닫기

전체보기

분야별
유형별
매체별
매체전체
무신사
월간사진
월간 POPSIGN
bob

컬쳐 | 월드리포트

사(死)공간에서 예술공간으로의 승화, 그래피티의 역사

박선민 통신원 | 2006-08-29



빌딩들로 빽빽하게 늘어선 뉴욕거리들은 그 빈틈들마저도 익명의 그림들로 채워져 있으니, 길거리 예술이라 불리는 그래피티(GRAFFITI)가 바로 그들이다. 도시 곳곳의 빈 공간들을 자유롭게 채우고 있는 그림들을 보다 보면 도시 곳곳이 마치 큰 도화지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될 정도이다.

역사적으로 그래피티라는 용어는 원래 고대의 무덤이나 유적에서 발견되었던, 긁거나 새겨진 동굴벽화나 고대 이집트의 상형문자를 의미하다가 현재는 알려지지 않은 작가나 화가에 의해 공공 장소에 스프레이 등으로 그려진 그림이나 문자를 일컫는 용어로 사용되고 있다고 한다.

대부분 공간 소유자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익명의 사람들에 의해 자유스럽게 그려진 그래피티는 환경을 파괴하는 쓰레기 같은 존재로 인식되었고, 그래서 그래피티는 더욱 후미진 곳을 찾아 다니게 되었는데, 죽은 공간을 찾아 다니던 그래피티의 이러한 속성은 아이러니 하게도 더욱 죽은 공간에 생명을 불어 넣은 역할을 하게 되었다.

취재 : 박선민 뉴욕통신원 (okokook@gmail.com)






소유권자의 허락 유무에 관계없이 아무 곳에나 그려진 그래피티는 당연히 문제가 되는 것이지만, 자신의 안위나 소유권을 생각하지 않고 가장 순수하게 그려진 그림, 그래피티야 말로 진정한 자유를 위해 애쓰는 작가들의 가장 순수한 예술성의 발로 중의 하나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렇게 자유로운 예술을 위해 애쓰는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에 현대의 예술은 좀 더 자유로워 지고 있는 것이 아닐까.






1980년대에는 이러한 그래피티를 예술로서 승화시키려는 움직임이 여러 예술가들에 의해서 일어났는데 그 대표적인 예술가들이 바로 JEAN-MICHEL BASQUIAT와 KEITH HARING이다. 이들은 예술을 더 이상 갤러리의 하얀색 벽 속이 아닌 벽과 땅으로 그 범위를 확장시켰다.

장 미쉘 바스키아(JEAN-MICHEL BASQUIAT)는 1960년 미국 뉴욕의 브룩클린 태생의 미술가로 그래피티 예술가로 시작해서 1980년대 네오-표현주의자로서 국제적인 명성을 얻게 되었다. 흑인이었던 바스키아는 뉴욕 타임지에 ‘검은 피카소’로까지 소개되었지만, 아쉽게도 그는 27살의 젊은 나이로 코카인 중독으로 사망하였다.



키스 해링(Keith Haring)은 1958년 미국 펜실베니아주의 리딩에서 태어났으나, 뉴욕으로 이주하여 굵은 라인으로 그려진 단순한 그림들을 지하철이나 길거리등에 그리면서 세계적인 그래피티, 팝 아티스트로 명성을 떨치게 되었다. 해링은 1990년 31살의 젊은 나이에 AIDS로 사망하였다.










그래피티는 많은 미술의 장르 중에서도 가장 사람들에게 친숙한 것 중의 하나라고 생각된다. 우리 주변 어디에나 있을 수 있고, 또 누구나 그릴 수 있으니 말이다. 어떻게 바라보느냐의 차이일 뿐 그래피티는 무한한 가능성을 가진 예술의 값진 소재중의 하나임에 틀림 없다고 생각한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그래픽 회사PENTAGRAM의 전신인 FLETCHER/FORBES/GILL의 3명의 설립자 중의 하나이며, 뉴욕 아트 디렉터 클럽의 명예의 전당에 올라있는 BOB GILL의 그래피티와 디자인에 관한 의견을 소개하고자 한다.

“GRAFFITI IS OFTEN AN EYESORE. BUT AS I WAS THINKING ABOUT AN AD ANNOUNCING A FILM ABOUT TEENAGE GANGS IN LOS ANGELES, I NOTICED A TRUCK COVERED IN GRAFFITI. IT SEEMED SO RIGHT AS AN IMAGE OF VIOLENCE AND NIHILISM.
I PHOTOGRAPHED THE TRUCK AND ADDED THE TITLE OF THE FILM”

“그래피티는 종종 눈에 거슬린다. 그러나 나는 로스엔젤레스의 십대 갱들을 위한 영화를 표현하기 위해, 그래피티로 뒤덮인 트럭에 주의를 기울였다. 그것은 폭력과 허무주의을 위한 바로 그 이미지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나는 트럭 사진을 찍고 영화의 제목을 첨가하였다”.





우리가 지금 즐기고 있는 많은 예술품들의 - 심지어 세계적으로 가장 비싸다고 하는 고흐의 그림조차 그의 평생에는 단 한 점의 작품도 팔리지 않았다고 하니 - 시작은 많은 사람들에게 있어서 끄적임 같은 의미 없는 것들일 수 도 있었다는 것은, 작가의 상상력이, 표현의 자유가 우리의 삶을 얼마나 풍성하게 만들어 주었는지 생각해 볼 문제이다.

어떠한 현상이나 사건들을 한쪽 면에서만 바라볼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래피티들을 보면서 줄곧 드는 생각은, 그래피티들이 눈을 즐겁게 하고 있는지, 아니면 시각적 공해일 따름일지 그것은 오롯이 감상하는 사람들의 몫이라는 것이다.

밥 길이 그래피티로 뒤덮인 차를 보면서 갱 영화 포스터를 생각한 것처럼, 무의미한 것 같은 정신없는 그림들로 뒤덮여 있는 그래피티를 보면서 무엇을 얻을 수 있을까를 고민해 보는 시간을 가져볼 수 있지 않을까. 이번 칼럼을 통해 항상 새로운 아이디어의 바다를 찾아 헤매고 있는 우리 디자이너들에게 그러한 생각을 조금이라도 제공할 수 있는 글이 되었다면, 이번 글의 목적은 십분 달성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피티 편을 끝으로 그 동안 뉴욕편을 읽어주신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 드립니다.

2006. 8. 29. 박선민 배상

facebook twitter

당신을 위한 정글매거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