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07-10
세계 3대 디자이너 카림 라시드의 전시가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다. 핑크와 곡선이 떠오르게 하는 그의 작품세계와 그가 생각하는 디자인이란 무엇인지를 이해시켜주는 전시다.
강렬한 색감, 과감한 형태를 띈 그의 디자인은 화려함 그 자체지만 결코 질리거나 과하지 않다. 실용성과 미학이 겸비되어 있기 때문이다. 레드닷 디자인 어워드, 굿 디자인 어워드, 미국 IDSA산업 디자인 어워드 등 300여 회의 디자인상을 수상한 유명 디자이너이지만 이보다 그를 더 유명하게 한 것은 ‘대중이 많이 소비하는 디자인이 가장 좋은 디자인이다”라는 디자인에 대한 그의 철학이다.
이번 전시는 카림 라시드의 아시아 첫 대규모 전시로 그가 직접 전시장을 디자인했다. 초기 디자인 원본부터 가구, 오브제, 미디어 작품 등 350여 점의 작품을 선보이는데 여기에는 국내 최초로 공개되는 초대형 작품도 포함되어 있다.
Designocracy
카림 라시드는 “좋은 디자인이란 소수가 아닌 대중과 소통해야 한다”고 말했다. ‘실용적인 디자인 제품을 합리적인 가격으로 널리 공급해 평범한 사람들도 고급 디자인의 성과물들을 누릴 수 있어야 한다’는 ‘Designocracy(디자인 민주주의)’를 주장한 그는 아우디, 소니 에릭슨, 시티은행, 파비앙, 3M, 움브라, 알레시 등 400여 개의 기업과 디자인 작업을 해왔다. 우리가 흔히 마셨던 파리바게뜨의 생수병 ‘오’ 역시 그의 디자인이다. 세계적인 디자이너의 디자인을 우리는 생활 속에서 손쉽게 접하고 있다.
일상에서 접하는 그의 디자인은 또 있다. 10년간 700만 개 이상의 판매된 휴지통 가르보(Garbo)다. 그가 디자인한 가르보는 뉴욕 현대미술관(MoMA)에 소장되어 있다. 하지만 그는 그것이 미술관에 소장되는 것보다 보통 사람들의 생활 속에 디자인이 포함되는 것이 더 의미있다고 말했다.
Design Your Self
디자인이 사람들의 삶을 편안하게 하고 세상을 좀 더 친환경적이며 행복한 곳으로 바꾸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주장한 그의 철학은 가구, 제품, 패키지, 그래픽, 조명, 패션 등 3,500여 점의 작업을 통해 펼쳐졌다. 최근에는 그리스 세미라미스 호텔, 이탈리아 나폴리 대학교, 지하철역 등의 대규모 인테리어를 담당하면서 활동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Design Your Self - 나를 디자인하라’를 주제로 하는 이번 전시는 350여 점의 작품을 통해 ‘디자인으로 사람과 세상을 더 낫게 바꿀 수 있다’는 카림 라시드의 철학을 보여준다.
일상의 삶을 예술적으로 만들기
전시장은 5개 섹션으로 구성된다. 첫번째 섹션 ‘Beautification of Life 삶의 미화(일상의 삶을 예술적으로 만들기)’에서는 일상을 예술과 만나게 하는 카림 라시드의 대표작들을 소개한다. 화려한 색감과 부드러운 곡선 뿐 아니라 사용자를 위한 배려가 눈에 띄는 그의 작품은 사람과 세상이 좀 더 아름다워지기를 바라는 그의 신념을 느끼게 한다.
평화의 메시지
두번째 섹션 ‘Hall of Globalove 글로벌로브 홀’에서는 그가 전하는 인류 통합이라는 평화의 메시지를 표현하는 작품이 전시된다. 〈글로벌러브 (Globalove Sculpture)〉은 한국의 아나로기즘 스튜디오와의 협업으로 제작된 대형 조형물이다. 두상의 형태를 한 거대한 조형물 안으로 들어가 앉으면 바닥에서 흘러나오는 잔잔한 음악을 들을 수 있다. 웅장하면서도 아늑한 느낌이 인상적이다.
〈Pleasurescape〉는 이번 전시의 하이라이트로 불린다. 맨발로 올라가 직접 앉아보고 누워 볼 수 있어 흥미롭다. 그 위에서 ‘디자인은 삶이다’라는 그의 철학을 몸소 체험해볼 수 있다.
디지털 시대, 카림 라시드의 예술
세번째 섹션 ‘Digipop 디지팝’에서는 그가 선보이는 디지털 시대의 새로운 예술을 볼 수 있다. 과감하고 강렬한 패턴의 컴퓨터 그래픽과 아이콘을 사용한 작업들은 실제 세계와 가상의 세계를 연결한다.
카림 라시드의 인간과 환경을 생각하는 산업 디자인
네번째 섹션 ‘Era of Mass Production 대량생산의 시대‘에서는 ‘플라스틱의 시인’이라 불리는 카림 라시드를 대표하는 산업 디자인들을 소개한다. “훌륭한 디자인은 대중과 가까워야 하며, 비싸거나 한정되어서는 안 된다. 좋은 디자인이란 소수가 아닌 대중에게 통하는 디자인이다”라는 그의 철학이 담긴 작품들은 부드럽고, 민주적이면서 친환경적이며 인간적이라는 걸 알게 해준다. 우리가 자주 경험했던 가르보 휴지통, 파리바게뜨의 ‘오’ 생수병, 겐조 향수병 등이 전시된다. 여성의 발에 자유를 준 멜리사 하이힐도 그가 디자인했다. 하이힐을 신고 공을 찰 만큼 여성들의 발에 편안함을 준 이 신발은 칭찬하지 않을 수 없다.
카림 라시드의 예술 세계
다섯번째 섹션 ‘Mission for Humanity 인류를 위한 사명’에서는 카림 라시드가 디자인한 예술적인 오브제들이 전시, 디자인과 예술 사이의 경계를 자유롭게 넘나드는 그의 작품세계를 볼 수 있다.
‘우리의 삶도 디자인의 대상이 되어야한다’고 말하는 그는 우리에게 ‘더 주체적이고 창의적이며 친환경적이고 세계시민적(cosmopolite, GlovaLove)인 삶을 살자’고 말한다. 21세기 디자인 혁명가이자 디자인 민주주의자 카림 라시드. 그가 모두가 즐길 수 있는 디자인을 해오고 있다. 그가 화려하게 주목받는 것은 우리 삶과 디자인의 거리를 좁힌 것을 넘어 우리 삶 안으로 디자인을 끌어들였기 때문이 아닐까. “디자인은 성별·나이·계층을 차별해서는 안 된다. 누구나 즐길 수 있어야 한다.” 그의 말처럼 우리는 즐기고 있다. 그의 디자인을.
에디터_ 최유진(yjchoi@jungl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