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진아 | 2016-08-05
7월 중순부터 8월 중순까지 지구 북반부에 사는 수많은 현대인은 직장일이나 평소 하던 일을 잠시 멈추고 휴가를 떠난다. 특히 7월 말부터 8월 초, 여름 날씨가 가장 더워지면 직장과 일상을 벗어나 평소 가보지 못한 낯선 장소로 여행을 떠나기도 하고 과거 가본 곳이 좋아 되돌아 가기도 한다. 어떤 이는 매일의 힘든 일상에서 벗어나 쉬는 시간을 갖기 위하여 여행을 떠나고, 또 어떤 이는 틀에 박히고 따분한 일상으로부터 잠시나마 탈피하여 새로운 자극과 경험을 찾으러 여행을 떠난다.
과거 선조들은 무더위를 피해서 산속 깊은 곳 녹림과 얼음처럼 차가운 시냇물이 흐르는 산으로 피서를 떠나 풍류를 즐겼다. 18세기 조선 시대 화가 겸재 정선(鄭敾)은 강원도 금강산, 서울 인왕산을 비롯한 여러 명산과 그 주변 명승지를 몸소 여행하며 있는 그대로의 경치, 이른바 진경산수화(眞景山水畵)를 그렸다. 정선의 진경산수는 여행 브로슈어나 엽서 역할을 하며 조선 선비들 사이에서 명산 관광붐을 일으켰다. 도교와 불교가 지배하던 고대 중국에서도 귀족들은 중국 5대 명악, 그중에서도 특히 으뜸으로 꼽히던 태산(泰山)을 오르내리며 풍류를 즐겼고, 그 경험을 기행문과 그림으로 기록했다.
대중관광은 시차과 국경을 초월한 글로벌화를 의미하며 만인에게 이동의 자유와 여행의 민주화를 뜻한다. 누구나 여권을 소지할 수 있고 여행의 자유가 일반화된 요즘, 저렴한 항공권만 구하면 어디로든 해외여행을 할 수 있게 되었다. 특히 요즘 현대인들 사이에선 바닷가 해변에서 수영복 차림으로 일광욕을 하며 한가한 시간을 보내는 이른바 비치 홀리데이(Beach Holiday)가 보편화되었다. 여름 휴가철 해변가 이미지는 끝없이 펼지치는 백사장 위로 바다를 향해 비스듬이 늘어서 있는 야자수와 저멀리 눈부시게 빛나는 에머랄드빛 바다가 펼쳐져 있는 이국적인 해변가 풍경은 만인의 뇌리 속에 깊이 각인되었다.
비치 홀리데이가 상업적 휴가의 대명사가 되기 이전, 해수욕은 본래 18세기 영국에서 호흡기 질환, 피부 질환, 허약 체질을 개선하는 데 권유된 질병치료 목적의 의료 요법이었다. 건강 개선을 위해 바닷가를 방문한 환자들의 숙박과 식사를 책임지는 것은 물론 스파, 사교, 오락에 이르는 서비스 일체를 제공하기 위해 해변 요양 도시들은 리조트와 카지노 단지로 개발되었고, 이는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여러 상업적 리조트 호텔 체인 업체들의 원형이 되었다. 과학기술 발전과 철도건설 붐에 힘입어서 19세기 중엽이 되자 대륙권 유럽 곳곳에는 알프스 산맥 - 프랑스 - 이탈리아 - 지중해 - 아드리아해 - 터어키 오트만 제국에 이르는 거리를 철도가 놓일 기찻길로 여행할 수 있는 대중 교통망을 구축했다.
그래서 익숙하고 편한 내 집을 떠나 낯선 여정에 오르는 여행을 흔히들 ‘사서하는 고생’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우선 여행을 하려면 여행비용을 마련해야 하고, 낮선 객지에서 외국어 장벽에 부딪혀도 헤쳐나갈 용기가 필요하며, 아무리 시중에 나와 있는 상세한 여행서나 지도를 철저히 탐독하고 사전준비를 한 후 떠나도 계획대로 여정이 풀리지 않아 당황할 가능성도 감수해야 한다. 그럼에도 한번 ‘여행 벌레(Travel Bug)’에 물려 길바람이 든 여행광은 수시로 여행가방을 챙겨들고 여행길에 오르고 또 오른다. 모든 여행은 전에 몰랐던 새로운 것에 눈을 뜨게 해주고 타성에 젖어 있는 정신에 활력을 불어 넣어준다. 미국 판타지 소설가 레이 브래드버리가 말했듯 “여행에서 얻는 재미의 절반은 길을 잃는 것”과 그 경험에서 얻는 배움에 있기 때문일 테다.
크든 작든 우리 인간에게 여행이란 교육적인 경험이다. 그래서 고대 서양의 점성가들은 여행을 오늘날로 치자면 대학교 이상에 해당하는 고등교육이자 철학과 종교에 준하는 고매한 인생 영역이라 보았다. 실제로 여행은 단편적인 지식이 아닌 깊은 깨달음을 얻어 현명하고 성숙한 인간으로 훈육시키는 교육과 인격 도야의 과정으로 활용되곤 했다. 오늘날 많은 젊은이가 외국어를 연마하기 위해 해외 어학 연수를 떠나거나 학위를 따기 위해 타도시나 타국으로 유학의 길에 오르듯, 과거 사람들도 문물이 더 발달한 더 큰 세상 물정을 직접 경험하고 배우기 위해 낯선 타지로 공부여행을 떠났다.
장인 직공(journeyman, 도제 수업 수학 후 남의 작업실에서 일하는 숙련 직공)이란 집을 떠나서 방방곡곡 타지를 떠돌아다니며 일자리를 줄 공방을 찾아나선 장인을 뜻한다. 예컨대 독일 르네상스 미술의 최대 거장 뒤러는 장인 직공 수련을 마친 후 보다 큰 세상의 앞선 문물을 배우러 르네상스 미술의 발상지 이탈리아로 떠나 직접 화가들과 건축가들을 만나고 그들의 작품을 접하면서 기능을 연마했다. 금빛 찬연한 비엔나 사교계 여성들의 초상화를 그렸던 구스타프 클림트도 이탈리아의 베네치아와 라벤나를 여행하던 중 보게 된 비잔틴 양식의 건축과 미술작품에 감명받아 금박을 붙여 그림 그리는 기법을 응용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여행이란 젊은이에게는 교육의 일부이고 나이든 자에게는 인생 경험의 일부이다”라고 영국의 경험주의 철학자 프랜시스 베이컨(Francis Bacon)은 말했다. 여행은 아주 오래 전 고대부터 인간의 정신과 영혼을 살찌우고 일상 속에서는 배울 수 없는 것을 깨닫게 해주는 ’교육’ 과정이었다. 낮에는 업무나 농사를 직접 관장하고 밤에는 사교와 외교로 시간을 보냈던 고대 그리스의 특권층에게 여행이란 저 먼 곳 다른 나라에 있는 위대한 건축물과 예술작품을 직접 보고 감상하거나 외국어를 배우고 외국 문화를 경험할 수 있던 특권이었다.
<죽음의 수용소에서(Man’s Search for Meaning)>의 저자인 정신의학자 빅터 프랑클(Viktor Frankl)은 “인생에 의미라는 것이 있다면 고난에도 반드시 의미가 있을 것이다”고 말했다. 지금에 비할 수 없이 교통이 불편했던 옛사람들에게도 집을 떠나 몸을 움직이고 무거운 짐을 이끌면서 다른 곳으로 이동하고 익숙치 않은 환경과 문화를 접하는 일이란 인간의 몸과 마음에 충격과 고통을 안겨주는 고생길이었다. ‘여행하다’라는 뜻의 영어 어휘 트래블(travel)은 라틴어로 ‘고문(tortura)’이라는 어휘에서 기원했음을 봐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중세시대 세계의 주요 종교 - 기독교, 회교, 불교 - 는 하나같이 신도들의 신앙심을 고취시키기 위해 성지순례 여행(pilgrimage)을 장려했다. 유럽의 중세 시대, 특히 기독교 사회에서는 예수의 수난 이야기에 근본을 두고 극도의 고통을 견뎌낸 끝에 거룩한 경지에 오른 기독교 성자들의 고행 이야기가 신앙인들의 심금을 울렸다. 이 사회에서는 대중 신앙인이 고된 여행길에 올라 육체적인 고생을 경험하여 성지를 직접 방문하면 건강증진과 영혼의 풍요에 이롭다고 여겼다.
오늘날 현대인들이 알고 있는 관광(tourism) 개념은 17세기 영국과 북서부 유럽의 귀족 자재들이 성인이 되는 통과의례의 하나로 거쳤다는 그랜드 투어(The Grand Tour)에서 비롯되었다. 인류 문명의 발상지 그리스를 비롯해서, 이탈리아의 주요 도시와 프랑스의 해변가 휴양지는 이 그랜드 투어 여정 속에 꼭 끼워 넣는 필수 방문지였다. 주로 영국 출신의 귀족층 남자 자재들은 유럽의 찬란한 문화가 집결되어 있다는 이탈리아, 특히 로마를 그 정점으로 하여 3~4년 동안 여러 목적지를 여행하고 외국어를 익히고 그 나라의 귀족들과 사교 훈련 및 인맥 쌓기 훈련을 했다.
지금도 유럽 여러 대도시에는 이 그랜드 투어 관광객들이 즐겨 묵고 간 브리스톨, 칼튼, 마제스틱 호텔과 옛 궁전을 개조한 휴양 리조트들이 남아 있다. 여행비 지출 예산의 제한이 없었던 귀족 부유층 자재들 사이에서는 그들이 거쳐간 여행지에서 기념품으로 값진 고미술품을 사거나 그 지방의 유명한 화가에게 직접 주문해 기념초상화를 그려 돌아가는 관행이 널리 유행했는데, 이 그랜드 투어 산업의 부수적 효과의 하나로 18세기 이탈리아와 프랑스에서는 미술시장 붐이 일기도 했다.
18세기 말과 19세기, 산업화와 함께 유럽 대륙 곳곳에 철도선이 들어서고 기차여행이 보편화되자 드디어 중산층 자재들과 일반인들도 돈만 있으면 그랜드 투어 루트를 본딴 해외 관광 패키지를 즐겼다. 그러다 보니 웬만한 유한층 인구 사이에서 기차여행과 그 속에서 일어날 법한 남녀상열지사는 <안나 카레니나>나 <마담 보바리> 같은 유럽 낭만주의 시대에 쓰여진 수많은 로맨스 소설의 가장 흔한 영감이 되기도 했다.
여행의 민주화, 대중관광의 보편화와 함께 여행의 의미도 달라졌다. 이제 여행과 관광이란 과거 고행과 인내를 추구한 중세식 종교 순례나 특권층 자재들의 훈련이라는 교육적 의미로서는 다소 희석된 반면, 바쁜 업무와 갑갑한 도시환경을 탈피해 야외활동과 문화향유를 하며 자유시간을 갈망한 근대인들의 여가와 소비생활의 일부로 대체되었다. 오늘날 영국인들의 40%는 여가를 관광하는 데 보낸다는 통계 수치는 그같은 여행이 대중 문화의 일부가 되었음을 입증한다.
여행사 비즈니스의 선구자 토마스 쿡(Thomas Cook)은 19세기 영국에서 등장한 최초의 여행 대행사였는데, 특히 글로벌화가 최고도에 달했던 19세기 말 유럽 여러 주요 도시들과 중동의 유적도시들 사이를 이어주는 다양한 투어 패키지 루트를 개발하여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여행사 관광투어 대행업의 원형을 제공한 장본인이다. 토마스 쿡 관광 대행사의 폭발적인 성공은 앞선 언급한 철도 교통망 이외에도 급격한 해운선박 산업의 발달과 더불어 유람선 관광(cruise)의 대중화에도 도움을 주었다.
그같은 추세를 한껏 이용하여 유럽과 미국의 대도시들은 경쟁적으로 세계박람회(World’s Fair, 일명 엑스포(expo))를 열어서 전 세계 방문객을 유혹했다. 근대기 산업화의 눈부신 업적과 과학기술의 발전, 그리고 그와 함께 등장한 획기적인 건축디자인과 산업물품이 전시된 세계박람회는 글로벌화와 국제자유무역을 해외에 홍보하는 데 유용한 수단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차후 20세기 엔지니어링과 산업디자인이 생산소비 경제를 이끄는 엔진으로 부상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21세기 초, 글로벌 시대에 살고 있는 현대인들은 전에 없이 쉽고 편하게 여행할 수 있는 자유를 누리고 있다. 디지털 인터넷 접속력과 개인적 스마트 기기만 있으면 우리는 손가락 끝 하나로 스카이스캐너(skyscanner)을 통해 실시간으로 가장 저렴한 항공권을 구입하고, 에어비앤비(airbnb.com) 숙박공유서비스 플랫폼에서 숙소를 예약하고, 심지어는 베이어블(vayable.com)에서 여행 목적지에 도착하면 안내를 해줄 현지 여행가이드를 고를 수도 있는 시대가 되었다.
더구나 카메라가 대중적으로 보급된 이후 일반대중 관광객들에게 “여행이란 사진을 모으기 위한 일종의 전략”이 되었다고 한 수전 손탁(Susan Sontag)의 말처럼, 우리는 언제 어디서나 주머니 속 스마트폰을 꺼내 사진을 찍고 인스타그램과 페이스북에 자기가 지금 여행하는 곳, 여행 중 맛본 음식, 새로 사귄 친구들을 가족이나 지인들에게 자랑한다. 현대인 개개인은 그랜드 투어를 거쳤던 과거 그 어떤 귀족 자재들도 부러울 것 없이 남의 힘을 빌리지 않고도 스스로 여행에서 얻은 인상과 감흥, 독특한 경험, 잔상을 기록할 수 있게 되었다.
영국의 시인이자 철학자, 문필가인 길버트 체스터튼(G.K. Chesterton)이 말했듯 “여행자는 그가 보는 것을 보고, 관광객은 보려고 왔던 것만을 본다". 수많은 관광홍보물과 여행가이드 서적이 난무하는 현재, 독립적이고 창조적인 디자이너라면 수동적인 관광객이 되어 과거 미술작품과 상업적 포스터가 전형화시킨 이미지에 휩쓸리기보다는 여행자가 되어 스스로 낯선 환경과 문화를 직접 접하면서 독립적인 시선으로 고유한 경험을 추구해야 하지 않을까.
글_ 박진아 (미술사가 · 디자인컬럼니스트, jina@jinapark.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