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3-09
우리 고유의 언어 한글은 세계의 언어학자들이 인정하는 세계에서 가장 훌륭한 글자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정작 우리 국민들은 이 아름다운 언어 한글에 대한 소중함을 잘 깨닫지 못하고 있다. 최근 K-문화의 확산으로 인해 세계의 여러 나라 사람들이 한글에 관심을 갖는 사례가 많아지고 있지만 많은 국민들은 아직 그 가치를 체험하지 못하고 있는 듯하다.
우리의 말과 글 한글을 지키며, 그 가치를 더욱 널리 알리기 위해 앞장서온 사람이 있다. 한말글문화협회 리대로 대표다. 박정희 대통령에게 한글전용정책을 펴도록 한 그는 한자혼용을 막았고, 국회의 상징표지를 한자에서 한글로 바꾸고, 법률문장을 우리말로 바꾸고, 영어 공용어 주장을 막고, 한글날을 국경일로 바꾼 1등 공신이었다.
리대로 대표
대학생 때부터 한글 운동을 시작한 리대로 대표는 1967년 동국대 국어운동대학회를 만들고 창립 초대 회장을 맡으며 당시 박정희 대통령에게 한글전용정책을 펴도록 했다. 1972년 전국국어운동대학생동문회 창립 초대 회장을 맡은 그는 18년 동안 전국 국어운동대학생회의 후배들을 이끌고 한글학회와 한글전용운동 선봉에 섰다.
1991년 시민운동단체인 한말글사랑겨레모임을 만들고 대표로 활동했던 그는 한글문화단체모두모임(회장 안호상)의 이사로 한글단체들과 함께 한말글 사랑 운동을 펼쳤으며, 1993년 14대 국회 때부터 한자로 쓰는 국회의원 이름패와 휘장 한글로 바꾸기 운동을 하면서 법률문장 우리말로 바꾸기, 한글날 국경일제정운동을 했다.
1998년 이오덕 선생과 우리말살리는겨레모임을 창립, 공동대표로 지금까지 활동하고 있는 그는 2005년 한글날국경일제정범국민위원회(위원장 전택부)의 사무총장으로 한글날국경일제정법을 통과시켰고, 2012년 한글날공휴일추진위원회 상임대표로 한글날 공휴일을 되찾았다.
2007년에는 정국 절강월수외대 한국어과 교수로 있으면서 전 중국 대학 한국어과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글문화큰잔치를 열었다. 절강월수외대에 처음으로 ‘세종학당’ 간판을 걸고 한국문화 교육을 시작한 그는 정부에 세종학당사업과 한글박물관 건립을 건의, 추진하도록 했다.
리대로 대표의 '중국에 한글을 심다'. 2007년 중국 절강월수외대에 근무하면서 리대로 대표는 학교에 태권도장을 만들고, 한국문화체험장 책임을 맡은 뒤 세종학당 간판을 걸었으며, 정부에 세종학당사업과 한글박물관을 지으라고 건의했다. 아홉 해째에 중국 절강월수외대에서 진행됐던 한글문화큰잔치. 이 행사는 사드 문제 이후 중단된 상태다.
제9차 한글문화큰잔치에서의 리대로 대표
그는 현재 한글이 태어난 곳인 경복궁 정문에 한글 현판을 달고 다시 한글 빛내고 자랑하기, 한글을 만든 세종대왕이 태어난 곳을 찾아 민족문화성지로 꾸미기, 한글역사 유적지인 광화문 일대를 한글문화관광지로 꾸미는 한글마루지사업 등을 추진하고 있다.
지금까지 58년째 한말글을 지키고 빛내기 위한 운동의 선봉에서 활동하고 있는 리대로 대표는 2010년부터 한글학회 부설 한말글문화협회의 대표를 맡고 있다.
Q. 우리말과 글을 살리기 위해 한 길을 걸어왔다. 이런 인생의 방향을 설정한 계기는 무엇인가.
1962년 충남 예산농업고등학교에 들어갔는데, 박정희 김종필 군사정부가 광복 뒤부터 한글전용으로 만들던 교과서를 앞으로는 한자혼용으로 만들겠다고 발표를 했다. 이에 따라 농업시간에도 “사과나무에 거름추기는 施肥, 꽃따기는 摘花, 가지치기는 剪枝다”라는 일본 한자말로 내용을 썼고, 칠판에 한자를 쓰면서 앞으로는 한자공부를 해야한다고 가르쳤다.
나는 농고를 나와 대학에 가지 않고 아버지 모시고 농사를 지으려고 했기 때문에 학교에 다닐 때 책을 많이 읽으려고 했었다. 그런데 도서관에 있는 농업 전문서적들은 일본 책이거나 일본 말투로 된 한자혼용 책이었다. 당시에는 한글전용과 한자혼용 논쟁 논단이 있었는데, 한글전용 주장이 옳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한글로 만든 교과서나 한글로 쓴 신문 글이 아무런 문제가 없는데 나라 정책이 잘못 가고 있음을 깨달았던 것이다. 한글로 쓴 김소월의 시, 이광수의 소설들은 한자가 없었는데, 이러한 책들을 재미있게 읽으며 한글전용 정책을 추진하게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때 예산농고 선배인 농촌운동가인 한인수(새마을운동제창자)가 조회 시간에 자주 와서 강연을 하며 “80%의 농민이 하루에 밥 세끼도 먹지 못한다. 문맹인 농촌을 부흥시켜야 한다”며 농촌부흥운동을 외쳤다. 예산 출신인 과학자 이태규(미국 유타대) 교수의 “박정희 장군이 우리나라 과학을 발전시켜달라고 해서 귀국했다. 나와 내 가족 다섯 명이 미국 박사다. 세상은 넓고 할 일은 많다. 고향 젊은이들아! 뜻을 세우고 꿈을 가지고 살라!”는 강연을 듣고 대학에 가서 농촌운동과 한글운동하기로 다짐했다.
1969년 한글날이 지나서 진관사 뒤 북한산에 들놀이 갔을 때. 오른쪽부터 동국대 국어운동학생회 회장 이대로 허웅 지도 교수, 여학생 옆 서울대 국어운동학생회 회장 이봉원
1968년 한글날 덕수궁 세종대왕동상에 꽃바치기 행사. 왼쪽 끝에 서있는 리대로 대표
Q. 대학 입학 후엔 어떤 활동을 했나.
농고 출신으로 진학 공부보다 농업 공부만 열심히 한 탓에 대학에 들어갈 실력이 되지 않았고, 가고자 했던 대학 입시에서 떨어졌다. 대학에 가서 꼭 국어독립운동을 해야겠다고 마음을 먹었기에 고민이 되었다. 한글학자 김윤경 교수께 내 고민을 써서 보내니 “뜻이 있으면 길이 있다. 대학에 가서 꼭 한글학계에 이름을 남기라”는 격려편지를 보내주셨고, 동국대 농대에 들어갔다.
1965년 5월 25일 김윤경 교수로부터 받은 답장 6장 중 처음과 끝 두 장
학교에 있던 농촌운동 모임에 바로 참여했고, 2학년 때 국어운동대학생회를 만들었다. 나라가 위기에 닥치면 의병이 일어나듯이 서울대 국어운동대학생회(회장 이봉원)를 시작으로 1967년에 서울대, 연대, 고려대 동국대 국어운동대학회가 태어났다. 그해 한글날에 함께 박정희 정부에 한글전용 정책을 펴라고 건의하니 박정희 대통령이 우리 건의를 듣고 1968년 3월 한글전용정책을 검토하겠다고 발표를 했다.
4개 대학 국어운동학생회 회원들이 서울 동숭동 서울문리대 교정에서 박정희 대통령 발표를 환영하는 기자회견을 했는데, 그때 내가 한국방송 라디오 인터뷰를 했다. 그해 말 박정희 대통령이 1970년부터 한글전용 정책을 강력하게 펴겠다고 발표하면서 한글이 태어난 경복궁 정문 광화문에 한글 현판을 달았다.
Q. 농민운동을 결심했다가 한글운동으로 방향을 튼 배경은 무엇인가.
민족운동 차원에서 국어운동과 농촌운동을 하려고 대학에 들어갔는데, 동국대학교에 농촌운동 모임이 오래 전부터 있었기에 바로 참여를 했다. 국어운동 모임은 내가 처음 만들었다. 그때는 ‘문자전쟁’이라고 할 정도로 한글전용과 한자혼용 싸움이 치열해서 국어운동대학생회 지도 교수였던 허웅 한글학회 회장을 모시고 그 문자전쟁의 선봉에 서게 되면서부터 한글운동 마당을 떠날 수 없게 되었다.
대학국어운동학생회를 만들고 정부에 건의했던 한글전용 정책이 실현되는 기쁨을 안고 졸업 뒤 군대를 갔다가 1972년 제대를 했는데, 김종필 총리와 일본식 한자혼용 세력이 한글전용 정책을 뒤엎으려고 하고 있었다. 그때 우리 학생들의 지도 교수였던 허웅 교수가 한글학회 회장으로 있었는데 군 제대 인사 차 찾아 뵙고 “이제 농촌에 가서 농촌운동을 하겠다”고 말씀드리니 “학생 때 너희들이 이룩한 한글전용정책이 물거품이 되게 되었으니 다시 후배들을 이끌고 함께 싸우자”라고 말씀하셔서 전국국어운동대학생동문회를 만들게 되었는데 후배들이 내가 회장을 맡으면 따르겠다고 해 그때부터 한글학회를 도와 한글운동 길에 들어서게 되었다.
1968년 국어운동학생회를 만드는 걸 도와준 농촌운동 동지들이 한글이름 ‘이대로’를 처음 불러주었다. '이대로'라는 이름으로 받은 편지, 그리고 학훈단 병영훈련을 갔을 때 농촌봉사활동을 간 국어운동학생회 후배가 보낸 위문편지. 함께 농촌운동 모임도 하면서 국어운동학생회 창립을 도운 고마운 국문과 여학생 후배다.
1968년 겨울방학 때 학교에 남아 모임 회지 편집을 하고 있을 때 그 모임 대표인 이순섭 부장이 한글이름 ‘이대로’라는 이름으로 보낸 엽서. 이 엽서는 김윤경 교수의 편지와 함께 한글박물관에 기증했다.
Q. 한말글문화협회는 어떻게 설립이 되었나.
한말글문화협회의 뿌리는 한글학회와 그 부설조직인 한글문화협회에 있다. 한글학회는 주시경 선생이 대한제국 때인 1908년에 최현배, 김두봉 등 그 제자들과 만든 우리나라 최초 학회이자 세계 최초 언어학회로, 일제 때부터 학술활동만 하는 학회가 아니라 국어독립운동도 함께 한 민족운동 단체다.
한글문화협회는 박정희 대통령이 한글전용 정책을 펴기로 했을 때 일본식 한자혼용에 길들여진 일본 국민교육세대가 한글을 못살게 하는 단체까지 만들어서 반대를 펼쳤을 당시 조직이 되었다. 1974년 한글학회 안에서 한글운동을 하는 한글타자기 발명가 공병우, 와이엠씨에이 총무 전택부, 세종대 이사장 주영하 선생들을 중심으로 초대 법무부장관 이인, 시조 시인 이은상, 아동문학가 윤석중 선생들이 함께 한글운동을 하는 한글문화협회를 한글학회 부설로 조직했다.
그 뒤 2005년 한글날을 국경일로 만든 뒤 젊은이들이 나서서 우리말글 운동을 함께 하자는 뜻으로 주시경 선생이 만든 우리말 이름 ‘한말’, 우리글자 이름 ‘한글’을 합쳐 ‘한말글문화협회’로 이름을 바꾸면서 시작된 것이 한말글문화협회(대표 문제안)다. 이후 중국 대학의 일을 마치고 귀국한 뒤 협회의 제안을 받아 내가 대표를 맡게 되었다.
이대로 대표를 국어독립운동 길에 나서게 한 두 분. 연세대 교정에 있는 김윤경 교수님 흉상 옆에서(왼쪽), 국립묘지에 있는 이태규 박사 무덤 옆에서(오른쪽)
Q. 한말글문화협회에서는 어떤 활동들을 펼쳤나.
한말글문화협회는 그동안 한자혼용과 한자병기 정책을 막는 일, 우리말을 지키고 살리는 일, 영어 마구 쓰기 반대운동, 한글날 공휴일 되찾기, 한글이 태어난 곳인 경복궁 정문에 한글 현판을 달고 다시 한글을 빛내고 자랑하기, 한글을 만든 세종대왕이 태어난 곳을 찾아 민족문화성지로 꾸미기, 한글역사 유적지인 광화문일대를 한글문화관광지로 꾸미는 한글마루지사업 추진, 한글과 한국어 지키고 빛내기 위한 한글박물관 건립, 한글날 공휴일 되찾기 등등 많은 일을 해왔다. 지금도 우리 말글을 살리고 빛내기 위한 활동을 해 나가고 있다.
허웅 한글학회 회장과 함께 한 한글운동. 1999년 박원홍 의원이 앞장서서 한글전용법 폐지 법안을 냈을 때 반대투장하던 모습. 왼쪽 끝이 우리말살리는겨레모임 대표 이대로, 우리쪽 앞에서 두 번째가 허웅 한글학회 회장
Q. 한글에 대한 중요성에 대해 아직도 많은 국민들이 인지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은데.
한글은 세계의 이름난 언어학자들이 세계에서 가장 훌륭한 글자로 인정하는 글자다. 하지만 우리는 한글이 태어난 후 사백 년 한글이 그렇게 훌륭한 글자임도 알지 못했고, 제대로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대한제국 때 외국인들이 한글이 로마자보다도 훌륭한 글자임과 한자보다 한글을 쓰는 것이 좋다는 것을 알려주면서 주시경 선생과 그 제자들이 한글을 지키고 살려서 한글을 쓰기 시작했고, 반세기만에 한글로 선진국의 문턱까지 오게 되었다.
그러나 아직도 한글을 우습게 여기는 사람이 많고, 제대로 사용하지 않아 한글이 가진 모든 능력을 다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금강석이 좋아도 갈고 닦아 다이아몬드로 만들어야 더 빛이 나듯이 한글이 좋아도 쓰지 않으면 제대로 빛나지 못한다. 그런데 오랫동안 한자를 쓰고 섬기면서 길든 언어사대주의와 일본 식민지 국민교육으로 뿌리내린 식민지 노예근성이 한글을 빛나지 못하게 하고 있다.
한자를 쓰지 않으면 안 되는 일본은 중학교까지 나와야 제 말글을 마음대로 쓰고, 중국은 고등학교까지 마쳐야 제 말글살이를 한다. 우리는 초등학교 때 한글을 다 알게 되어 일본과 중국보다 먼저 모든 책을 읽을 수 있고, 지식과 정보를 먼저 얻을 수 있어 그들보다 앞설 수 있다. 배우고 쓰기 쉬운 한글이 힘과 시간을 벌게 해주고, 그 힘과 시간을 이용해 일본과 중국을 앞설 수 있는데 국민들이 그걸 모르고 있다.
특히, 한글은 정보통신기계와 잘 어울려서 정보화 시대에 더욱 빛이 난다. 세종대왕과 한글 덕분에 우리는 세계 으뜸 국민이 될 수 있는데 아직도 한자를 섬기고 영어까지 받들고 있어 한글이 제대로 빛나지 못하는 것이다. 하늘이 준 복을 스스로 버리는 일이다.
Q. 우리 말과 글을 잘 사용하고 가꾸기 위해 생활 속에서 지켜야 할 것이 있다면 무엇일까.
아무리 좋은 한글이라도 사용하지 않으면 빛나지 못한다. 우리 말글이 있는데 제 이름도 제 말글로 짓지 못하고 쓰지 않는 것은 매우 잘못된 일이고 못난 일이다. 우리 글자가 없을 때 중국 한자로 이름을 짓고 쓴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그러나 이제 세계에서 으뜸가는 우리글자인 한글이 있고 한글이 좋다는 걸 깨닫고 실천하는 한글세상이다. 이제 제 이름과 회사와 상품이름부터 한말글로 짓고 적어야 한다. 그리고 우리말을 우리 글자인 한글로 적는 말글살이를 해야 우리 얼이 살고, 자주독립국이 되어 통일도 이루고, 우리 자주문화가 꽃피고, 자주독립 문화강국이 되고, 노벨상을 타는 사람도 많이 나온다.
그래서 나는 1968년에 아버지가 지어 주신 한자이름 ‘李澤魯’를 스스로 ‘이대로’라고 바꾸고 한말글 이름 짓기 운동을 하고 있다. 이제 많은 이들이 우리말글로 이름을 짓고 있어 고맙고 기쁘다. 그런데 요즘 일제 때 일본이 강제로 일본식으로 창씨개명을 시킨 것은 잘못되었다고 비판하면서 오늘날 스스로 미국말글로 창씨개명을 하고 있으니 서글프다. 한말글이 살고 빛나면 우리 겨레와 나라도 살고 빛이 난다.
Q. 5월 15일 세종대왕 탄신일이 국가기념일로 정해졌다. 여기에 큰 힘을 보탰는데.
세종대왕은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세계 어떤 정치지도자보다 훌륭한 지도자로서 백성과 인류를 위한 훌륭한 일을 많이 하셨다. 그 가운데 한글을 만든 것은 세계 역사상 빛날 일이고, 고맙고 자랑스러운 일이다. 그런데 세종대왕이 태어난 곳도 모르고, 태어난 날에 그 무덤에서 탄신 행사를 하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기에 한글날을 국경일로 만든 뒤인 2006부터 세종대왕 나신 곳 찾기에 나섰다. 그래서 서울시에 한글마루지사업을 하게 건의하고, 세종대왕 나신 곳 찾기를 하기로 했지만 아직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하지만 다행히 많은 분들이 애써서 세종대왕 나신 날이 국가기념일이 되었고, 태어나신 서울에서 축하잔치를 하게 되어 기쁘다.
세종대왕 태어난 곳을 찾아 겨레문화성지로 꾸리고, 그분이 태어난 날에 온 국민이 축하 잔지를 하고 그분의 업적과 정신을 되새기며 기리는 것은 후손된 도리이며 겨레와 나라를 빛내는 일이다. 한글과 세종정신이 살고 빛나면 우리 겨레와 나라도 빛나고 우리는 어깨를 펴고 살게 된다. 이 일은 우리가 한마음만 되면 쉽게 이룰 수 있다. 언제까지 외세에 짓눌리고 나라가 둘로 갈려서 싸움만 하는데에 세월과 힘을 소비해야 한단 말인가. 한글과 세종정신이 사는 길은 우리 겨레의 얼이 살고 우리의 자긍심을 드높이는 일이다.
세종대왕 나신 곳 찾기 운동. 2006년 서울시의회 박주웅 의장에게 세종대왕 나신 곳을 찾자는 건의문 전달식 모습
세종대왕 태어나신 날에 세종대왕 태어나신 곳을 찾아 세종대왕 태어난 곳에서 축하잔치를 하자고 1인 시위하는 리대로 대표
Q. 광화문 현판이 한글 현판으로 교체되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는데.
문화재청이 한글 현판을 뗀다고 할 때부터 잘못된 일이었기에 반대했고, 한글 현판 달기에 앞장을 서고 있다. 한글은 세종대왕께서 경복궁에서 만들었다. 그런데 한글이 그곳에서 태어났다는 아무런 표시가 없다. 이를 알리고 자랑하며 세종대왕의 은덕을 기리지도 않는다. 그래서 일찍이 우리 국어운동대학생회는 1968년에 정부에 한글을 살리고 빛내자는 건의를 했고, 박정희 대통령은 한글을 빛내기로 하고 그 뜻을 담아 한글로 광화문 현판을 달고 나라를 일으켰다.
그런데 무엇이 진짜 귀중한 문화유산이며 우리가 빛내야 하는 것인지 모르는 문화재청이 그 한글 현판은 독재정치의 상징이라며 떼어냈고, 나라가 망할 때 걸었던 한자 복제 현판을 걸었다. 그것도 가짜 현판을 걸고 원형을 복원했다고 거창하게 제막식을 하면서 국민을 속이는 사기극까지 벌였다. 바보스러운 일이고 못난 일이며, 나라 망신이 아닐 수 없다.
그 한글 현판은 국민의 소리를 듣고 단 민주 자주의 상징이며 국운상승의 깃발이었다. 그런데 국가유산청과 한자 숭배자들은 한글이 태어나고 400년이 지났는데도 한자만 섬기다가 나라가 망한 증거인 그 한자 현판을 복제해 다시 걸었다. 그것이 역사요, 좋은 일이라고 말하고 있으며, 많은 국민들이 그 말을 따르고 있어 무척 안타깝다. 한자 현판은 나라의 망신거리다.
리대로 대표는 2005년, 한글 현판 떼고 한자 현판 달기 반대에 앞장섰다.
한글이 태어난 곳인 경복궁 광화문에 한글 현판을 달고 한글 빛내자는 운동. 2024년 한글창제 581돌 날에 해외동포와 시민단체 대표들을 이끌고 한글현판 달기 추진운동에 나선 리대로(맨 왼쪽 아래 아래) 대표
Q. 추진하고 있는 사업을 통해 이루고자 하는 것이 있다면.
한글을 빛내는 것은 우리뿐만 아니라 인류문화발전에도 이바지하는 일이다. 한글은 우리 자긍심이고 자신감이며 우리를 잘살게 해줄 자주문화 창조 도구요, 빼어난 문화경쟁 무기다. 한글이 살고 한글을 빛내는 일은 우리나라와 겨레가 살고 빛나는 일이다.
한글을 빛내는 밑바탕을 다지기 위해 한글날을 국경일로 만들었듯이 한글이 태어난 곳인 경복궁 광화문에 한글 현판을 달고 한글을 자랑하고 빛내기, 한글을 만들고 훌륭한 일을 많이 하신 세종대왕 나신 곳을 찾아 성역화 하기, 한글이 태어나고 자란 광화문광장 일대를 한글자주문화 유적지로 꾸미기, 일본 식민지 국민교육으로 길든 일본 한자말 버리고 우리말 살려 쓰기, 영어 마구 쓰는 것과 외국 말투 버리기에 힘을 쓰고 있다.
오늘날 나라가 남북으로 갈리고 또 남쪽은 좌우로 갈려서 밤낮 싸우기에 힘과 시간을 보내고 있다. 하지만 정말 먼저 힘쓸 일은 한글과 한글을 만든 세종대왕을 빛내어 자주정신으로 하나가 되어 나라를 일으키는 것이다. 이를 깨닫고 함께 이 일에 힘을 쓰면 좋겠다. 이를 통해 죽기 전 자주독립국을 이루고 자주통일을 하는 것이 나의 목표다.
인터뷰어_ 정석원 편집주간
에디터_ 최유진 편집장
사진제공_ 리대로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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