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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 | 리뷰

부럽다, 영국!

나태양(tyna@jungle.co.kr) | 2015-11-10


이래서 다들 ‘영국, 영국’하는 모양이다. 지난 10월 22일 영국 디자인 협회(Design Council)가 발표한 ‘디자인 경제 보고서(The Design Economy Report)’는 순풍에 돛 단 듯 순항 중인 영국 디자인의 건재함을 재확인했다. 보고에 따르면 영국 디자인 산업은 2013년 717억 파운드(한화 약 125조 원)에 달하는 총부가가치(GVA)를 창출했으며, 이로써 지난 5년간의 전체 경제 성장률(18.1%)을 훨씬 웃도는 27.9%의 성장률을 기록했다. 디자인 관련 종사자 약 160만 명, 영국 고용 시장 규모 9위. 이쯤 하면 디자인 산업은 영국의 장기적인 경제 운용 차원에서도 무시 못 할 ‘매머드급’ 산업인 셈이다.

에디터 | 나태양(tyna@jungle.co.kr)
 

명실공히 세계 디자인의 핫 스팟으로 손꼽히는 런던. 살인적인 임대료로 늘 몸살을 앓는다지만, 볼멘소리 안 나는 동네가 어디랴. 디자인 좀 배워볼까 싶으면 해외 원정을 떠나야 하는 입장에서는 그 불평불만마저 행복한 투정처럼 들린다. 어찌 됐건, 시간과 인력으로 미장한 영국의 예술적 유산과 네트워크, 교육 환경, 인프라는 쉬이 무너질 수 없는 공든 탑이 아니던가. 단기 리소스 투입으로 가시적인 공과를 겨냥하는 성과 중심주의나 번갯불에 콩 구워 먹듯 추진되는 국가 주도식 사업으로는 성취할 수 없을 저력은 근대부터 뭉근하게 쌓아 올린 기초자본에서 비롯된다. 그래서 영국 왕립예술학교(Royal College of Art, 이하 RCA)와 빅토리아&앨버트 박물관(Victoria and Albert Museum, 이하 V&A)의 관계는 더 각별해 보인다.

19세기 초반 영국 하원 예술&공산품 특별 위원회(the House of Commons Select Committee on Arts and Manufactures)는 영국 제품의 뒤처진 경쟁력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었다. 영국에 경제적 부흥을 안긴 산업혁명의 이면에는 대량 생산으로 인한 품질 저하라는 그늘도 존재했던 것. 위원회는 해외 시장뿐만 아니라 내수 시장에서도 영 힘을 못 쓰고 있던 영국 제조업에 돌파구를 마련하겠다더니 기특하게도 ‘예술적 지식의 대중화’를 해결책으로 제시한다. 갤러리, 박물관, 도서관을 겸비한 ‘디자인 학교’는 그러한 요량에서 구상된 네트워크다.

1937년, 이러한 배경 속에서 RCA의 전신인 정부 디자인 학교(Government School of Design)가 탄생했다. 당시 영국의 가장 성공적인 교육 기관으로 평가받던 기술자 협회(Mechanics’ Institutes)를 모델 삼아 출범한 정부 디자인 학교에서는 공예 기술과 예술 지식을 함께 진작시키는 강의를 제공했다. 취지에 걸맞게 부속 도서관 역시 예술 이론, 지형학, 자연사 관련서부터 의복 모델 북과 드로잉 매뉴얼을 아우르는 광범위한 자료들을 아카이빙한다.

1851년, 런던에서 개최된 세계 최초의 공산품 페어 ‘대영 박람회(the Great Exhibition)’는 새로운 예술 범주로서의 ‘장식’을 촉발하는 기폭제가 됐다. 이 행사를 계기로 ‘디자인 개혁(design reform)’의 필요성을 절감한 영국은 남부 켄싱턴(South Kensington)에 신규 박물관을 개관하는데, 사실상 종교개혁과 내전을 거치며 상당한 양의 문화적 유산을 소실한 상태였기에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과 부호들의 자선을 자양분으로 컬렉션을 구축해 나간다. 해당 박물관은 1899년에 이르러 V&A 박물관이라는 현재의 명칭을 하사받았다.

대영 박람회의 폭발적인 효과는 정부 디자인 학교의 시스템에도 파급해 왔다. 박람회 이후 정부 디자인 학교는 정부 산하 실용 예술 지원 부서에 편입되었으며, 머지않은 1857년에는 일반 예술 훈련 학교(Normal Art Training School)로 기관명을 변경하고 켄싱턴 박물관에 합류한다. 이 같은 공생 속에서 박물관은 학생들에게 시각적 고양을 능가하는 세계관의 장으로 요긴하게 기능했다. 1991년까지도 박물관 내에는 RCA의 작업실 일부가 잔류해 있었으며, 현재까지도 양 기관은 대학원 협동 과정 등을 통해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V&A 박물관이 현재의 명성을 얻기까지는 초대 박물관장 헨리 콜(Henry Cole)의 철학이 기여한 바가 크다. 실제로 대영 박람회의 대대적 성공 뒤에는 영국 동인도 회사가 있었고, 콜이 박람회를 통해 얻은 교훈이란 소위 ‘국제적인 시야’를 갖춰야 한다는 것이었다. 콜은 제품 디자인 개선이라는 위원회의 단순한 목표에서 한 발자국 더 나아가, 박물관을 통해 인간 독창성의 역사적 지형도를 그리겠다는 야망을 품는다. 특히 박물관 내의 예술 도서관을 통한 예술 교육 개혁을 꿈꾸고 있던 그는 아티스트이자 저널리스트, 교육자였던 랠프 워넘(Ralph Wornum)을 사서로 임명한다.

워넘은 V&A 예술 도서관이 ‘디자인 개혁’ 운동에 촉매제가 되리라는 확신을 바탕으로 시설을 대중 일반에 전격 공개했다. 당대의 폐쇄적인 분위기와는 달리 V&A 예술 도서관에서는 그 어떤 소시민도 불청객이나 무식자로 취급 받지 않았다. 도서관은 모든 방문객을 위해 삽화, 인쇄물, 드로잉, 사진, 탁본 등 백과사전적 시각 자료를 구축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1858년까지 2,200점에 불과했던 컬렉션 보유량은 근 25년 만인 1884년 6만 5000점을 돌파한다. 70년대에 이르면 컬러 텔레비전의 발명, 블록버스터급 전시의 성황, ‘크리스티’, ‘소더비’, ‘필립스’와 같은 옥션 하우스의 등장을 배경 삼아 V&A 예술 도서관의 컬렉션 역시 그 진가를 발휘한다. 도서관은 현재 연간 4만 2000명의 방문객을 끌어들이고 있다.

지난 9월 27일, 호주 시드니 NSW 국립 도서관(NSW National Library)에서 막을 내린 ‘디자인에서 받은 영감(Inspiration by Design)’은 장장 150년간 축적한 V&A 국립 예술 도서관의 보고(寶庫)를 실물로 접할 기회였다. 도서관은 2013년 V&A 박물관의 ‘인쇄, 드로잉, 페인팅(Prints, Drawings and Paintings)’ 부서와 합병하면서 디자인, 사진예술, 수채화를 아우르는 다양한 컬렉션을 확보하게 됐다. ‘디자인에서 받은 영감’은 그중에서도 그래픽 아트와 출판물을 연계한 해외 순회 전시로서, 국립 예술 도서관의 역사적인 컬렉션을 7개 테마로 나누어 소개한다.

1. 예술과 디자인 교육의 자원(Resources for Art and Design Education)

정부 디자인 학교 초대 학교장을 지냈던 윌리엄 다이스(William Dyce)는 본래 파인 아트와 디자인의 엄격한 구분을 고수하며 ‘장식가(ornamentist)’에게는 기계적인 드로잉 훈련이 필요하다 주장했던 인물이다. 그러나 양자 모두는 궁극적으로 ‘미의 성취’를 지향하는바, 다이스 또한 이러한 공동의 목표를 인정하고 자연 형태, 초상, 가구, 의복, 건축 등 장르와 시대를 넘나드는 커리큘럼을 제공한다.

이에 도서관에서도 장식예술과 순수미술을 가리지 않고 어떤 종류의 아티스트에게나 참고가 될 만한 자산을 그러모으기 시작했다. 당시 정부 디자인 학교에서는 자연 오브제 드로잉을 교습하곤 했는데, 도서관 역시 식물, 지질학, 동물학적 일러스트레이션 관련 도서 제작에 몰두함으로써 학생들에게 권위 있는 리소스를 제공하고자 했다.

 

2. 이미지 제작: 직업으로서의 일러스트레이터(Making Images: The Illustrator at Work)

인구 증가와 철도의 발전은 출판업의 호황으로 이어졌다. 더불어 석판, 강철, 목재 등 조판 기술이 눈부시게 향상되면서 일러스트가 보편적인 커뮤니케이션 수단으로 자리 잡는다. 어떤 일러스트레이터들은 글 작가만큼이나 유명해져서 간행물 표지 가장 첫 줄에 이름을 올리곤 했는데, 찰스 디킨스(Charles Dickens)와 늘 긴밀한 협업 관계를 유지했던 로버트 세이모어(Robert Seymour)가 대표적인 경우다.

영국의 일러스트 작가 베아트릭스 포터(Beatrix Potter) 역시 V&A 국립 예술 도서관과 깊은 인연을 갖고 있다. 도서관 소장의 에드먼드 에번스(Edmund Evans) 컬렉션은 〈피터 래빗〉 작업 당시 포터에게 훌륭한 참고 자료가 됐다. 19세기 후반 가장 성공한 인쇄업자로 손꼽히는 에번스가 각기 다른 색조의 목판을 사용해 미묘한 컬러를 구현하는 ‘색채 목판술’을 발명한 이래 도서관에서도 관련 일러스트레이션을 수집해온 덕분이다. 현재 도서관은 세계 최대 규모의 베아트릭스 포터 컬렉션을 보유하고 있다.

3. 디자이너, 심미가, 그리고 ‘책을 아름답게’(Designers, Aesthetes and the ‘Book Beautiful’)

19세기 말엽에는 산업 주도 출판물의 획일성을 비판하는 목소리와 함께 북 디자인에도 대대적인 변화가 인다. 프랑스에서는 유진 그라셋(Eugene Grasset), 카를로스 슈바베(Carlos Schwabe), 알폰스 무하(Alphonse Mucha) 등의 아티스트가 그래픽 북 디자인에 가담하기 시작했고, 영국에서도 프랑스 상징주의에 영감을 받은 찰스 리켓츠(Charles Ricketts)와 찰스 섀넌(Charles Shannon), 이국적이고 감각적인 그래픽 디자인을 선보인 오브리 비어즐리(Aubrey Beardsley) 등이 두각을 드러냈다. 한편에서는 윌리엄 모리스(William Morris) 같은 작가들이 새로운 잉크와 종이, 장식 고안에 탐닉하며 소규모의 혁신 운동을 펼친다. 그 결과 채색, 캘리그래피, 일러스트레이션, 제본, 장식 등을 망라한 종합 예술을 지향하기 시작한 에디토리얼 디자인은 이후 아르 누보와 공예 운동에 힘입어 전성기를 맞는다.

4. 사진의 효과: 백과사전적 확장(The Impact of Photography: Extending the Encyclopedia)

루이 다게르(Louis Daguerres)에 의해 최초로 소개된 사진 기술은 말 그대로 혁명이었다. 사진이 포착한 인물, 풍경, 장면의 선명하고도 현실적인 톤은 기록 자료로서의 독보적 유용성을 자랑했으며, 하프 톤, 그라비어 사진술, 향상된 플래시 셔터 스피드, 핸드 헬드 카메라 등 기술 혁신이 가속화되면서 저렴한 사진 잡지들이 널리 유통된다. 출판 시장은 드로잉보다 사진을 선호하기 시작했고, 사진 기자의 명성은 잡지 판매량에 영향을 끼칠 만큼 드높아졌다. 사진 특유의 이 ‘르포르타주(Reportage)’적 기능은 20세기 바이마르 공화국과 나치 독일에 이르면 프로파간다적 기능에 봉사하기도 한다.

한편, 사진은 회화나 드로잉에 대적하는 새로운 예술의 가능성을 열어젖혔다. 프란시스 베드포드(Francis Bedford), 로저 펜톤(Roger Fenton), 에두아르-드니 발두스(Edouard-Denis Baldus), 찰스 니그리(Charles Negre) 등 인간의 행위를 통해 강력한 메시지를 전달했던 포토그래퍼들은 표현 매체로서 사진이 지닌 힘을 증명했다.

5. 상업 예술의 촉진: 1936년의 독창성(Promoting Commercial Art: The Initiative of 1936)

대공황의 충격으로 인해 디자인 또한 새로운 국면을 맞이한다. 상업 예술이 경제 부양 수단으로 스포트라이트를 받자, 국제적 규모의 전시들이 대거 개최되고 광고에도 과감한 그래픽을 도입하기 시작한 것이다. 태동에 발맞춰 도서관에서는 유럽과 북미대륙의 주요 디자이너에게 샘플 기증을 요청하고, 레옹 프렌즈(Leon Friends)의 〈그래픽 디자인(Graphic Design)〉을 비롯한 커머셜 디자인 저널 및 도서를 수집하는 등 관련 컬렉션 강화 프로세스에 돌입한다.

1936년 개최된 ‘현대 상업 타이포그래피(Modern Commercial Typography)’(1936)는 그 수집 결과를 작게나마 선보이는 자리였다. 전통적인 작업과 함께 구조주의, 초현실주의, 미래파, 아방가르드 운동에 영향을 받은 동시대 작업을 펼쳐놓았던 해당 전시에서는 건축과 사진의 진보를 반영한 작품, 타이포그래피의 일러스트적 활용, 에어브러시나 포토몽타주 같은 새로운 기법들이 소개됐다. 광고 에이전시가 아닌 아티스트의 손에서 탄생하여 실험성을 뽐냈던 ‘영국 중앙 우체국(Britain General Post Office)’의 팸플릿 역시 이때 공개된 컬렉션 일부다. 이 같은 타이포그래피 컬렉션이 제시하는 방법론과 양식 덕분에 RCA 학생들은 누구보다 민감하게 국내외 조류에 반응할 수 있었다.

특히 본 섹션에는 디자인에 취미가 있는 관객이라면 군침을 흘릴 만한 컬렉션들이 집중되어 있다. 한 자리에 모인 헤르베르트 바이어(Herbert Bayer), 얀 치홀트(Jan Tschichold), 나즐로 모홀리나기(Laszlo Moholy Nagy)의 작업들은 당대 그래픽 디자인의 부흥을 실감케 한다.

6. 패션 아카이브(The Fashion Archive)

영국의 패션 산업이 번창한 만큼 패션 관련 매뉴얼 및 패턴 북도 수집 목록에서 제외될 수 없었다. 특히 20세기에 이르면 에베너저 버터릭(Ebenezer Butterik)의 페이퍼 패턴 발명과 홈 미싱 기계의 상용화로 인해 기술 접근성이 확대되고 의류 가격이 대폭 하락한다. 이에 일반인도 손쉽게 첨단 유행을 좇을 수 있게 되자, 의류 제작자와 소매업자도 자신들의 디자인을 홍보하기 위한 스타일리시한 인쇄물을 활발하게 출간한다.

V&A 국립 예술 도서관의 패션 아카이빙은 1945년 이후 본격화됐다. 의류 산업 전 분야에서 기증한 프로모션 책자들, 오트 쿠튀르 카달로그, 패션 정기 간행물은 그 자체로 스타일 변화의 역사를 관찰할 수 있는 주요한 자료로 남았다. 전패션 포토그래퍼 리처드 애버던(Richard Avedon)이나 패션 일러스트레이터 르네 그뤼오(Rene Gruau)의 전설적 작업물이 후대 디자이너들에게 유익한 시각적 소스로 활용되었음은 말할 나위 없다.

7. 근현대 예술가들과 책(Modern Artists and Books)

1900년경 프랑스에서 화상으로 활동하던 앙브루아즈 볼라르(Ambroise Vollard)가 펴낸 ‘리브로 다티스트(Livre d’artste)’는 회화 및 일러스트레이션과 고전·현대 문학 텍스트를 엮은 신유형의 출판물이었다. ‘리브로 다티스트’는 볼라르의 명성이 높아짐에 따라 차차 주목을 받았고, 딜러들 사이에 수요가 늘면서 아티스트의 작업을 실은 유사 출판물이 속속들이 등장했다.

1960년대 에두아르도 파올로치(Paolozzi)나 호크니(Hokney) 등의 초기 포트폴리오를 출간했던 ‘에디션즈 알렉토(Editions Alecto)’의 작업은 ‘리브로 다티스트’에 뿌리를 두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또한, 영국 아티스트 톰 필립스(Tom Phillips)의 대안적 출판물 프로젝트 〈Humument〉 등 후대 아티스트들의 실험적 작업에서도 그 영향 관계를 찾아볼 수 있다.

150년 기록의 막을 내리는 일곱 번째 섹션에서는 화가-시인의 신선한 조합이 돋보인다. 피에르 보나르(Pierre Bonnard)와 폴 베를렌(Paul Verlaine), 파블로 피카소와 피에르 르베르디(Pierre Reverdy), 조르주 브라크와 헤시오도스(Hesiod), 호안 미로(Joan Miro)와 폴 엘뤼아르(Paul Eluard) 등 시문에 드로잉을 얹은 작업들은 익히 알려진 회화 작품과는 또 다른 감흥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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