닫기

전체보기

분야별
유형별
매체별
매체전체
무신사
월간사진
월간 POPSIGN
bob

아트 | 리뷰

하이라이트 역광으로 동화같은 분위기 연출하기

2004-03-08

에버랜드에서는 봄의 튤립축제, 초여름의 장미축제에 이어 한여름에는 썸머 뮤직 페스티벌, 그리고 가을에는 국화축제가 열립니다.
얼마전 저는 ‘동화같은 하루’를 주제로 에버랜드 장미축제 시리즈 광고를 제작했습니다.
일반적인 시각이나 교과서적인 측면으로 볼 때 인물 조명에 있어서 아래에서부터 오는 빛(하방광)은 괴기스럽다고 하여 공포영화에나 쓰일 뿐 잘 사용하지 않는다고 배워왔습니다. 우리가 늘 접하는 태양광에 익숙해져 있기 때문에 자연에서 쉽게 접할 수 없는 아래쪽으로부터 오는 빛은 생소하게 느껴지는 것이지요. 태양이 아래에서 위를 비추는 일은 없으니까요. 사람들은 일상적이지 않은 것을 접하면 공포를 느끼게 된다고 하더군요. 어릴 때 랜턴을 턱 아래에서부터 얼굴 위로 비추며 귀신놀이를 하던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남자 모델의 경우 하방광을 제외한 모든 빛을 동일하게 조명하고 빛의 방향을 고려하여 전신 촬영에 적합한 보다 큰 스케일로 조명해주면 됩니다. 모델 출신인 권 민 씨. 좋은 마스크와 다양한 자세, 무엇보다 자칫 자신의 이미지를 손상시킬 수 있는 연기임에도 아랑곳 않고 최선을 다해 주었기에 저 역시 즐겁게 일할 수 있었습니다.



이미 끝나버린 에버랜드 장미축제. 해마다 광고를 촬영해오면서도 직접 가보지는 못했습니다만 장미축제를 떠올릴 때마다 왠지 80년대 초 창경궁 밤 벚꽃 놀이에서 친구들과 거리를 헤매던 시절이 생각나는군요. 검정 교복을 입고서 말이죠. 요즘 장미축제처럼 화려하지는 않았지만 나름대로 멋도 있고 순수하고 그러면서도 인간적인 축제였던 것 같습니다.
사진반에서 열심을 내던 그 시절, 이미 단종된지 오래지만 PENTAX MX에 삼각대와 셔터 릴리즈를 갖추고 피사체를 찾아 밤거리를 방황했었지요. 사진의 기본을 배우고 익히며 책에 나와있는 이론과 사진을 그대로 흉내내는 것만으로도 마냥 즐겁고 신기해 했던, 참으로 순수했고 열정이 가득했던 시절로 기억됩니다.
모방은 창조의 한 과정이라고 했던가요. 책을 본다든지 어느 사진가의 노하우를 흉내낸다든지, 교과서적인 기본을 배우고 익히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만 그 이후엔 반드시 그것으로부터 발전시키고 응용하여 자신만의 독특한 색깔을 찾으려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모두 그런 것은 아니지만 상당수의 책들이 단순한 지식 전달에만 비중을 두고 있고, 대부분의 독자들 역시 그때 그때 필요한 단편적인 정보에만 관심이 있을 뿐, 창의적인 생각을 할 수 있도록 이끌어 주지는 못하는 것 같습니다.
자기만의 색깔을 찾는 노력을 소홀히 할 경우 자칫 창의력을 잃게 되는 경우를 많이 보게 됩니다. 늘 습관적으로 사용하는 조명과 앵글에 젖어있다 보면 과감한 시도는 매우 어려운 일이 되고 마는 것이지요. 특히 실제 광고 촬영에 있어서는 실수에 대한 부담감 때문에 더더욱 새로운 시도를 꺼리게 되어, 결과적으로는 매우 평범하고 단순한 결과만을 낳게됩니다. 유명인이나 빅 스타를 촬영한 사진들이 너무 평범하게 느껴지는 경우가 많은 것은 바로 이 때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디지털에 관심을 가지는 사람들이 점점 늘고 있습니다. 디지털은 우리 사진가들이 교과서 적인, 복잡하고 부담스러운 메커니즘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자유를 주고 있습니다. 사진가가 단지 ‘생각하고 셔터만 누르면 되는’ 시대가 다가오고 있는 것입니다. 기본적인 노출과 초점은 물론, 색상과 동체 예측마저 가능합니다. 머지않아 안정된 구도까지도 잡아주는 등 사진가는 계획을 세우고 촬영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돕는 카메라들이 등장할 것입니다. ‘창의력’을 발휘하기에 더 없이 좋은 환경이라고 생각합니다. 얼마나 좋은 세상입니까!
하지만 사람들은 점점 더 편한 것만을 추구합니다. 힘들고 어려운 일들은 생각하기 싫어하고 점점 더 게을러져만 갑니다. 단순한 기술만으로 사진가로 인정받던 시대는 이미 지나가고 있는데도 말입니다. 이제 정말 게으른 타성을 일깨우고, 이미 무뎌진 녹슬기 쉬운 창의력을 연마해야 할 때가 아닐런지요.


facebook twitter

당신을 위한 정글매거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