닫기

전체보기

분야별
유형별
매체별
매체전체
무신사
월간사진
월간 POPSIGN
bob

아트 | 리뷰

똑딱이와 똑딱이가 만났다

2012-01-19


DSLR이 대세인 시대에 ‘똑딱이 포토그래퍼’를 외치는 이가 있다. 모두 디지털로 사진하는 시대에 구닥다리 토이카메라를 쓰면서 ‘포토홀릭’을 자처하는 이도 있다. 이들은 각각 사진책 ‘나는 똑딱이 포토그래퍼다’와 ‘포토홀릭’s 노트’를 쓴 안태영(38)씨와 박상희(37)씨다.

글| 김보령, 박지수 기자
기사제공 | 월간사진

사진을 전공하지 않고 취미로 시작한 안태영씨와 박상희씨는 일상에서 혼자 터득한 사진의 재미와 즐거움을 솔직담백하게 풀어낸 책으로 많은 이의 공감을 얻었다. DSLR의 대세에서 한걸음 물러나 자신만의 즐거운 사진생활을 추구하는 이들을 만나 작고 가벼운 카메라의 매력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이들이 함께 예찬하는 ‘똑딱이’ 이야기를 따라가면 사진은 ‘좋은 장비가 있어야 한다’거나 ‘어렵고 배워야 한다’는 고정관념과 편견에서 자유로워진다.

어디까지 똑닥이? 서로 다른 똑딱이 감별법


월간사진(아래 사진) : DSLR이 대세인데 똑딱이나 토이카메라를 사용하는 이유는?

안태영(아래 태영) : 우선 ‘돈이 없어서’였다.(웃음) 돈이 많았다면 장비를 빵빵하게 갖춰놓고 시작했을지도 모른다. 처음에는 나도 펜탁스 DSLR 유저였다. 2007년쯤에 친구가 캐논 400D 카메라를 보여줘서 덩달아 사진을 하고 싶다는 마음이 생겼다. 당시 사업이 잘 안되던 때라 돈이 별로 없었는데도 아내 몰래 펜탁스 DSLR을 장만했다. 하지만 2주 정도 쓰다가 불편해서 똑딱이로 바꿨다. 버스에서 인상적인 장면을 목격해 DSLR을 꺼내 렌즈를 끼웠더니 이미 지나가 버렸다. 그리고 버스 승객들이 어찌나 쳐다보던지 민망했다.(웃음) DSLR로는 불편해서 도저히 사진을 못 찍겠더라.

박상희(아래 상희) : 90년대 초 사진을 접했는데 처음에는 니콘 F3라는 필름SLR 카메라로 시작했다. 대학선배에게 훈련받듯이 사진을 배웠고 꽤 열심히 했지만 결국 ‘잘 찍는다’는 소리를 듣지 못했다. 사진을 잘 찍어야 한다는 부담이 있었는데 우연히 로모를 써본 후에 그런 생각에서 벗어났다. 그리고 유럽여행을 가서 돈과 카메라가 든 여행가방을 도난당한 것이 결정적이었다.(웃음) 그때 수중에 있는 돈을 모아 2만원짜리 싸구려 토이카메라를 사서 찍었다. 귀국해서 현상해보니 생각보다 사진이 너무 마음에 들었다. 똑딱이를 쓰면서 잘 찍어야한다는 마음을 포기하니 사진이 더 재밌어졌다.

사진 : 토이카메라와 똑딱이는 다른 것인가? 똑딱이를 구별하는 기준이 있는가?

상희 : 먼저 각자 ‘똑딱이’의 정의부터 짚고 넘어가야 할 것 같다. 만약 똑딱이의 정의가 ‘콤팩트 카메라’라는 개념에서 출발한다면, 콤팩트의 원조인 라이카 카메라 역시 똑딱이일까? 나는 ‘똑딱이’라고 하면 셔터만 누를 수 있고 초점이나 노출은 모두 ‘Auto’로 작동되는 자동카메라를 떠올린다. 그런 점에서 토이카메라도 똑딱이로 볼 수 있는데, 로모는 노출이나 초점이 조절되니까 예외인 것 같다. ‘나는 똑딱이 포토그래퍼다’는 책 제목을 보고 떠올린 카메라도 그런 자동카메라다. 그런데 장노출 사진이나 야경사진이 있어 놀랐다.

태영 : 필름 카메라 기준에서 보면 그럴 수도 있다. 그 기준에서 보면 장노출이나 야경사진은 똑딱이로 거의 불가능하다. 노출조절을 할 수 없으니 말이다. 디지털로 사진을 시작해서인지 이미지 센서의 크기로 똑딱이를 분류한다. 일반적으로 크기가 작으면 똑딱이라고 하는데, 크기가 작아도 DSLR과 맞먹는 이미지 센서를 달고 있다면 이를 똑딱이라 부르기 곤란하다.

상희 : 바디와 센서의 크기와 더불어 렌즈 교환 여부도 DSLR과 똑딱이를 나누는 기준으로 통용된다. 하지만 이런 기계적인 측면에서만 똑딱이를 판별하는 것은 무리가 있고, ‘가격이 저렴하다’는 의미도 고려해야 한다.

태영 : 요즘은 고성능 고가의 변종이 많이 나오고 있어 가격도 기준으로 삼기 애매하다. 결국 사진을 찍는 사람의 태도와 관련이 있다고 생각한다. 똑딱이를 사용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자신이 원하는 사진을 찍을 수만 있다면 어떤 카메라라도 상관없다는 입장이다. 화질이 떨어지고 노이즈가 많아도 자신이 원하는 장면을 찍었다면 만족하는 것이다. 그래서 지금도 DSLR에 대한 욕심이 없고, 오히려 조금 더 작고 단순한 카메라를 좋아한다.

“똑딱이의 정의는 셔터만 누를 수 있고 초점이나 노출은 모두 Auto로 작동되는 자동카메라가 아닐까요. DSLR과 똑딱이를 나누는 기계적인 기준은 크기나 렌즈의 교환여부 등 많겠지만 무엇보다 똑딱이 기준은 ‘가격이 저렴하다’는 점인 것 같아요.” 박상희

“크기는 작아도 DSLR과 맞먹는 이미지 센서를 달고 있다면 똑딱이가 아니라는 생각이에요. 요즘은 고기능 고가 변종이 많은데 결국 찍는 사람의 태도에 달린 것 같아요. 똑딱이를 사용하는 사람들은 원하는 사진을 찍을 수만 있다면 어떤 카메라도 상관없다는 입장이죠.” 안태영


이 정도 굴욕이야, 편하고 순발력까지 갖춰


월간사진(아래 사진) : 각자 똑딱이 예찬론을 펼친다면?

태영 : 무엇보다 휴대하기 간편하다. 원하는 장면을 좀 더 빠르게 찍기에는 똑딱이가 훨씬 좋다. 약간 소심한 성격이라 남의 시선을 의식하는 편인데, 똑딱이를 사용하고 나서 사진을 떳떳하게 찍을 수 있었다. 똑딱이는 사람들이 경계를 하지 않기 때문에 찍는 사람도 찍히는 사람도 편하다. 또 오랜 시간 피사체를 관찰하고 기다려 찍는 것을 좋아하는데, DSLR의 뷰파인더에서 눈을 떼지 않고 기다리기란 너무 힘든 일이다. 특히 요즘은 대부분 온라인에 사진을 올리고 직접 인화할 일이 거의 없기 때문에 똑딱이로도 충분하다. 게다가 인화기술이 좋아져서 똑딱이로 찍은 것도 잘 나온다.

상희 : 똑딱이를 주머니에 넣고 다니면서 사진을 찍는 순발력이 생겼다. 똑딱이를 들면 의미를 생각하거나 세팅해서 찍는 게 아니라 마음 가는대로 찍게 된다. 그러다 의도하지 않았던 장면이나 내가 발견하지 못한 또 다른 시선이 담긴 사진을 얻기도 한다. 사실 나는 ‘싸구려’ 취향이다.(웃음) 그림 그릴 때도 재료를 사기 위해 애용하는 곳이 ‘천원샾’이다(웃음) 그런 취향 때문에 똑딱이를 쓰는 이유도 있다. 만원짜리면 어떠랴? 내 마음에 드는 사진이 나오면 그만이다.

월간사진(아래 사진) : 반대로 똑딱이의 아쉬운 점은 없는가?

태영 : 화질 빼곤 아쉬울 게 없다. 모니터로 볼 때는 별 차이가 없다. 하지만 무엇보다 화질이 중요한 유저라면 똑딱이보다는 DSLR을 쓰는 것이 좋다. 하지만 나는 장비에 별 의미를 두지 않는 편이다. 만약 사랑하는 여자에게 연애편지를 쓴다면 수백만원짜리 만년필로 쓰는 것과 연필로 쓰는 것이 무슨 차이가 있을까? 자기 생각을 표현하고 전달하는 것이 중요하지, 어떤 도구를 썼느냐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상희 : 흔히 ‘똑딱이’하면 초보자가 쓰는 카메라로 무시하는 경향이 있는데, 사람들의 그런 인식이 아쉽다.

태영 : 한번은 내 똑딱이를 보더니 ‘줘도 못찍겠다’며 휙 던진 사람이 있었다. 화를 꾹 참고 동의를 구해 그 사람의 카메라를 건네받아 찍은 사진을 살펴보니 음식사진 밖에 없었다. 그 사람이 한 달 동안 무엇을 먹었는지 알 수 있었다.(웃음) 속으로 ‘천만원짜리 카메라로 이런 것만 찍나?’고 흉봤다. 장비병이 심한 사람일수록 똑딱이를 무시하는 경향이 강하다.

상희 : 사진을 좋아하는 사람치고 장비에 관심 없는 사람은 드물다. 또 대부분 동호회에서 사진을 하는데 장비가 좋으면 회원들의 반응도 좋고 관심을 받기 마련이다. 이런 호응이나 관심 없이 혼자서 사진생활을 하기 힘들기 때문에 더 장비에 신경 쓰는 것 같다. 나도 예전에는 괜히 알루미늄 장비 케이스에 장비를 채우고 다니며 혼자 자랑스러워하다가 어깨가 빠질 뻔한 적이 있다.(웃음)

월간사진(아래 사진) : 똑딱이 포토그래퍼로서 굴욕사건은 없었나?

태영 : 해마다 서울패션위크라는 행사가 열리는데 국내 의상 디자이너들이 총출동하는 큰 행사다. 프레스증을 발급받아 무대 정면에서 패션쇼를 촬영했는데, 방송용 ENG 카메라에서부터 최고급 DSLR 카메라가 즐비했다. 그 가운데서 똑딱이를 드니까 주변 사람들이 이상하게 쳐다보기도 하고, 무슨 똑딱이 가지고 오냐는 비아냥거림까지 들었다. 처음엔 좀 창피하기도 했지만 카메라가 그것뿐인데 어쩌겠나?(웃음)

상희 : 유럽 여행에서 처음 산 2만원짜리 똑딱이 카메라는 셔터를 누를 때마다 스프링 튕기는 소리가 났다.(웃음) 게다가 플래시가 시도 때도 없이 빵빵 터져 외국사람들이 빤히 쳐다봤다. 굴욕까지는 아니어도 민망해 죽는 줄 알았다.(웃음) 지금은 만원짜리 카메라로도 이렇게 사진을 잘 찍을 수 있다는 것을 자랑하고픈 마음이 더 크다.

즐거운 사진놀이 수단으로 똑딱이가 그만


월간사진(아래 사진) : 특별하게 사진을 즐기는 자신만의 방법이 있나?

상희 : 50~60년대 시대의 모습이 담긴 흑백사진을 좋아한다. 그림을 그리다가도 슬럼프에 빠지면 유진 스미스나 워커 에반스의 사진집을 통해 새로운 영감을 받곤 한다. 때로 사진집의 사진을 보고 따라 그리기도 하는데, 사진을 좀 더 잘 이해할 수 있고 사진가에 대한 애정도 생긴다. 사진을 보고 따라 그린 그림을 묶어 책을 만들기도 하고 내가 찍은 사진으로 작은 사진첩을 만들기도 한다. 사진을 찍는 것에만 그치지 않고 사진을 더 재밌게 즐기는 나만의 방법이다.

태영 : 브레송이나 엘리엇 어윗처럼 일상의 스냅사진을 좋아한다. 특히 ‘저 사진을 찍기 위해 얼마나 기다렸을까?’하는 생각이 드는 사진을 좋아하고, 실제로도 기다려서 찍는 것을 즐긴다. 그래서 원하는 이미지를 얻기 위해 한 장소를 여러 번 가고 몇 시간씩 기다리기도 한다. 마치 길에서 아는 사람이 오는데 놀래키려고 숨어서 기다릴 때의 묘미와 비슷하다.

월간사진(아래 사진) : 둘 다 취미로 시작해 책까지 썼다. 사진에 특별한 의미가 있을 것 같다.

태영 : 사진을 시작한 지 4년쯤 되었는데, 그동안 정말 혼자서 잘 놀았다. 원래는 사람 만나는 것을 좋아했는데 사진을 하면서 철저하게 혼자서 놀게 되었다. 온라인에서 사진으로 사람들과 소통하지만 ‘나만의 사진생활’이라는 점이 특별하다. 책을 쓴 후에는 이름이 알려져 최근에 사진일도 늘었지만, 일주일에 2~3일 정도는 일과 상관없이 혼자 사진을 찍는다.

상희 : 나 역시 사진은 말 그대로 놀이다. 원래 아마추어를 좋아하지 않고, 아마추어로 즐기는 시간과 노력이라면 차라리 프로가 되는 것이 낫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하지만 사진만큼은 아마추어이자 취미로 남고 싶다. 책까지 썼지만 사진만큼은 즐거운 놀이로 남겨두고 싶기 때문이다.

안태영은 네이버의 포토 부분 파워블로거로 ‘나는 사진을 찍는다’를 운영한다. 3회 네이버후드어워드 포토 부문에서 1위를 수상했으며, 똑딱이로 찍은 사진으로 4회 내셔널지오그래픽 국제사진공모전에 수상했다. 사진에세이 ‘나는 똑딱이 포토그래퍼다’를 출판하고 현재 기업과 사진단체 등에서 사진강좌를 활발히 하고 있다. / 박상희는 홍익대학교 시각디자인학과를 졸업하고 영국의 킹스턴 대학 MA 과정에서 애니메이션을 공부했다. ‘Munge’라는 이름으로 단행본과 음반 등의 표지그림을 그리는 일러스트레이터로 활동하며 자신의 관심사와 취미생활을 주제로 에세이 ‘커피홀릭’s 노트’와 ‘포토홀릭’s 노트’를 출판했다.





facebook twitter

월간사진
새롭게 떠오르고 있거나, 국내에 알려지지 않은 다양한 분야의 많은 사진가가 월간사진을 통해 매달 소개되고 있습니다. 월간사진은 사진애호가와 사진가 모두의 입장에서 한발 앞서 작가를 발굴하고 있습니다. 심도 깊은 사진가 인터뷰와 꼼꼼한 작품 고새로 국내외에서 주목받고 있는 대표 사진잡지입니다.

당신을 위한 정글매거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