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05-03
그를 보면 프랑스 작가 마르셀 프루스트(Marcel Proust, 1871~1922)의 1인칭 소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가 떠오른다. 소설의 주인공 마르셀은 이미 흘러가 버린 자신의 과거를 찾아서 시간의 강(江)을 거슬러 오르는데, 그 길고도 오랜 모험은 무려 3,000쪽에 달하는 사색의 고통을 독자에게 선사한다. 타임머신을 타고 떠나는 이 시간의 대탐험에서 우리가 마주치는 것은 마르셀이 거쳐 온 세월의 이야기이지만, 어느덧 그것은 ‘내’ 얘기가 되고, ‘나’의 정체성을 찾아 나서는 기나긴 여행이었음을 알게 된다.
기사제공│월간사진
구본창(58)의 개인전이 열리고 있는 서울 소격동 국제갤러리 신관(2011년 3월24일~5월10일)에 들어서며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가 생각난 것은 아마도 마르셀 프루스트의 그 유명한 ‘마들렌느 과자’ 때문이었을 것이다. 어느 추운 겨울날, 바깥 나들이에서 돌아온 마르셀은 어머니가 내놓은 뜨거운 홍차에 마들렌느 과자를 적셔서 먹는다. 그 순간, 마르셀은 까닭 없이 큰 기쁨에 휩싸이며 마음속에서 뭔가가 꿈틀대며 일깨워지는 것을 느낀다. 그 마들렌느의 촉감이 오래 전 소년 시절에 맛봤던 과자 맛이었음을 기억해내자, 당시의 모든 기억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현재의 시간 안으로 밀려드는 걸 경험한다.
좀 비약해 말하자면 국제갤러리 전시장은 구본창 인생살이의 ‘창고 대 방출’이라 이름 지을 수 있겠다. 기획자인 김성원이 썼듯 “사진작가 구본창의 30여 년 동안의 작업세계를…총체적으로 재조명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의 실마리를 풀 수 있는 하나의 출구가 ‘컬렉션’이다. 작가의 기억에 의하면 6살 때부터 자신의 관심을 끈 물건들을 하나씩 간직하기 시작해 그 물건과 ‘이미지들’은 그의 곁에 머물며 삶의 여정을 함께 해 왔다고 한다. 우리 어머니 세대가 봤다면 ‘구신(귀신) 나오겠다, 내다 버려라’ 했음직한, 참으로 비실용적인 그 물신(物神)들을 찬찬히 뜯어보면 거기 구본창의 과거와 지금이 혼재돼 머물고 있음을 알게 된다. 마르셀의 마들렌느 과자의 추억처럼.
풍요로운 은신처, 모아들이는 장소
구본창 선생을 만날 때마다 그가 입고 있는 조끼가 눈에 와 닿았다. 스스로 “허해서 입는다”고 말했듯 그는 조끼를 즐겨 입는다. 조끼는 그가 움직일 때조차 그와 함께 하는 내밀한 공간이다. 조끼의 주머니는 대개 후줄근했는데 보는 이로 하여금 뒤집어 보고 싶게 만드는 그런 물성을 띤다. 때로 서랍 같은 그 조끼를 샅샅이 뒤지면 구본창의 생각을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분당에 있는 그의 작업실 겸 집이 거대한 조끼, 셀 수 없이 많은 서랍이 달린 초대형 장롱같이 느껴졌던 건 그가 ‘컬렉션하고 있는’ 자신의 생각 때문일 것이다. 그가 유년기와 청소년기를 보낸 서울 신당동 적산가옥(일제강점기에 일본인이 지은 집)은 오시이레(붙박이장)가 있었다. 한국식 다락방이다. 각종 살림살이를 보관해두던 그곳엔 부친이 외국 여행에서 모아들인 물건들, 형이 구독하던 외국 잡지들, 김칫독을 묻으려 땅을 파다 나온 자기 등이 굴러다녔다. 그는 마당에 움푹 팬 웅덩이에 괸 물을 바라보며 이야기를 만들곤 했다고 회고했다.
“김성원 선생의 기획에 응한 것이지만 (집) 정리가 좀 돼서 좋아요. 인생의 재고 조사랄까. 어릴 때 충족 못한 수집의 욕구가 이렇게 날 따라다니네요.”
수집과 채집은 그에게 상처를 아물게 하는 치유의 행위였던 모양이다. 수재로 떠받들어지던, 나이 차이가 꽤 나는 형을 바라보며 그는 외톨이로 혼자서 뱅뱅 하던 수줍은 소년 시절을 보냈다. 누나들과 어울려 천과 실을 가지고 놀거나(그의 사진 속에 녹아든 바느질의 추억), 소꿉놀이를 하거나(명기와 문방사우를 늘어놓은 그의 사진), 아무 짝에도 쓸모없다고 버려진 물건들을 끌어 모아 자신만의 왕국을 만들었다. 그 많은 사물들과 대화하는 것이 그의 일상이었다. 전시장에서 만난 그는 아련한 눈빛으로 그것들을 하나하나 어루만지더니 “저것들이 바로 나다”라고 털어놨다.
빈 상자, 빈 프레임, 빈 병, 실루엣만 남은 패턴, 본(本)…. 이런 생명 없는 것들과 그는 무슨 얘기를 나눈 것일까. 그는 과실 속의 씨처럼 완전히 혼자여야 했던 순간에 그의 마음을 대리해줄, 그의 눈을 머물게 해줄 무언가가 필요했던 것 같다. ‘빈’것에 유독 눈길이 간 한 조숙한 소년은 필시 소멸하는 것에 대한 애틋함을 지녔던 것은 아닐까. 죽음에 대한 명상이 고통스러웠을 것은 분명한데 그는 그 아픔을 “실존하지 않는 것에 생명력을 부여하며” 풀었다고 했다. 사진이 그에게서 이 모든 아픔을 거두어가 주기 전까지.
구본창은 우리 시대의 사람이 아닌지도 모르겠다. 다른 시간으로부터 오는 듯한, 언제나 과거 시제로 말하는 듯한 그의 사진이 그렇다. 그는 죽음으로부터 훔쳐 온 시간을 보여준다. 그의 공간은, 그의 컬렉션이, 그 컬렉션이 담긴 사진이 보여주듯, 죽음에 되돌려 주어야 할 시간에 머물고 있다. 그는 사진 속에 만들어놓은 고독의 공간 속으로 더 깊이 들어가고자 자맥질하는 소년이다. 사진을 ‘후퇴의 미학’이라 말하고 싶어 하는 소년이다. 그가 인위적으로 계속 유지하려 애쓰는 그의 아픔을 이해하려면, 그가 아픔을 치유하고자 도피했던 공간 속으로 함께 들어가야 한다. 그의 공간, 그의 사진이다.
낡음, 텅 빔, 이름 없음
국제갤러리 전시장 구석에는 장방형 철제 트렁크가 놓여있다. 작가의 친척이 6.25 때 쓰던 해묵은 것이다. 더 놀라운 건 그 속에서 나온 물건이다. 2006년 광주비엔날레 때 전시장에 드리워져있던 누런 광목천이 꾸역꾸역 들어있다. 당시 예술감독인 김홍희씨에게 몇 번을 졸라 얻은 것이다. 천장에서 빗물이 새서 얼룩이 진 그 낡은 천을 몇 년 째 신주단지 모시듯 보관해온 작가는 “처음 본 순간 소스라치게 놀랐다. 언젠가 내 사진의 배경으로 쓰일 것”이라고 말했다. 2000년대 초 ‘탈’ 연작을 찍을 때 배경이 된 장막도 길에서 얻었다. 충남 강경을 차를 타고 지나갈 때 뭔가 작가의 눈길을 확 끄는 게 있었다. 차에서 뛰어내려 가보니 모래 더미를 덮던 국방색 보호막이었다. 비바람에 해져 여러 번 깁고 누빈 자국이 범상치 않아 보였다. 주인에게 사정사정해서 버려도 누가 가져가지 않을 그 낡은 천을 샀다. 독일 유학 때 쓰레기장에서 주은 신발 본, 마포 홍대 앞 사진관 윈도우에 걸려 있다가 그의 컬렉션이 된 빛바랜 기념사진, 중국에서 건져온 빙수 통, 필리핀에서 짝으로 나와 있던 걸 한 마리만 사와 지금도 가슴이 아픈 목제 기린, 스페인 여행 때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는 것 같아 안고 온 나무 의자…, 그는 “닳고 닳은 색에서 나는 못 떠나리라” 예언한다.
이런 여로를 여러 해 거친 뒤 그는 다시 백자의 ‘빈’ 공간으로 회귀했다. 텅 비고 하얀 그 귀물이 뭔가 얘기할 듯하지만 침묵하고 있는 애잔함이 좋았다고 했다. 표면의 자잘한 생채기, 긴 세월의 흔적에 연민의 정이 솟아올랐다. 좌절하면서도 줄기차게 지켜온 소년 구본창의 은밀한 공간이 백자에 집약돼 있었다. 북디자이너 정병규 선생은 이런 구본창 수집품의 특징을 “낡음과 텅빔과 이름 없음”으로 규정하며 “그의 사진은 한마디로 이 수집적 상상력의 세계”라고 평했다.
작가는 2009년 여름, 자신의 몸을 부릴 또 하나의 공간을 마련했다. 설치미술가 겸 디자이너인 최정화씨의 서울 삼청동 집을 빌려 숨어들었다. 온갖 물건들로 꽉 찬 분당 집에서 몸만 빠져나와 전 주인이 남긴 흔적에 최소한만 손 댄 쉼터를 일궜다. “인왕산을 보려 옮겼다”고 고백하듯 말하는 그의 눈이 창문 너머 산으로 향했다. 책상 위에는 최완수 간송미술관 학예연구실장이 쓴 ‘겸재 정선’이 놓여있다. 아침에 일어나 인왕산과 마주하는 것만으로 행복하다고 했다. 한국 문화에 대해 오래 해온 컬렉션이 이 동네에 오면서 풀렸다고도 했다. “너무 로맨틱한 수집”에서 탈출하려는 작가의 의지는 착잡한 가운데 진한 뉘앙스를 풍겼다. 자신이 발가벗겨진 듯 전시장에 늘어 내놓은 친구들을 상자에 담아 밀어놓고 새 부대에 새 무언가를 담고 싶다는 그의 바람이 이뤄지기를 빈다. “한참 뒤에 열 또 하나의 회고전 때는 더 여러 가지 갈래가 있지 않을까” 작가는 혼잣말하듯 여운을 남겼다.
- 사진가 변순철은 우리에게 ‘짝-패’ 사진작업으로 알려져 있으며 한국 현대사진가의 아카이브 프로젝트로 자의식이 드러난 작가의 모습을 세밀한 작업으로 보여줄 예정이다.
- 정재숙은 대학시절 학보사에서 암실의 매혹에 빠졌던 전직 사진기자다. 지금은 중앙일보 문화스포츠 부문 에디터로 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