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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 | 리뷰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TV

2007-04-03


임병호
1992년부터 임병호 스튜디오를
운영하고 있는 광고 사진가.
KTF, 파란닷컴, 삼성, 풀무원, SK텔레콤,
농심, 바디샵 등의 제품 광고를 촬영해 왔으며
홈페이지(www.limphoto.com)에서
그간 연재되었던 광고 사진 이야기를 만날 수 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TV.” 삼성전자에서 나온 2007년형 보르도 LCD TV에 붙은 헤드 카피입니다. 2007년형 보르도의 외형적 디자인의 큰 특징들을 4가지로 정리하여 각각의 이미지들로 표현해 내는 촬영이었습니다.

첫 번째로, 곡선의 아름다움을 살려낸 고광택 블랙 프레임의 한 부분을 흑진주와 함께 보여 주며 ‘폴리네시아의 흑진주’라는 카피가 붙습니다. 실제로 블랙의 고광택 표면에다 사각 프레임의 어느 면 하나 각진 곳이 없는 부드러운 곡선으로 디자인되어 있어 마치 검정색 고급 세단을 촬영하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두 번째로, 프레임의 하단부가 크리스털처럼 투명하고 부드러운 곡선으로 처리되어 있어 마치 초승달처럼 보이는 특징을 잡아 이미지를 만들고 ‘몽마르트 언덕의 초승달’이란 제목을 붙였습니다.

세 번째로, 프레임의 하단부인 파브 로고 밑에 푸른 빛의 은은한 조명이 들어오는 부분을 클로즈업 촬영하여 ‘알래스카의 푸른 오로라’라 하였습니다.

마지막 네 번째로, 프레임 오른쪽 하단부에 조작 스위치 부분을 클로즈업하여 보여 주는데 이 스위치들은 프레임의 표면에 약간 돌출되어 있을 뿐 실제로 눌려지지 않았고 전원을 연결하자 신기한 소리를 내며 터치 센서로 가볍게 작동되는 버튼들이었습니다. 이 부분을 이미지로 만들고 보석 목걸이를 따로 촬영하여 합성하고 ‘빅토리아 여왕의 목걸이’라는 카피를 붙여 주었습니다.


블랙의 고광택 제품의 표면은 조명의 모양이 그대로 비춰지기 때문에 대부분의 경우에 부드러운 확산광을 사용하여 촬영하게 됩니다. 거울처럼 비춰지는 점을 오히려 이용하여 원하는 형태의 그러데이션이나 하이라이트를 확산판에 만들고 그것이 제품 표면에 비춰지도록 하는 방법입니다. 확산판으로는 주로 트래펄지나 유백색 아크릴을 사용하는데 아크릴판은 그 자체가 지지하는 힘이 있어 돔 형태로 천장을 만들거나 휘어진 벽을 만들기가 수월한 반면에 그 두께에 따라서는 너무 부드러워 샤프니스가 떨어질 수 있습니다. 반면에 트래펄지는 얇기 때문에 세팅 시 지지대가 필요하지만 부드러우면서도 강한(조명을 가까이 했을 경우) 하이라이트를 만들 수 있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자동차나 가구 같은 주로 큰 피사체를 촬영할 경우에는 이음선이나 경계선이 없는 큰 반사판을 합판으로 만들어 흰 페인트를 칠한 다음 그 곳에 조명(주로 텅스텐 지속 광원)을 반사시켜 촬영을 하거나 아예 스튜디오 자체를 커다란 돔 형태로 설계하여 자동차 전용 스튜디오로 사용하기도 합니다.
이번 2007년형 보르도 촬영에서 저는 주로 유백색 아크릴판을 사용했습니다. 스트로보 플래시에 허니컴 스폿을 달아 아크릴판에 비추면서 아크릴판 안쪽에 생기는 그러데이션의 범위와 하이라이트의 크기와 형태를 세밀하게 살펴보며 아크릴판과 조명의 거리와 각도를 조절해야 합니다.


전체적인 필 라이트의 역할을 하도록 허니컴 스폿 하나를 붐 스탠드에 매달아 멀리서(높게) 아크릴판 전체를 약하게 비추도록 해 주고 강한 하이라이트와 중간 톤의 그러데이션을 만들기 위해 1개에서 3개의 허니컴 스폿을 아크릴판 가까이에서 비추어 줍니다. 허니컴 스폿을 아크릴판 가까이에 둘수록 강한 하이라이트가 생기고 멀리할수록 부드러운 그러데이션이 만들어지는데 제품에 생기는 여러 변화들을 잘 관찰하면서 카메라 파인더를 통해 조명 하나 하나를 조절해야 했습니다.

촬영은 매우 급박하게 진행되었습니다. 금요일 오후에 촬영 제의를 통보 받았고 다음날인 토요일 오후 4시에 제품이 스튜디오에 도착했고 촬영이 시작되었습니다. 월요일에 교정을 제시하고 화요일에 출고되는 상황이라 일요일 하루 온종일 컴퓨터 후반 작업을 해서라도 일요일 새벽까지는 촬영 데이터가 나와야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예정된 주말 계획을 갑자기 취소한 채로 토요일 오후 늦게 부터 시작된 촬영은 시작부터가 수월치 않았고 총 4컷 중 가장 비중이 크다고 하여 처음 진행한 ‘빅토리아 여왕의 목걸이’ 하나만으로도 6시간 이상을 보내야 했습니다. 터치 센서 버튼이란 것이 프레임 표면에 0.5mm 정도 양각으로 돌출된 작은 기호들(••+-∧∨)인데 그 입체감을 살리면서도 블랙의 고광택 느낌을 살리려는 시도가 번번이 실패했기 때문입니다. 여러 어려운 고비를 넘기고 난 뒤, 새벽 4시가 넘어서 가까스로 촬영을 마칠 수가 있었습니다.

유난히도 ‘새벽형 인간(?)’을 지향하는 저로서는 밤 12시가 넘어가면 무척 힘들어집니다. 때문에 가능하면 촬영도 아침 일찍 시작하여 일과 시간 안에 마치는 쪽으로 유도를 합니다만 이 쪽 광고계에 계신 분들 대부분이 (자의든 타의든) ‘올빼미 과(주로 밤에 일을 하고 낮에 쉼)’에 속한 분들이셔서 매번 촬영 때마다 시간을 조절하기가 쉽지만은 않습니다. 밤 새워 일해야 하는 어쩔 수 없는 상황들도 있겠지만 가능한 상황이라면 저는 조금 부지런을 떨더라도 상쾌한 기분으로 하루를 여는 아침에 촬영을 시작하려 애씁니다. ‘삶의 리듬을 거스르지 않으며 작업하는 환경을 만드는 것’은 분명 이미지의 퀄리티를 높이는 중요한 요소 중 하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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