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03-09
당신은 어떤 창조자인가?
누구나 가진 디자이너의 열정과 감성적 추구만을 생각하는 창조자인가?
디자이너의 허상은 당신의 창조적 생명력을 악화시킨다. 그 생명력은 질기고 강해야한다.
그렇기 위해서는 스스로를 냉정하게 채찍질해야하고 즐기되 철저한 컨트롤과 고통을 수반해야 한다. 결과물의 완성도로 클라이언트와 소비자를 만족시키기 위해서는 본질적인 디자이너관이 필요하다. 여기에 임일진 디자이너가 있다. 그는 본질에 접근하는 디자이너다. 말과 포장이 아닌 스스로를 냉정하게 몰아붙이며 결과물의 완성도를 높이는 뛰어난 이매지너다.
글 | 김흙(북디자이너, paris7100@naver.com)
에디터 | 정윤희(yhjung@jungle.co.kr)
오페라 페르퀸트, 투란도트, 콘체르탄테, 라보엠, 카르멘, 춘향, 천생연분, 미소2, 등 수없이 많은 훌륭한 오페라 작품엔 임일진이란 이름이 있다. 밀라노 브레라 국립미술원석사, 밀라노 라 코르테 데이 파리 극장학교 수료. 밀라노 카톨릭대학 연출 수료, 등 그는 10년 넘게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공부했다.
밀라노에서 공부 중 예술의 전당과 인연이 되어 국립오페라단 무대미술을 책임졌었다. 그는 이태리에서 경험한 문화와 예술을 바탕으로 한국적인 무대미술을 선보이는 한국의 이매지너다. 그의 오페라 작품들을 보면 한국적인 색체가 보이고 녹아있다. 긴 이탈리아 유학생활이 그를 진한 한국의 이매지너로 만든 것일까? 유학을 갔다 왔다고 외국의 문화를 흉내 내려는 이매지너들과는 다르다. 그의 작품엔 깊이가 있고, 고민이 있다. 그리고 완성도가 있다.
한국을 대표하는 국립오페라단의 무대미술을 책임지는 자리는 절대로 호락하지 않았다. 많은 에너지를 표출해야 하고, 긴 호흡을 할 수 있도록 스스로 컨트롤 하는 법을 알아야 했다. 작품을 이해하고 몰입하기 위해 개인적 냉정함을 늘 잃지 않았다. 소통을 위한 통로는 열어두지만 본질적 핵심인 작품에 배반되는 개인적 행위는 가급적 자제했다. 그는 이렇게 디자인을 해왔고, 실천하고 있다.
“전 작품이 진행되는 동안이나 끝나면 흔히 하는 ‘뒤풀이’에 참석하지 않는 사람으로 유명해요. 작품에 임했던 사람들이 의아해하고 왜 그러냐고 하지만 솔직한 이유는 다음 작품을 위해서입니다. 많은 작품을 해야 하는 저로서는 다음 작품을 위해서 냉정함과 고른 호흡을 해야 하거든요.
고른 호흡을 위해선 냉정함을 유지해야합니다. 무척 힘든 조절이죠. 하지만 작품을 임일진이란 사람에게 맡기고 비싼 돈을 내고 온 관객들에게 완성도 높은 무대를 보여 주어야 한다는 다짐엔 냉정한 자기 절제와 호흡이 있어야 해요. 그 끈을 오락가락 하는 사람은 완성도가 높을 수가 없죠. 전 작품을 보러 와주는 관객들에 대한 예의로 그리고 임일진이란 브랜드를 위해서라도 그 정도 자제는 얼마든지 할 수 있어요. 오히려 많은 시간을 작품분석과, 고민으로 보내고 싶어요. 전 이런 시간이 오히려 행복하고 편안합니다. 그 작품에 더 가까이 다가가는 기분은 이루 말할 수 없죠. 철저한 작품의 분석이 저에겐 에너지 충전의 시간이에요.
모든 사람들이 쉬거나, 여행하거나, 뒤풀이를 해야만 재충전을 갖는 건 아닙니다. 저처럼 냉정함을 잃으면 에너지가 두 동강이 나는 사람에겐 치명적이에요. 단점이 많은 사람이라 몇 배 더 질주를 해야 겨우 떠밀려 내려가지 않는 사람인거 같아요.”
필자는 임일진 디자이너가 말한 냉정함속에서 에너지를 얻는다는 말에 동의한다.
디자인은 감성적이지만 감성적 컨트롤만 가지고는 디자이너가 퀄리티 있는 결과물을 낼 수 없기 때문이다. 많은 크리에이티브를 하는 사람들이 잦은 매너리즘과 감정의 기복을 조절 못해 일을 그르치거나 방황을 하는 것을 많이 봐 왔기에 감성적 디자인을 하기 위해선 냉정한 자기관리와 충전법이 더욱더 필요하다고 공감한다. 그 무언가를 창조하기 위해선 냉정한 시선과, 깊이 있는 고민이 필요하다. 감성적 충전법에만 길들여져 똑같은 감성지수를 채우는 행위가 에너지 충전이라 말하는 건 질리도록 들었다.
“디자이너가 많은 걸 보고, 느끼고, 경험하는 건 매우 중요합니다. 그게 전자적 과정에서 도입의 중요성이라면 결과물로 향하는 후자 지점에서는 프로젝트의 철저한 분석과 냉정한 컨트롤이 중요하죠. 몰입하지 않거나 상황 자체를 즐기지 않으면 절대로 퀄리티를 높일 수 없어요.
이태리 유학 때 일인데, 수업시간에 발표하는 프로젝트가 많았어요. 그런데 놀라웠던 건 이태리 친구들은 자기 작품을 발표하면 정말 오랫동안 설명하고 자랑을 한다는 겁니다. 정말 세심한 부분까지 설명을 하고 질문 받으면 또 오랫동안 답변하고…. 그때 작품을 세밀하게 분석한 것을 자랑하면서 토론 하는 문화에 꽤 충격을 받았어요. 자랑을 한다는 건 그만큼 자신감에서 오는 거고, 그 만큼 자기 작품에 철저하고 냉정한 분석이 있기에 오랫동안 사람들에게 설명을 할 수 있는 건데, 그렇게 분석하지 못한 저로서는 굉장히 힘든 환경이었어요.
제 프로젝트의 자랑을 5분 이상 못하는 제 분석력에 실망한 건 당연했죠. 우린 자랑을 하는 문화권은 아니잖아요. 그런 사람에겐 오만하다는 편견이 생기고, 겸손해야만 하는 문화권이니 자기 프로젝트를 완벽히 분석, 고민해서 몇 시간이고 떠들면서 자랑하는 이태리 문화가 주는 충격은 그야말로 컸죠. 자기의 프로젝트를 한 시간 동안 분석하면서 자랑하라고 하면 할 디자이너가 몇이나 될까요? 중요한건 철저히 분석하고 몰입하는 냉정함이 있기에 그런 행동이 나올 수 있다고 생각해요.”
임일진 디자이너는 이태리 친구들처럼 자랑을 하지 않는다. 하지만 분석과, 냉정함은 늘 갈고 닦는다. 디자이너이기에 좀 더 자유로워야한다는, 더 감성적으로 많은 걸 포용해야 한다는, 또는 디자이너스러워야 한다는 상투적인 디자이너관에 임일진 디자이너를 포함시키고 싶지 않다. 그는 말로 하는 디자이너가 아닌 스스로 고민하고 냉정함을 잃지 않는 이매지너이기 때문이다. 더 멋있게 보이기 위해, 더 멋들어진 말로 현혹하는 이태리 친구들보다 더 치열하게 분석하고, 공부한다. 그러기에 그는 상투적인 디자이너가 아니다.
디자이너는 감성적 에너지를 많이 받아야 한다는 심리적 억압아래, 자기 컨트롤이나, 절제, 분석하는 걸 등한시한다. 뛰어난 이매지너는 이 보다 더 확장된 자기만의 방법으로 일을 한다. 많은 걸 봐야하고, 느껴야 하고, 경험해야 한다는 건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이다. 누구나 할 수 컨트롤 방법은 확장을 가져올 수 없다.
* 다음 주에는 임일진 무대미술가가 생각하는 디자이너의 자세에 대한 이야기가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