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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 | 리뷰

역사의 슬픈 그림자

2013-10-30


생루이 골목길에서 마주친 할머니는 과일을 팔고 계셨다. 할머니가 내 마음속에서 서성거렸다. 내가 과일을 한 봉지 사들자, 내 마음을 아셨는지 사진을 찍어도 좋다며 포즈를 취해주셨다. 살아가는 일이란 늘 그렇게 마음이 오가는 일이다.

기사제공 ㅣ 월간사진

낡고 허름한 벽 좁은 골목 사이로 우수에 찬 흑인들이 거닐던 공간. 세네갈 강의 힘찬 강줄기가 대서양으로 흘러 드는 세네갈 만곡부에 위치한 고도, 슬픈 그림자 드리운 어두운 삶의 단면이 가슴을 울리지만 삶이란 또 그런 것이라 위로할 수 있는 곳. 세네갈을 생각하면 다카르가 떠오르지만 깊은 역사, 낭만을 떠올리면 북부 제2의 도시, 슬프도록 아름다운 생루이를 잊지 못하리라.

식민시대의 슬픈 역사와 추억의 고도, 생루이

복잡하고 혼란스러운 소르(Sor) 지구를 거침없이 달린다. 세네갈 강을 가로질러 페데르베 다리를 건너면서 생루이(Saint-Louis)의 얼굴이자 강 위에 떠있는 작은 섬에 다가선다. 강을 건너자마자 우체국 광장 앞 생루이의 중심에는 어린 왕자의 저자 생떽쥐뻬리가 묵었던 호텔 드 라 포스트(Hotel de la Poste)가 낯선 여행자를 반긴다. 생루이의 진짜 여행은 이 작은 섬 위의 복잡하고 소란스런 광장에서부터 시작된다.

생루이는 대륙과 연결된 본토인 소르 지구, 생루이의 중심지이며 세네갈 강에 떠있는 작은 섬 그리고 랑고 드 바르발리라고 불리는 모래톱에 위치한 응다르 투트 이렇게 세 지역으로 구성된다. 세 지역은 모두 다리로 연결되어 있으며, 각 지역별로 도시의 다양한 역할과 기능을 분담하고 있다. 이중 여행자에게 너그럽고 매혹적인 얼굴로 다가오는 곳이 중앙에 위치한 네모 반듯한 직사각형의 작은 섬이다.

생루이는 쿠바의 아바나, 미국의 뉴올리언스, 탄자니아의 잔지바르 섬을 뒤섞어 놓은 듯 오랜 시간의 추억과 깊은 울림, 삶의 낭만을 떠올리게 한다. 프랑스 식민지 시대의 자취가 고스란히 남겨진 낡고 오래된 2층 건물들이 널려있고, 레게 머리를 한 뮤지션들이 거리를 활보하며, 자유로운 영혼들이 음악과 예술을 위해 사랑하고 머무르는 곳이다. 유서 깊은 호텔 라 메종 로즈의 테라스 카페에 앉아 오랜 도시를 물끄러미 내려다보면 역사와 추억의 그림자들이 낡은 도시 위로 스멀스멀 피어오른다.

모리타니와 세네갈을 가르는 국경선인 세네갈 강은 세네갈 제2의 도시인 생루이의 얼굴이다. 사막이 끝없이 이어지다 갑자기 출현한 초록의 대지는 눈을 의심하게 만든다. 강변의 무성한 갈대숲과 초록의 대지가 눈과 마음을 평온하게 해주며, 바다와 강이 마주하는 그곳에서 여행자는 세네갈에 발을 디디고 첫 위로를 받는다. 프랑스 루이 14세를 기념해 이름 지어진 이 도시는 응다르 투트(Ndar Tout)라는 별칭도 가지고 있다.

그리움과 낭만의 거리를 걷다

남북으로 바둑판 같은 도로가 길게 이어진 도시는 17세기 후반 상업의 중심지이자 서아프리카 최초의 문화 도시였음을 증명이라도 하듯 역사적인 건축물들이 기품 있는 자태와 깊은 문화의 향기를 고스란히 품고 있다. 역사적 전란으로 인해 파괴된 도시는 이후 다시 재건되어 오늘날 세네갈의 전통과 역사를 증명하는 문화의 중심, 낭만의 고도, 아련한 추억의 도시로 사랑 받고 있다.

느긋해지고 마음 차분해지는 도시의 거리를 걷고 있으면 누군가 환한 미소로 다가와 친근하게 말을 건네며 손짓하는 듯하다. 골목길 사이를 마냥 걸어도 어디선가 기분 좋은 강바람이 불어오는 낭만의 고도. 생루이 섬의 최북단을 향해 세네갈 강을 따라 골목길을 걷는다. 서쪽 강변으로 걷다 보면 모래 톱 위로 낡은 어선들이 휴식을 취하고, 마차를 끄는 말과 마부들이 한가로운 한때를 보내고 있다. 강 건너 응다르 투드 지역의 하얀 건물들이 그리움으로 손짓하는 평화로운 곳이다.

200여년 가까운 세월을 견뎌낸 이 섬에는 성당과 모스크, 총독 관저, 에어 메일을 수송하는 파일럿들이 머무르던 호텔 드 라 포스트등이 눈길을 끈다. 전통 있는 건물들 사이를 거닐며 도시가 품어온 역사와 삶의 향기, 세월의 풍상을 되짚고 곱씹어 보게 된다. 오래 되었지만 좋은, 낡고 남루해졌지만 그리운, 부서지고 무너져 내렸지만 그 자체로 오래 기억될만한 역사의 흔적들이 골목길 여기저기에 즐비하며 그 모든 얼굴들이 생루이의 생생한 추억이 된다.

자유로움과 진한 삶의 애착이 교차하는 생루이

골목길을 거닐다 보면, 하루에도 몇번을 마주치는 사람들이 있다. 거리 모퉁이를 지키는 과일가게 할머니, 거리의 뮤지션, 식료품 가게의 주인, 갤러리의 잰틀하게 생긴 프랑스 중년 신사 그리고 골목길의 아이들까지. 오후가 되면 학교를 마친 학생들의 재잘거리는 소리가 울려 퍼지며, 생기발랄한 소녀들의 맑은 미소에 절로 행복해진다.

생루이는 식민지 시대의 수도였지만 오늘날에는 세네갈 역사의 흔적을 안고 인고의 세월을 증명하고 있다. 페테르베 다리 위를 끝없이 오가는 사람들과 이른 아침부터 늦은 저녁까지 쉴새없이 오가는 미니버스의 요란스런 분주함까지. 항구로서의 지리적 조건을 갖추고 있는 다카르에게 수도의 자리를 내어 주었지만, 여전히 세네갈 강 하구의 오랜 문화와 전통, 고도의 자존심을 지켜내며 역사의 향기와 흑인들 삶의 진한 여운을 끝없이 뿜어내고 있다.

골목 사이로 태양의 열기가 식어갈 무렵, 사람들은 삼삼오오 모여 앉아 차를 마시며 하루의 일과를 정리하고 있다. 바쁠 것 없고, 넘쳐나는 생의 애착들로 인해 마치 동네잔치나 축제를 보는 듯하다. 어둑해진 골목길 사이사이로 사람들의 작은 행동과 생의 움직임 하나하나가 생루이의 노래가 되고, 시가 된다. 아쉬운 마음으로 하루를 보내며 뜨겁게 마주하는 밤, 인간들 무리 사이에서 배어 나오는 삶의 진득한 그리움의 시간들. 생루이는 세네갈의 사랑이며 추억이다.

생루이 찾아가는 길
인구 15만의 생루이는 프랑스 식민지풍의 고도로, 서부 아프리카에서도 유일하게 여행자의 발걸음이 가벼운 도시다. 그냥 느긋하게 거닐며, 느끼는 도시다. 생루이는 모리타니 국경 도시 루소(Rosso)에서 합승 택시로 2시간 거리에 있다. 세네갈의 수도 다카르에서도 버스나 택시로 4시간이면 도착하는 도시다. 요금은 5000세파 프랑, 국내선 항공기로 다카르에서도 쉽게 연결된다. 터키 항공이 이스탄불을 거쳐 세네갈의 다카르로 연결하고 있다. 오래 머물며, 강바람과 식민도시의 낭만, 세네갈의 여유로운 느낌과 운치를 즐기려는 사람들에게 적합한 도시다.

생루이 여행하기 좋은 시기
일년 내내 비교적 온화하고 쾌적한 날씨를 자랑한다. 12월부터 3월까지는 18도부터 27도를 오르내리며 쾌적한 날씨를 보인다. 6월부터 8월까지는 무더운 날씨로 33도를 오르내리기도 하지만 소나기가 내리거나 장마철이 지나가는 이때는 오히려 비 때문에 시원해지기도 한다. 비가 오나 태양이 내리 쪼이거나 낭만의 역사 고도는 늘 즐겁고 유쾌하다.


글, 사진 l 함길수
함길수는 지난 20년간 아프리카, 유럽, 시베리아, 북미, 중남미, 호주, 뉴질랜드 등 경이로운 지구를 탐험한 자동차 탐험가이자 사진가이다. NAVER 캐스트 및 여행 매체에 영상칼럼으로 리포팅하고 있으며, 탐험 전문팀인 Geo Challenge를 이끌며 사진 영상작업을 통해 우리 삶의 문화 지평을 확장시켜 나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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