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09-05
실크스크린은 일일이 사람의 손으로 찍어내는 방식이라 시간도 오래 걸리고 작업도 까다롭다. 썸띵 플레젠트의 김정화는 이 같은 과정의 번거로움을 손맛의 즐거움으로 승화했다.
보기만 해도 기분이 좋아지는
‘썸띵 플레젠트’는 일러스트를 기반으로 하는 실크스크린 스튜디오로, 2015년 5월 김정화와 박인경이 함께 설립했다. 현재는 김정화 혼자 운영하며, 이름 그대로 만드는 사람도, 보는 사람도 기분이 좋아지는 작업을 주로 한다.
“뉴욕 School of Visual Arts(SVA)에서 일러스트레이션을 전공했어요. 수업 커리큘럼 중에 실크스크린이 있었는데, 모든 과정을 손으로 작업하는 점이 무척 매력적이더라고요. 제가 느꼈던 이 손맛의 즐거움을 한국의 많은 사람에게 전하고 싶어서 스튜디오를 차렸어요.”
김정화는 실크스크린의 가장 큰 매력으로 ‘리미티드 에디션’을 꼽았다. 과거 앤디 워홀은 실크스크린을 통해 대량생산을 꿈꿨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 무한대로 찍어낼 수 있는 인쇄 기계의 발명으로, 수작업으로 제작되는 실크스크린은 오히려 소량생산, 한정판으로서의 가치를 인정받게 됐다.
“작가로서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이 무궁무진하다는 것도 장점이에요. 대부분 판에 다가 잉크 넣고 그냥 찍어내면 되는 줄 아는데요. 컬러를 어떻게 겹쳐 찍느냐에 따라 결과물이 다르고요. 실크스크린으로 인쇄한 것 위에 페인팅을 할 수도 있고, 아니면 그 위에 사진을 덧입힐 수도 있어요. 본인이 구사할 수 있는 스킬이 많을수록 다채로운 작품을 생산할 수 있는 거죠.”
이토록 친절한 실크스크린 전도사
김정화는 스튜디오를 오픈하자마자 실크스크린 클래스를 시작했다. 첫 번째 이유는 앞서 언급했다시피 실크스크린 기법을 국내에 알리기 위함이었고, 두 번째는 돈을 벌기 위함이었다. 아무래도 개인 일러스트 작업만으로는 스튜디오 운영이나 생활비 충당이 어려우니까.
“에코백이나 달력을 만드는 원데이 클래스와 좀더 다양한 아이템을 시도하는 4주 클래스를 진행하고 있는데요. 처음에는 저한테 와서 배우지만 방법만 알면 집에서도 충분히 할 수 있다고 설명해요. 잉크와 스크린, 스퀴지(잉크를 밀어내는 도구) 등의 기본 도구는 필요하죠. 하지만 대형 감광기는 없어도 돼요. 감광기가 빛을 쐬어주는 역할을 하는데, 형광등이나 작은 라이트박스로도 충분하거든요.”
실크스크린 클래스로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지만, 사실 본업은 일러스트레이터다. 틈틈이 개인 작업도 하는데, 작품에 스토리가 담겨 있다는 점이 특징이다. 의미 없이 예쁘기만 한 것이 아니라,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를 토대로 그림을 만든다는 것.
“구체적으로 어떤 스토리냐고 물어보시면 그건 ‘여행’이에요. 여행을 워낙 좋아해서 여행에서 찍은 (주로 풍경) 사진을 가지고 작업을 많이 해요. 대표적인 작품이 세 개의 휴양지 시리즈예요. 각각 발리, 괌, 오키나와에서 찍은 풍경 사진을 그린 후 실크스크린으로 프린트했어요. <Summer Vacation>이라는 제목의 진(zine)도 마찬가지고요. 짐 싸고 비행기 타고 여행하고 짐 푸는, 일련의 여행 과정을 시간순으로 그렸어요.”
여행을 좋아하는 김정화의 다음 목적지는 미국 뉴욕이다. 이번엔 여행이 목표이 아니라, 세계적인 디자인 페어 ‘레니게이드 크래프트 페어(Renegade Craft Fair)’에 참가하기 위해서다. 전 세계인을 즐겁게 하는 디자인 스튜디오 ‘썸띵 플레젠트’라, 상상만으로도 괜히 어깨가 으쓱하고 그런다.
에디터_ 추은희(ehchu@jungl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