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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 | 인터뷰

문턱 낮은? 문턱 없는! 미술관

2011-08-04


경기도 안산의 경기도미술관에서는 7월 9일부터 <착한 광고 으뜸> 전시가 열리고 있다. 세계 5대 국제 광고제로 손꼽히는 원 쇼(The One Show) 수상작들 중 우리의 정서와 맞는 작품 100여점을 모은 이번 전시는 경기도미술관의 최효준 관장이 직접 진두지휘한 결과물이다. ‘친절한 현대미술’, ‘쉼’전에 이어 또 다시 쉬운 전시를 선보이는 그는 경기도미술관을 문턱이 낮은 미술관이 아니라, 문턱이 아예 없는 미술관으로 만들겠다는 분명한 포부를 내비쳤다.

에디터 | 최동은( dechoi@jungle.co.kr)

순수미술이 아닌 광고가 미술관에 와서 전시로 꾸려지기까지는 최 관장의 개인적인 관심이 발단이었다. 전북도립미술관장으로 재직하던 당시, 광고 천재 이제석의 반전 광고 ‘뿌린 만큼 거두리라’가 원 쇼 국제 광고제에서 수상했다는 기사를 본 그는 알음알음 광고 주최사인 원 클럽(The One Club)과 전시를 기획했다. 그리고 3년 후, 경기도미술관으로 옮겨온 그는 다시 한 번 원 쇼 국제 광고전과 인연을 맺었다.


사회를 변화시키는 전시

이런 시도는 최효준 관장이 광고라는 매체를 좋아했기 때문은 아니다. 경제학과를 나와 미국에서 마케팅 석사 학위를 취득한 그는 오히려 광고를 사기라고 생각했다. 광고가 이론적으로는 필요한 사람에게 정보를 전달해 주니 소비자에게 도움이 되는 것이라고 말하지만, 실제로는 사람들에게 불필요한 욕망을 불러일으켜 낭비와 환경 파괴의 주범이 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는 우리 사회에서 가장 쉽게 접할 수 있는, 그래서 더욱 큰 영향력을 발휘하는 광고의 힘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주목한 것이 ‘착한’ 광고, 그리고 ‘좋은’ 광고다.

“광고는 사람들의 감성에 호소합니다. 플라스틱 조각을 먹고 죽은 새의 충격적인 이미지를 봤을 때 사람들은 ‘우리가 함께 살아가는 동물들을 죽이고 있구나’하는 사실을 자각하게 되는 것이죠. 이 때서야 비로소 사회가 바뀔 수 있는 것이지 법으로 강제하고 학문적으로 설명한다고 해서 바꿀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 면에서는 광고는 강력한 사회 변화의 수단이죠.”

최효준 관장이 생각하는 사회를 바꾸는 방법은 한 가지, 사람들의 느낌을 바꾸는 것이다. 느낌을 바꾸면 생각이 바뀌고, 생각이 바뀌면 행동이 바뀐다. 사람들의 행동이 바뀔 때 마침내 사회가 바뀌게 된다는 것이 최 관장의 평소 지론이다. 이번 <착한 광고 으뜸> 전도 관람객들에게 쉽게 다가감과 동시에 사회적인 변화를 일으키고 싶다는 목적 하에 진행되었다. 직접 뉴욕에 출장을 다녀 오고, 문화적 차이를 고려해 광고 설명을 손수 번역했다는 그의 열정이 전시 이곳 저곳에 스며 있다.


미술관의 경쟁자는 대중문화

미술관이 색다른 전시를 꾸려보고자 하는 이유 중에는 미술관끼리의 치열한 경쟁도 있다. 기존의 갤러리부터 비주류를 외치며 대안 공간과 길거리로 나온 예술가들, 개최 될 때마다 전시 수요를 싹쓸이 해가는 대형 전시까지. 현대 미술관의 경쟁자는 너무나 많다. 하지만 최 관장은 거기에 한 가지, 가장 강력한 경쟁자가 더 있다고 한다. 바로 대중문화다.

“마케팅에 저명한 어느 학자가 주장한 것이 문화 부문의 가장 큰 경쟁자는 일명 ‘방콕’ 하는 사람이라는 겁니다. 아무것도 안 하는 이 사람들을 어떻게 하면 문화 공간으로 끌고 나올 수 있냐는 거죠. TV, 영화, 게임 등 집 안에만 있어도 즐길 수 있는 것이 얼마나 많습니까? 요즘 TV 프로그램을 보면 예능 프로그램까지도 사람을 감동시키고 울리고 있어요. 원래는 순수 예술이 주던 감동을 이제는 TV 에서도 주고 있는 것인데, 미술관이 그만큼의 감동도 줄 수 없다면 어떻게 존속할 수가 있겠습니까”

해보고 싶은 전시가 있으면 사람들이 호응을 하건 안 하건 시도해보는 사립 미술관과는 달리,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국공립미술관에게는 한 명이라도 더 많은 관람객들을 끌어들이는 것이 지상 과제이며 의무이다.

“이 넓은 전시장에 사람이 한 두 명 밖에 없다고 생각해 보세요. 에어컨, 전기세, 인건비 등등 모든 것이 낭비로 보이죠. 저희가 미술관의 양적인 성취를 꾀할 수 밖에 없는 이유입니다. 질적 성취도 중요하지만, 먼저 사람들이 미술관을 찾아야지만 가능한 것이니까요.”

발 빠른 사립 미술관들이 먼저 이를 위한 색다른 판로로 응용 미술을 선택했다. 올해 초 열린 대림미술관의 디터 람스전, 작년 말에 예술의 전당에서 전시됐던 훈데르트 바서 전도 순수미술은 아니지만 오히려 그보다 더 큰 인기를 끌었다. 경기도미술관의 <착한 광고 으뜸> 전도 이런 흐름의 하나다.

“작년엔 미술과 패션을 섞었고 올해는 미술과 광고를, 내년에는 미술과 가구를 연결시켜 볼 생각입니다. 이렇게 생활 속에 스며있는 응용 미술이 관람객들에게 더 편하게 와 닿죠. 그렇게 되면 언젠가는 그 속에 녹아 있는 순수 미술 요소들을 발견하고 관심을 가지게 되지 않을까요.”


롤 모델은 가나자와21세기미술관

현대미술을 주로 다루는 경기도미술관의 고민은 늘 같다. ‘가뜩이나 난해한 현대미술을 어떻게 하면 더 쉽게 풀어 보여줄 수 있을까’다. 여기서 현대미술을 주로 다루고 있는 일본 가나자와21세기미술관의 성공 사례는 최 관장이 꼽는 지역 미술관의 롤 모델이다.

설계 단계부터 편안한 박물관을 목표로 한 가나자와21세기미술관은 연 평균 150만여명의 관람객이 다녀간다. 이 도시의 총 인구가 40만 명인 것을 감안하면, 한 사람이 적어도 일년에 3~4번은 이 곳을 찾는다는 소리다. 권위적이지 않은 미술관, 작품을 모르는 것이 당연시 되는 미술관. 경기도미술관은 이 곳의 방식을 일부 차용해 도슨트에게 쉬운 설명법을 수 차례 연습시키고, 전시 설명 역시 초등학교 4학년 이상이면 누구나 이해할 수 있을 정도의 난이도로 풀어낸다. 현재 열리고 있는 다른 전시 <거북이 몰래 토끼야 놀자> 또한 현대미술을 아이들에 맞게 쉽고도 치밀하게 구성한 전시다. 아이들은 이 곳에서 현대미술 작품을 자신의 눈높이에 맞게 해석하는 법을 배운다.

“제가 취임하기 전에는 경기도미술관이 전문가들을 위주로 운영되어 왔어요. 기획자들도 일반인에게 현대미술이 난해하게 느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 아니냐며 당연시 여기는 부분도 있었습니다. 전시를 해도, 세미나를 해도 늘 버스를 대절해 서울에서 손님들을 모셔오는 걸 보면서 왜 맨날 서울만 바라보고 있느냐고 했어요. 가까운 수원에서 모셔와야죠. 가까이 계신 분들이 와서 즐길 수 있는 미술관이 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첫 전시도 <친절한 현대미술> 이라고 지었고 내용도 쉽게 구성했습니다. 모두가 다 느끼진 못해도 그 중의 일부라도 공감했으면 하는 바램에서요”


장애인에 대한 시각을 새롭게 하는 도구, 예술

최효준 관장은 개인적으로 장애를 가진 사람들의 작품전을 기획해 보고 싶다고 했다. 장애를 가진 아들을 키우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사람들이 예술을 통해 장애라는 문제를 다시 봤으면 하는 마음이 크기 때문이다. 이는 그가 계속 강조하는 ‘사람들의 느낌을 바꾸어야 사회가 바뀐다’는 명제와 일맥상통한다.

“한 가지 감각이 닫히면 다른 감각이 열리죠. 장애를 가진 사람들의 보통 사람과는 다른 감각, 다른 시각은 어찌 보면 현대미술과도 비슷합니다. 현대미술도 다른 관점에서 사물을 보고 작품을 만들어 내는 것이잖아요. 현대미술 작가들이 의식적으로 본인들의 작품을 만들듯, 장애인들도 우리가 이해하지 못할 뿐이지 의식적으로 본인만의 작품을 만드는 겁니다. 그 사람들이 열등하다 열등하지 않다라는 측면을 떠나 우리가 사회적으로 소외된 그들을 예술로써 이해하게 된다면, 장애인에 대한 인식이 바뀌고, 그것이 곧 정치에도 발현되지 않겠는가 생각합니다.”


시민들의 사랑방을 꿈꾸며

최효준 관장이 기대하고 있는 경기도미술관의 역할은 굉장히 많다. 오케스트라로 비행 청소년들을 변화시킨 ‘엘 시스테마’에서도 볼 수 있듯 사회를 바꾸는 예술의 힘을 공공기관인 경기도미술관에서 보여줄 수 있기를 그는 희망한다.

“경기도 인구가 1,200만 명입니다. 그분들을 다 모셔올 수는 없겠지만, 우선 가까이 계시는 주민들부터 가벼운 복장으로 부담 없이 올 수 있는 그런 곳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문턱이 낮은 미술관이 아니라 문턱이 아예 없는 미술관으로 만들어야 하겠죠. 여기서 전시도 보고, 차도 마시고, 산책도 하는 시민들의 사랑방으로 만들고 싶고, 대중문화가 주는 감동과는 다른 차별화된 감동을 줄 수 있는 미술관으로 만드는 것이 저의 목표입니다.”

최효준 관장이 총괄한 <착한 광고 으뜸> 전은 8월 28일까지 경기도미술관 2층 전시장에서 진행된다. 입장료 무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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