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05-20
곳곳에 대형 마트가 들어서고 재래시장은 소리 소문 없이 사라져가는 요즘, 황학동 한복판에 위치한 황학동 중앙 시장은 마치 흘러가는 시간을 잊은 것처럼 여전히 그 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있다. 들고 다닐 수 있는 것은 무엇이든 팔 것만 같은 이곳은 지난 40년 넘게 변함없이 서민들의 삶의 끈이 되고 있지만 이곳에서도 조용히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신당 창작 아케이드라는 공간이다.
글 | 박재옥 애니메이션 감독(okyi98@naver.com)
에디터 | 이은정(ejlee@jungle.co.kr)
황학동 중앙 시장에는 무심코 지나치던 사람은 발견하기 힘든 지하로 들어가는 통로가 있다. 이 통로 계단으로 내려가면 한 때 황학동 시장의 전성기와 함께 했던 지하 매장이 나온다. 기다란 통로 양 옆으로 지하상가와 같은 상점들이 죽 늘어서있을 것 같은 이곳이지만 상당수의 매장이 철수를 하고 그 빈자리를 미술이나 공예, 그 밖의 예술가들의 작업실이 채워나가고 있다. 바로 이곳에 퍼핏 애니메이션 작가 김동욱 감독의 작업실이 있다.
퍼핏 애니메이션은 크게 분류하자면 스탑 모션이라는 애니메이션 기법 카테고리 안에 들어가는 기법이다. 퍼핏, 클레이 애니메이션 등 연속 촬영 기법으로 제작되는 애니메이션을 통칭하여 스탑 모션이라 하며 퍼핏 애니메이션은 그 중에서 인형을 움직이고 촬영해 만들어 내는 기법을 말한다. 이 기법은 체코를 중심으로 발달해 왔는데 거장 이지 트릉카(Jiri Trnka)의 뒤를 이어 얀 슈반크 마이에르(Jan Svankmajer)가 그리고 그 뒤를 이어 이지 바르타(Jiri Barta) 등으로 여전히 그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 작년에 시카프에서 상영되었던 이지 바르타의 ‘다락방은 살아있다’는 체코 퍼핏 애니메이션의 수준을 실감할 수 있었던 작품 중 하나였다.
이런 작품들이 사제관계에 의해서 명맥을 유지해오고 있는 이유는 그 작업을 위해 필요한 노하우가 우리가 흔히 말하는 장인의 경지에 이르러야 되기 때문일 것이다. 김동욱 감독 또한 퍼핏 애니메이션을 시작한지 벌써 10년, 대학 입학 이후로 꾸준히 한 가지 기법을 고수하고 있지만 아직도 많은 것을 배워나가고 있는 중이다.
퍼핏 애니메이션은 인형으로 만든다는 공통점이 있지만 인형이라는 것의 종류는 실로 너무나 광범위하기 때문에 그 인형을 만드는 방법 또한 무수히 많다고 할 수 있겠다. 이 인형의 제작공정은 그야말로 복잡다단한데 간략하게 그 공정에 대해 알아보자.
우선 인형을 애니메이팅하기 위해서는 뼈대가 필요하다. 대부분의 규모 있는 스튜디오에서는 상용화되어 사용되는 조립형 뼈대를 이용한다. 물론 인형의 스타일에 따라서는 이 뼈대를 직접 제작해서 사용할 수도 있지만 일반적으로는 이러한 상용화된 뼈대를 사용하는 것이 보통이다.
그 다음으로는 인형의 피부를 만들어 내야 한다. 가장 일반적인 방법은 고무 소재의 라텍스를 사용한 인형일 것이다. 우선 인형의 형태를 클레이처럼 손으로 가공한 소재를 활용하여 정교하게 제작한다. 클레이로 제작된 인형의 모형은 틀에 넣고 실리콘을 부어 그 형태를 떠낸다. 실리콘 틀이 떠지면 그 속에 우레탄을 채워 넣어 외형이 완성된다. 만들어진 피부는 줄이나 사포 등으로 마무리 한 후 아크릴 물감 등을 활용해 채색을 하거나 인형의 눈이나 머리칼 등을 붙이면 하나의 생명체가 탄생하게 된다.
인형의 외관을 마무리하는데 있어 주변의 모든 것이 재료가 될 수 있다. 김동욱의 감독의 최근 작 ‘연환’에는 코코넛 열매를 재가공해 투구처럼 쓰고 나오는 인형도 있다. 인형 옷 또한 여러 가지 종류의 천으로 직접 옷을 해 입힌다. 마치 살아있는 인형이라도 되는 듯 정성을 다하지 않으면 할 수 없는 작업이다.
인형이 완성이 되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 이러한 인형을 살아 움직이게 하는 애니메이팅 작업이다. 완성된 세트에 조명을 받고 있는 인형을 놓고 카메라로 한 장 한 장 찍어나가며 인형을 움직여 가는 것이다. 이는 앞선 칼럼에서 소개했던 ‘국수 애니메이션’이나 ‘페인트 온 글라스’를 참조하면 이해가 빠를 듯하다.
이외에도 퍼핏 애니메이션을 제작하는 데는 수많은 노하우와 기술 등이 필요하다. 짧은 지면으로 다 다루지는 못하지만 인형으로 걷기를 하거나 인형으로 말하는 애니메이팅 작업을 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방법이 존재한다. 그렇기 때문에 제대로 된 퍼핏 애니메이션을 제작하기 위해서는 책이나 학습을 통해서는 한계가 있으며 전문 스튜디오에서의 직접 체험해 보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김동욱 감독 또한 스탑 모션 전문 스튜디오에서의 경험이 지금의 작품 제작에 큰 자산이 되었을 것이다.
김동욱 감독의 최근작 ‘연환’은 김동욱 감독의 일곱 번째 연출작품으로서 죽은 영혼을 불러낼 정도로 맛있는 요리를 만드는 요리집에 대한 이야기이다. 죽은 이를 못 잊고 잠시라도 만나고 싶어하는 의뢰인이 ‘연환’의 요리사 고양이(?)에게 의뢰를 하면 그 고양이(?)가 죽은 이가 평소에 좋아했던 음식을 만들어냄으로써 죽은 영혼을 불러낸다는 재미있는 설정을 가지고 있는 내용이다.
자신만의 작품을 만들겠다는 일념 하에 시작된 김동욱 감독의 작업실. 비록 단편 작품이었기 때문에 상업적이라고 볼 수는 없지만 시리즈로 만들어 질 수만 있다면 그 가능성은 충분해 보였다. 매번 다른 의뢰인이 등장하면서 갖가지 레시피가 소개되는 애니메이션이라면 음식관련 블로그를 통해 홍보할 수 있는 가능성도 엿볼 수 있는 부분이었다.
점점 사라져가고 있는 재래시장들 속에서 꿋꿋이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황학동 시장처럼 김동욱 감독의 작업실은 오늘도 늦게까지 불이 켜져 있을 것이다. 아무리 시대가 변하고 많은 것들이 바뀌어 간다지만 그 속에서 보존되고 지켜져야 할 것들이 있다. 김동욱 감독의 퍼핏 애니메이션 또한 그 중에 하나로 오래도록 만들어지고 보여지길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