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06-24
혼자 가는 험한 길은 외롭고 힘들어 때론 포기하고 싶어지지만 함께 가는 친구가 있다면 역경을 이겨내는 힘이 된다. ‘사직동, 그가게’는 나라를 잃은 티벳 난민들이 처한 어려움에 공감하고 그들의 힘든 여정에 친구로서 힘을 실어줄 수 있는 공간이다.
티벳어로 ‘같은 길을 함께 가는 친구, 돕는 이라는 뜻’을 가진 록빠(ROGPA)라는 NGO가 운영하는 ‘사직동, 그가게’는 티벳의 문화를 느낄 수 있는 음식과 소품을 판매하고, 발생하는 수익금을 티벳 난민들의 자립을 돕는데 사용한다.
글 | 한정현 기자 ( hjh@popsign.co.kr)
사진 | 최영락 기자 ( rak0703@popsign.co.kr)
기사제공│월간 팝사인
티벳 난민들의 자립을 돕는 가게 ‘사직동, 그가게’
제 나라를 빼앗기고, 제 나라 말을 사용하지 못하는 것은 존재의 상실에 버금갈 정도의 아픔일 것이다.
구한말 일본에게 나라를 빼앗긴 우리의 아픈 과거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2013년 현재 진행되고 있는 티벳의 현실이다. 1950년 중국의 침략을 받은 티벳은 현재에 이르기까지 끊임없는 독립운동을 전개해 왔다. 하지만 국제사회의 무관심 속에서 중국 정부의 더욱 거세진 탄압만이 되돌아왔다. 소리 없는 메아리로 전개되고 있는 티벳인들의 독립운동은 인도 다람살라에 세워진 망명정부를 중심으로 나라를 되찾기 위한 비폭력 평화투쟁을 지난 50여년간 전개해오고 있다.
나라를 잃은 티벳인들은 중국 정부의 동화 정책과 탄압을 피해 인접 국가인 인도, 네팔, 부탄 등지로 목숨을 건 탈출을 감행하고 있다. 인도 전역에 10만여명의 티벳인들이 난민으로 살고 있으며 3만여명의 티벳인들이 네팔과 부탄에 있는 티벳 난민촌에 거주하고 있다.
국제사회에서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중국정부에 비해 티벳 망명정부의 힘은 너무나도 미약하다. 티벳인들의 정신적 구심점인 달라이라마가 국제NGO와의 연대 등으로 티벳 독립운동을 전개하고 있지만 국제사회는 중국정부를 의식해 티벳 문제를 애써 외면하는 상항이다.
국제사회의 외면 속에서 티벳인들의 삶은 점점 피폐해지고 있다. 티벳 내에 거주하는 티벳인들은 물론이고 인접국가에서 난민으로 살고 있는 티벳인들의 삶 역시 마찬가지다.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것이 고달픈 티벳 난민들의 삶을 이대로 그냥 외면할 수 없는 세계 각 지의 뜻있는 사람들이 티벳인들의 지친 어깨에 올려진 삶의 무게를 함께 짊어지기 위해 도움의 손길을 내밀고 있다. 종로구 사직동에 자리하고 있는 작은 카페 ‘사직동, 그가게’도 티벳인들의 삶을 느끼고 함께 길을 가기 위해 만들어진 가게다.
티벳 전통 음식을 느낄 수 있는 ‘사직동, 그가게’
‘사직동, 그가게’는 인도 다람살라에 위치한 NGO 비정부 단체인 록빠(ROGPA)가 설립해 운영하는 가게다. ‘같은 길을 함께 가는 친구, 돕는 이라는 뜻’의 티벳말인 록빠는 티베트 난민 사회의 경제적, 문화적 자립을 지원하고 일에 무게를 두고 있다.
‘사직동, 그가게’는 록빠의 다섯 번째 프로젝트로 만들어진 가게다. 경제적 자립을 지원하는 것을 첫 번째 목표로 두고 있는 록빠는 아이를 양육하고 있는 티벳 부모들이 마음 놓고 경제활동을 할 수 있도록 인도 다람살라에 록빠 무료 탁아소를 첫 번째 프로젝트로 설립했다. 이후 여성 티벳인들이 경제활동을 할 수 있도록 여러 가지 수공예품을 만들어내는 록빠 여성작업장을 설립했다. 여성작업장에서는 기본적인 재봉, 자수 기술을 익혀 수공예품을 만들어내는 능력을 배우게 된다. 작업장 여성들에게 자신들이 만든 물건이 어떻게 팔리고, 어떤 반응을 받고 있는지 보여줘야겠다는 생각에서 수공예품을 판매하는 록빠 숍 & 카페가 인도 다람살라에 만들어지게 됐다.
‘사직동, 그가게’는 다람살라의 록빠 숍 & 카페의 한국형 모델로, 이곳에서는 록빠 여성작업장에서 만들어진 스카프며 옷, 그리고 전통차인 짜이, 전통 요구르트 라씨, 전통 카레를 비롯해 공정무역 커피 등을 판매하고 있다. ‘사직동, 그가게’에서 손님들에게 대접하는 모든 음식들은 유기농 재료만을 사용하고 티벳인들의 제조 방식 그대로 적용하고 있어, 제대로된 티벳 전통 음식을 맛볼 수 있는 공간이기도 하다.
이국적인 내부와 달리 외부는 복고적 정취 물씬
‘사직동, 그가게’의 내부는 이국적이지만 간판과 외관을 통해 느껴지는 분위기는 복고적이다. 오래된 느낌, 옛날 우리의 작은 상점을 재현해 낸 듯한 느낌이다.
‘사직동, 그가게’를 꾸려가는 매니저 중 한 명인 임태영 매니저는 ‘사직동, 그가게’의 분위기는 의도하지 않은 결과물이라고 말했다.
“인테리어와 디자인에 전혀 문외한인 20여명의 자원활동가들이 달라붙어 만든 결과물입니다. 가게를 오픈할 수 있는 최소한의 돈을 모았기 때문에 인테리어 재료를 구매할 여력이 없어 동네에서 주워온 물건들로 가게를 채워나갔죠.”
가게 높다랗게 위에 걸려 깃발처럼 펄럭일 것 같은 ‘사직동, 그가게’의 돌출간판은 창고로 사용되던 이전의 공간에서 뜯어낸 나무벽을 재활용해 만들었고, 간판을 비롯해 모든 글자 역시 자원활동가들의 손에서 비롯된 작품들이다.
못질 하나 제대로 할 줄 아는 사람조차 없었던 자원활동가들은 주말마다 모여 ‘사직동, 그가게’ 프로젝트에 돌입해 거의 2달여 만에 가게를 오픈할 수 있었다고 한다.
재능기부로 운영되는 ‘사직동, 그가게’
‘사직동, 그가게’는 2명의 매니저와 50여명의 자원활동가들이 자신의 시간을 쪼개가며 카페지기를 돌아가며 맡고 있다.
임태영 매니저는 “손님으로 왔다가 카페지기가 되는 경우도 있고 자신의 재능을 기부하는 분들이 많아요”라고 말했다. ‘사직동, 그가게’의 운영 주체인 록빠는 후원금을 받기도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직접 참여해서 만들어낸 수익금으로 티벳인들을 돕는 것에 더 큰 의미를 두고 있다.
임 매니저는 “지원보다는 자립에 목표를 두고 있기 때문에 사람들의 재능기부로 마련된 돈으로 티벳을 돕는 것이 더 큰 의미가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록빠에서는 다양한 문화 프로그램을 통해 사람들에게 티벳의 현실을 알리고 모금 활동을 전개하는데, 행사가 진행될 때마다 재능기부자들은 플래시몹처럼 기민하게 모였다가 행사를 마치면 각자의 생활로 돌아간다.
티벳이 처한 현실을 알리고, 고단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자립의 기회를 열어주는 록빠는 ‘같은 길을 함께 가는 친구’라는 록빠의 의미처럼 티벳인들의 곁에서 친구가 되어 준다. 서울의 작은 공간 ‘사직동, 그가게’는 평화의 목소리로 티벳과 한국을 이어주는 가교 역할을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