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03-29
한때 뜨거웠던 세상의 관심에서 살짝 비켜선 새만금은 새 땅이 되기 위한 변신의 시간을 조용히 갖는 중이다. 방파제 공사가 끝나고 드넓은 땅은 속의 소금기를 빼느라 사막처럼 방치되었고, 1/3의 땅에는 지금도 물이 들어나고 나간다. 이 시간이 지나면 새만금은 육지가 되어 지금보다 더 큰 변화를 맞게 될 것이다.
글 | 월간사진 이종화 기자
바다였던 때부터 새만금은 계속 흐르고 변하는 땅이었다. 그 언저리에서 바다와 갯벌에 의지해 생활해오던 사람들의 삶도 새만금과 함께 부침을 거듭해왔다. 개발과 환경의 틈바구니에서 원주민들은 때로는 무지한 존재나 이기적인 집단으로 매도되기도 했다. 그러나 어떤 빛좋은 개발 청사진이나 거대한 환경담론도 인간 삶과 동떨어져서는 지지를 얻거나 미래를 장담받기 힘들다. 거대담론에 앞서 다양성과 인간이 먼저 고려되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새만금 이슈에 가린 주민 삶의 대면
조대연은 지난 10여년간 새만금을 기록하는 중이다. 그의 시선은 새만금이라는 지역이 아닌 그곳 주민의 삶을 향한다. 그의 사진 속에 등장하는 모래에 파묻힌 폐차나 황무지 같은 빈 땅에 왜소하게 앉아있는 환경감시원은 모두 주민의 현재 모습을 연상시킨다. 그리고 작가는 황량한 땅이지만 그곳을 향한 따뜻한 시선을 거두지 않는다. 어느새 같이 백합을 구워먹고 돌아갈 때면 호박을 안기는 주민들과 속이야기를 털어놓을 정도로 가까워진 사이기도 하지만 처음부터 새만금을 찾은 이유가 사진 때문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올해는 조대연이 서울을 떠나 광주로 내려간 지 13년째가 되는 해다. 처음 살아보는 도시에서 그는 시간이 날 때마다 광주 인근의 남도 곳곳을 돌아다녔다. 이때 그의 시선을 끈 것은 면(面)소재지 정도의 시골동네였다. 전형적인 농촌마을도 아니고 그렇다고 도시도 아닌 중간 풍경의 면소재지들은 고향의 푸근함과는 거리가 먼 낙후되고 황폐화된 모습으로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몇 십 년 전으로 돌아간 듯한 풍경이었다. 도시에 편입되려는 사람들이 머물렀다 가는 회색의 공간은 그의 호기심을 자극했고, 그곳에는 어떤 삶들이 살고 있는지 알고 싶어졌다. 만약 서울이었더라면 하던 대로 스냅사진의 대상을 찾아 거리를 돌아다녔겠지만 지방의 삶은 먼저 사람에게 다가갈 여유를 주었다. “사진가여서 행복하다고 느끼는 순간은 다른 삶을 알아갈 때에요. 사람을 만나고 끈끈해져 감동이 전해질 때는 사진은 뒷전이죠.”
남도 땅과 사람에 대한 애정과 관심
사람에 대한 애정과 관심에서 출발한 사진은 사람이 등장하지 않는 사진에서도 사람의 자취가 묻어난다. 시간과 기억의 흐름에서 소외되고 사라지는 풍경에서는 황량함보다는 우리 삶과 문화를 되새기게 된다. 한 장 한 장 오랜 시간이 걸려 대상과 이야기하고 삶을 이해한 뒤에 찍힌 조대연의 사진은 볼수록 많은 이야기를 떠올리게 한다. 그뒤 조대연의 남도 사람에 대한 관심은 면소재지에서 섬진강, 진도, 새만금으로 넓어진다. 한때 사회의 뜨거운 이슈였던 새만금에서 그는 삶의 터전을 잃고도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는 사람들을 만난다. “사진을 보면 환경론자 같고 실제 환경문제에 관심이 많지만 가장 먼저 고려되어야 할 것은 삶의 영역을 침범 당한 사람들이었어요. 이들의 입장에서 환경과 개발이 조화를 이뤄야 하는데 물론 쉬운 일은 아니에요. 제가 배운 다큐멘터리 사진은 양쪽을 다 이해하고 찍어야 한다지만 저는 지역민 쪽에 더 기우는 것 같아요. 그래서 더 사진이 감성적이고.(웃음)”
그의 고향은 새만금과 접한 군산 옥구다. 교사였던 어머니가 근무하던 초등학교 관사에서 태어나 자랐다. 지금도 학교는 그곳에 그대로 있다. 그래서 더 남도 땅과 사람에 애정을 갖고 사진에는 애잔함이 묻어나는지 모른다. “젊어서는 대상에서 뭔가를 찾으려 했다면 지금은 마음을 열어놓고 모르는 사람과의 만남 그리고 나 자신을 표현하는 것이 더 가치 있게 다가와요. 지방이라서 더 여유로워진 건지도 몰라요.” 우리가 잊고 살지만 기억해야 할 새만금의 사람과 땅에 관한 조대연의 사진은 오는 12월7일부터 13일까지 서울 통의동 류가헌에서 전시된다.
사진대가의 일생 통한 사진읽기 책도 번역
조대연은 최근 심혈을 기울여 사진책 한권을 번역했다. 12월에 월간사진에서 출판되는 ‘사진, 어떻게 읽을 것인가’가 그것이다. 책은 독특하게 사진가의 일생을 통해 우리에게 익히 알려진 유명 사진작품이 찍히게 된 배경과 사진을 설명하고 있다. 알프레드 스티글리츠, 빌 브란트, 워커 에반스, 폴 스트랜드, 라즐로 모홀리-나기 등 100여명 사진가의 일대기가 소개되는 방대한 책은 사진역사학자로 유명한 이안 제프리(Ian Jeffrey)가 쓰고 풍부한 사진작품을 실었다. 조대연은 번역하는 내내 어릴적 삼국지를 읽듯 손에서 책을 놓지 못하고 빠져들었다. “사진역사에서 모두 유명한 사진가지만 사진의 의미는 제대로 알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요. 그동안 미학적 관점에서 설명되다 보니 모두 제각각이고 추상적으로 이해된 탓이 큽니다. 이 책은 사진을 어떻게 보라고 제시하지 않고 사진가의 살아온 과정을 들려주면서 아마 이런 사진은 이런 배경에서 찍혔을 것이라고 상상하게 만들어 더욱 흥미로웠어요.” 여기에는 사진가의 출생부터 성장배경, 세세한 삶의 궤적까지를 모두 꿰뚫고 있는 저자 이안 제프리의 해박한 지식이 뒷받침되고, 그 지식의 폭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넓고 집요하다. 가령 줄리아 마가렛 카메론의 인물사진은 그녀가 어려서부터 성경과 전설 속의 영웅담에 심취했다는 사실을 알면 비로소 이해되고, 1900년대 초반 멕시코를 찾은 사진가 행렬에서는 당시 다큐멘터리 사진가들의 욕구와 갈증을 읽을 수 있다.
책에 소개되는 사진 대가들의 일생은 예술가로 성장하는 과정이 얼마나 고단한지에 관해서도 시사점을 던진다. 조대연은 “수많은 사진가들이 어떤 일에 심취해 자신의 내적인 완성을 이루었는지를 살펴보면서 자신만의 고유한 스타일을 찾으려는 현대의 사진가들이 반성하고 자신이 선 자리를 점검해보는 기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조대연은 중앙대 사진학과를 졸업했고, 서울에서 5년여의 신문사 사진기자를 거쳐 미국 Ohio 대학교 Visual Communication 대학에서 사진을 전공하고 학위를 받았다. 1998년부터 현재까지 광주대 사진영상학과에서 교수로 ‘이미지와 사회’, ‘사진커뮤니케이션’, ‘사진에세이’ 등을 가르치고 있다. 개인전
<낯선 일상의 리듬>
외에
<물 오르다>
등 다수의 그룹전에 참여하였다. 1998년 한국사진사연구소 연구원으로
<한국사진역사전>
기획에 참여하였고 2006년에는 ‘피스&그린보트’의 강사로 일본과 한국의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강의를 진행했다. 2008~2009년에는 서울국제사진페스티벌의 운영위원으로 활동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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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사진>
2010년 12월호에 게재된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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