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03-05
세상에 문을 닫았던 청년이 서서히 말문을 열고 인사를 건넨다. 마을에서 유독 심하게 낡은 노모와 둘이 사는 그의 집을 수리하느라 모처럼 집안이 사람들로 붐빌 즈음이었다. 카메라를 내려놓은 사진가들은 지붕 위에서, 담벼락 옆에서 헤진 곳을 메우고 기운 곳을 바로 세웠다. 사진가들의 시선에도 찍고 떠나는 사진의 대상이 아닌 함께 살아가는 이웃들로 하나둘 주민들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글│이종화 기자
기사 제공│월간 사진
12월말에 막을 내리는 서울사진축제가 열린 서울시립미술관 주 전시장의 마지막 전시공간에는 재개발을 앞둔 서울의 ‘밤골마을’을 기록한 사진들로 채워졌다. 사진모임 ‘꿈꽃팩토리’의 마을공동체 사진아카이브 작업의 첫번째 결과물이었다. 서울시민과 사진가들이 찍은 옛 사진들로 서울의 기억과 역사를 반추하는 서울사진축제에서 현재 존재하지만 곧 사라질지 모를 밤골마을의 기록사진은 옛 사진과 묘한 시간차 대비를 이뤘다. 18명의 아마추어 사진가와 다큐멘터리 사진가 성남훈으로 구성된 꿈꽃팩토리 사진가들이 밤골마을을 찾기 시작한 지는 1년이 조금 못된다.
도심 속에 섬처럼 남은 달동네이면서 주민들이 공동체를 이뤄 살아가는 밤골마을은 힘겹게 살지만 이웃간의 교류와 사람 사이의 인정이 배어있는 동네다. 꿈꽃팩토리 18명 사진가들은 주민들의 삶 속으로 들어가 도시에서 사라져가는 공동체의 모습을 기록하기로 했다.
밤골마을 사람들이 사는 법
밤골마을은 서울 관악구 신림동 미림여고 앞의 관악산 자락을 따라 길게 위치한 서울의 마지막 달동네다. 옛날에 밤나무가 많았다고 밤골마을이라고 이름 붙여진 마을은 40여년 전부터 집이 없어 갈 곳 없는 사람들이 하나둘 모여들기 시작해 마을을 이루었다. 120여 가옥 중에서 사람이 사는 곳은 80여 채, 나머지 40여 채는 10년 전부터 재개발 이야기가 들리면서 외지인들이 사들이기 시작해 지금은 비어있는 상태다. 주민 100여명 중 70~80대 독거노인이 절반 정도에 이르고, 원주민이 대부분인 주민들은 월세 3~5만원 짜리 셋방에 세 들어 산다. 걸어서 20~30분이면 모두 둘러볼 수 있는 작은 마을은 홍제동의 개미마을, 중계동의 104마을처럼 도심 속에 섬처럼 남은 달동네이면서 주민들이 공동체를 이뤄 살아가는 곳이다. 다들 힘겹게 살아가지만 이웃간의 교류와 사람 사이의 인정이 배어있는 동네가 밤골마을이다. 꿈꽃팩토리 사진가들은 주민들의 삶 속으로 들어가 도시에서 사라져가는 공동체의 모습을 기록하기로 했다.
밤골마을의 연로한 노인들은 구청에서 생활보조금을 지원받지만 폐지를 주워 생활비를 버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폐지를 줍는 노인들을 따라가면 박기천(70), 오복식(61) 부부가 운영하는 ‘오복식고물상’에 닿는다. 14살에 밤골마을에 들어온 오복식씨는 어려서 배고파본 기억 때문에 나누는 것이 습관이 되었다. 매해 700포기의 김장을 담그고 메주를 만들어 김치가 떨어질 때면 마을 노인들에게 나눠준다. 또 ‘경서도’ 창을 전수하는 소리꾼이기도 한 그녀는 틈날 때마다 수제자들과 무료 공연을 다니며 나눔을 실천한다. 오복식고물상과 함께 마을 가운데의 율곡경로당은 밤골마을 공동체의 또다른 구심점이다. 형편이 어려운 노인들에게 식사를 제공하는 이곳은 끼니때가 아니더라도 삼삼오오 주민들이 모여드는 사랑방이다. 이밖에 40년이 된 구멍가게에 옹기종기 모이거나 골목에 나앉아 이웃과 음식을 나누는 허물없는 모습은 지금은 보기 어려워진 풍경이다. 방치된 쓰레기더미를 치워 공동주차장을 만들고 김장을 함께 하는 등 마을의 공동 일에는 80살 노인부터 모든 주민이 팔을 걷고 나선다.
혼자 살면 무슨 재미인겨?’ 되묻는 말에는 희로애락을 나누며 함께 사는 인간관계를 당연하면서 행복하게 여기는 소박한 우리 이웃이 있었다. 먼저 다가가 대화하는 법을 배우면서 우리 사진에 주민들의 삶이 온전히 들어왔다. 도시에서 사라지는 사람 사는 냄새가 그곳에 있었다.
꿈꽃 사진가와 밤골 주민들의 꿈같은 한때
그럼에도 개발과 소외, 가난의 대물림은 주민들을 억누르고 외부인에게 쉽게 마음을 열지 못하게 한다. 마을공동체를 사진 기록으로 남기는 것에 앞서 닫힌 주민들의 마음을 여는 것이 먼저였다. 꿈꽃팩토리 윤승준(57) 회장은 “한달여간 카메라 없이 주민들을 만났고, 집을 수리해드리는 봉사활동과 어르신들의 말벗이 돼드리면서 점차 주민들과 안면을 익혔고 생활을 이해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꿈꽃 사진가의 일원인 김정용(49)씨에게 밤골마을은 어릴 적 지방에서 서울로 상경해 처음 정착했던 남가좌동 동네와 흡사했다. 그때 살던 동네와 개구쟁이 친구들을 떠올리며 토요일 밤이면 그의 발길은 자연스럽게 밤골마을로 향했다. 그러던 어느 밤, 골목 평상에 앉아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는 일가족의 모습은 잊히지 않는 기억이다. 이때 인연으로 그 가족의 집을 방문할 수 있었고, 그 뒤로 20여 가구를 더 찾아 사진을 촬영했다. 고경대(55)씨는 경로당 여성 회장을 통해 이웃의 의미를 깨달았다. 혼자 사시는 어르신을 살뜰히 보살피는 그녀는 공공근로로 주민센터 화장실을 청소해서 번 돈을 경로당 운영경비로 내놓고 있었다. 젊어서 화장품 행상으로 어렵게 자식을 키웠고 이제는 자식을 따라 밤골마을을 떠나 편히 살 수도 있었다. 그러나 ‘혼자 살면 무슨 재미인겨?’ 되묻는 그녀의 말에서 희로애락을 나누며 함께 사는 인간관계를 당연하면서 행복하게 여기는 소박한 우리 이웃을 볼 수 있었다.
마을공동체를 이해하면서 주민들과 꿈꽃 사진가들의 거리는 점차 좁혀졌다. 꿈꽃 사진가 중 가장 연장자인 이흥순씨는 마을 어르신들과 경로관광을 함께 다녀오고, 무슨 일이든 척척 잘 해내고 넉살 좋은 양병록(54)씨는 마을 어느 집에서든 아들, 손자로 대접받는다. 그는 “먼저 다가가 대화하는 법을 배우면서 우리 사진에 주민들의 삶이 온전히 들어왔다”며 “도시에서 사라지는 사람 사는 냄새가 그곳에 있었다”고 말했다.
본격적으로 마을사진아카이브 작업이 시작되고 얼마 후에는 밤골마을에서 작은 사진전시회도 열렸다. 마을 입구의 막걸리집을 빌려 벽과 천정에 그동안 촬영한 사진들을 붙이고, 머릿고기와 막걸리를 준비하고 소박한 밥상도 차렸다. 전시에 초대된 주민들은 자신이 찍혔다며 쑥스러워하면서도 사진 한장 한장에서 신기한 듯 눈을 떼지 못했다. 밤꽃이 한창인 늦봄의 밤에 주민들과 꿈꽃 사진가들은 사진을 앞에 두고 즐겁고 꿈같은 한때를 즐겼다.
혼자 찍으면 무슨 재미인겨?
꿈꽃팩토리는 사진으로 사회에 기여하려는 사진가 집단으로 출발하였다. 더욱 깊이 사진을 배우는 동시에 자신의 사진이 유의미하게 쓰이는 통로를 고민하는 것에서 비롯됐다.
대부분의 아마추어 사진가들은 개인적으로 사진에 흥미를 느껴 이곳저곳에서 사진 강의를 듣고 배움을 이어가지만 결국 한계에 부딪히곤 한다. 지속적으로 사진활동을 이어갈 수 있는 무대가 부족하고, 촬영한 사진은 개인 컴퓨터에만 머무르는 등 쓰임새를 찾지 못하기 때문이다. 꿈꽃팩토리는 개인의 사진 역량을 꾸준히 높이면서 사진으로 사회에 기여하는 길을 모색하던 이들이 모였다. 또 사진가 성남훈에게서 6개월 이상 사진강의를 들으면서 사회의 공기로서 사진의 역할을 고민해오면서 어느정도 공감대를 형성한 이들이 구성원을 이룬다.
성남훈은 “사진 하는 사람이라면 사진이 사회에 미치는 영향을 무시할 수 없을 것”이라며 “작지만 한발씩 역량을 키워가고 자신의 사진작업에 대한 존속 이유를 찾아가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개인에 머물러 정체될 수도 있는 사진재능을 공익적인 사진작업을 통해 사회에 환원하려는 꿈꽃팩토리는 첫 작업으로 공동체의 가치를 기록해 남기는 사진작업을 선택했다. 언제 사라질지 모르는 도시 속 마을공동체의 기록은 훗날 소중한 가치를 지닐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꿈꽃팩토리의 밤골마을 사진기록은 아카이브의 형식을 띠며 마을 곳곳의 풍경과 주민들의 삶은 물론 주민 개개인의 사적인 주거공간까지 담고 있다. 여기에 어르신들의 장수사진은 지난 세월의 흔적과 굴곡을 짐작케 한다.
지난 1년간, 틈나는 대로 밤골마을을 찾아 주민들을 만나 소통하고 사진을 찍는 사이 18명 사진가들은 새로운 사진의 가능성에 눈을 떴고, 개개인의 사진이 모여 발휘하는 힘을 확인할 수 있었다. 사진가들의 열정과 주민들의 소통이 만나 차곡차곡 사진들이 쌓여가면서는 피사체와 사진가 사이에 벽이 없어지는 경험도 했다.
윤승준 회장은 “소소한 일상과 이웃들의 삶은 오래 머물고 친밀하지 않으면 찍을 수 없는 사진들로, 사진들이 모여 공동체의 기록을 완성하고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모습을 지켜보며 다큐멘터리 사진이 갖는 힘을 느낄 수 있었다”고 말했다. 고경대씨는 “그저 피사체로만 생각했던 밤골 사람들이 인사를 나누는 이웃으로 변하는 소통의 도구가 바로 사진이었다는 사실에 새삼 놀랐다”며 “같이 호흡하며 현장의 이야기를 사진으로 표현하는 것부터 개인의 작업으로 그치지 않고 사회에 기여하는 방법을 고민하게 되면서 다큐멘터리 사진의 접근방식이 넓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고 말했다. 지난 2009년 타계한 원로 사진가 고영일의 아들이기도 한 고씨는 아버지가 40~50년 전에 촬영한 제주 사진을 같은 장소에서 다시 촬영하는 사진작업을 준비하는 중이다. 그는 밤골마을의 경험이 제주 작업에 자신감을 불어넣어주었다고 덧붙였다. 김정용씨 역시 “촬영하는 것보다 어떤 마음에서 촬영하려는지와 그들과 무엇을 이야기할 것인지가 더욱 소중하다는 것을 깨닫게 된 계기가 됐다”고 전했다.
꿈꽃팩토리는 첫 작업으로 공동체의 가치를 기록해 남기는 사진작업을 선택했다. 언제 사라질지 모르는 도시 속 마을공동체의 기록은 훗날 소중한 가치를 지닐 것이기 때문이다. 아카이브의 형식을 띤 사진기록은 마을 곳곳의 풍경과 주민들의 삶은 물론 주민 개개인의 사적인 주거공간까지 담고 있다. 여기에 어르신들의 장수사진은 지난 세월의 흔적과 굴곡을 짐작케 한다.
사회적 기업으로 전환, 2기 꿈꽃 사진가들도 준비
꿈꽃 사진가들의 공동체 기록과 아카이브작업은 밤골마을을 시작으로 더욱 활발하게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밤골마을의 경험 탓에 한결 원숙해진 사진가들은 우리 시대에 기록적인 가치를 갖는 공동체나 이슈를 찾아 계속 사진으로 기록할 예정이다. 그리고 그 결과물은 책으로 펴내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릴 계획이다. 2013년에 밤골마을에 관한 책을 내는 것이 첫 목표이다.
2~3년 뒤에는 꿈꽃팩토리를 사회적 기업으로 전환하는 구상도 차곡차곡 준비하고 있다. 장기적으로 기록작업을 계속하기 위해서는 수익사업을 통해 비용을 해결해야 하기 때문이다. 당장 2013년에 회원들이 출자한 자본으로 협동조합을 설립해 가능성을 타진하게 된다. 윤승준 회장은 “회원들이 십시일반 돈을 모아 작업을 진행해왔지만 언제까지 이런 방식으로 갈 수는 없으며, 사진을 통한 사회기여를 좀더 확장시키고 뿌리내리게 하기 위해 사회적 기업으로 등록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여기에 2기 꿈꽃 사진가들까지 합류하면 기록작업에 더욱 힘을 보탤 것으로 기대된다.
사진공동체 꿈꽃팩토리는 각박해진 세상에 메말라가는 공동체의 정신, 사람 냄새 나는 사진으로 좋은 세상을 꿈꾼다. 저마다 다른 이유와 환경에서 사진을 배우기 시작해 이제는 사진으로 세상에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는 같은 믿음을 갖는다. 꿈꽃 사진가들의 도전은 전문 사진가와는 차원이 다른 사진의 새로운 쓰임새를 모색하고 생명력을 불어넣는다는 점에서 우리 사진문화를 더욱 살찌우고 확장시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