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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 | 리뷰

가리면서 보여주는 거리 디자인

2006-05-11


서울 덕수궁의 정문인 대한문 보수가 끝나 재개장 하였습니다. 보수공사 기간동안 현장을 가로막은 대형 비계에 실물크기의 대한문을 전사하여 그 자리에 붙여 놓았습니다. 놀랐습니다. 언뜻 보면 원래 그대로 있는듯한 착각을 일으키게 만들어 재미있었습니다.
공사현장을 가리면서 보는 시민들도 현장의 을씨년스러운 풍경과 삭막함을 감소 시키는 이중의 효과를 노린 재치 있는 발상이었습니다. 실생활에서 보고 느낀 아이디어가 돋보인 디자인 사례라 할 수 있겠습니다.


공사장을 가리는 벽면을 그래픽 일러스트나 아름다운 자연풍경 혹은 건설회사의 이미지광고 역할을 하는 슈퍼그래픽으로 치장한지가 그리 오래 되지는 않았지만, 일반적인 밋밋한 철판이나 천으로만 가리는 경우는 예전보다는 많이 사라져 버렸습니다.
최근 구 신세계 백화점 리모델링 현장의 외벽은 지나가는 사람들로 하여금 여느 공사장과는 다른 현대적인 이미지 사진으로 시선을 끌고 있습니다. 지금 이 곳 공사판 벽면뿐이 아닙니다.


이처럼 일반 회사들은 오래 전부터 건설공사장도 회사의 이미지를 연출하는 수단의 일환으로 신경을 쓰고 있습니다. 최근, 지방자치 단체나 공공기관도 디자인의식이 이에 못지않은 점을 볼 수 있어 다행입니다. 공공기관이나 공익을 위한 광고가 대기업 광고를 뺨치는 눈에 띄는 아이디어로 방송이 되고, 디자인 관련업무는 전문디자이너의 자문과 참여로 우리의 눈을 즐겁게 해주고 있습니다. 어쨌든 권위적이고 딱딱한 정부나 공공기관이 이렇게라도 말랑말랑해져서 정말 좋은 일입니다.
심지어 바닷가 등대마저 디자인 공모를 통하여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한 등대가 아닌 상식을 뛰어 넘는 전혀 새로운 조형적인 형태로 다시 태어 나고 있다니, 디자인 만세입니다!

공사판 비계를 장식하는 디자인 이야기가 나온 김에 새로운 아이디어로 눈길을 끈 외국의 사례를 하나 살펴 보도록 하겠습니다.
이탈리아의 아름다운 물의 도시인 베네치아. 정말 이국적인 아름다움이 넘치는 곳입니다.
베네치아에서 관광객이라면 빠짐없이 둘러보는 베네치아의 심장인 산마르크 광장(Piazza di San Marco)이 있습니다. 광장 옆에는 96미터가 넘는 종탑과 대형 원주들이 서있고, 기독교 성당 중에서 화려하기로 소문난 천 년의 역사를 지닌 산마르코 대성당(Bacilica San Marco)이 있습니다. 내외부의 장식은 도저히 모자이크라고 여겨 질 수 없을 정도로 정밀하고 화려하기 이를 데 없는 성화로 가득합니다. 이 대성당 옆에 비둘기 떼(갈매기도 같이 노닌다)와 세계 곳곳의 관광객이 어울리는 광장 모퉁이에 공사중인 유명한 시계 탑이 하나 있습니다.

적게는 수백 년에서 수 천년의 역사적인 건물이 많은 유럽의 관광유적지는 언제 어디서나 문화재보수공사를 한다고 생각하면 틀린 말이 아닙니다. 전체를 다 볼 수 없을 정도입니다. 힘들게 방문한 이방인에게 한 번 보면 언제 또다시 본다는 보장도 없는 판국에 짜증이야 나지만 이해해야지 어쩔 수 없습니다. 이 곳 산마르크 광장의 종탑(Dell’ Orologio)도 역시나 보수 공사 중입니다.
재미있는 것은 종탑 보수를 위해서 에워싼 비계에 느닷없이 눈에 익은 영국의 대형 빅벤(Big Ben) 그림으로 채워넣은 것입니다.


왼쪽 사진은 실제 공사중인 현장 사진입니다. 오른쪽 사진이 빅벤으로 가려진 내부에 있는 실제의 종탑 사진입니다. 당연히 덕수궁이나 명동성당의 예처럼 실물사진이 있어야 할 자리에 엉뚱한 탑이 있습니다. 무심코 처음 보는 사람은 당연히 ‘아, 보수공사중인 저 속에 저렇게 생긴 탑이 있겠구나’ 할 것입니다. 그래도 무언가 이상합니다. 영국의 상징인 빅벤을 아는 사람은 다시 한 번 관심을 가지고 쳐다볼 것입니다.


측면에는 친절하게도 빅벤에 관한 상세한 설명까지 곁들여 놓았습니다(오른쪽 사진).
정면(왼쪽사진)에 그 해답이 있습니다. 공사가 시작 할 당시에는 피사(Pisa)의 사탑이 지금의 빅벤마냥 있었고,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에펠(Eiffel) 탑으로 교체하고, 그 다음으로 지금의 빅벤, 그리고 엠파이어 스테이트(Empire state)까지 예정된 순서로 공사가 끝날 때까지 순번대로 교체하는 재미있는 아이디어를 낸 것입니다. (왼쪽 사진 중에 빨간색으로 체크표시를 한 것 주목)

보수공사 자체도 환기 시키고, 수 만 명이 오가는 관광객들도 호기심과 재미로 관심을 두고 볼 것은 물론입니다. 공사진행 정도도 대강 알 수 있고, 각 나라의 대표 건축물도 덤으로 공부 할 수 있습니다. 게다가 이 종탑이 세계적인 건축물과 동급의 대단한 탑이라는 것을 밉지않게 노골적으로 이야기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재미있는 아이디어 아닙니까?

공사는 공사 자체로 끝나지 않고, 공사 칸막이는 칸막이 자체로 두지 않으면서 모두가 윈윈하는 디자인이 되었습니다. 실물크기 사진을 단순하게 부착한 것보다 한 수 위임에 분명합니다.

언제나 흙먼지 날리고, 시끄럽고, 보기 흉한 몰골의 ‘공사판은 항상 개판’이라는 이미지는 하나하나 사라지고 있어 다행입니다. 기본적인 안전은 물론이고, 주위환기와 공사로 인한 불편함과 혐오감을 감소 시키고, 그 위에 덧붙인 새로운 발상의 디자인은 도시거리에서 부딪치며 직접적으로 접할 수 있는 살아 꿈틀거리는 말랑말랑한 디자인임에 분명합니다.
크든 작든 썰렁한 공사장에 그래픽 작업이상의 재미있는 아이디어로 거리마다 골목마다 상큼한 디자인으로 거듭나길 기대해 봅니다.

“요딴 것이 진짜 디자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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