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05-04
장소적 컨텍스트는 공간을 구성 짓는 커다란 힘이 되곤 한다. 장소가 지니는 맥락을 읽고 그에 걸 맞는 적합한 요소를 찾아 공간에 반영해 간다는 것은 디자이너의 중요한 작업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석촌 호수가 가지는 장소성은 도심지에 마련된 인공호수로서 도시의 발전 속도와 그 흐름을 같이 한다고 할 수 있다.
원래 석촌호는 한강의 본류로서 송파나루터가 자리해 있었지만 1971년 한강공유수면 매립 물막이공사로인해 면적 21만 7,850㎡, 둘레 2.5km에 달하는 커다란 인공호수가 만들어진다. 이렇게 해서 생겨난 동호와 서호는 잠실호수교를 사이에 두고 서로 균형 잡힌 모양새를 취하고 있다. 이후 1981년 호수공원의 녹지조성과 산책로와 쉼터가 마련되었지만 도시의 성장세에 달리 시설의 노후화로 인해 시민들의 외면을 받아온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2001년부터 줄기차게 전개해온 송파구의 석촌호수 명소화 사업으로 콘크리트 호안을 철거하고 생태화함으로써 시민들에게 사랑받는 명소가 되어가고 있다.
이번에 새롭게 재정비된 더다이닝호수(The dining Hosoo) 역시 호수 맞은 편 빠삐용(Papillion)에 이은 디자이너의 두 번째 작업으로 애초 창고와 관리실로 사용되던 허름한 곳을 유럽식 다이닝으로 리노베이션한 것이다. 서로 다른 6개의 매스를 얹어 놓은 듯 더다이닝호수는 서호를 배경으로 한 켠에 조용히 자리를 틀고 있다. 그 앉아 있는 모양새는 경사면에 슬그머니 얹혀놓은 듯 호수가 자아내는 방향성을 따라 입면의 다양성을 보여주고 박스 안은 호수를 전망할 수 있는 다양한 룸들이 들어서 있다. 빠삐용이 시간의 빛이 배경이 되고 자신의 존재를 공원에 내어주고 철저히 비워가는 디자인이었다면, 더다이닝호수는 호수의 경관에 그대로 동화되는 방식을 취함으로써 절제되고 담백한 디자인을 제시하고 있다. 석촌호수 안에 자리한 휴게시설인 만큼 주민들에게 넉넉한 호수의 경관을 제공하고 장소에 걸 맞는 기억의 공간을 일깨워 준다는 점에서 순백의 언어는 수많은 이야기를 받아들일 준비를 하고 있는 셈이다. 온통 흰색의 환희로 표현된 플라스터마감은 호숫가의 한적한 주택을 연상케 하며 외부 전체는 물론 3개 층으로 구획된 내부 곳곳까지 은은한 색채로 물들인다. 흡사 주변의 높다란 고층 아파트와 현란한 조명들을 백색의 기본바탕을 통해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따뜻함으로 감싸려고 하고 있는 듯하다.
호숫가의 지형레벨을 효과적으로 이용하고자 한 탓에 도로변에서 마주한 건물의 층고는 편안한 시선으로 인지된다. 전체적인 공간색채는 기존의 건물을 리노베이션하면서 필요한 기능만 덧대고 고치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널따란 주차장을 앞마당 삼아 자리한 진입부는 커다란 나무 한그루가 더다이닝호수의 상징처럼 서있고(나무에 벽면 일부가 자리를 내어주는 배려가 돋보인다), 그 한쪽 옆에 마련된 주출입구는 33개의 정방형 유리판이 조각처럼 호수에 비친 물결의 율동감을 감각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이는 다시 내부로 이어져 1,2층 홀의 중심부에 빛에 비춰진 물결의 빛나는 모습을 천장 면으로 담아내고 있다. 외부공간의 상부 2개 층을 엮어주는 중심이 풍성한 나무였다면 내부공간의 효율적인 동선은 3개 층을 매끄럽게 이어주는 나선형 계단이다. 부드러운 곡선미를 돋보이는 나선형계단은 다이닝룸과 홀, 브레드 팩토리의 영역을 듬직하게 잡아주는 커다란 중심축 역할을 하며 차분한 공간이동을 이끌어주고 있다. 내부 천장의 바리솔은 계단과 면한 공간의 풍성함을 더욱 확장시킨다.
각각의 공간 곳곳에 마련된 창은 더다이닝호수만의 차별화된 면모를 보여주고 있다. 마치 창을 통해 공간이 만들어진 듯 때론 넓고 길게 때론 좁고 네모반듯하게 나있는 창을 통해 외부의 풍경이 다채로운 모습으로 들어온다. 앉은 자리 어디서나 연출되는 자연의 풍경화가 내부의 훌륭한 갤러리가 되는 셈이다. 층 곳곳에 다양하게 확장된 테라스 역시 호수의 풍경과 직접적인 관계맺기를 시도할 수 있는 공간이다. 창을 통해 바라보이는 호수의 한적한 풍경, 바쁜 도시의 일상은 어느덧 차분하면서도 느리게 인식된다.
이렇듯 호수는 더다이닝호수 공간을 구성하는 커다란 디자인 핵심요소가 된다. 아침녘과 저녁에 걸쳐 시원스럽게 개방된 호숫가의 창은 경치이외에 호수의 정취를 듬뿍 받아들이고 있다. 낮 동안 호수의 표면에 반사되어 은은하게 빛나는 물의 떨림은 내부공간으로 살포시 들어와 천장면의 오묘한 물그림자를 만들어 낸다. 마치 내부 천장이 호수에 동화되어 그 모습을 반영하고 있는 듯하다. 으스름한 밤이 되면 밝게 빛나는 조명이 호수의 기둥이 되고 어느덧 더다이닝호수는 또 다른 옷으로 갈아입게 된다. 주변의 변화된 조명의 이색적인 분위기는 창을 통해 색다른 야경을 제공하게 된다. 시간의 변화, 계절의 흐름은 창을 통해 전해지고 내부의 표정은 그곳을 찾는 사람들의 흐뭇한 미소로 더욱 생기를 머금게 되는 것이다. 호수를 면한 테라스 한쪽에는 빈 화분들이 빼곡하게 놓여있다. 시간의 흐름 속에 날아든 꽃씨나 풀잎들이 창가의 화분에 깃들고 공가의 기운을 머금고 무럭무럭 풀잎이 잘아날 수록 자연스럽게 호수와 동화된 공간이 되도록 하고자 하는 디자이너의 의도가 전해진다. 원치않는 불규칙한 철골 기둥을 가리기 위해 빛이 스며 나오는 듯 설치한 오브제 조명 역시 더다이닝호수의 멋스러움을 연출한다.
더다이닝호수는 이탈리안 요리를 기본으로 한 유럽식다이닝으로 최상의 호텔식 요리를 제공하며, 240여종의 전문 소믈리에가 엄선한 와인, 호수베이커리의 스타일리시한 파티쉐가 직접 구워낸 빵을 제공한다. 2층에는 4인 ~ 20인까지 예약 가능한 테라스를 가진 5개의 룸이 마련되어 있고 1층은 100인, 2층 전체를 사용하면 40~50인의 파티, 행사 등 특별한 모임이 가능하다. 지하층 빵공장(Bread Factory)에서는 하루 두 번 구워낸 빵과 케익, 마카롱, 타르트의 맛깔스러운 디저트가 달콤한 향기와 맛을 선사한다. 공원 산책길과 면한 곳에는 자그마한 윈도우갤러리가 마련되어 있다. 윈도우갤러리에서는 디자인, 순수예술, 상업예술, 콜렉션 등의 다채로운 전시를 제공하고 이는 고객들과 주민들에게 제공하는 열린 문화공간 개념을 시도하려는 디자이너의 배려를 엿볼 수 있다.
도시와 면한 도로, 호수의 풍경을 향해 서로 다른 두 개의 레벨로 구축된 더다이닝호수. 입구의 휴먼스케일이 자아내는 편안함은 서정적인 풍경과 더불어 주민들의 넉넉한 쉼터로서의 역할을 하고, 공원 산책길과 마주한 호수의 정취는 신선한 빵과 커피 향내를 발하며 건물 한쪽에 마련된 전시와 더불어 지역주민들의 소담스런 이야기 거리를 엮어주게 된다. 더다이닝호수의 절제된 디자인 언어와 주변과 동화되려는 모습은 오랫동안 지역주민들의 사랑을 받는 편안한 쉼터로서 자리매김할 것이며, 그곳을 찾는 사람들에게 빛과 물그림자, 풍경으로 인지되는 흐뭇한 추억의 장소로 기억될 것이다. 그리고 더다이닝호수는 호수의 화가처럼 시간의 변화와 계절의 변화를 온몸으로 느끼며 늘 그 자리에 서서 넌지시 호수의 풍경화를 그려내게 될 것이다.
취재: 김용삼, 안정원│사진: 김재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