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10-27
지난 호에서는 일러스트레이터로서 살아가는 데 겪는 어려움에 대해 이야기했다. 이번 호에서는 일러스트레이터들이 ‘산’을 넘는 방법에 대해 이야기해 보기로 한다. 오로지 혼자서 높은 산 정상에 올라야 하는 프리랜스 일러트레이터들이 자신만의 튼튼한 밧줄을 만드는 방법을 함께 찾아보려는 것이다.
글 | 김남균 mqpm 대표, 에디터 | 정윤희(yhjung@jungle.co.kr)
일러스트레이터의 대부분은 프리랜스다. 프리랜스의 사전적 의미는 중세 유럽에서, 어떠한 국가• 당파• 주의에도 속하지 않고 자유롭게 보수를 받으며 군무에 종사하던 기사(騎士)를 뜻한다. 즉 프리랜스는 모든 것을 본인 스스로 해결해야 한다. 포트폴리오 준비 및 홍보, 보수에 대한 협상, 계약서를 분석하고 체결하는 방법, 입금확인 여부, 담당자 관리와 이미지 메이킹까지 직접 챙겨야 할 일들은 생각보다 많다. 실제 작업과 상관없는 일들이 작품 활동에 영향을 주게 되는 ‘실전’은 그리 낭만적이지 않음을 알아야 한다.
보통 클라이언트나 홍보처에 포트폴리오를 올리면 자연스레 홍보가 되고 당장 일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실무는 그림 외에도 신경 쓸 것이 한 두 가지가 아니다. 사회의 일원으로서 활동을 시작한 것이기에 ‘필터링’을 통과해야 하는데 초보 일러스트레이터에겐 넘어야 할 장애물이 높아만 보인다. 가령 일을 시작하더라도 담당자와 커뮤니케이션이 안되어 일이 중간에 어그러지거나, 일을 다 끝냈는데도 출판이 힘들어지겠다는 통보를 받거나, 일이 끝나 보수가 들어올 시점을 넘겼는데도 보수가 들어오지 않는 경우를 종종 겪게 되는데 이것이 필터링이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계약서 항목 하나하나에 대해 알게 되고 대처 및 예방법들을 체득하며 창작활동에 영향을 끼치는 요소들을 사전에 조율하고 정리하는 습관을 갖게 될 것이다. 이처럼 프리랜스 일러스트레이터는 저작자이기 전에 사회의 일원으로서, 비즈니스를 하는 사람으로서 어떤 포지션을 구축해야 한다는 것을 알아가게 된다.
대부분의 출판사 담당자들은 일러스트레이터와의 교류가 많아 처음부터 친근한 경우가 많다. 반면 비출판사인 클라이언트는 일러스트 프로세스를 잘 파악하지 못하고 있기도 하다. 일러스트레이터와의 교류가 적어 상대적으로 시스템을 갖추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계약서 한 장 없는 경우도 있고 그림을 디렉팅할 때 명령조로 디렉팅할 때도 있다. 그러나 잘 몰라서 생기는 일이니 작업을 하면서 설득하고 서로 이해하며 진행해야 한다. 특히 기업에서 진행하는 경우에는 여러 가지 행정적인 트러블이 있는데 내부 체계가 복잡하고 길어(부장, 과장, 대리 등의 보고체계) 작업의 흐름을 방해 하는 일도 있다. 하지만 이런 체계 자체를 바꾸기란 불가능하기 때문에 구조를 이해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클라이언트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동료의식이 필요하다. 그들은 우리에게 보수를 주는 사람이 아니라 조율하는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것뿐, 비슷한 생활을 하고 있는 동료다. 또한 일러스트레이터의 결과물이 좋으면 담당자도 좋은 평가를 받고 반대의 경우 부정적인 평가를 받는다. 서로 밀접한 영향을 주고받는 관계인 것이다. 처음 만나는 담당자가 자신과 나이가 비슷하거나 생각이 비슷하다면 일을 하며 자연스럽게 인간적으로 친분을 만드는 것이 좋겠다. 담당자들도 자신과 호흡이 잘 맞는 일러스트레이터들과 함께 하고 싶은 마음을 갖는 것은 대단히 자연스러운 심리일 것이다. 억지로 맞출 수야 없겠지만 그들을 그저 일로만 대한다면 이해의 폭도 좁아지고 자신의 성장에 필요한 영향을 받기도 힘들다.
<꿀밤나무>
라는 무가지는 일을 통해 알게 된 편집자, 디자이너, 글작가, 일러스트레이터가 만든 잡지다. 그들이 현재 출판계의 맏언니와 맏형의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을 생각한다면 함께 성장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커뮤니케이션을 잘하기 위해서는 서로간의 친밀도가 중요한 만큼 먼저 마음의 문을 열고 작은 실수들을 보듬어 가자. 그렇게 동료애를 나누다 보면 결과물 역시 좋아질 것이다.
꿀밤나무>
사회의 일원으로 세련되게 비즈니스하는 방법을 알게 되었다고 하더라도 작업실에 돌아오면 외로움을 맞닥뜨리게 된다. 초보 일러스트레이터에게 권하고 싶은 것은 가급적이면 선배 일러스트레이터나 동료들과 함께 작업실을 쓰라는 것이다. 그래야 그때그때 어려운 것을 상의할 수 있다. 의외로 아주 작은 일에 외로워져서 일을 그만두는 경우가 많다. 누가 해결해주지 못하는 본인만의 사정도 있겠지만 가까운 사람과 의미 없는 수다라도 일러스트레이터에겐 좋은 자극이 되고 리듬이 되기도 하며 작업을 할 수 있도록 하는 연결고리가 되기도 한다. 보통 1년 차 일러스트레이터가 호기심과 희망으로 한 해를 보낸다면 2년 차부터는 현실에 대한 두려움과 스스로에 대한 실망이 가득해진다. 부모님이 바라보는 불안한 시선과 특별히 내놓지 못하는 결과물에 대한 두려움들이 섞여있는 시기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강제성 없이 스스로 포트폴리오를 준비해 나가야 하기 때문에 그동안 연구했던 테크닉과 화면 구성에 대해 회의감을 느끼기도 한다. 이 때 주의해야 할 것은 완성도를 높이는 것에 치중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보다 진지하고 재미있는 연출방법을 연구한 후 완성하는 것이 풍부한 결과물을 얻는데 도움이 된다. 완성도에 매달리다 보면 한가지 스타일로 굳어질 수 있다. 채색할 때는 70% 정도의 완성도를 유지하며 가능성을 열어두는 것이 적절하다. 물론 그 중 한 두장은 완성도 있는 결과물을 도출해야겠지만 그 결과물에 스스로 만족하기보다 또 다른 방법으로 변화할 수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두는 것이 좋다. 이 시기에 가장 주의해야 할 점은 스스로 포기하는 것인데, 완성도에만 욕심을 부리다 보면 자신이 들인 정성에 비해 사회에서의 평가가 상대적으로 낮을 때 오는 자괴감 때문에 작업에 접근하는 것 자체를 두려워하게 되기도 한다. 또한 그런 과정에서 오는 상대적인 박탈감은 대상을 알 수 없는 불만을 만들어낸다.
초보 일러스트레이터는 자신의 스타일을 만드는 것에 치중하기 마련이다. 좀더 멋있어 보이는 그림과 재미있는 재료와 기법에 대한 욕구가 있다. 하지만 스타일이란 늘 변해야 마땅할 것인데 지금의 것을 허물고 새로운 것을 세우기를 두려워한다면 시대가 원하는 부분을 충족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 여기서 필자가 말하려는 스타일이란 형태와 기법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말할 것인가’에 대한 근본적인 이야기다. 예를 들어 ‘철수야, 안녕?’이라는 지문이 있다. 영희가 철수를 보고 오른팔을 들며 엷은 미소와 함께 서있는 모습과 비 오는 날 쓸쓸한 영희의 뒷모습이 멀리 잡힌 모습을 상상해 보자. 같은 지문이지만 서로 다른 스타일로 내용을 이야기 할 수 있는 것처럼, 여기서 스타일이란 어떻게 이야기 할 것인가에 대한 문제다. 담당자는 상대 일러스트레이터가 내용을 어떻게 수용하여 엮어 줄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더 많이 하게 된다. 자칫 캐릭터나 기법에 치중하여 실제 본인이 말하고자 하는 내용이 빠져 있었던 것은 아닌지 고민하는 습관을 갖는다면 성장의 폭을 넓힐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초보 일러스트레이터에게 가장 필요한 포트폴리오는 다양한 발상과 인물연구, 그리고 수많은 드로잉 연습으로 자신이 이야기 하고자 하는 방식에 가능성을 열어두는 것이다. 드로잉은 일러스트의 시작이다. 국내 일러스트레이터 지망생 대부분의 목표가 그림책 밖에 없는 것처럼 보일 정도로 교육기관이나 매체 등에서 그림책 쪽으로 지도하고 조명하는 경우가 많으나 일러스트레이션의 쓰임은 다양하며 그 폭이 넓다. 미래 시장의 변화를 생각할 때 너무 일찍부터 단조로운 시장에 자신의 영역을 가두기보다 다양한 시장에 접근하는 것이 옳은 방법이라 생각된다. 그림책이 매력 있는 장르임에 분명하지만 한가지의 장르에 너무 치중하다 보면 과열경쟁이 생길 수 있고 한글시장이라는 맹점으로 인해 한계가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온라인에 포트폴리오를 올려놓고 일이 들어올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감나무 아래 누워 감이 떨어지기를 바라는 것과 같다. 온라인에 올려놓은 포트폴리오는 자신을 보여 줄 수 있는 최소한의 수단이지 최대한의 수단이 아니다. 일단 온라인은 보조수단으로 사용하고 오프라인으로 활동 범위를 만들어야 한다. 얼굴을 마주하고 눈빛을 나눠야 진짜 교류가 가능해진다. 포트폴리오만으로 할 수 없었던 이야기를 꺼낼 수도 있고, 자신의 위치와 성장 폭을 가늠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긴다. 온라인은 생각보다 협소하니 가급적 정성스러운 포트폴리오를 만들어 클라이언트를 찾아가자. 포트폴리오는 완성된 작업과 함께 드로잉을 가져가는 것이 좋다. 그림일기라면 더 좋겠다. 대부분의 담당자가 여성인 것을 감안하면 비슷한 생각을 갖고 있는 사람들과 이야기할 수 있는 좋은 매개가 될 수 있다. 미팅을 하고 돌아오면 받아 온 명함에 있는 주소로 이메일 보내는 것을 잊지 말자. 마음으로 쓰는 편지라면 잊혀지기 쉬운 미팅에 좀 더 좋은 인상을 심어 줄 수 있을 것이다. 오프라인에서의 활동이 클라이언트를 찾아가는 것만 있는 것은 아니다. 작은 카페에서 전시를 기획하거나, 엽서 또는 뱃지 등을 팔아보며 불특정 다수에게 노출시켜 보는 방법도 나쁘지 않다.
또 비슷한 취미를 갖고 있는 사람을 만나보는 것도 권하고 싶다. 많은 경험을 쌓을 수 있다는 것 외에도 취미를 가짐으로써 경력과 함께 쌓이게 될 스트레스를 그때그때 풀 수 있다면 작업의 속도가 지체되고 늘어지는 것을 방지할 수 있을 것이다.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며 사회생활의 간접경험을 통해 사회 전반을 바라보는 이해의 폭도 넓힐 수 있음은 물론이다. 서울지역에 산다면 도처에 좋은 강좌가 많으니 적극 활용하길 바란다.
좋은 일러스트레이터는 이해력이 좋은 사람이다. 그림이 아무리 좋아도 텍스트와 어울리지 않는다면 활용 범위가 낮을 수 밖에 없다. 이해의 폭을 높이려면 본인 스스로 건강해지고 적극적으로 세상을 바라보아야 한다. 늘 메모하고 드로잉하고, 신문 기사를 읽고 사람을 관찰하면서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에 귀 기울여야 한다. 소설가가 텍스트로 생각을 드러내고 있다면 일러스트레이터는 텍스트로 표현하지 못하는 생각을 시각이미지로 나타내는 사람이다.
어떤 상품을 홍보하기 위해서는 그 상품의 경쟁력과 가능성, 명분 등이 어디에 있는지를 파악하는 것처럼 자신이 생산한 작품과 가장 중요한 자신을 사람들에게 어떻게 꺼내놓아야 하는지는 스스로 고민해봐야 할 것이다.
그림과는 상관없는 분야를 전공했다 상관없어 보이는 전공이라고 장점이 없는 건 아니다. 워낙 책을 좋아해서 표지 일러스트레이션 의뢰를 받으면 거의 대부분 원고를 읽고 작업한다. 그러다 보니 편집자, 마케팅 담당자, 디자이너 등과 회의를 할 때 오히려 나 혼자 책의 숨은 의미를 파악하고 있는 경우도 있었다. 외서의 경우 제목을 제안했던 것이 받아들여진 적도 있고. 『아빠는 가출 중』이라는 책은 원제가 『염세 플레이버』였다. 직역하면 염세의 향기 정도될 텐데 일본 문학 속에서만 해석 가능한 단어라고 생각했다. 두 가지 시안을 보내면서 하나에 제목을 ‘아빠는 가출 중’이라고 넣어 보냈는데 받아들여졌다. 『레모네이드 마마』도 비슷한 경우였다. 10대 미혼모 이야기였는데 내용과 달리 제목이 딱딱한 것 같아 제안하게 됐다. 깊이 있는 작업이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지만 자칫 관계자나 첫인상으로 책을 구입하는 독자들과의 커뮤니케이션에서 어려움을 겪을 수도 있기에 조심스러운 부분이다.
먼저 제안하는 게 쉽지만은 않을 것 같다. 좋은 의도를 다르게 해석할 수도 있고 제목까지 제안하는 경우는 좀 드문 경우고, 기획서 자체에 대한 제안은 종종 한다. 그림에 대한 의사표현이라는 게 추상적이어서 ‘깨끗하다’는 표현도 사람마다 다르게 해석하는 경우가 있다. 추상적인 기획서가 올 경우 생각을 공유하려는 차원에서 문서화하고 샘플과 함께 제시하는데 월권이라고 생각하거나 마감에 충실하지 못하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서로 작업에 대한 생각을 공유하고 조율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커뮤니케이션의 핵심은 얼마나 양보하고 어디까지 고집을 부리느냐인데, 노하우가 있나 일을 하다 보면 안목이 있는 편집자와 그렇지 않은 편집자가 있다. 안목이 있는 사람에게는 양보가 필요하고,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고집이 필요하겠지. 하지만 서로 다른 미학적 가치관을 갖고 살아온 사람 간의 만남이라는 것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계속해서 분석하고 조율해 나가는 것이 노하우다. 어떻게 보면 책은 성공 여부가 가장 중요하기 때문에 결국 정답은 없는 것 같다. 내 경우에는 작품을 할 때마다 일지를 만든다. 이를테면 작업마다 어떤 문제가 생겼고 어떻게 해결했는지 기록해 두는 것인데, 시간이 지나면서 데이터가 축적되고 그만큼 변수에 대처할 수 있는 능력이 생겼다. 하지만 100개의 경험이 쌓였다고 만능이 되는 건 아니다. 101번째 작업에서 새로운 변수가 생길 수도 있으니까. 이런 부분에서 생기는 스트레스를 즐길 수 있어야 지치지 않고 계속 일러스트레이터라는 직업을 유지할 수 있다고 본다.
이런저런 변수에도 불구하고 ‘지속 가능한’ 일러스트레이터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지속 가능한 일러스트레이터가 되려면 자신만의 콘텐츠, 즉 저작권을 가질 수 있는 콘텐츠를 만드는 게 가장 이상적이라고 생각한다. 역할 모델로 삼고 있는 『꿈꾸는 책들의 도시』를 쓴 발터 뫼르스는 만화가로 시작해 소설가로 활동하고 있다. 만화가 출신답게 자신의 소설에 직접 그림을 그리기도 하는데 소설 속에 드러나는 특유의 상상력이 정말 매력적이다. 소위 스타일이라는 것에는 개인의 교양이 반영된다고 생각한다. 자신에게 맞는 교양을 쌓아야 한다. 그림 그리는 재능은 타고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는데 노력이 필수적으로 뒷받침되어야 한다. 내 경우에는 전공자가 아니기 때문에 전공자만큼 더 훈련하려고 노력했다. 지금도 각종 워크숍 등에 참가하면서 배우고 있는데 평생 교육이 필요하다고 본다.
어느 정도 자리가 잡힌 일러스트레이터라면 모르겠지만 이제 시작한 사람으로서는 무언가 배우면서 생활을 이어가기가 힘들다. 특히 경제적인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일러스트레이터로서 자존감이 떨어지기도 하고
그렇게 자존감이 떨어진다는 것 자체도 창작의 원천이라 생각한다. 『바이 바이 베스파』 같은 경우도 자존감이 떨어진 상황에서 나온 것이다. 대학 때 만화 연재로 용돈을 벌고 있던 터라 졸업하자마자 프리랜서로 활동하려고 했고, 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금세 벽에 부딪히게 됐다. 나뿐만 아니라 스스로 특별하다고 생각하고 또 특별한 사람이 되려고 하지만 어느 순간 특별하지 않다고 느낄 때가 있을 것이다. 그것조차 창작의 원천으로 이용할 수 있는 게 바로 예술가이고 일러스트레이터라고 생각한다. 그런 어려움이 닥쳤을 때 상황에 따라 하나씩 풀어가면 된다. 시간이 약이 되기도 하고…. 내 경우에는 애니메이션 회사에 취직하기도 했는데 장르를 한정 짓지 않았으면 한다. 일러스트레이션 안에서도 장르를 한정 짓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일러스트레이션이건, 동화책이건, 만화건 어쨌든 다 ‘그림’ 하나로 묶이지 않나. 노력이 전제되어야겠지만 그림으로 풀 수 있는 거라면 얼마든지 해결할 수 있다고 본다. 그림도 결국 사람이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 활동하고 있는 일러스트레이터의 숫자를 정확하게 파악할 수는 없지만 대략적으로 산출해 보면 산그림에 등록된 일러스트레이터가 약 2,200명이다. 등록하지 않은 일러스트레이터를 1.5~2배수로 생각했을 때 국내 일러스트레이터의 수는 약 3,500명에서 5,000명이 된다. 국내 시각디자이너의 숫자가 3만9564명인 것을 감안하면(2007년 기준) 그리 많은 숫자도 아니고, 나누어 먹을 수 있는 ‘파이’는 충분할 것 같은데 왜 어려운 것일까. 그 이유를 따져 보자면 IMF까지 거슬러 올라가게 된다.
시장의 축소와 확대
일러스트레이션 분야에서 IMF는 중요한 정점을 찍는다. IMF로 인해 인원감축을 시도하던 기업들은 가장 먼저 사보 등에 들어가는 예산을 줄였고, 광고 및 일반 성인출판물 분야에서는 표지 디자인을 디자이너의 역량에 맡기기 시작하며 이제는 사라진 장르도 생겼다. 특히 고급 일러스트레이션으로 각광받던 광고 일러스트나 자동차, 기계 등을 정교하게 그려내던 일러스트레이션은 C.G와 디지털 카메라의 발달로 맥을 잇기 어렵게 됐다.
그러나 아동출판물에서 소비되는 일러스트레이션의 수요는 급증하기 시작했다. 어린이책의 실수요자인 부모들은 자녀에게 좋은 책을 가져다 주는 능동적인 386세대였고, 때마침 출판사의 주요 구성원 역시 386세대로 채워지면서 너나 할 것 없이 공격적으로 뛰어들게 된 것이다. 어린이책의 종류와 양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게 되면서 부흥기를 맞이하자 자연 일러스트레이션 시장도 넓어지게 됐다. 급속도로 커진 어린이책 시장에서는 일러스트레이션의 빠른 공급이 필요했다. 소비자들은 해외 일러스트레이터와 국내 시장이 어렵지 않게 연결되면서 점차 다양한 비주얼을 기대하기 시작했다. 더불어 텍스트와 일러스트레이션의 조화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으며, 비록 어린이책에 국한되기는 했지만 관계자들은 수준 높은 방법의 일러스트 디렉팅을 연구하고 그 안에서 가능성과 영역의 확장을 시도하기 시작했다. 또 이 시기에 상호 작용하는 인터넷의 특징을 살려 온라인 커뮤니티가 늘어났다. 출판미술협회 도록이나 I&I 등의 화집으로 나타나던 일러스트레이터 홍보 책자가 활발한 활동을 보이자 산그림이 등장, 온라인을 거점으로 일러스트레이터 홍보 시장을 잠식하기에 이른다. 산그림의 등장은 신인 일러스트레이터에게 좋은 기회였다. 일러스트레이터가 발로 뛰거나 소개받는 방식에서 클라이언트가 편리하게 쇼핑하는 방식으로 바뀌었고, 일러스트레이터 간 교류의 장으로 발전했기 때문이다.
이처럼 일러스트레이터의 숫자는 늘었지만 어린이책 시장은 우려했던 거품이 빠지기 시작하며 더 이상 팽창하지 않게 된다. 한글이라는 특수성 때문에 어린이 출판물 시장은 국내 인구에 비례하여 파이가 나누어진다. 일러스트레이터 500명이 있을 때와 5000명이 있을 때의 수입은 그만큼 달라질 것이다. 소위 잘나가는 작가는 고소득을 이룰 것이며 적응을 못하거나 제대로 경쟁하지 못하는 일러스트레이터는 적은 소득을 가질 수밖에 없는 자유시장경쟁의 원리가 냉정하게 적용되기 시작한 것이다.
* 글쓴이 김남균은 중학교 3학년 때『초록반 아이들』로 데뷔하였다. 그 후 『치과에 갔어요』『원숭이학교』『학교갈 때 꼭꼭 약속해』 등 표지, 잡지, 그림책에 일러스트레이터로 참여했다. 한동안 초등학교 교사로 재직하기도 하였으며, 파인아티스트로 활동하며 2004년 광주비엔날레에 참여한 바 있다. 매년 열리는
<종이팥빙수>
전을 기획하고 있으며, 현재 mqpm system 및 갤러리 그문화 대표로 있다. mqp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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