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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 | 리뷰

여전히 매운 작은 고추

2006-01-31

아버지: 너 혼자서 이 고기를 모두 잡았니?
아 들: 아니요, 지렁이가 도와 줬어요.*

아들녀석의 말이 참 상큼합니다. 생각하면 의미도 있고 재미도 있는 내용입니다. 별 것도 아닌 사소한 것이 보는 이로 하여금 감동을 주거나 마음을 움직이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우주에서 지구를 내려다보면 중국의 만리장성이 보인다고 합니다. 얼마나 길고 장대하면 보일까도 궁금하고 어떻게 보여지는지도 궁금합니다. 아쉽지만 비행기 창문 너머로 보이는 장난감 같은 건물과 차들의 풍경에 만족하거나, Google 위성사진으로 감동을 대신할 밖에요.

Pyramid나 Angkor Wat같은 거대한 인류의 유산들, 세계최고를 자랑하는 ‘Taipei 101’을 비롯하여 끝없는 층 수 경쟁을 벌이는 각국의 초고층 건물, 거대한 힘으로 밀어 붙이는 강대국의 무식한 파워, 글로벌 거대기업의 독식, 큰 교회, 큰 불상을 자랑하는 종교, LCD, PDP의 인치싸움들을 보고 있으면,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무엇이든 큰 것에만 가치를 두고 있는 듯합니다. 큰 차, 큰 집, 큰 회사 등 큰 것에 집착하는 것이 일종의 과시욕이거나 인간의 나약함을 커버하려는 몸부림이라 할 지라도, 어쨌든 ‘클수록 좋다’는 건 인류의 역사와 함께 숨쉬어 온 매우 주도적인 가치관임이 분명합니다.

커뮤니케이션 디자인도 예외는 아니어서, 작은 것보다는 일단은 큰 것이 시야에 잘 들어오고, 한 번이라도 더 시선을 멈추게 합니다. 신문광고도, 신문 양쪽 면을 대문짝만하게 장식해 줘야 뭔가 있어 보이는 듯하고, 옥외간판 이라면 받치고 있는 건물이 위태로울 정도의 크기는 되야 한번쯤 더 쳐다보게 됩니다.

이처럼 크기나 규모를 앞세워야 직성이 풀리는 듯, 압도적인 이미지와 크기를 가진 것들이 우리를 휘감고 있지만, 그 틈새에서도 옹골찬 놈들이 꿈틀거리고 있으니... 신문을 한 번 더 펼쳐보세요.
여차하면 눈에서 벗어나 버리고, 무심하게 보면 있는 듯 없는 듯 하지만, 챙겨보면 재미있고 힘있는 내용을 가진 작은 녀석들이 있습니다. 작은 면을 차지 하지만 크기 이상의 커뮤니케이션 역할을 톡톡히 다하고 있는 의외의 ‘쬐고만한 넘’들이 저마다 귀퉁이를 꿰차고 있는 거죠.


100년 전에 있었던 남극 탐험대원 모집공고는 26개의 직설적인 단어만으로도 역사에 길이 남을 감동을 주었습니다. “험악한 여행에 동참할 사람 구함, 저임금, 혹한, 오랜 암흑, 끝없는 위험, 귀국보장 못함, 성공했을 경우 명예와 영광. – Ernest Shackleton”


오른쪽 광고는 인간애에 호소한 헬 스티번즈(Hal Stebbins)의 ‘사랑에는 돈이 든다’ 공동모금 캠페인입니다. 간단한 내용 한 마디가 누구보다 큰 목소리로 인구에 회자 되었고, 이런 사례는 과거 우리나라 광고에서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청하 술광고 시리즈, 로열와이셔츠 시리즈, 좋은 사람들의 보디가드 팬티광고 시리즈…

다음에 소개하는 것들은 최근에 소개되어 눈에 띈 것 들 입니다. 한번쯤 보셨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다른 군말이 필요 없습니다. 이 간결하고 작은 외침 속에 우리들의 전후 사정 이야기가 다 들어 가 있습니다. 가로 5 cm에 세로 1cm – 커 봐야 몇 cm를 벗어나지 않은 디자인으로 커다란 신문 구석에 놓여진 광고들… 면적의 경쟁에선 불리하기 이를 데 없지만 할 이야기를 다 하며 제 목소리를 내는 광고들…

신문광고에서만은 아닙니다. 담벼락과 전신주, 지하철, 인터넷 화면, 벼룩시장, 지하철 무료신문, 심지어 화장실 등에서도 우린 이런 작은 디자인들을 무수하게 접하게 됩니다. 나의 관심사가 아니고 크리에이티브하지 않아서 눈에 띄지 않을 뿐입니다.

작은 디자인도 상황과 필요에 따른 다양함의 수단이고, 더군다나 작다고 적당히 디자인 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습니다. 오히려 눈에 띄지 않기 때문에 더 크리에이티브 해야 하고, 핵심을 짧고 간결하게 찔러야 하기 때문에 더 어려운지도 모릅니다. ‘그까이 꺼’ 했다간 큰 코 다치기 십상이죠. 정성으로 치자면 큰 광고와 작은 광고의 차이가 있을 수 없음을, 우리 광고하는 사람들은 알고 있습니다.

좁은 땅덩어리에 살고 있지만 우리나라 사람들은 대체적으로 통이 크다고 합니다. 그래서인지 ‘그랜저’가 ‘티코’ 업신여기고, ‘60평’이 ‘18평’가진 자 괄시하는 좋지 않은 생각들이 살아 있습니다. 없어도 있는 듯, 작아도 큰 듯, 외형만 중요하게 생각하는 면은 여전히 남아 있어 커뮤니케이션 방법마저 일단 한번 보란 듯 질러봅니다. 목소리 큰사람과 큰 빽을 가진 이들이 여전히 득세하고, 물량과 외형으로 실속 없이 외쳐도 너나없이 당연한 듯 받아 들입니다. 하지만! 실속도 좀 차려가며 삽시다. 過猶不及(과유불급) 이라고 하지않습니까. 지나침은 오히려 모자람보다 못하다는 말… ^ ^

작고 하찮은 것도 당당하게 외칩니다. “작은 것은 아름답다”, “작은 고추가 맵다”고.
여전히 아름답고 매운 사랑스런 넘들!

* 고정식 著 ‘웃기는 철학’에서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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