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09-12
어떤 사람의 집에 가면, 아니 그 사람의 책상만 봐도 그 사람이 어떤 것을 좋아하는지, 어떤 생각과 성격을 가지고 있는지를 알 수 있다고 한다. 이것이 비단 사람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가게든 레스토랑이든, 어떠한 공간이든지 그곳에는 그곳을 운영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와 생각 그리고 꿈이 녹아있다. 이것은 회사도 마찬가지 일 듯하다. 건축 또는 인테리어에 회사의 철학과 생각을 담기 시작한 회사들이 한국에서도 많이 생겨나게 되었다. 이렇게 공간을 통해서 자신이 지향하는 바를 보여주는 회사가 있다. 바로 비트라(Vitra)이다.
건축가들의 성지, 디자이너들의 꿈의 공간
스위스 바젤(Basel) 지역은 프랑스와 독일의 국경을 경계로 마주하고 있다. 차를 타고 10여 분을 가면 금세 다른 나라로 국경을 넘어서게 된다. 다양한 문화와 언어가 섞여 있는 바젤에서 버스를 타고 30분을 가면 독일의 작은 마을 바일 암 라인(Weil am Rhein)으로 들어서게 된다. 이름조차 낯선 이 지역으로 수많은 건축가들과 디자이너들 그리고 관광객들이 발걸음을 옮기고 있다. 바로 이곳에 위치하고 있는 비트라 캠퍼스(Vitra Campus)를 방문하기 위해서다. 비트라 캠퍼스는 건축가들의 성지이자 디자이너들의 꿈의 공간으로 여겨지고 있다.
비트라는 1950년 가족 기업으로 시작한 가구 및 산업 디자인 회사로 임스 의자(Eames chair)로 유명한 임스 부부(Charles & Ray Eames)와 조지 넬슨(George Nelson)의 오피스 가구를 판매하면서 현대적인 디자인의 흐름을 이끄는 디자인 회사로 성장하였다. 1981년 공장 화재 사건으로 주요 생산 설비들이 파괴되고, 이를 다시 복구하기 위해서 니콜라스 그림쇼(Nicholas Grimshaw)의 공장 건물 디자인을 시작으로 프랭크 게리(Frank Gehry)의 첫 유럽 진출작인 디자인 뮤지엄, 알바로 시자(Alvaro Joaquim de Melo Siza Vieira)와 가즈요 세지마(Kazuyo Sejima)가 건축한 공장 건물들, 안도 다다오(Ando Tadao)의 컨퍼런스 파빌리온, 자하 하디드(Zaha Hadid)의 소방서, 리차드 벅민스터 퓰러(Richard Buckminster Fuller)와 T.C호워드(Howard)의 돔, 헤르조그 와 드 뫼롱(Herzog & de Meuron)의 비트라 하우스와 전시장, 칼스텐 홀러(Carsten Höller)의 미끄럼틀 타워 등 이름만으로도 세계 최고의 건축가들의 건축들이 모여있는 공간으로 구성하기 시작하였다.
이렇게 완성된 비트라 캠퍼스에 들어서면 다양하고 개성이 넘치는 건축물들과 마주하게 된다. 비트라의 혁신적인 디자인들을 돌아보자.
가구, 인테리어, 공간 이상의 이야기
비트라 하우스는 비트라 브랜드가 판매하고 있는 제품들을 보여주는 일종의 쇼룸과 같은 공간이다. 집 모양의 건물들이 쌓여서 만들어진 모양처럼 다양한 인테리어와 공간들이 모여서 한 곳을 구성하고 있는 듯한 느낌을 주고 있다. 그 공간을 돌아보다 보면 다양한 가구들과 인테리어들에 감탄을 하기도 하지만 또 그 가구들과 인테리어를 한 디자이너도 만날 수 있다.
하우스 곳곳에는 비트라와 함께 그동안 디자인을 했던 디자이너들의 작품으로 구성된 공간이 있는데 카드를 대면 스크린에 각 제품에 대한 정보와 설명이 나온다. 이곳에서는 이렇게 디자이너와 건축가들을 건축물 자체만을 통해서가 아니라 건축물과 공간들의 한 모퉁이를 돌 때 마다 만날 수 있다.
전시장(Vitra Schaudepot)은 시대와 산업 디자인의 역사를 보여주는 시대별 아이콘적인 의자들이 모여있는 공간으로 비트라에서 제작되는 제품들이 보관되고, 사용되는 재료들을 직접 만져볼 수 있으며 임스 부부(Charles & Ray Eames)의 작업실 공간도 꾸며져 있다. 이곳에서는 오랜 세월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디자인에 대해, 그러기 위해 노력했던 디자이너들에 대해서 생각해 보게 된다. 비트라는 비트라라는 회사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디자이너들과 시대, 그리고 그 안에서 만들어진 디자인을 품고, 사람들에게 전달해 주는 매개체 역할을 하고 있다.
계속해서 살아남는 디자인은 두 가지 특징을 가지고 있었다. 그 가구나 건축에 사용하는 사람과 살아갈 사람에 대한 고민을 반영하여 목적을 극대화한다는 점이다. 그러면서 다른 기존의 작업들과 문화적 흐름보다 한 발자국 앞서나간 창의적인 부분을 가짐으로써 다른 경쟁력을 가진다는 특징을 지닌다. 결국 역사적인 디자인은 사람과의 소통과 디자이너 개인의 창의성의 조합이 극대화되어서 탄생될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과정은 한 달 안에 의자를 생산하고 이번 주 내에 새로운 시안을 만들어 내길 바라는 현재의 많은 디자인 회사들과는 많은 차이가 있다. 비트라는 회사 내에 자체적인 디자이너가 없으면서 외부의 디자이너와 콜라보를 하는 형식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그렇기에 디자이너가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자신의 아이디어를 끊임없이 발전시켜 나가면서 개성과 역량을 표현하는 것이 가능하다. 이러한 과정 속에서 비트라는 이미 구축된 기업의 이미지보다는 디자이너들의 작업을 통해서 자신들의 아이덴티티를 만들어간다. 이러한 비트라의 전반적인 분위기와 철학이 비트라 캠퍼스, 공장의 건물에도 담겨 있다.
건축가들에게 실험실이 되어주다
가구 디자인은 다양한 시도나 실험을 해 볼 수 있는 기회가 있지만 건축 디자인의 경우엔 조금 다르다. 물론 건축가가 매우 유명한 경우에는 그 자율성을 보장해 주지만 전반적으로 용도나 부지에 대한 제약이 존재할 수밖에 없다. 비트라가 아무리 유명하고 인정받는 디자인 회사라고 해도 건축계의 노벨상으로 여기는 프리츠커상을 수상한 6명의 건축가가 각각 다른 건축물로 회사의 부지를 구성한다는 것이 쉽게 이해가 되지 않을 수 있다. 심지어 전시장도 아니고 공장의 건물을 지었다고 하면 더더욱 ‘왜?’라는 생각이 들기 마련이다. 그러나 비트라 캠퍼스에 와서 그 건축물들을 실제로 마주하면 그 의문들은 해소가 된다.
비트라는 그들의 디자인 작업이 그러하듯 건축가들에게도 그들의 자율성과 시간 그리고 그들의 특성이 드러나는 건축물들이 나올 수 있도록 그들에게 자유를 주었다. 이 자유 위에서 건축가들은 자신이 해보고 싶었던 것을 실험하게 된다. 비트라의 건축물들의 이름을 보면 전시관, 뮤지엄, 컨퍼런스 홀과 같은 목적을 가지고 지어진 것 같지만 실제로 그 안을 방문하면 그러한 목적성으로 인한 제한과 한계보다는 작가들의 개성이 더 우선시 되었음을 건물들 구석구석에서 느낄 수 있다.
함께 성장한 다는 것의 의미, 즐겁게 일할 수 있다는 기쁨
방문 당시에 비트라 뮤지엄에서는 함께, 서로 도우며 살아가는 공동 주택에 대한 전시가 있었다. 현대 사회에서 개개인의 삶의 추구와 가족의 분화로 인해 발생하는 다양한 문제점을 극복하기 위해 형성되어 함께 살아가는 공간이 공동 주택이다. ‘함께’는 무엇을 강요하고 일체화할 때 가능한 것이 아니다. 각자의 고유한 영역을 이해하고 이를 극대화하여 서로 보완할 때 의미가 있다.
회사의 목표는 이윤에 있다. 어떤 회사가 브랜드로써 가지는 이미지와 아이덴티티 역시 중요하고 누구보다 더 뛰어난 디자인을 선보이는 것, 세계적인 회사가 되는 것 등은 디자인 회사가 지향하는 목표이자 회사를 경영하면서 이루고자 하는 꿈일 것이다. 비트라는 그것을 얻기 위해 전시 속의 공동 주택처럼 자신의 공간을 내주고 개성 있는 디자이너들이 자신의 재능을 선보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며, 최고의 시너지를 통해 작은 가족 회사에서 세계적인 브랜드로 성장하였다.
‘즐기는 자는 이길 수 없다’는 말이 있다. 디자이너들이 하고 싶고 즐거운 디자인을 보여주는 회사 비트라에서 성공하는 것의 기본을 배웠다.
글, 사진_ 손민정(smj9185@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