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03-02
남자는 미술학을 전공한 설치예술가, 그리고 여자는 90년대 펑크 록 그룹 ‘삐삐밴드’ 보컬 출신의 가수. 토탈 아트 퍼포먼스 듀오 EE의 멤버인 이현준과 이윤정 부부다. 이들은 음악, 퍼포먼스, 미디어 아트 등 즐거운 문화를 만드는 일이라면 장르에 구애 받지 않고 다양한 시도를 펼친다. ‘삐삐밴드’의 이윤정이 아닌, ‘설치미술가’로서의 이현준이 아닌 EE로서의 신선하고 독특한 이야기를 만나보자.
에디터 | 길영화(yhkil@jungle.co.kr)
자료제공 | The Creators Project
EE, 둘의 만남에 먼저 손을 내민 사람은 이윤정이었다. 인디음악에 대한 관심으로 홍대에 자주 머물렀던 이윤정이 긴 머리와 독특한 의상을 하고 춤을 추고 있던 이현준에게 시선을 빼앗긴 것. 그리고 그가 영국 유학에서 막 돌아온 아티스트라는 것을 알게 된 그녀는 음악과 아트, 여기에 더 많은 즐거움이 첨가될 수 있는 프로젝트를 함께 하자고 제안했다.
“저는 미술학을 전공했어요. 이 멋진 여자를 만나기 전까지는 그저 아트만 했지요. 하지만 그녀는 제 시야를 음악과 다른 아트로 넓혀주었습니다.” -이현준, 크리에이터 프로젝트 인터뷰 중
EE는 등장할 때부터 파격적이었다. 2008년 첫 싱글앨범 ‘Curiosity Kills’을 발표하는 자리를 음악, 전시, 퍼포먼스가 한데 어우러진 일종의 아트 쇼로 구성했다. 특히 퍼포먼스에서는 얼굴을 감싸버리는 상상 이상의 독특한 무대로 관객들에게 다가가기도 했다. 이 같은 퍼포먼스에 대해 EE는 관객들의 호기심을 자극하고 싶었다고 그 이유를 말한다. ‘Curiosity Kills’ 가사에서도 다뤄지고 있는 호기심은 사람들에게 관심과 재미를 이끌어내기 위한 효과적인 요소라는 것이 그들의 설명이다. EE는 멋있어 보기기 위함이 아닌 관객들에게 즐거움을 주기 위해 무대에 오른다.
2009년 발매된 1집 정규 앨범, ‘Imperfect, I’m perfect’에서는 제목에서부터 그들의 메시지를 전한다. 똑같은 스펠링임에도 아포스트로피 하나로 뜻이 정반대가 되어버리는 제목은 완전함 보다는 불완전함 속에서 더 많은 즐거움을 꺼내 올 수 있다는 의미다.
“요즘 한국에서 보여지는 완벽한 이미지의 아이돌 가수들과 연애인들의 슬픈 현실을 표현하고 싶었어요. 그들의 안무와 립싱크는 완벽하게 타이밍을 맞추고 박자나 음은 단 한 번이라도 틀리면 안되거든요. 음악에 있어서 이런 완벽주의적인 태도는 좋지 않다고 얘기하고 싶어요. 오히려 불완전한 것이 얼마나 재밌는지 보여주고 싶었지요” -이윤정, 크리에이터 프로젝트 인터뷰 중
현재 영국 런던에 머물고 있는 EE는 얼마 전 주영한국문화원에서 열린 제4회 재영한인작가전 ‘Muse London’의 클로징 갈라 퍼포먼스를 연출했다. ‘Muse London’은 ‘런던’을 주제로 참여작가들이 각각 개인적인 도시의 경험을 이야기한 영상매체 전시다. 여기서 이현준은 영상과 설치물이 함께한 라이브 퍼포먼스를 선보였다. 1분여의 짤막한 영상은 이현준이 런던에서 느꼈던 경험에 대한 표현이다. 그것은 런던에서 여러 미디어로 접해지는 한국 관련 소식들이 자신이 알고 있는 것과는 차이가 있다는 생각으로 이현준은 그 차이점을 탐구했다.
설치물로는 어느 아이돌 그룹의 멤버를 페이퍼 인형으로 가져왔다. 이는 아이들 문화가 지금 한국 문화산업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 말고도 한국의 다양한 문화들이 적극적으로 소개되어야 하는 것은 아닐까? 그리고 그 임무는 과연 누구의 책임일까?라는 이현준의 생각에서 시작된 풍자적인 표현이다. 여기에는 언젠가부터 외국인들의 눈에 아이돌 문화만이 한국의 주력 문화상품인 것처럼 보이는 현상에 대한 우려도 담겨 있다.
EE라는 그룹명에는 별 뜻이 없다. 그냥 영어에서 가장 많이 쓰이는 알파벳이자 자신들의 이름 약자이기도 한 ‘E’를 가져왔다고. 그룹명에 어떠한 의미가 있다면, 그것에 따라 활동에 제약이 있을 수도 있기에 이름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다고 한다. 이런 의미처럼 EE는 지금의 활동보다 더 다양한 이야기를 그들과 비슷한 마인드를 가진 아티스트들과 함께 할 준비가 되어있다고 한다. 다음에는 어떠한 이야기로 관객들, 혹은 대중들에게 신선하고 독특한 경험을 전해줄지 기대해 본다.
EE http://www.eetotalart.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