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소현 | 2011-07-07
본격적인 더위가 시작되는 여름, 뉴욕을 대표하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영국을 대표하는 디자이너 알렉산더 맥퀸의 전시는 어떠했을까. 알렉산더 맥퀸, 이름만으로도 필자의 가슴을 떨리게 하는 디자이너이다. 알렉산더 맥퀸은 호불호를 떠나 독특한 작품세계 - ‘맥퀸다움’으로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진 흥미로운 디자이너이다. 지난 해 그의 사망 소식은 당시 필자가 다니고 있던 패션학교 (FIT)을 하루 종일 애도 속에 가라앉게 하였고 그 해 졸업 전시는 알렉산더 맥퀸을 컨셉으로 한 작품들로 채워졌었다.
글, 사진│ 전소현 뉴욕 통신원
에디터 | 이은정(ejlee@jungle.co.kr)
맥퀸의 사망 당일 뉴욕의 지하철, 거리 할 것 없이 곳곳에서 맥퀸의 옷을 차려 입은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으며 그의 매장 앞에는 그를 애도하는 꽃들이 쌓여 있었다. 꽃을 들고 그의 매장을 방문한 이들 중 한 사람이었던 필자는 맥퀸의 뉴욕 전시를 기쁜 마음으로 소개하고자 한다.
알렉산더 맥퀸은 1969년 출생한 영국출신의 디자이너로 센트럴 세인트 마틴(세계적인 패션 스쿨)을 졸업하고 지방시의 수석디자이너를 지낸 뒤, 1992년 자신의 스튜디오를 오픈했다. 2010년 사망까지 3회나 영국 올해의 베스트 디자이너로 선정되었으며 2003년에는 미국 CFDA(Council of Fashion Designers of America)로부터 올해의 디자이너로 선정되기도 하였다. 맥퀸은 항상 독창적이고 실험적이며, 한편으로는 괴기스러우며 또한 한없이 로맨틱한 작품 세계를 이어왔다.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서 5월부터 8월까지 열리고 있는 맥퀸의 전시회 제목 ‘Savage Beauty’는 그의 작업 세계를 잘 요약, 반영하고 있다. 맥퀸은 항상 양극화된 개념들, 예를 들어 빛과 어둠, 삶과 죽음, 인간과 기계 등을 다뤄왔는데 전시는 이러한 그의 작업테마에 따라 9개로 나누어진 공간으로 구성되어 있다.
“You’ve got to know the rules to break them. That’s what I’m here for, to demolish the rules but to keep the tradition.” – Alexander Mcqueen
“원칙을 알고 있어야만 그 원칙에서도 벗어날 수 있다. 그리고 난 그 원칙들을 깨는 동시에 전통을 지키려고 한다.”
어렸을 때부터 다져온 탄탄한 재단 실력은 알렉산더 맥퀸이 혁신적이고 참신한 옷의 디자인 할 수 있는 기반이 되었다. 이 기술 덕분에 맥퀸은 패션을 자신의 복잡한 아이디어와 컨셉을 표현하는 하나의 수단으로 만들 수 있었다. 이 공간에서는 그가 섬세한 테일러링과 혁신적인 커팅으로 패션에 대한 개념을 어떻게 바꾸었는지 볼 수 있다.
“People find my things sometimes aggressive. But I don’t see it as aggressive. I see it as romantic, dealing with a dark side of personality.” - Alexander Mcqueen
“다른 이들은 내 작업들이 거칠다고 받아들인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내 작업들은 거칠기보단 로맨틱하다고 본다. 다만 인간의 어두운 면을 다루고 있을 뿐이다.”
맥퀸의 작품은 삶과 죽음, 빛과 어둠과 같은 상반되는 개념들을 반영하고 있는데 이러한 특징은 특히 악세서리에서 잘 드러나고 있다. 이 방에는 맥퀸이 여러 악세서리 디자이너들과 협업한 작품들이 전시되어있다. 주로 18세기와 19세기 빅토리아 시대의 고딕에서 영향을 받은 작품들이 전시되어 맥퀸의 창조성이 잘 나타난 가장 핵심적인 공간이다. 주변의 모든 것에서 영감을 받고 받아들였던 맥퀸의 뛰어난 상상력을 엿 볼 수 있다.
“The reason I’m patriotic about Scotland is because I think it’s been dealt a really hard hand. It’s marketed the world over as haggis and bagpipes. But no one ever puts anything back into it.”- Alexander Mcqueen
“내가 스코틀랜드에 애국심이 깊은 이유는 스코틀랜드가 다른 이들로부터 잘못 다루어진다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전 세계적으로 스코틀랜드의 하기스나 백파이프들은 남용되고 있지만, 아무도 스코틀랜드에 다시 환원하지 않는 것 같다.”
맥퀸에게 그의 스코틀랜드 혈통은 큰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 스코틀랜드 혈통에 대한 그의 자부심이 이 컬렉션의 가장 큰 모티브이다. 타르탄 무늬를 사용하여 스코틀랜드의 로맨틱한 이미지 그리고 18세기 격동의 정치상황을 동시에 표현하고 있다. 이들 작품은 맥퀸의 가장 로맨틱하면서도 내셔널리스틱한 컬렉션으로 평가되고 있다.
“I want to be honest about the world that we live in, and sometimes my political persuasions come through in my work. Fashion can be really racist, looking at the clothes of other cultures as costumes. That’s mundane and it’s old hat. Let’s break down some barriers.” -Alexander McQueen
“나는 우리가 사는 세상을 솔직하게 대하고 싶다. 그래서 정치적인 나의 생각들이 작업에 나타나기도 한다. 패션은 문화 차별적일 수가 있는데, 때로 사람들은 다른 문화의 전통의상들을 자신들의 코스튬처럼 취급하기도 하다. 그런 방식은 이미 지루하고 진부하기 때문에, 우리는 갖고 있는 틀을 깨부술 필요가 있다."
‘이국적인 것’은 항상 알렉산더 맥퀸의 관심사였다. 맥퀸은 인도, 중국, 아프리카, 터키 등 각지에서 영감을 받았는데 특히 자수에 큰 관심을 가지고 있었던 그는 작업 스타일에 있어서 중국과 일본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이 공간은 거울과 뮤직박스, 그리고 턴테이블을 사용하여 맥퀸 작업세계의 무한함을 표현하고 있다.
“I try to push the silhouette. To change the silhouette is to change the thinking of how we look. What I do is look at ancient African tribes, and the way they dress. The rituals of how they dress. There’s a lot of tribalism in the collections.” -Alexander McQueen
“난 실루엣에 신경을 많이 쓴다. 실루엣을 바꾼다는 것은 우리가 세상을 어떻게 보느냐를 바꾸는 것이다. 나는 아프리카 부족들이 어떻게 옷을 입는지를 눈 여겨 보곤 한다. 그 사람들이 입는 의식… 내 콜렉션에는 부족의식을 많이 엿볼 수 있다.”
이 컬렉션은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이상적인 삶, 즉 원시성을 테마로 하고 있다. 이러한 컨셉은 맥퀸의 첫 컬렉션부터 쭉 볼 수 있었던 것으로 특히 그가 관심을 가졌던 역설적인 조합, 예를 들어 모던한 것과 원시적인 것, 문명화된 것과 문명화되지 않은 것 등의 관계에 대한 맥퀸의 생각을 보여 주고 있다.
“I have always loved the mechanics of nature and to a greater or lesser extent my work is always informed by that.” -Alexander McQueen’
“난 항상 자연의 구조(메카니즘)에 매료되어왔었고 내 작품들은 항상 그런 것들을 항상 내포하고 있다.”
자연은 로맨티즘과 함께 맥퀸의 작업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컨셉이었다. 다른 많은 낭만주의 운동가들이 자연 자체를 그들의 작업에 반영하였던 것처럼 맥퀸 역시 자연으로부터 영감을 받은 형태와 재료를 그의 컬렉션에 사용하였다.
알렉산더 맥퀸의 Savage Beauty. 맥퀸의 초기 작업부터 마지막 컬렉션까지 한 자리에서 감상할 수 있는 전시였다. 전시장의 조명, 배치, 음악, 전시 순서 등 하나하나 섬세하게 기획되어 보는 이로 하여금 전시장을 빠져 나올 때까지 한마디도 할 수 없을 만큼의 감동을 안겨 주었다. 이 글을 만나는 이들이 이 감동을 같이 하지 못한다는 사실이 너무 아쉽다. 메트로폴리탄 홈페이지의 전시 영상을 통해 그 분위기를 간접적으로나마 꼭 느껴보시기를 간절히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