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산인팩, MOVA | 2016-08-23
물랭루주, 압생트, 카페... 듣기만 해도 화려한 모습이 그려지는 시대가 있다. 바로 벨 에포크(Belle époque)라 불리는 19세기 프랑스 파리다. 당시 길거리를 도배했던 포스터들은 현재까지 남아 그 시절을 상상하게 만들고 왠지 모를 동경을 품게 한다.
라디오, 텔레비전, 인터넷 등 다양한 매체의 등장은 포스터의 힘을 약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포스터는 여전히 우리에게 메시지를 전달한다. 포스터가 매체로서 본격적인 역할을 시작한 때는 목판 인쇄가 등장한 15세기부터지만, 영향력이 커진 시기는 19세기 후반이다.
포스터의 발전은 석판화의 등장과 관련이 깊다. 정교한 표현과 대량생산이 가능한 석판화는 포스터의 질적·양적 성장을 도왔다. 인쇄 기술 발달을 바탕으로 빠르게 성장한 포스터는 19세기 후반에 이르러 강력한 정보 전달 매체로 자리 잡는다.
그러나 19~20세기 포스터의 비약적인 성장은 개성이 뚜렷했던 포스터 작가들의 공이 크다. 쥘 세레(Jules Chéret), 툴루즈 로트렉(Toulouse Lautrec), 레오네토 카피엘로(Leonotto Cappiello) 등 유명 작가들은 상업 미술인 포스터를 예술의 경지에까지 이끌었다. 덕분에 이 시기 포스터는 현대 미술에 적지 않은 영향을 끼쳤으며, 현재 하나의 예술 작품으로 인정받는다.
국내 친환경 패키지&인쇄 전문 기업인 태산인팩 본사 3층에 자리한 ‘빈티지 포스터 아트 미술관(Museum of Vintage Poster Art, MOVA)’에는 앞에서 설명한 19~20세기 빈티지 포스터들이 전시되어 있다. 원본에서만 느껴지는 방금 찍어낸 듯한 생생한 색감과 뚜렷한 선은 강한 인상을 남긴다.
전시 작품 중 가장 돋보이는 것은 포스터의 아버지인 쥘 세레의 작품들이다. 세레츠(Cherettes)라 불리는 포스터 속 여인들은 자유를 추구했던 19세기 여성들을 대변한다. 로코코 양식에 영향받은 쥘 세레의 포스터는 역동적이고 화려하다. 이와 반대로 툴루즈 로트렉의 포스터에서는 당시 파리 뒷골목의 어두운 분위기와 퇴폐미가 느껴진다.
이외에도 우리에게는 생소하지만, 19~20세기 유럽 포스터를 대표하는 작가들의 작품을 실컷 만날 수 있다. 특히 레오네토 카피엘로가 작업한 〈Maurin Quina〉은 3m가 넘는 대형 포스터로, 크게 그려진 녹색 악마는 관객을 압도한다.
한편으로 19~20세기 빈티지 포스터는 광고 이미지의 역사를 살펴볼 수 있는 좋은 자료다. 제품을 표현하는 방식, 아름다운 여성 모델, 타이포그래피의 사용 등 포스터 속 디자인 요소들을 하나씩 살펴보면 현대 광고 이미지의 법칙이 이 시기에 확립되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이번 전시가 흥미로운 이유는 포스터를 통해 당시의 사회상을 엿볼 수 있다는 점이다. 19세기 프랑스는 전쟁과 혁명이 끝나 안정을 되찾았던 시기로, 산업혁명과 부르주아의 등장이 맞물려 소비문화가 확산되었다. 그러다보니 소비를 권장하고, 여유로운 여가 생활을 장려하는 포스터가 많이 제작되었다.
공연, 술, 과자, 관광 등 포스터가 광고하는 내용만으로도 당시 유럽인들의 풍요롭고 화려한 도시생활을 짐작할 수 있다. 시간이 지날수록 중요한 마케팅 수단이 된 포스터는 점점 더 화려한 이미지로 사람들의 눈을 사로잡았다.
그러나 포스터 속 이미지와 달리, 커지는 빈부격차에 서민들의 삶은 더 힘들어졌다. 결국, 포스터는 대중들이 꿈꾸는 모습 - 그들의 욕망을 담은 눈속임인 것이다. 그리고 우습게도 화려한 19~20세기 포스터는 21세기에 살고 있는 우리도 속여 그 시절에 대한 동경을 품게 만든다.
200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우리들은 광고가 보여주는 환상으로 힘든 현실을 잠시 잊고 소비를 통해 위로받는다. 19~20세기 빈티지 포스터는 당시 유럽 사회뿐만 아니라 현재 우리의 모습까지도 돌아보게 만든다. 넘쳐나는 매체 가운데 포스터가 오랜 역사를 유지하며 아직까지도 만들어지는 이유는 아마도 시간을 관통하는 무언가를 계속 전달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에디터_ 허영은(yeheo@jungle.co.kr)
자료제공_ MOVA(inpac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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