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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 | 리뷰

불완전함, 아날로그와 테크놀로지 사이

2011-09-30


20세기, 기계의 우월성이 세계를 지배했다. 이를 적극적으로 찬양했던 이들은 기계야말로 앞으로 다가올 미래의 주역이 될 것이라 예상했다. 이 열망은 급진적이고 진보적인 테크놀로지의 발전으로 실현되었다. 기계는 사람의 노동을 대신하는 영민한 존재에서 예술에 영감을 주는 뮤즈로써의 기능까지 수행해 왔다. 하지만 어느 순간, 육체노동의 대행자에서 창작의 모티브가 된 기술을 경험한 우리는 여기에 숨어있는 아이러니를 발견하게 된다. 끊임없이 생성과 사라짐을 반복하는 테크놀로지의 홍수 속에서, ‘과연 우리는 기계 사용자로서 관계의 우위에 있는가?’라는 의문이 들기 시작한 것이다. 최종하의 작업 역시 우리가 처한 상황에 의구심을 갖고 기계로 인한 현상을 재설정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글 | 월간 퍼블릭아트 이혜린 기자
사진 | 서지연


공간에 들어찬 육중한 기계들.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재료를 이어붙인 투박한 구조물이 바로 최종하의 작품들이다. 원심력이나 중력 등 기초적인 메커니즘을 이용한 작품들은 기존 제품에 변형을 가하거나 오롯이 상상력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하지만 유독 ‘새롭다’라는 것에 많은 의미를 부여하고, 첨단의 시스템을 갈망하는 현대사회에서 날 것 그대로를 보여주는 그의 장치들은 꽤나 낯선 풍경이다. 작가에 따르면 ‘움직임을 위한 최소한의 크기’인 작품들은 점차 매끈하고 콤팩트해지는 기존 제품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로우 테크놀로지로 간주되기도 한다. 심지어 결과물을 얻고자 손잡이를 수동으로 돌리거나 스텝을 밝고 걸어가야 열리는 잠금장치 등은 비효율적이고 불필요하게 느껴진다.


하지만 이 모든 결함에도 불구하고 최종하의 작품은 멋진 신세계를 제시한다. 가령, 잘 때는 느리게, 일할 때는 빠르게 흘러 자신이 자유자재로 시간의 속도를 조절하거나(‘FW-2’), 화장실에서 사용할 수 있도록 휴지를 일정하게 잘라주는(‘PM-1b‘), 혹은 기존 선풍기에 큰 팬을 달아 시원한 바람이 더 나오게 만들거나(’EEF-1’), 오래된 카세트의 시작 버튼을 누르면 여기에 연결된 mp3 플레이어가 작동되는(‘AE-2‘) 등 이미 존재하는 기계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기발하고 참신한 것들이다. 이렇듯 작가는 다양한 방식과 엉뚱한 아이디어를 이용해 기존에 장착된 프로세스를 변형시키고, 새로운 법칙과 이론을 동원해 작동시킨다. 그리고 “더 발전된 기술이 나타났을 때 익숙해진 테크놀로지는 쓸모없는 것으로 치부된다.”라는 현대사회의 고착화된 이론에 린치를 가한다.


작업 전반에 걸쳐 자신이 취할 수 있는 최소의 기계사용을 고수하는 그는 작품을 통해 첨단 기계가 주도권을 쥐게 되면서 폐기된 것들에 대해 이야기한다. 즉, 주류의 절대적 기준으로 모든 것을 판단하는 현대 사회에서 주류로 인지되는 것이 곧 비주류로 전락할 수 있거나, 비주류가 다시 주류가 되는, 혹은 비주류에서 새로운 비주류가 될 수 있다는 허점을 발견한 것이다. 그렇다고 작가가 비주류의 입장에서 주류의 기준을 비판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그는 지금까지의 무수한 시행착오를 겪으며 단순히 이것과 저것으로 분류되는 이분법적이고 고정된 관념에서 벗어날 것을 제시하고 있다.


자칫 테크놀로지의 퇴행으로 보일 수 있지만, 철저하게 작가의 필요에 의해 고안된 그의 작품은 기계의 급속한 발전으로 발생한 예기치 못한 문제들을 짚고 넘어가는 매개체이다. 그렇기 때문에 맹목적으로 따르는 사회의 제도와 분위기에 의문을 제기하고, 고정된 틀에서 행해진 일들에 물음을 던지는 그의 시선이 진부하지 않고 유쾌한 이유는 여기에 있다.

실제로 인간이 기술의 발전을 가로막거나, 혹은 그 속도를 넘어서는 것은 불가능하다. 오히려 인간의 불완전함을 보완하고자 하는 욕망과 맞물려 기계의 발전 속도는 빨라졌기에 테크놀로지의 발달은 인간과의 간극을 더욱 크게 만들 뿐이다. 이런 맥락에서 마치 현대사회의 축소판과 같은 모습인 작가의 작품은 테크놀로지의 퇴행과 독립적인 시스템 발명이라는 대립적인 두 요소를 동시에 갖추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대조적인 두 개의 관계 속에서 작가의 작품들이 앞으로 어떤 입장을 취하고 행보를 이어가게 될지 궁금해진다. 어쩌면 또 다시 정형화된 현상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며 새로운 변화를 시도할 수도 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기성제품을 복제한 듯한 매끈하고 세련된 작품을 감상하는 것보다 유쾌한 일임은 틀림이 없다.



2011 「퍼블릭아트」 선정작가인 최종하는 서울대학교 조소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했다. 그는 덕원갤러리 ‘Indi Machine’와 독일에서 열린 ‘Proper Consequence’ 등 두 번의 개인전을 열었으며, 한전아트센터 ‘전면‘, 이화여자대학교 예술관 ‘Exodus‘, 포항시립미술관 ’생활의 목적‘전에 참여했다. 작가는 현재 2011년 국립 고양 창작 스튜디오 7기작가로 입주해 작업하고 있다. ‘제안과 새로운 만남’이란 주제로 오는 9월 18일까지 금호미술관에서 열리는 ‘프로포즈 7‘전에서 작가의 작품을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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