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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쳐 | 월드리포트

역이야, 갤러리야?

문주영 통신원 | 2006-04-26



일본에서 두 번째로 큰 도시인 요코하마는 개항도시로서 일본 최초로 서양식 문물을 받아 들였던 곳이다. 그만큼 역사적이고 국제적인 도시이지만 많은 시민들이 도쿄로 출근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자립적인 도시의 성격이 부족했다. 그러한 도시 불균형의 문제와 교통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거대한 규모의 도시 리모델링에 들어갔는데 그것이 바로 미나토미라이 21(Minato Mirai21: MM21)이다.

항구를 의미하는 ‘미나토’와 미래를 의미하는 ‘미라이’는 말처럼 ‘21세기 미래의 항구도시’인 이곳은 지금까지 가장 성공한 인공도시의 모델이 되고 있다. 워낙 많은 이야기를 가진 이곳에서는 지금도 여전히 공사가 계속되고 있으며, 새롭게 생겨나는 하나하나가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다. 이번 호에서는 MM21프로젝트에서 가장 먼저 손을 댔었고 가장 많은 관심이 집중되었던 지하철 ‘미나토미라이선’ 의 각 역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보자.

취재 | 문주영 도쿄통신원 (mm00nn@naver.com)




모두 다섯 개의 역으로 구성된 미나토미라이선은 4.1km로 일본에서 가장 짧은 노선이지만 비즈니스와 관광을 중심으로 한 요코하마의 심장부에 해당하는 중요한 노선이다. 이 프로젝트의 목적은 시민들이 가장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도시 공공시설로서 중요하고 다양한 기능을 완수하는 것과 동시에, 도시의 발전에 따른 변화를 수용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드는 것이다.


MM21개발사업은 40년 전인 1964년경에 처음으로 구상이 되어 1981년에 협력체제를 갖추고 1985년부터 본격적인 개발에 착수하였다. 1996년부터는 지하철역의 기본 설계가 이루어졌고, 그로부터 8년 뒤인 2004년 2월 1일, 비로소「미나토미라이선」이 개통되었다. 본격적인 개발이 시작 된지 20년만의 성과이다.


도시디자인 전문가, 건축가, 조명디자이너, 도시교통계획 평론가, 철도 건설의 책임자, 행정대표, 그리고 시민대표로 이루어진 디자인위원회는 시작단계에서부터 함께 아이디어를 모았다.  디자인회의는 각 역의 설계자가 독자적인 안을 제출하면 그것을 바탕으로 전체의 의견을 도출해내는 방식으로 전개되었는데 이 과정에서 고려되었던 몇 가지 사항이 있다.



특히 디자인에 있어서 가장 중요시 여겼던 부분은 역사와 디자인도시인 요코하마의 특징을 최대한 살려서 지상의 이미지를 지하에 끌어 들이는 것, 노약자와 외국인을 위해 이용하기 편리한 환경을 만드는 것, 세 번째는 미니멈 코스트를 실현하는 것이었다고 한다.
그러면 이제부터 각 역들을 눈으로 확인하자.


이 역의 이름은 메이지 초기 요코하마의 발전에 기여한 다카시마 가에몬이라는 인물의 이름에서 따왔다. 요코하마에서 토목건축업자로 활약하고 다카시마마을의 매립사업을 행하였는데 그에 의해 시작된 마을은 신흥항구로서 새로운 문화와 커다란 가능성을 가지게 되었다고 한다.

야간 발광 다이오드에 의해 밤이 되면 빛의 오브제로 변신하는 신다카시마역의 입구는 반듯한 유리상자의 모양이다. 이 역은 전체적인 모티브를 바다와 모던에 맞추었는데, 입구의 푸른색과 유리에서부터 그 컨셉트가 잘 전달되고 있다. 지하 30m까지 총 5층으로 이루어진 내부는 각각의 층을 달리 표현하여 자신이 어느 층에 있는지 알기 쉽도록 했다고 한다.



내부로 들어서면 가장 먼저 만나게 되는 지하 1층. 지하로 들어온 갑갑함을 덜어주기 위해 천장의 높이를 가능한 높게 만들었다고 한다. 또한 물 속에서 본 수면의 빛을 나타내기 위해 흰 벽과 노란 원으로 효과를 준 모습이 인상적이다.



굽이치는 파도를 컨셉트로 한 지하 2층의 중앙광장은 검은 벽과 유리의 콘트라스트가 인상적인데   아쉽게도 이미지는 없지만 유리의 뒤쪽에 빛이 들어오면 훨씬 더 아름답다. 넓고 부드러운 곡선을 그리고 있는 화장실 벽면의 유리가 어두운 지하공간을 밝게 표현하고 있다.



또한 자칫하면 지저분해지기 쉬운 광고물 스탠드도 벽과 같은 검은색 프레임으로 통일하여 정갈한 느낌을 주고 있으며, 검은 벽과 대조를 이루는 흰색 의자도 인상적이다.




미나토미라이역은 요코하마 미술관이나 랜드마크타워, 국제회의장과 전시홀이 있는 퍼시피코요코하마, 퀸즈스퀘어 등의 문화시설과 상업시설이 늘어서있는 미나토미라이 21 중앙지구의 중심에 있다. 특히 퀸즈스퀘어와 역은 스테이션 코어에 의해서 하나의 공간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지하 약 23m에 있는 플렛폼까지 자연채광이 들어가도록 설계되어 있다. 그래서 각도를 잘 맞춘다면 위층에서 지하의 플랫폼까지가 보인다.

천장에 높게 달린 스누피벌룬은 퀸즈스퀘어의 스누피샵에서 상업적인 목적으로 내걸은 것인데 역에서 올라오면 볼 수 있는 재미있는 모습중의 하나이기도 하다. 붉은색의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지하까지 내려가면 역의 중앙광장이 나온다.



이 역은 항구라는 지역적인 특징을 고려해 배를 모티브로 하였으며 상업시설이나 미술관의 이미지를 담으려고 했다고 한다. 9m높이의 넓게 펼쳐진 둥근 천장과 하얀 벽은 배를 연상시키기에 충분한데, 디자이너는 새로운 거리의 분위기나 정보를 지하공간에도 연결시켜 거리의 네트워크를 강화하고 “진보적인 갤러리”로서 역을 사용하고자 했다고 한다. 그래서 개찰구의 공간은 여러 사람들이 영상을 비롯한 다양한 미디어를 통해서 아트와 이벤트, 지역정보 등을 만날 수 있는 장소가 되고 있다.



덕트나 엘르베이터와 같은 주변의 구조물들은 숨기지 않고 원색으로 드러내어 흰색공간에 포인트를 주고 있으며, 화장실이나 기타 부분적인 요소들은 실버느낌의 회색과 파랑으로 바다와 배의 느낌을 전달해 주는데 한 몫을 하고 있다. 특히 플랫폼의 푸른 색과 대조되는 노란색의 의자는 경쾌한 느낌을 준다.


이역은 필자가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역인데 몇 년 전 처음 이 역을 봤을 때의 감흥을 잊을 수가 없다. 이 곳은 요코하마 재개발의 중심인 미나토미라이 지구와 아카랭가 창고, 그리고 현 청사를 중심으로 하는 역사적 지구의 중간에 위치하고 있다. 그러한 이유로 이 역은 과거와 미래의 대비, 그리고 융합을 디자인의 테마로 하였다. 과거를 상징하는 것은 벽의 마감에 사용된 벽돌인데 실제 모든 벽돌을 기술자의 수작업으로 쌓아 올렸다고 한다.

미나토미라이선의 다른 역에 비해 조용하고 장엄한 분위기가 느껴지는 이 역의 지상에는 과거, 요코하마 은행의 본점이 있었다. 지금도 그 건축물은 갤러리로 사용되고 있으나, 은행의 모습은 찾을 수가 없는데 대신 그 은행에서 사용되었던 금고의 문이나 낡은 부속, 그리고 양각의 부조작품을 그대로 지하철내부에 옮겨 놓았다. 커다란 환기부의 벽 부분은 마치 갤러리의 작품들처럼 그렇게 역사와 추억을 품고 있는 모습이다.




조명과 공조의 취출구를 하나의 박스 안에 집어 넣어서 만든 새로운 시스템의 천장, 노출기둥과 강화유리, 그리고 두꺼운 아크릴 의자 등으로 미래적인 공간을 표현한 것도 이 역만의 특징이다.

특히 개찰구가 있는 중앙돔의 공간은 과거와 미래가 융합되어 이 역에 커다란 특징을 부여하고 있는데, 구심력이 있는 둥근 천장은 이 역이 지역의 새로운 중심이라는 것을 상징하고 있다. 엘리베이터를 비롯한 역의 모든 부분이 벽돌색으로 맞추어진 것도 역사성을 가진 이곳을 표현하기에 충분하다.




개항장의 가장 가까운 곳에 위치하고 있는 이 역 또한 미나토미라이선의 다른 역들과 같이 특징적인 주변의 환경을 아주 잘 담아낸 역이다. 이 주변은 요코하마시 개항기념회관, 가나가와 현청, 요코하마세관, 요코하마상공장려관(구)을 시작으로 하는 역사적 건물들로 역사의 숨결이 묻어있는 거리이다.

이러한 거리 속에 남아있는 환상체험을 테마로 하여 기본형태로 아치, 기본소재로는 벽돌과 석재를 사용하여 이동속도의 부드러움을 꾀하였으며, 중앙광장은 역사적 건물의 내부공간을, 플랫폼에 내려서는 순간부터는 과거로의 시간여행을 하고 있는 듯한 역사적 체험을 할 수 있는 공간으로 구성하고 있다. 특히 세라믹으로 제작된 벽화는 이 지역의 가장 대표적인 상징인 세 가지 건축물과 개항을 상징하는 작품으로, 이 지역의 특징을 그림으로 표현하고 있어 인상적이다.



마치 역사 박물관 속을 거니는 것처럼 일부러 오래된 느낌을 살린 이 역은 플렛폼이 아닌 중앙광장에 벤치를 설치하여 시민들이 쉬어갈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였다. 미나토미라이선의 다른 역들에 비해 중앙광장의 시원한 맛은 덜하지만 이 주변에 늘어선 100여년 역사의 건축물들에 대한 기억이 있는 사람이라면 그 느낌을 지하에서 똑같이 받을 수 있어 무척 재미있는 경험을 할 수 있다.



또 이동속도가 빠른 개찰구 주변과 엘리베이터 등의 동선 부분에는 유리나 금속을 사용한 샤프한 디자인으로서 근대화의 선단을 달렸던 지역의 특성에 대하여 누구라도 이 지역에 대해서 알 수 있도록 단서를 주고 있다. 하지만 중앙광장과 너무 이질적인 모습이기 때문에 개인적으로는 통일감에 있어서 조금 아쉬운 것이 사실이다.




이 역은 오모테산도의 토즈나 미키모토긴자의 건축디자인으로 유명한 이토 토요씨의 디자인이라는 점에서 많은 이들이 한번 더 눈여겨 보는 역인데, 이곳에서는 외국인 거류지시대였던 요코하마 역사의 흔적을 지금도 전하고 있다. 모토마치 상점가, 차이나타운, 항구가 보이는 언덕공원, 유럽마을, 야마시타 공원 등으로 인해 가장 많은 사람들, 특히 외국인이 찾는 곳이 바로 이곳이다. 그래서 이 역을 개항 당시 역사박물관으로서의 가이드 북, 즉 ‘책의 역’이라는 컨셉트로 디자인하였다.



요코하마 개항자료관으로부터 제공 받은 당시의 풍물, 그림책을 비롯한 이 지역의 사진들을 새하얀 대형도판에 사진 재판하여 확대한 뒤, 소부하여 전시하고 있다. 이 작업은 인쇄물의 편집처럼 편집자와 그래픽디자이너 등의 공동작업에 의해 진행되었다. 새하얀 공간에 프린트 된 여러 가지 풍물로부터 당시의 생활을 생각해 볼 수 있는 또 하나의 개항자료관을 만들고자 하였다고 한다.

플랫폼의 벽면과 천장에는 거리의 풍경을, 개찰구에는 등신대의 인물이나 도구 등이 프린트 되어있다. 흰 바탕에 연회색으로 프린트된 벽은 거대한 하나의 오픈 북으로 이곳을 찾는 관광객들에게 지역의 특징과 역사를 설명하기에 충분하다. 그래서인지 많은 외국인들이 가장 많은 관심을 보이는 역이기도 하다.



벽과 천장의 구분이 없이 반원의 형태로 되어있는 중앙개찰구도 모두 흰색의 메인컬러에, 연 회색으로 포인트를 주고 있어 밝고 깨끗한 느낌이 강하다.



개찰구를 지나 지하의 플랫폼으로 가기 위한 에스컬레이터 부분은 검정색으로 흰색의 벽과 대조를 이룬다. 그 검은 터널을 지나면 새로운 지하 공간이 나타나는데 이곳을 처음 방문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그 높이에 놀란다. 아찔할 만큼 높은 위치라는 것에 놀라고, 그 높고 넓은 공간에 역시 흰색의 아치가 드리워진 모습에 놀란다. 마치 지하철이 아닌 우주선이라도 기다리고 있을 듯한 그런 느낌이다.



지금까지 미나토미라이선의 다섯 역을 살펴보았다. 일본처럼 대중교통에의 의존도가 높은 나라에서 전철역은 그 지역의 얼굴이다. 가장 많은 사람이 가장 자주 접하기 때문에 복잡하고 불쾌한 장소가 되기도 쉬운 그 곳을 훌륭한 디자인과 세심한 설계로 어떤 곳보다도 쾌적한 환경으로 만들어 가고 있는 모습이 부럽기도 하다.

좋은 디자인은 그냥 나오는 것이 아니다. 11명으로 구성된 디자인위원회에 당당히 2명의 시민대표가 속했다. 누구보다도 가장 전철을 많이 이용하는 사람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그들의 요구에 맞추어 쾌적한 환경을 만들기 위해서였다.

갈수록 획일화 되어가는 도시의 모습을 조금이라도 특징적으로 살리기 위하여 과거의 모습을 보존하고 지역특성을 고려하는 것, 하나의 프로젝트를 완수하기 위해서 오랜 시간 동안 구상하고 수 차례의 협의를 거쳐 이상적인 결과를 도출해내는 프로세스, 노약자와 외국인을 배려한 편리한 인터페이스 등, 미나토미라이선의 성공은 그냥 나온 것이 아님을 다시한번 확인하며 요코하마를 찾는다면 꼭 한번 이 선의 각 역들을 방문해 보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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