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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 | 인터뷰

이돈태 탠저린 대표

2013-09-13


영국항공 비즈니스 클래스는 비행기 좌석을 ‘S 자’ 포맷으로 바꾸면서, 효율적인 공간 창출과 고객들의 편의를 이끌어낸 혁신적인 디자인 프로젝트다. 당시 재정난에 시달리던 영국항공에 막대한 이익을 안김으로써 디자인 경영의 대표적인 성공 사례 중의 하나로 꼽힌다. 이 프로젝트를 진행한 디자이너이자, 탠저린의 공동 대표인 이돈태 대표가 자신의 첫 번째 책 ‘포어사이트 크리에이터’를 출간했다. 디자인경영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지금, 디자인과 경영 그 사이에서 디자인과의 소통을 이야기하는 이돈태 대표를 만났다.

에디터 | 정은주(ejjung@jungle.co.kr)
자료제공 | 세미콜론

Jungle : 책을 출간하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그동안 디자이너로서 사회적으로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이 책은 그에 대한 제 대답이라 할 수 있을 거에요. 여러 곳에서 강연을 하다 보니, CEO부터 디자인 전공 학생들까지 다양한 분들을 만날 기회가 있었는데요. 질문은 각자 다를지 몰라도, 공통적으로 디자인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었어요. 그래서 책을 통해서 제가 겪었던 일들을 풀어내고자 했어요.

아직도 CEO나 디자인 결정권을 갖고 있는 분들에게 디자인은 낯선 분야입니다. 디자인의 가치에 대해서 인식하지 않기 때문에, 산업적으로도 부침이 심한 편이기도 하고요. 특히 경제 패러다임이 새롭게 바뀌었는데도, 과거의 디자인 프로세스를 고수하는 분들이 있어 아쉬운 마음이 컸습니다. 그래서 경영에서 디자인이 왜 중요하고, 어떻게 이뤄지면 좋을지에 대해서 다뤘어요.

또한 디자인을 전공하는 학생이나 디자이너의 길을 걷고 있는 분들에게 공통적으로 받는 질문에 대해서도 이야기했어요. 아무래도 제가 해외에서 일을 하고 있다 보니 그곳 환경에 대해 궁금해하는 분들이 많더라고요. 마지막으로 CEO도, 디자이너도 아닌 사람들에게도 디자인이 갖고 있는 ‘포어사이트’적 가치를 나누려 했어요.

Jungle : '포어사이트 크리에이터(Foresight Creator)’에 대해서 설명해주세요.

우리는 과거와 현재의 모습을 관찰하고 분석하는 방법이 인사이트(Insight)에 대해서 잘 알고 있어요. 이제까지 가장 많이 사용한 조사 방법이기도 하죠.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고객들의 잠재적인 니즈나 미래 상황들에 대처할 수 없어요. 예를 들어 설문을 통해 많은 시민들의 동의를 얻어냈다는 광화문 광장이 과연 성공적인 프로젝트였냐고 하면, 의견이 분분할 거에요. 포어사이트(Foresight)는 정성적인 데이터를 분석하는 인사이트를 기반으로 하되, 그 속에 다른 가능성과 상상력을 통해 미래의 상황까지 예측하는 것을 말해요. 이것을 가장 잘할 수 있는 사람이 디자이너고 이들이 곧 ‘포어사이트 크리에이터’라 생각했고요. .

Jungle : 실제로 디자이너는 경영을, CEO는 디자인의 언어를 이해하는데 어려움을 느끼곤 하는데요. 어떠한 부분에서 느끼는 생각의 차이인지, 이를 극복하는 방법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세요?

서로 생각하는 관점의 차이일 텐데요. 젊은 디자이너들 중에는 디자인만 좋으면, 모든 것이 해결될 것이라 생각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나 제품이 생산되고, 판매되기까지 수많은 과정을 거쳐야 하죠. 이에 대해 이해하고, 유연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태도가 필요해요. 반면, CEO들은 디자이너의 경험을 존중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들을 믿고 일관성 있는 결정을 내릴 때 서로에 대한 신뢰가 쌓이면서 함께 성장할 수 있다고 믿어요.

Jungle : 모든 분야가 그렇겠지만, 특히 디자인은 신뢰를 바탕으로 한 파트너십과 네트워크가 중요합니다. 동양인으로서 영국 디자인 회사에 입사해 공동 대표 자리에 올랐을 뿐 아니라, 세계 유수의 기업과 공고한 관계를 만들어나갈 수 있었던 대표님만의 소통 방법은 무엇이었나요?

서양인들이 동양인을 생각하는 고정관념은 아마 50년, 100년이 지나도 쉽게 바뀌지 않을 거에요. 제가 텐저린에 입사할 때도 더하면 더 했지, 크게 다르지 않았을 거에요. 거기다 언어도 부족했으니, 어떻게 보면 회사 입장에서도 모험이었죠. 저는 제가 무엇을 잘할 수 있는지를 찾고, 그걸 보여주려고 했었어요. 다른 사람들에 비해 책임감이 강하고, 성실하다는 점은 장점이 되었고, 이 부분에 대한 신뢰가 쌓이니 자연스럽게 언어의 문제나 동료들과 원만한 관계를 유지할 수 있었죠. 클라이언트와의 만남에서도 자신감을 얻고 제 의견을 관철시킬 수 있었습니다.

Jungle : 탠저린은 영국항공 비즈니스 클래스부터 걸레까지 다양한 분야의 디자인을 하고 있습니다. 이를 가능하게 한 원동력은 무엇인가요?

저희가 디자인 분야를 넓힌 과정은 일종의 가지치기 같았어요. 처음에는 항공기의 좌석 디자인을했는데, 나중에는 좌석 뒤의 모니터까지 디자인하게 되었다고 해야 할까요? 그 속에는 디자인의 대상마다 다른 특별한 방법이나 솔루션이 있는 것은 아니에요. 중요한 것은 디테일이죠. 자신의 관점으로 디테일을 잡아낼 수 있는 디자이너의 촉, 이것이 결과를 100%로 만들기도 하고, 120% 아니 200%를 만들어냅니다.

Jungle : 이제까지 대표님이 해 온 디자인 프로젝트를 살펴보면, 디자인뿐만 아니라 해당 기업과의 완벽한 파트너십을 이뤄낸다는 생각이 들어요. 이러한 협업 관계는 디자이너의 역할을 한정 짓지 않는 느낌이 듭니다.

요즘은 어디서부터 어디까지를 디자인이라고 해야 할지 모를 정도로 그 범위가 다양해지고 있어요. 그래서 업무가 명확히 나뉜 대기업의 사례들을 제외하고는 일반적으로 디자인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 고려해야 할 부분들이 많이 있어요. 디자이너는 디자인이라는 자신의 역할에 충실하되, 포어사이트적 관점으로 폭넓은 관점을 가져야 해요.

Jungle : 서두에서도 이야기했지만, 디자이너의 사회적 역할에 관심을 많이 두고 계신 듯합니다. 디자이너의 사회적 역할은 왜 중요하고, 어떤 식으로 실현되어야 한다고 보시나요?

선진국에는 산업의 스펙트럼이 넓은 편이지만, 한국은 굉장히 트렌디하다고 해야 할까요? 유행하는 산업이 있다면, 모든 사람이 그 분야에만 집중한다는 느낌이 들어요. 안타까운 건 그 과정에서 우리가 잘할 수 있었던 신발, 가구, 섬유 등의 분야에 소홀하게 되었다는 점입니다. 일전에 우리들병원과 협업을 통해 의자를 하나 디자인하게 되었는데, 그 일을 맡아줄 엔지니어를 찾기가 굉장히 힘들었어요. 해당 산업이 발전하지 못하니까 많은 사람이 일자리를 잃고 떠날 수밖에 없었던 거죠.

저는 늘 중소기업과 제조업의 중요성을 이야기합니다. 그들이 성공해야, 산업과 경제 자체가 살아날 수 있거든요. 예를 들어, 해피콜의 가정용 청소용품은 디자인을 통해 이전 매출에서 100배 이상의 성과를 이뤄냈어요. 이러한 성공이 자연스럽게 노동창출과 사회적 기여를 이뤄낸다고 생각해요. 그러니까 디자이너들도 소비재나 섬유, 구두 등 IT 상대적으로 디자인 인력이 부족한 분야에 도전해 좋은 결과를 만들어냈으면 좋겠어요. 좋은 디자인이라면 그런 힘이 분명히 있거든요.

Jungle : 최근 한국의 디자인에 대해 ‘K 디자인’이라 명명하고. 이러한 정체성을 확립해가려고 하는 시도가 있는데요. 대표님이 생각하는 K 디자인은 무엇이며,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생각하시나요?

최근 일본의 가전제품들이 세계 시장에서 부진한 것의 일면에는 지나치게 자신의 색깔을 담으려고 했던 것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요. 과거의 헤리티지만이 K 디자인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앞으로의 무궁무진한 가능성이 바로 K 디자인이라고 생각해요. 지리적, 문화적인 한계를 두지 않고, 우리가 잘 만들 수 있는 것에 좀 더 자신을 가져서 세계에서의 경쟁력을 얻는 것이야말로 K 디자인이 아닐까 해요.

Jungle : 마지막으로 이 책을 읽게 될 예비 독자분들에게 한 말씀 해주세요.

현재 홍익대학교 산업디자인학과 4학년 학생들의 수업을 맡고 있는데요. 제가 대학을 졸업할 때에 비해 실력은 점점 좋아지는데, 그들이 실력을 펼칠 수 있는 곳이 많지 않다는 것을 보면서 어떻게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 고민하게 됩니다. 많은 어려움이 있지만, 디자이너라는 직업과 디자인이 갖고 있는 절대적인 가치들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자신의 디자인으로 넓게는 세상을 변화시킬 수도 있다고요.

그리고 ‘포어사이트 크리에이터’는 디자인 산업과 디자인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지만, 이 이야기가 디자인에만 해당된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다른 창조 분야에도 이러한 디자인적 사고가 더 많이 전해질 수 있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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