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혜지, 저스틴 정, 목예린. 해외 유명 잡지에서 익숙한 듯 낯선 한국 이름을 발견했다. 〈Numero〉, 〈Kinfolk〉, 〈Apartamento〉 등 세계적 매체를 중심으로 작품 활동을 하고 있는 재외 한국 사진가를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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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범한 상상력, 신혜지
신혜지는 한국에서 태어나 베를린에서 성장하고, 뉴욕에서 활동 중인 사진가다. 거침없는 상상력과 독창적인 표현력으로 해외 유명 매체와 패션 브랜드의 러브 콜을 받아왔다. 그녀는 영국 사진가 조세핀 프라이드(Josephine Pryde)를 좋아하고 성(性)을 주제로 한 잡지와 뉴욕을 둘러싼 모든 것에서 영감을 받는다고 말한다. 신혜지는 세상 사람들이 갖고 있는 도덕적 관념에 관해 의미심장한 질문을 던지는, 앞날이 더욱 기대되는 사진가다.
신혜지, 〈Jessica〉 ©Heji Shin
나의 어린 시절 세 살 때 서울에서 독일 함부르크로 이주했다. 너무 어린 나이에 한국을 떠났기에 한국에 대한 기억은 거의 남아 있지 않다. 싱글맘이었던 엄마는 항상 바빴고, 혼자 드로잉을 하며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다. 고등학교 졸업 후, 사진가 친구와 많은 시간을 보내며 자연스럽게 사진의 매력에 빠졌다. 사진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뒤 주요 활동 무대는 독일이었다. 하지만 3년 전, 개인작업에 좀 더 매진하기 위해 남편이 있는 뉴욕으로 거주지를 완전히 옮겼다.
사진가로서의 삶 사진가는 무척이나 흥미로운 직업이다. 지금껏 〈Numero(누메로)〉, 〈Interview(인터뷰)〉 등 다양한 잡지를 위해 일하며 유명 인사를 만나 교감을 나눴고, 패션 브랜드와 작업하며 최신 트렌드를 이해할 수 있었다. 사람들은 상업사진은 예술적 가치가 없다는 편견을 갖고 있다. 하지만 내 생각은 다르다. 상업사진에서도 하나의 이미지가 탄생하기 위해서는 창작자의 아이디어가 온전히 투영되어야 한다. 머릿속에 떠오른 우습고도 기이한 생각을 이미지화 할 수 있다는 점은 상업사진과 개인작업 모두 해당된다. 오래 전부터 상업사진과 더불어 개인작업을 병행해 온 이유다.
취리히 Galerie Bernhard 개인전에 소개된 작품. 〈#Lonelygirl〉, 2015 ©Heji Shin
성(性), 패션, 그리고 사진 7~8년 전 성교육 관련 도서를 위해 실제 커플의 성관계 장면을 촬영한 적이 있다. 최근 화제가 된 패션 브랜드 에카우스 라타(Eckhaus Latta)의 광고 캠페인은 오래 전 촬영한 성교육 관련 사진집의 촬영 콘셉트를 응용한 프로젝트다. 실제 커플의 섹스 장면이 사용된 패션 광고 이미지와 교육용 목적으로 촬영된 이미지를 대하는 사람들의 태도는 완전히 달랐다. 광고 캠페인 이미지를 보고 많은 사람들이 화를 내고 항의를 보내왔음이 그 사실을 증명한다. 이 작업을 통해 섹스와 패션의 관계, 사진이 패션 광고에서 미치는 영향 등을 탐색하고 싶었다. 최신작 〈Babies〉 역시 시각적 임팩트가 강한 작품이다. 보통 사람들은 생명 탄생의 순간을 직접 목격하는 것을 불편하게 느낀다. 성과 마찬가지로 인간의 삶에 있어서 가장 자연스러운 부분인데도 말이다. 출생 순간도 충분히 낭만적일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싶다.
앞으로의 계획 세상은 다채로운 이미지에 둘러싸여 있다. 사람들이 사진이란 매체를 통해 이미지의 중요성에 대해 다시금 생각할 수 있길 바란다. 올 가을 출간될 사진집 〈Babies〉을 준비 중이다. 앞으로도 흥미로운 사람들을 끊임없이 만나고 그들과 적극적으로 교류하며 사진작업을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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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가적 풍경, 목예린
사진가 목예린은 미국 LA에 거주 중이다. 〈Apartamento(아파트멘토)〉, 〈Monocle(모노클)〉 등 한국에서도 인기가 높은 해외 매체를 통해 작품을 선보이고 있다. 그녀가 포착한 일상의 편린은 한 폭의 수채화처럼 아름답다. 빛과 공기의 흐름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사랑스러운 이미지는 보는 사람의 마음까지 편안하게 만든다.
여행을 사랑하는 사진가 목예린이 미국 컨빅트 호수에서 마주한 풍경. 〈convict lake〉 ©yerin mok
나의 어린 시절 12세 때 미국 로스앤젤레스로 이민을 떠났다. 낯선 도시에 적응한다는 것은 생각처럼 쉬운 일이 아니었다. 사진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은 아빠의 영향이 컸다. 어린 시절, 아빠는 나에게 자신의 카메라로 엄마 아빠의 사진을 찍어 달라고 했다. 떨리는 손으로 카메라를 들고 부모님의 모습을 촬영하던 순간의 설렘이 오래도록 기억에 남았다. 그 후 고등학교에 진학해 사진 수업을 들으며 촬영, 현상, 인화가 되는 모든 과정에 매료되었다.
사진가로서의 삶 사진가로 발을 디딘 나에게 가장 먼저 주어진 프로젝트는 영화 〈Hard Candy(하드 캔디)〉를 위한 촬영이었다. 내 사진이 영화 속 주인공이 촬영한 이미지로 사용되었다. 대형 스크린을 통해 내 작품이 비춰지는 것을 볼 수 있었던 색다른 경험이었다. 최근에는 프리랜서 사진가로서 〈Apartamento(아파트멘토)〉, 〈Dwell(드웰)〉, 〈Monocle(모노클)〉, 〈Fast Company(패스트 컴퍼니)〉 등의 잡지와 일하고 있다. 영향력 있는 매체와 작업할 수 있다는 것은 사진가에게 무척이나 고맙고 즐거운 일이다. 나의 시선을 세계 각국에 있는 많은 독자들과 공유할 수 있고, 명사를 만나 좋은 이야기를 직접 듣거나 비일상적 장소로 나를 데려다주니 말이다.
남부 프랑스 여행 중. 〈South France〉 ©yerin mok
일상의 소소한 아름다움 추구하는 사진 스타일에 관한 질문을 자주 받는다. 나의 답변은 간단하다. 마음을 움직이는, 소소한 영감을 주는 이미지에 시선이 머무를 뿐이다. 평소에도 항상 카메라를 가지고 다니는 편이다. 특히 낯선 여행지에서 마주한 특별할 것 없는 풍경을 카메라에 담는 것을 좋아한다. 세상을 유심히 바라보고 자신만의 시선으로 기록한다는 것은 그 자체만으로도 의미가 있다. 사람들이 쉽게 감지하지 못한 일상의 아름다움을 내 사진을 통해 마주할 수 있다는 사실이 행복하다.
앞으로의 계획 사진은 ‘길’이다. 내가 누구이고 어디에 있는지를 그 어떤 것보다 정확하게 보여준다. 2012년 한국을 방문했다. 어렸을 때 남아 있는 기억과는 전혀 다른 풍경과 속도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얼마 전 한국 〈보그〉를 위한 촬영을 LA에서 진행했다. 당시 촬영을 진행하며 한국을 방문하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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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스한 시선, 저스틴 정
저스틴 정은 〈Kinfolk(킨포크)〉, 〈Cereal(시리얼)〉 등 전 세계 트렌트세터가 사랑하는 잡지의 이미지를 담당하는 사진가다. 여행을 사랑하는 한국인 아버지와 필리핀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샌프란시스코에서 자랐다. 그의 사진에선 온기가 느껴진다. 특별할 것 없는 일상에서 삶의 기쁨을 찾고 있음이 고스란히 전해지는 저스틴 정의 사진을 소개한다.
상업 사진 작업과 개인 작업을 병행하고 있는 저스틴 정이 포착한 로스앤젤레스 풍경. ©Justin Chung
나의 어린 시절 미국 샌프란시스코가 고향이다. 아름다운 자연환경과 특유의 날씨가 묘한 분위기를 내뿜는 샌프란시스코란 도시에 일찌감치 매료되었다. 여행을 좋아하시는 부모님 덕분에 어려서부터 가족 여행을 자주 다녔지만 샌프란시스코만큼 내 마음을 사로잡은 도시는 많지 않았다. 어린 시절 잡지 이미지를 수집하는 일을 좋아했다. 그 이미지들을 통해 나만의 이야기를 만들어 나가기도 했다.
사진과의 인연 대학에서는 사진과 무관한 공중위생학을 전공했다. 학업을 위해 동쪽 해안 지역으로 이주했을 때, 그곳에 펼쳐진 새로운 풍경을 사진으로 기록하기 시작하며 사진가의 꿈을 키워 나갔다. 결혼 후 최근 다시 로스앤젤레스로 이주했다. 아름다운 자연 속에서 사진가로서 제2의 삶을 펼치고 있다.
Formerly Yes 설립자 Brad Holdgrafer 인터뷰 작업. ©Justin Chung
세계적 패션 브랜드와의 협업 글로벌 패션 브랜드인 페리 엘리스, J. 크루, 클럽 모나코, 아비크롬비 & 피치 등 여러 패션 브랜드와 라이프스타일 매거진 〈Cereal(시리얼)〉, 〈Kinfolk(킨포크)〉와 주로 작업한다. 상업 사진가는 이미지를 통해 한 브랜드의 아이덴티티를 완성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촬영을 진행하기 전, 꼼꼼한 사전 조사는 필수다. 사진가가 준비를 얼마나 잘 하느냐에 따라 결과물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하나의 결과물을 도출하기 위해 여러 과정을 거치고 결과물을 만들기까지의 모든 시간이 소중하다. 또한 창의적인 일을 하는 사람들을 만나 그들의 스튜디오를 방문하고, 그들의 작업 과정과 공간을 살펴보는 일 역시 무척이나 흥미롭다. 창작에 대한 그들의 열정이 나를 항상 자극시킨다. 온전히 나만의 시선과 감성을 담아낼 수 있는 개인작업에 시간을 많이 할애하는 이유다.
앞으로의 계획 2014년 〈Faculty Department〉란 책을 독립 출판 형태로 발행했다. 패션 디자이너, 가구 디자이너, 브랜드 디렉터 등 창의적인 일에 종사하는 다양한 사람들의 삶에 대한 기록을 사진으로 담은 작업이다. 사진은 세상을 이해하기 위한 하나의 도구이자 다른 사람과 소통하기 위한 창구다. 앞으로 개인 작업에 좀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할 생각이다. 그리고 2018년 봄 한국을 방문할 예정이다. 안타깝게도 지금껏 한국에 방문한 적이 없기에 더욱 기대가 된다.
에디터_ 김민정
디자인_ 전종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