닫기

전체보기

분야별
유형별
매체별
매체전체
무신사
월간사진
월간 POPSIGN
bob

스페이스 | 리뷰

㈜나랏말 사옥

2008-01-01

설계_ 임도균, 조준호 | 건축사 사무소 루연
시공_ 수성건설

대지위치: 서울시 종로구 명륜2가 86-25 지역지구: 제2종 일반주거지역 대지면적: 339.09m² 조경면적: 17.67m² 건폐율: 55.10% 용적율: 145.47% 규모: 지상 3층 구조: 철근콘크리트조 외부마감: THK14 적삼목, THK16 투명복층유리 내부마감: 콘크리트면처리위 수성페인트, 석재타일 설계기간: 2006. 6 ~ 2006. 11 공사기간: 2006. 11 ~ 2007. 4 건축설계: 임도균, 조준호 | 건축사사무소 루연 구조: 윤구조(황윤선 소장) 설비: 청림설비(전광천 소장) 전기: ㈜둥남기술단(최창학 소장) 시공: 수성건설(황경하) 건축주: ㈜나라말 에디터: 김은희 편집디자인: 박현지 사진: 이기환 번역: 스피드 트랜스

글 | 임도균(건축사사무소 루연)

㈜나라말 사옥은 도서출판사와 전국국어교사 모임이 사용할 시설로서 사무기능, 연구모임, 교육기능, 강좌, 친목도모 등등 일반 영리조직의 사옥 역할보다는 다소 개방적이며 포괄적인 기능성이 요구되었으며, 첫 건축사업이라는 기대감과 조직의 취향에 부응하는 정체성(Identity) 표출도 중요한 요소였다. 설계과정의 초기부터 부서간의 원활한 소통을 위한 공용공간의 쾌적성, 정원마당, 서측 창경궁 경관의 도입, 숙소와 식당의 역할을 할 휴게공간 등등, 보다 친환경적이고 인간적인 장소성을 위한 기능 프로그램은 쉽게 결정되었다.

주 디자인 문제점은 대지의 입지 특성에서 비롯되었다. 대지는 대로로부터 깊이 들어와 주거밀집지역 내에 위치하여 겨우 4m 도로에 접하고 있으며, 바로 인접지는 2층 내외의 단독주택, 3, 4층 내외의 연립주택으로 둘러싸여 있다. 주거지역은 각 건물 개체의 자율적인 영역성 활보를 위해 상호 폐쇄적인 양상으로 공준하는 도시성을 지닌다. 이러한 도시 속에 공공적이고 개방적인 기능성과 상징성을 지닌 사옥의 존재형식이 주요 고민꺼리였다. 위의 정리된 디자인 이슈에 부합되는 형태어휘로 주변에 지배적으로 분포되어있는 ‘담’에 주목하게 되었으며 ‘담’이라는 도시요소를 건축적 형태로 발전시키게 되었다.


상부에 하중을 떠받치고 있는 벽과 달리 ‘담’은 그 윗부분이 공중에 홀로 드러나 있다. 그림으로써 담은 영역 경계 짓기의 역할을 함과 동시에 그 너머 안에 일정한 장소가 있음을 암시한다. 또한 ‘담’은 길을 동반한다. 담은 안의 영역을 둘러싸지만 동시에 밖으로는 길을 따라 펼쳐진다. ‘담’은 대개는 안에 있는 건물보다 가능한 한 손쉽고 간결한 방식으로 만들어져 소박한 아름다움을 지닌다. 담은 폐쇄적인 거리 환경을 만들지만, 여럿이 모여 사는 주거 지역에선 상호간의 프라이버시를 존중하는 미덕의 표출이기도 하다.

각 층을 둘러싸며 수직적으로 전개된 담은 층 단위 규모로 외형을 분절시켜, 건축물이 주변과 어울릴 수 있어 부담스럽지 않은 인상을 갖게 하였고, 북측 4개 구간의 담은 도로 방향을 따라 놓여 있어 진입 골목길의 축 방향에 대응되며 건물 앞에 다가와 볼 때, 겹겹이 중첩되어 정면으로 마주 대하게 하였다. 이 중첩된 정면의 담들은 수평적으로 서로 이격되어 담 너머로 내부 공간을 암시하는 개방성도 지니고 있다.


마당 측의 1층과 3층 담 너머에는 발코니, 옥상이 마련되어 창경궁으로의 조망을 가능케 한다. 1층에서 옥상까지 연속된 계단과 복도는 지그재그로 담을 따라 놓여 있어서 통로라기보다는 산책로 같은 느릿한 동선 속도를 갖게 하며 수평적으로 어긋나 있어 전 층이 수직적으로 통합된 공간이 되도록 하였으며, 보행의 방향은 이동하면서 창경궁 쪽을 바라볼 수 있게 설정되어 있다. 이 담들은 ‘벽’처럼 보이지 않도록 무거운 물성의 재료가 아닌, 자연스러운 나무 널을 세워 울타리 치듯 출입구에서부터 옥상 계단에까지 일관되게 이어지고 있다. 아울러, 일관된 전체성을 확보한 건축 형태 어휘로서 ‘담’의 연속체는 공간 사용자에게 상징적인 의미체로 인지되도록 하였다.

김일현| 경희대학교 건축전문대학원 교수

도시적 여건의 논제
건축을 도시 구조와 조직과 연계하려는 건축가의 탐구는 물리적으로 한정된 조건을 극복하면서 인식론적 지평을 확장하고자 하는 건축가의 욕망을 반영한다. 이러한 도시와 건축의 매개에 있어서 한편으로는 인공적 지형의 구축을 통한 환경의 내적 통합의 일환인 랜드스케이프가,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는 최소체적을 통해 최대 영역성의 확보라는 파빌리언이 위치한다. 그러나 이러한 전략이 지속적이며 실질적인 파급효과를 유발하기 위해서는 도시맥락의 조건에 대한 신중한 테제의 선정이 요구된다. 더군다나 인간의 한 세대의 수명으로 보다도 단명하고 빠르고 더 빠르게 단기적인 이윤에 충실한 매체로 설정된 건축은 우리의 도시현실에서 위력을 발휘하기에 자명한 한계를 나타낸다. 이러한 현상은 이미지의 소비로 선행되는 계획의 성경은 물론 생태나 지속가능 혹은 자생성이라는 구호 그리고 현실의 역동성을 일차원적인 다이어그램으로 축소하는 유행을 통해서도 나타난다. 대부분의 경우 건출물은 주변 환경에 아무런 영향을 확산시키지 못하는 오브제로 남기 일쑤이며, 우리나라의 독특한 수익구조로 인해서 장기적인 안목으로 도시의 변화를 지탱할 수 있는 도시적 구조를 형성하기 역부족이다.

중재와 구성의 요소인 담
나라말 사옥은 사회정의와 교육개혁에 헌신하는 단일교과모임이라는 공동체가 모여서 활동하는 장소이며, 우리나라의 도시에서 전형적으로 발견할 수 있는 도시조직 내부에 위치한다. 강남대로나 종로 혹은 대학로에서와 마찬가지로 명륜2가도 대로로부터 한 켠만 들어가면 시대를 짐작하기 어려운 저층에 고밀화된 건물의 집적지를 목격하게 된다. 뒤편에는 도시맥락을 무심하게 하는 나홀로 아파트 몇 채가 거대한 벽을 구성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러한 실재적인 도시의 여건에서 어떠한 의미를 내재하는 건축을 구축할 것인가. 어떻게 하면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주어진 필지에 계획되는 한정된 건축을 통해서 도시를 변화시키는 동시에, 역으로 도시적 의미를 자신의 대상 내에 함의할 수 있을 것인가. 이러한 일련의 질문이 두 건축가에게 작업의 단초를 제공하였다. 이러한 맥락에서 담은 단순한 수사가 아닌 도시와 건축을 매개하는 장치이자 건축을 구성하는 중추적인 요소로 재발견된다.
건축설계의 과정을 살펴보면 조형체에 부여하는 가치의 인식론적 전환을 감지할 수 있다. 초기 건축안과 최종안을 비교해보면 앞서 언급한 도시와의 관계 그리고 담을 통한 매개가 계획과정에서 사고의 반전을 진단할 수 있다. 초기 건축물은 투명한 소재로 일반적인 사옥과 다를 바가 없었던 방식으로 계획되었다. 실질적으로 이 단계에서의 관심사는 오브제로써의 건축으로 제한되었다. 건축가들이 일상적으로 접근하는 바와 같이, 주어진 필지를 중심으로 네 정면이 존재할 것이라는 탈맥락적인 차원에서 프로그램에 충실한 독립적인 체적으로 계획이 이루어졌다. 주요한 관심은 두 개의 매스의 분절과 표면의 이원성을 구축으로 한정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접근은 도시조직에 대한 재고찰과 함께 점차적으로 그리고 전면적으로 재수정된다. 전반적인 도시계획이 없는 상태에서 단위건축물로 구성된 이 도시조직도 ‘조악하다’는 선입견을 넘어서면 모든 입지는 그 나름대로의 성격을 지니고 있다.

도시와 건축의 관계를 설정하는 데에 있어서 적용된 방법은 전통적이면서 고전적인 전략에 속한다. 소쇄원을 비롯한 전통마을의 담은 즉물적으로 인용이 되지 않았지만, 이러한 사고의 전환을 가져오는 데에 중추적인 기여를 하였다. 광역적으로는 동양적 지리체계의 축을 도입하여 성균과 그리고 창경궁과의 개념적이면서도 시각적인 관계가 설정되었다. 지엽적인 차원에서, 위에서 언급한 담은 도시를 단절하는 부정적인 장애의 요소가 아니라 건축물의 개별적 공간을 구획하는 동시에 도시적 맥락에서 관계를 형성하는 긍정적인 요소로 해석되었다. 이 경우에 ‘입지특성’이라는 제목의 분석적 도면에서 볼 수 있듯이 익명적인 듯한 도시조직에 두드러지는 요소를 발견하게 된다.
주변에는 셀 수 없는 담이 존재하며, 이 담도 역시 폐쇄적이거나 흉물이라는 막연한 선입견을 넘어서면 한정적인 여건에 대응하는 효율적인 기제로 작동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즉 담은, 협소한 도로 주변에 배치된 개별 건물들의 내향적이며 자율적 공간을 배려하는 무한대로 분절되는 내향적인 공간의 연쇄를 구성하는 요소로 재고된 계획의 동인으로 수용된다. 연쇄적인 담의 수평적 배열과 전체 체적의 수직적으로는 삼등분의 분절을 통해서 볍규의 제야고가 동시에 주변의 도심형 한옥이나 연립주택에 대한 배려가 이루어진다.
폐쇄와 제약은 동시에 내재적이며 자율적인 공간을 확보하는 이면의 기회를 보장한다. 건축물은 네 개의 정면이라는 2차원성보다는 협소한 골목을 통해서 점차적으로 건축물을 발견해나가는 과정의 대상으로 관계매김이 된다. 캔틸레버를 통해서 중단부는 전면의 대향성에 대조되는 투명성과 동시에 내부를 관통하여 동선을 조직하는 벽체를 가시화한다. 나아가서 외부의 목재를 통한 마감은 전면의 도심형 한옥과 배면의 아파트와 추상적인 차원에서 중재적인 표면을 구성한다.

전이와 집중
대지와의 관계는 수사가 아닌 논리의 산물이며 계획안의 결과를 통해서 검증된다. 나라말 사옥 이전 근작에서의 주된 관심사는 도심지의 대로변에 위치하여 인터페이스로써의 입면의 구성이 강조되었던 도심지의 독립적 대상으로써의 건축이었다.
이 작품은 그동안 오브제로써의 성격이 강조되었던 2004년도의 영림빌딩과 서초빌딩과 같은 작품과 차별되는 관심사의 전이를 보여준다. 건축이 오브제로서의 재귀적인 한정성으로 국한되지 않으면서도 도시적인 함의를 담을 수 있는 방식에 대한 관심을 갖게 되었다. 무엇보다도 대지와의 관계에 있어서 접지의 방식과 건축 조형체의 구성에 있어서 요소의 인식론적 함의에 대한 고찰이 두드러진다. 모더니즘의 이질적 투명성이나 부유하는 형태와는 다른 방식으로 건축적 요소는 시지각이자 개념적인 중추적인 요소로 해석된다.
중력과 그림자가 건축가 임도균과 조준호의 주된 관심사인 것으로 알고 있다. 현재 계획 중인 파주시의 개인 주택과 앞으로의 계획안에서 이러한 탐구가 보다 구체적으로 심화되고 실현되기를 기대해본다.

facebook twitter

당신을 위한 정글매거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