민국 공공디자인대상’ 대상(대통령상) 수상작으로 선정됐다.
대한민국 공공디자인대상을 수상한 '공원의 미래를 엿보다, 오목공원 리노베이션' ⓒ 유청오
2008년 시작되어 올해 17회를 맞이한 ‘대한민국 공공디자인대상’은 정부혁신계획의 일환으로 공공디자인 발전 기반과 국민의 향유권을 확대하기 위해 마련된 공공디자인 분야의 대표 공모전이다. 올해는 ‘포용: 모두를 위한 변화’라는 주제로 공공디자인을 통해 서로 다름을 존중하고 함께 나아가는 사회를 만들자는 의미를 담아 공공디자인 활성화에 기여하는 우수사례 부문과 일상의 현안을 직접 해결할 수 있는 아이디어 부문으로 공모를 진행했다.
올해 우수사례 부문으로 대통령상을 수상한 ‘공원의 미래를 엿보다, 오목공원 리노베이션’은 서울양천구에 1989년 조성되어 노후화가 진행되고 있던 오목공원을 새로운 모습으로 변화시킨 프로젝트다. 해당 프로젝트는 공원이 가진 기존 공간구조의 장점을 살려 정사각형의 회랑을 중심으로 시민들이 다양하게 휴식을 취할 수 있도록 녹지공간, 운동시설, 미술관 및 어린이 놀이시설 등을 유기적으로 연결했다.
특히, 이번 프로젝트는 ‘문화를 품은 예술공원’을 지향하며 조성 당시 달라진 시민의 생애주기 및 문화여가 생활양식, 반려견 문화 등을 종합적으로 반영한 점에서 전문가 평가 및 국민참여심사에서 높은 점수를 받았다.
이번 프로젝트는 ㈜디자인스튜디오 엘오씨아이(loci)가 기획했다. 엘오씨아이는 푸른 별 지구, 우리가 사는 곳곳, 자연과 도시와 정원,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한 관심을 바탕으로, 오목공원 리노베이션을 비롯하여 아모레퍼시픽 본사, 통의동 브릭웰 정원 등 경관, 도시, 정원 등 사람과 자연을 잇는 다양한 규모의 프로젝트를 수행해 왔다.
디자인스튜디오 엘오씨아이의 로고
이번 프로젝트에서 엘오씨아이는 노후한 근린공원을 현대 시민들의 생활 양식에 맞춰 개선, 미래형 공원의 선도 모델을 제시하며, 연령, 세대, 나이, 계절 등에 관계없이 다양한 휴식을 제공하여 기업과 시민의 참여를 이끌고 지역 사회 환원 가치를 강화한 오목공원의 모습을 선보였다. 엘오씨아이 박승진 소장으로부터 오목공원 프로젝트에 대해 들었다.
디자인스튜디오 엘오씨아이 박승진 소장
엘오씨아이 대표소장 박승진. 서울대학교 환경계획연구소를 거쳐 우리나라 1세대 조경설계 사무실인 서안에서 설계 실무를 했다. 워커힐호텔, 서울아산병원, 삼성전자 화성사업장 등의 프로젝트를 수행했으며, 2007년에 현재의 사무실을 열어 풀무원 물의 정원, 남해 사우스케이프 오너스클럽, 강릉 시마크호텔, 아모레퍼시픽의 기술연구원 및 오산 뷰티캠퍼스, 제주 오설록 티하우스, 아모레퍼시픽 본사 사옥, 통의동 브릭웰정원, 대구 미래농원(mrnw) 등을 설계했다.
Q. 어떻게 오목공원 리노베이션 프로젝트를 진행하게 됐나.
오목공원 리노베이션은 ‘목동중심축 5대 공원 맞춤형 리모델링’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진행됐다. 오목공원이 위치한 양천구 목동은 88 서울올림픽을 기점으로 목동 신시가지를 중심으로 개발이 이루어졌다. 대규모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면서 공원의 필요성이 제기돼 건축, 조경, 도시계획 분야 전문가들이 모여 목동중심축에 다섯 개 공원을 조성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도시는 많이 달라지고 성장했는데, 공원은 시설보수만 진행됐다. 양천구는 시설 보수와 더불어 공원을 대하는 태도와 이용 방식에 접근해 순차적으로 공원을 리모델링하고 있다. 5대 공원 중 하나인 오목공원 리노베이션을 위해 2021년 5월 ‘오목공원 맞춤형 리노베이션 지명 설계공모’를 열었다. 다섯 초청작 중 디자인스튜디오 엘오씨아이(design studio loci)의 ‘어반 퍼블릭 라운지’가 당선작으로 선정됐다. 리노베이션은 다양해진 시민들의 공원 이용 방식을 고려해 진행됐다.
Q. 기존의 오목공원은 어떤 장소였나. 기존의 오목공원을 어떻게 변화시키고자 했나.
1989년 최초 조성된 오목공원은 30살이 넘은 공원으로, 사방150m의 정사각형의 형태에 가까운 공원이다. 중심 상업 지구에 놓여 있어 주변이 높은 건물로 채워질 테니 바깥쪽으로 키 큰 나무를 심었을 것이다. 가운데는 ‘오목’하게 비운 일종의 중앙광장이 있었다. 비교적 단순한 형태의 오목공원의 매력은 높게 자란 나무들이다. 건물 3~4층 높이까지 훌쩍 자란 나무들의 녹음은 오래된 공원의 큰 자산이다. 사람들은 더위를 피해 나무 아래로 숨어드는데 편히 앉을 벤치가 매우 부족한 공원이었다. 나무 그늘 속 벤치는 운이 좋아야 차지할 수 있다.
광장의 크기를 줄이고 편안히 머물 수 있는 장소를 늘리기로 했다. 비를 피하고 안정적인 그늘을 만들 수 있는 커다란 구조물이 필요했다. 맛있는 샌드위치와 커피를 마실 수 있고, 정원을 바라보며 산뜻한 수다를 떨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무겁고 딱딱한 공원 벤치가 아니라 원하는 곳으로 옮겨 삼삼오오 앉을 수 있는 편안한 의자도 필요했다. 로비는 서성이는 공간이며, 라운지는 앉아서 떠드는 장소이다. 공원은 편하게 앉아 오래 머무르며 품위 있게 쉴 수 있는, 도시의 라운지여야 한다.
현상공모 당시 아이디어 스케치
Q. 이번 작업에서 가장 중점을 두었던 부분은.
오목공원 리모델링의 핵심은 공공 라운지라는 프로그램 공간을 공원에 삽입하는 것이다. 30여 년간 잘 자라 준 나무들은 그 자체로 공원의 녹색 자산으로 유지되고, 동시에 공공 라운지의 두터운 경계로 기능한다. 나무 아래 하층 식생을 강화하면 숲의 볼륨이 두 배 이상 커질 수 있다. 도시는 성장한다. 목동 일대는 머지않은 시기에 용적이 두 배 이상 늘어날 것이다. 도시공원의 기능도 변화한다. 소극적 도시숲의 기능에 더해 적극적으로 주민들의 도시 활동에 대응하는 공공 공간으로 기능해야 한다. 낡아서 고쳐 써야 하는 리모델링이 아니라, 좋은 것은 안고 가면서 더 필요한 프로그램을 더하는 업그레이드가 필요하다. 업그레이드에는 리모델링과는 조금 다른 전략이 필요하다. 불필요한 시설로 판단되어 없애는 시설을 최소화한다.
새롭게 삽입되는 시설의 경우도 기존의 공간적 틀을 유지하는 것이 좋다. 오목공원의 경우 설비가 노후한 벽천과 야외 조형물, 스탠드 구조물을 철거하고 넓은 보행로와 선큰 광장의 일부 공간을 활용해 회랑 구조물을 삽입함으로써 전체 공간의 틀을 유지하고 있다. 하층 식생이 전무한 식재지에 낮은 보드워크(board walk)와 데크로 이루어진 숲속 라운지 공간을 ‘삽입’했고, 나머지 식재지에는 소교목과 관목으로 하층 식생을 강화했다. 결과적으로 녹지 공간과 식생 볼륨이 늘어나고 공원 프로그램을 위한 공간이 확보됐다.
리노베이션을 통해 새로운 공간으로 탄생한 오목공원 ⓒ 유청오
Q. 리노베이션을 통해 변화된 공간 구성에 대해 소개한다면.
좁고 긴 통로를 따라 ‘걷는’ 회랑은 오목공원에 없다. 앉아 있는 공간을 단순히 덮고 있는, ‘회랑형 덮개’라고 하는 것이 맞겠다. 덮개가 있으면 비와 더위를 피할 수 있다. 주변의 높은 건물들을 가려주니 안온함이 생긴다. 안과 밖을 구분할 수 있어 쓰임새가 좋아진다. 하나의 시설물이 아닌 공원의 구심점으로 작동하는 공간적 장치다. 회랑 안쪽은 살짝 낮춰진 마당이다. 마당의 가장자리에 길게 걸터앉을 수 있다.
공원의 겨울은 길다. 찬바람을 피하고 몸을 녹일 공간이 필요하다. 회랑 아래 작은 실내 공간을 만들었다. 유리로 마감되어 있어서 낮은 각도로 들어오는 겨울철 볕을 모을 수 있다. 각각 작은 전시 공간으로, 책 쉼터로, 식물을 공부하고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공간으로 사용된다. 기존 관리사무소를 리모델링한 건축물에는 화장실, 수유실, 작은 창고, 관리사무실을 재구성하고, 중심 공간은 미술관으로 꾸몄다. 지역 예술가들을 비롯해 청년 작가들, 아이들, 동네 예술 동호인들의 전시 공간으로 사용된다. 공원 개장에 맞춰 ‘오목한 미술관’이란 이름으로 불리고 있다.
키즈 카페는 공모 이후 서울시 예산으로 추가된 프로그램이다. 협소한 야외 놀이 시설을 보완한다. 공원은 아이들과 부모들이 함께 이용하기 좋은 공간이다. 부모들이 잠시 휴식을 즐기는 동안 아이들은 놀이를 즐긴다. 놀이 공간 구성은 별도의 전문 설계 팀이 맡았다.
기존의 운동공간과 농구장은 위치를 존중하되, 낡은 시설을 보수하고 바닥포장을 새롭게 정비해 쾌적성을 높였다. 농구장 주변의 높은 안전 휀스는 아이들이 공을 주우러 이리저리 다니는 수고를 덜어준다. 운동 공간의 목재 데크는 비가 와도 물 빠짐이 좋아 운동하기가 편하다.
오목공원은 '도시의 공공라운지'를 지행한다. ⓒ 유청오
Q. ‘도시의 공공라운지’를 지향하는 오목공원에는 어떤 내용이 담겨있나.
공원은 때로는 한적하고 때로는 붐벼야 한다. 설계공모 당시 회랑의 다양한 기능에 대해 많이 고민했다. 도시공원은 광장의 기능도 해야 한다. 평소에는 비어 있으나 어떤 때는 북적이는 활동을 담아야 한다. 2024년 3월부터 한달에 한 번, 주말에 마르쉐 농부 시장이 열린다. 회랑의 공간적 장치(지붕과 단차)가 장터를 만들기에 도움이 된다. 2023년 가을, 중정에서 버스킹, 오케스트라 연주 등 콘서트가 개최됐다. 연주자들이 만들어내는 아름다운 소리는 감동을 준다. 여기저기 걸터앉아 음악을 듣고 차를 마시고 스몰 토크가 오고 간다. 공원의 일상은 소소하다.
회랑의 지붕은 바닥에서 3.5m정도 떠 있다. 저녁 때 공원을 방문하면 위층에서 산책하는 사람이 제법 많다. 더 늦은 시간에 가보면 젊은 커플이 즐비하다.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는 행위는 즐겁다. 한 개 층 높이에 불과하지만, 시점의 변화를 느낄 수 있다. 의자를 옮겨가며 아래 중정을 보거나 반대편 숲을 바라볼 수 있다. 폭은 제법 넓어서 필요한 활동을 더 담을 수 있다. 한정된 공원 면적을 늘림 셈이다. 편안한 이동이 절실한 사람 누구라도 쉽게 이용할 수 있도록 엘리베이터도 설치했다.
도시의 공공라운지로써의 조건을 두루 갖춘 오목공원 ⓒ 유청오
Q. 이번 리노베이션의 핵심 포인트는.
공원은 일하러 가는 곳이 아니다. 운동만 하는 곳도 아니다. 공원은 편하게 앉아 오래 머무르며 품위 있게 쉴 수 있는, 도시의 공공 라운지여야 한다. 특별한 목적이 없더라도 눈치 보지 않고 서성이고 또 않을 수 있어야 한다. 더위를 피할 수 있어야 하고, 비를 맞지 않고도 비 오는 풍경을 감상할 수 있어야 한다. 싸구려 벤치가 아니라 폼 나고 질 좋은 가구가 있다면 더욱 좋다. 도시 라운지가 갖춰야 할 최소한 조건은 의자다.
라운지가 되려면 모여 앉을 수 있는 공간이 있어야 한다. 이를 가능하게 하는 요소가 의자, 특히 움직일 수 있는 의자다. 어느 공원을 가도 벤치는 한자리에서 내리쬐는 땡볕을 받아내고 비를 정통으로 맞기도 한다. 의자를 자율적으로 가지고 다니면 햇볕과 비를 피할 수 있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 의자에 앉아 음식을 먹기도 하는데 테이블이 없으니 손에 들고 있거나 의자 사이에 두거나 땅에 놓기도 한다. 차와 음식을 올려놓는 테이블도 설치했다.
Q. 오목공원이 앞으로 어떤 공간으로 자리매김하길 바라나.
도시는 변화하고 공원도 진화한다. 오목공원은 30년 동안 유지되었고 잘 자라주었다. 리모델링을 통해 다음 세대로 이어지게 됐다. 회랑과 중정은 공원의 진화에 잘 대응하길 기대한다. 풍성해진 숲도 건강하게 잘 자라길 바란다.
Q. 엘오씨아이의 계획은.
세상과의 소통, 자연과의 교감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우리의 작업이 사회적 기능의 역할을 충분히 하고 있는지, 인간과 자연의 교감을 구현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지 늘 끊임없이 고민한다. 좋은 조경 공간을 통해 생생한 자연이 만들어내는 순수한 체험을 많은 이들에게 선사하고 싶다. 회사명인 엘오씨아이(loci)는 라틴어로 장소를 의미하는데, 궁극적으로 좋은 장소를 많이 만드는 디자인스튜디오 엘오씨아이(design studio loci)로 기억되고 싶다.
인터뷰어_ 정석원 편집주간(jsw@jungle.co.kr)
에디터_ 최유진 편집장(yjchoi@jungle.co.kr)
사진제공_ (주)디자인스튜디오 엘오씨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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