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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버덕, 넌 누구니

2014-10-24


지난 14일 잠실 석촌호수에 샛노란 빛을 뽐내는 거대한 고무오리가 출현했다. 등장하자마자 수많은 이들의 관심을 한 몸에 받은 이 고무오리는 발길이 끊겼던 잠실에 수많은 인파를 형성하게 했고, 다양한 매체를 통해 짧은 기간에 가치를 양산하는 등 큰 이슈를 불러 일으켰다. 동그랗고 귀여운 눈망울을 한 러버덕을 평화와 행복의 아이콘이라 부르는 사람이 많은 반면, 대기업 마케팅의 일환이라 일컫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예술의 상업성과 공공성 사이에서 아슬아슬 줄타기를 하고 있는, 뜨거운 감자 러버덕을 만나보자.

에디터 | 박유리(yrpark@jungle.co.kr)

이동하는 러버덕, 다 같은 러버덕일까?
네덜란드 출신의 세계적인 공공미술작가 플로렌타인 호프만(Florentijn Hofman)이 기획한 러버덕 프로젝트는 2007년 프랑스 생라자르를 시작으로, 2008년 네덜란드, 브라질, 2009년 일본, 2013년 호주, 홍콩, 대만, 중국 베이징, 그리고 올해 중국, 베트남, 미국 등에서 열렸다. 서울 석촌호수에서 열리는 본 프로젝트는 아시아 투어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전시로 그 의미가 깊다.
석촌호수에 전시된 러버덕은 높이 16.5m, 가로, 세로가 각각 16.5m, 19.5m에 무게가 1톤에 달하는 물리적 규모로는 거대한 오리인형이지만, 초기 생라자르 전시 때보다는 작은 사이즈며, 산업용 PVC를 두 겹 덧대 내구성을 강화해 제작했다.
프로젝트가 열리는 각 지역에 맞게 로컬라이징한 점도 눈에 띈다. 러버덕 프로젝트에 사용되는 고무인형은 각 나라별, 지역별 특성에 맞게 현지에서 제작된다. 러버덕에 문제가 생겼을 때마다 네덜란드 기술자가 방문하는 수고스러움 보다, 현지 기술자들이 빠르게 수정 및 보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번 서울 전시의 경우, 제작자가 매일 러버덕 제작과정을 작가에게 공유하는 세심함을 보여줬고, 이 같은 과정들로 작가는 자신의 프로젝트가 작품으로서의 특별한 가치로 인정받고 있다는 사실을 느낄 수 있었다고 전했다.

왜 하필 오리일까?
러버덕의 탄생은 예상치 못한 운반 사고에서부터 비롯됐다. 지금으로부터 22년전인 1992년, 장난감을 가득 싣고 홍콩으로 가던 중국 화물선이 북태평양 부근에서 폭풍우를 만나 컨테이너를 바다에 빠뜨리게 된다. 그때 컨테이너 안에 있던 장난감이 바로, 고무로 만든 오리와 거북이, 개구리 모양의 인형 2만 9천여개였다. 이 고무인형들은 조류를 타고 알래스카, 하와이 등 세계일주를 하듯 돌아다니다 여러 지역의 해안가에서 발견됐는데, 여기서 영감을 얻은 작가는 세계 곳곳에 흩어진 고무인형을 한 곳에 모은 듯한, 거대한 러버덕을 만들기에 이르렀다.

다른 곳도 아닌, 석촌호수란 공간을 납치한 이유?
작가 플로렌타인 호프만(Florentijn Hofman)은 ‘공간을 납치한다’는 표현을 자주 사용한다. 대량생산된 장난감이나 세라믹 제품에 관심이 많은 작가는 이들을 아이콘으로 사용하고 싶어했고, 그러기 위해 그 크기를 거대하게 키우거나, 다른 재료들을 사용하는 작업을 고수하는 방법을 사용한다. 플립플랍으로 제작된 16m의 대형 원숭이나, 널빤지로 만든 초대형 토끼 등 작가의 이전 작품들을 보면 알 수 있다. 이렇게 만든 작품들을 공공장소에 설치함으로써 이전과 전혀 다른 공간이 연출되기 때문에, 그런 의미에서 공간을 납치한다는 표현을 사용한다. 그가 공공장소를 선호하는 이유에는 예술이 특정 계층만을 위한 것이 아닌 누구와도 함께 향유할 수 있는 예술로서의 접근성을 높이기 위함이다.

그렇다면 왜 ‘석촌호수’란 공간을 납치한 걸까? 도심 내에서 대중에게 사람들에게 친밀한 공간이자 사람들의 접근이 용이한 곳에 위치해 있어 보다 많은 이들이 볼 수 있기 때문이었다. 러버덕 프로젝트가 주로 호수나 강과 같은 공공장소에 설치된다는 점을 미뤄봤을 때, 석촌호수로 정해진 것이 전혀 이상하지 않다는 점도, 물살이 세지 않아 기술적인 문제가 생기지 않는다는 점 역시 장소 선정에 한몫 했다.

마케팅과 공공미술, 그 어디에 서 있는 걸까?
호수나 강, 공원 등 공공의 장소에 설치돼 많은 이들이 접할 수 있도록 하는 ‘공공미술’에 해당되는 러버덕 프로젝트이지만, 오리와 관련된 다양한 상품들이 출시되고, 오리 모양이 하나의 사회적 이슈로 자리매김하는 등 전시되는 곳마다 인기를 얻는 동시에 영리 목적으로 이용된다는 점과 사기업의 후원을 받아 조형물을 설치하기에 공공미술이라 볼 수 없다는 지적도 동시에 받고 있다. 한국에서도 역시, 제2롯데월드 타워 오픈에 맞춰 홍보수단으로 이용된, 마케팅의 일환이 아니냐는 비난을 받고 있다. 이 같은 세간의 반응에 대해 작가 플로렌타인 호프만은 전세계로 진행되는 프로젝트에 스폰서가 필요하듯, 한국에서 진행되는 러버덕 프로젝트 역시 특정기업이 러버덕을 한국으로 올 수 있도록 커미션을 지불하는 스폰서로서의 역할을 할 뿐 그 이상의 의미는 없다고 일축했다. 오프닝 시점도 우연의 일치라고 말하며, 러버덕이 한국에 옴으로써 많은 토론들이 오가고 있지만, 그저 물 위에 다정하게 떠있는, 노란색의 귀여운 눈과 부리를 가진 오리를 보며 사람들이 행복해지기를 바란다는 의견을 내비쳤다.

전국 몇몇 백화점에서 팝업 스토어가 열리고, 러버덕을 이용한 마케팅이 온•오프라인으로 확산되어 가고 있어 대기업의 마케팅 전략 중 일부라는 지적을 받고 있는 동시에 일 평균 4~5만명이 방문할 정도로 이달의 문화 아이콘으로 사랑 받고 있는 러버덕. 많은 이슈의 중심에 서있지만, 저 호수 위에 떠있는 커다란 노란 고무오리 인형이 많은 이들에게 옳든 그르든 호기심을 자극하는 프로젝트임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러버덕 프로젝트 서울’은 11월 14일까지 석촌호수에서 만나볼 수 있다. 러버덕은 물론, 에비뉴엘 월드타워 6층 아트홀과 롯데백화점 잠실점 9층 롯데갤러리에서는 작가 플로렌타인 호프만의 프로젝트 작업과정들을 확인할 수 있는 연계전시가 11월 16일까지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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