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09-04
십여 년 전 한글 디자인과 관련한 한 심포지엄에 토론자로 참여했던 적이 있다. 발제에 이은 반론에서, 탈네모꼴 한글 서체의 가독성이 높다는 주장에 수긍하기 어렵다는 말을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토론이 모두 끝난 뒤 마무리하던 사회자가 불쑥, 토론 내용에 오류가 있어 바로잡는다고 말했다. 탈네모꼴은 각각의 낱자 형태 하나로 모든 경우의 글자를 구성할 수 있다는 원리에서 나온 것이지 가독성을 높이기 위한 발상이 아니라는 것이다.
토론이 종료되고 마이크가 꺼진 상황에서 토론에 직접 참여하지 않은 사회자가 많은 관객들에게 일방적으로 특정 발언을 비판하는 것은 몰상식한 행동이기도 하지만 보다 중요한 일은, 토론 내용이 잘못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탈네모꼴 글자와 가독성에 대한 불가분의 믿음은, 이후 그 사회자의 이름으로 출판된 한글 디자인 관련 책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그 책의 내용 중 일부를 인용하며 탈네모 한글꼴에 대한 몇 가지 의문을 적어보기로 한다. (책 전체를 평하는 것이 아니므로 굳이 책의 제목을 밝히지는 않는다.)
기사제공 | 타이포그래피 서울
네모꼴 활자의 문제점은 크게 세 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첫째, 기계에서 처리속도가 늦고 디자인하기도 힘들어서 경제적이지 못하다. 둘째, 간단한 구조의 글자와 복잡한 구조의 글자가 같은 공간에서 표현되기 때문에 가독성이 좋지 않다. 셋째, 한글창제원리에 맞지 않으며 한글의 구조와 글자꼴의 모습이 달라서 한글 교육에 혼란을 일으킬 수 있다.
탈네모꼴의 장점으로는 '한글의 특징이 살아있다. 창조성을 살려준다. 교육에 효과적이다, 가독성이 좋다, 글자꼴 개발이 활발해진다, 경제적이다. 산업화에 뛰어나다, 시각문화를 다양하게 발전시킬 수 있다, 기능적이다, 기계화가 용이하다' 등이 강조되고 있다. 단, 이 장점은 세벌식 탈네모꼴이라는 전제가 필요하며, 세벌식 탈네모꼴과 네모꼴의 중간단계에 있는 탈네모꼴은 위에 열거한 장점 중 일부는 해당하지 않고 네모꼴의 단점으로 지적되는 것들 역시 공간 배분의 이론에 근거한 문제 제기로 아직 임상실험이 끝나지 않았다. 하지만 탈네모꼴이 활자의 미래 방향성을 제시한다고 볼 수 있으며 그에 관한 연구가 계속되고 있다.
- '제 1장 탈네모꼴, 한글이 완성되다' 중
탈네모꼴이 어떤 의미로 한글을 완성했다는 것인지에 대한 의구심과 함께, 네모꼴 글자와 탈네모꼴 글자의 가독성 언급에 주목하게 되는 대목이다. 탈네모 한글꼴의 원리와 조형적 모듈을 처음으로 제시했던 조영제, 김인철, 이상철 등은 이를 실용적인 서체로까지 발전시키지 못했다. 그들은 아마도 이 이론이 실험적 제안에 머문 것이며, 현실적 환경에서 실용화에 한계가 있음을 알았던 것으로 짐작된다.
위의 책은 초기 탈네모꼴 원리를 제안한 이들 이후 다른 몇몇 디자이너들에 의해 탈네모 한글꼴이 비로소 실용화되었다고 적고 있다. 이는 흔쾌히 동의하기는 어려운 부분이다. 탈네모꼴이 정말 한글을 완성할만한 그 무엇이라면, 네모꼴의 단점으로 지적한 한글 글자 교육과 가독성에 대한 획기적인 기여가 객관화되어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 본문에 사용하기 어려운 서체는 그저 수많은 디스플레이용 서체 중 하나로, 기존의 네모꼴 서체와 견주는 데는 무리가 있다.
탈네모꼴의 가독성이 낮다는 주장에 대한 반박의 근거로 위의 책은 신명조와 샘물체의 글꼴 비교가 불공정했음을 지적한다. 하나는 오래 전부터 이미 본문체로 인정받은 것이고, 다른 하나는 제목용 서체로 쓰임새도 그다지 넓지 않은 서체라는 것이다. 그 조사에 문제가 있는 것은 맞다. 다만 그 자료를 탓하기보다는, 이후 충분한 시간이 지났으므로 나름의 평가를 받고 있다 생각되는 탈네모꼴과 명조체를 다시 비교해 탈네모꼴 글자의 가독성을 증명할 수는 없었을까?
글자가 눈에 익숙해지면 자연스럽게 가독성이 올라간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어느 정도는 타당한 말이다. 하지만 모든 형태의 글자가 그렇다고는 할 수 없다. 탈네모 한글꼴이 그 경우에 해당한다는 데는 여전히 의구심이 남는다. 실험과 연구의 단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원리와 형태에 한글의 완성이라는 명예로운 타이틀을 부여할 수 있는 이유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완성품으로서가 아니라 원리로서) 탈네모 한글꼴의 장점은 뭐니 뭐니 해도 제작의 경제성에 있다. 2~3천 자, 또는 1만자 이상을 디자인해야 하는 네모꼴 글자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수월하게 만들 수 있다. 하지만 이것은 만드는 수고의 측면에 지나지 않는다. 한글꼴 디자인은 영문자에 비하면 수백 배 어렵지만, 한자에 비하면 최악의 조건을 안고 있는 것은 아니다. 여러 가지 다양한 모양의 서체들이 당연히 컴퓨터 안에 들어있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용자들(일반인뿐 아니라 적지 않은 디자이너들도 그렇게 생각한다)에게는 글자를 만드는 수고가 그다지 심각한 고민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
디자이너가 탈네모꼴에 관심을 가진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지만 그 새로운 가능성을 보고 끝없이 시도했기 때문에 현재의 위상에 오를 수 있었다.
역시 위의 책에서 발췌한 내용이다. 위 본문은 곧바로 아래 내용으로 이어진다.
한글이 한글다워졌다. 지금까지 남이 입던 헐거운 옷을 벗어버리고 한글에 꼭 맞는 옷을 입었다. 세종대왕마저 벗기지 못한 네모틀을 벗겨내면서 한글은 제 모습을 찾은 것이다. 앞으로 탈네모꼴이 제자리를 잡으려면 많은 어려움을 극복해야겠지만 제 모습이 무엇인지 알게 된 것만으로도 큰 성과라고 할 수 있다.
현재 탈네모 한글꼴이 어떤 위상을 가지고 있는지 궁금하다. 그런 위상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찾아가야 할 제 모습이 무엇인지 역시 의문으로 남는다. 남이 입던 헐거운 옷이란 아마도 한자의 네모틀을 말하는 것 같다. 하나의 낱글자가 항상 같은 모양으로 사용된다는 것, 그리고 네모틀을 벗어나 있는 영문자(소문자)의 옷(틀)을 우리 것에 적용하려는 것이라면 이 역시 남의 옷인 셈이다. 남의 옷 중 어느 것이 우리에게 더 헐겁거나 혹 더 잘 맞을까?
목판이든 금속활자든 15~6세기의 한글은 음소 하나를 위한 활자로 만들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타자기와 컴퓨터가 글자를 구현하고, 세로쓰기가 아니 가로쓰기로 바뀐 지금의 현실에 맞는 틀을 찾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다만, 세종대왕이 오늘의 글자 구현 환경을 보았다면 어떤 옷을 떠올렸을까? 그것이 탈네모틀 모아쓰기 글자였다고 장담할 수 있을까?
영문 알파벳의 대문자는 (비록 폭은 모두 다르지만) 대부분 네모틀 안에 채워져 만들어지므로 탈네모꼴에 해당하는 것은 소문자다. 이들 글자에는 베이스라인과 x-높이가 있다. 사실상 이 영역이 우리 눈으로 보는 글자의 대부분에 해당하고, 특별히 면적을 차지하지 않는 간단한 획이 하나씩 삐쳐 올라가거나 내려가면서 h, b, d, f, p, y 등을 만든다. 조금 과장해서 얘기하면 몇 가닥의 획을 제외한 영문 소문자는 상하 높이가 통일된 네모틀 글자다. 이에 비하면 탈네모 한글꼴은 초성을 다시 사용하는 종성의 형태가 복잡하고 사용 빈도와 밀도가 높아 이른바 영문 형식의 탈네모꼴과 같은 시각적 효과를 얻기 어렵다. 영문이 굳이 시선을 빼앗지 않고 글의 흐름을 유지할 수 있는 반면 한글 탈네모꼴은 네모꼴 글자에 비해 더 많은 눈의 상하좌우, 왕복 운동을 필요로 한다.
만약 당시 사람들이 지금과 같은 기술이 있었다면 과연 풀어쓰기 주장을 했을까?
한글이 전산화되면서 풀어쓰기에 대한 논쟁이 차츰 사라진 점을 보면 한글 풀어쓰기가 깊은 철학적 바탕에서 제시된 것이라기보다 쉽게 한글 기계화를 이루려는 발상이었다고 보인다. 게다가 풀어쓰기가 곱게 보이지 않는 이유는 글자꼴에 있다. 수많은 학자들이 풀어쓰기 글자꼴을 제시했지만 주시경과 도덩보의 풀어쓰기를 제외하고 대부분 라틴글자를 흉내 낸 듯하기 때문이다.
한글 풀어쓰기 주장은 한글 기계화에 걸림돌이 되었던 문제들이 하나 둘 해결되면서 설득력이 없어졌으며, 이제 모아쓰기와 풀어쓰기의 장단점을 두고 공방하는 것 자체가 소모적인 논쟁이다.
같은 책에 나오는 내용이다. 정말 그럴까?
위의 본문 중 풀어쓰기라는 단어를 탈네모꼴로 바꾸어도 크게 잘못된 것 같지 않다는 생각은 단지 무지한 탓일까?
한글 창제를 시각적으로 완성하고 한글꼴의 위상을 높인, 탈네모꼴 글자로 쓰인 유려하고 가독성 높은 본문 글꼴을 기대해본다. 여전히 그것이 메시아적 기다림처럼 요원하거나 임상실험이 더 필요하다면, 가로쓰기와 띄어쓰기 등과 같은 예상치 못했던 변화처럼 획기적인 쓰기 방식이나 디자인에 대해 열린 마음으로 논의를 시작해보는 것은 어떨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