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12-01
조국에게 이불은 하나의 커다란 캔버스다. 그는 이불 위에 프랑스의 어느 시골 마을을 그리고, 인디언 원주민의 전통 패턴을 흩뿌린다.
꽃이불 틈 홀연히 등장한 와바나키
조국은 그래픽디자인을 전공했다. 졸업 후에는 패션회사에서 그래픽디자이너로 일하기도 했고, 에이전시에서 브랜드 전략을 세우기도 했다. 침구 디자인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건 3~4년 전이다. 친구 집들이 선물을 위해 이불이랑 베개를 보러 갔는데, 여전히 촌스러운 자수나 꽃무늬 이불이 대부분이더라. 천편일률적인 이불 말고 좀더 세련되고 컨셉추얼한, 디자인이 강조된 이불을 만들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이불을 리빙이 아닌, 패션의 관점으로 해석하고 싶었다. 게다가 마침 1인 가구 시장이 커지던 터라 젊은 싱글족들을 겨냥한 스타일리쉬한 이불이라면 가능성이 있을 것 같았다. 그렇게 론칭한 침구 브랜드가 ‘와바나키’다.
“상상력을 불러일으키는 창의적인 브랜드명을 짓고 싶었어요. 뻔하고 지루한 디자인을 하지 않겠다는 의미로요. 또한 제가 캐나다에서 교육을 받아서 캐나다를 은유적으로 상징하는 단어를 사용하고 싶었고요. 이 두 가지를 충족시키는 단어가 바로 와바나키(Wabanakki)인데요. 캐나다 퀘벡에 살던 인디언 원주민 부족의 이름이에요. 로고도 이와 비슷해요. 캐나다를 상징하는 단풍잎 심벌과 홈/리빙 브랜드를 뜻하는 하우스 심벌을 결합해 디자인했어요.”
프랑스 시골마을이 떠오르는 이불
뻔하고 지루한 디자인을 하지 않겠다는 그의 선언처럼 확실이 와바나키의 이불은 그동안 우리가 흔히 보던 이불과는 완전히 다르다. 가장 큰 차이점은 이불마다 스토리텔링을 곁들였다는 점이다. 와바나키의 이불에는 하나하나 다른 스토리가 담겨 있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French Village>는 하늘에서 본 프랑스 어느 시골마을의 아름다운 풍경을 모티브로 했다. 마을을 가로지르는 강줄기, 아기자기한 공원, 마을을 잇는 갈림길 등을 디테일하게 묘사했다. <City of Joy>는 현대인의 삶의 터전인 도시와 빌딩을 파스텔톤의 화사한 컬러로 표현했다.
<French Village>
<City of Joy>
“스스로 아티스트라는 생각으로, 하나의 작품을 만든다는 느낌으로 이불을 디자인해요. 그래서 이불마다 스토리를 넣는 거고요. 룩북도 마찬가지예요. 런던, 파리, 마라케시(모로코)까지 이불을 전부 들고 가서 찍은 거예요. 각각의 이불이 어울릴 법한 장소를 찾아서 룩북 촬영을 했어요. 스토리가 이불에서만 끝나는 것이 아니라, 룩북까지 연결될 수 있도록이요. 또한 주로 온라인에서 판매되는 와바나키의 특성상, 보여지는 부분이 무척이나 중요해요. 직접 보고 만질 수 없으니까요. 사진 한 장으로 제품의 특징을 최대한 보여줘야 해서 룩북에 더욱 공을 많이 들였어요.”
공장 사장님들, 호강시켜 드릴게요
와바나키의 독특한 이불은 조국의 꾸준한 스케치에서부터 시작된다. 스케치 중에 느낌이 오는 게 있으면 컴퓨터로 옮겨서 다시 작업에 들어간다. 완성된 디자인 시안은 원단 업체로 보내는데, 컴퓨터로 작업한 색감이랑 원단에 찍힌 색감이 다를 때가 많다. 그래서 샘플을 대략 10개 정도 뽑아보면서 색감을 맞춰가는 과정이 중간에 있다. 가장 중요한 단계다. 이후 최종 시안이 결정되면 이걸 가지고 대량 인쇄를 한 다음, 프린트된 원단을 봉제 공장에 가져다 준다.
“사업 초기에 한 6개월 동안은 봉제 공장이나 원단 업체 찾아다니느라 애 많이 먹었어요. 직접 발품을 팔며 찾을 수밖에 없었던 게, 인터넷에 안 나와 있거든요. 동대문종합시장에서도 원단을 파는데 도매가라고 해도 비싸요. 이 가격대로 이불을 만들면 절대 단가가 안 나와요. 동대문 도매시장에 원단을 공급하는, 그 위의 업체를 찾아야 하는 거예요. 전국을 돌아다닌 끝에 좋은 공장을 만나기는 했는데, 사실 많이 죄송해요. 저희가 주문량이 많지 않다 보니까 그분들 입장에서는 돈이 안 되거든요. 빨리 잘돼서 주문 많이 넣어 드려야죠.”
앞으로 엄청 잘될 와바나키(feat. 에디터 촉)
“추후 세 가지 정도 계획을 세워 놓았어요. 첫 번째는 다양한 분야의 아티스트와 협업해서 와바나키 작가 시리즈를 기획하는 거예요. 진짜 작품으로서의 이불을 판매한다는 콘셉트로요. 두 번째는 기회가 되면 해외 편집샵에 입점해서 시장을 넓히고 싶은 마음이 있고요. 개인적으로 와바나키의 디자인이 유럽 시장에서도 충분히 먹힐 거라고 생각하거든요. 세 번째는 어떤 방식으로든 와바나키라는 브랜드를 많이 알리는 거예요. 매체 인터뷰도 하고, 협찬도 해주고, SNS 홍보도 열심히 하고요.”
와바나키는 설립된 지 이제 1년이 조금 넘은 신생 브랜드다. 아직 인지도가 높다고는 볼 수 없지만 요즘 반응이 심상치 않다. 다양한 매체에서 많이 소개가 되고 있으며, 최근에는 싱어송라이터 윤현상의 뮤직비디오에도 출연했다. 물론 너무 많이 클로즈업이 돼서 누가 말해주지 않으면 이게 와바나키의 이불인지 아닌지 알 수 없을 정도이긴 하지만. 그래도 ‘시작이 반이다’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시작은 미약하나 끝은 창대하리라’는 말도 있고. 감히 장담하건대, 앞으로 엄청 잘될 거다. 정말로. 딱 보면 촉이 오잖아!
에디터_ 추은희(ehchu@jungle.co.kr)
사진제공_ 와바나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