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지 | 2012-01-09
우리는 보통 그림과 글이 어우러져 이야기를 전달하는 책을 ‘그림책’이라고 부른다. 하지만 진정한 그림책이라면 그림만으로도 이야기를 상상할 수 있도록 해야 되는 것은 아닐까? 또한 이런 ‘그림책’이야 말로 정보가 이미지가 되고 이야기가 중심이 되는 요즘 세상에 어울리는 책이 아닐까라는 생각도 든다.
글 | 구선아 객원기자
그림을 통해 이야기를 상상하게 하는 ‘그림책’을 선보이며, 읽을 때마다 새로워지는 이야기, 얼마나 즐겁습니까”라고 말하는 작가가 있다. 세계 여러 나라에서 그림책을 출간하며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작가 이수지다.
2008년, 2010년 뉴욕타임즈 우수 그림책 선정 작가이기도 한 이수지의 그림책은 간결한 글과 세련된 색감, 현실과 환상을 넘나드는 실험적이고 독특한 구성으로 세계 곳곳에서 사랑 받고 있다. 이탈리아 꼬라이니 출판사에서 출간한 첫 그림책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Alice in wonderland』는 영국 테이트 모던의 아티스트 북 컬렉션에 소장되어 있는가 하면, 스위스 라주와드리르 출판사를 통해 나온 『토끼들의 복수 La revanche des lapins』는 ‘스위스의 가장 아름다운 책’, 브라질 아동도서협회 ‘글 없는 그림책 상’, 미국 일러스트협회 ‘올해의 원화’ 금메달들을 수상하기도 했다. 또한 국내에서 출간된 첫 그림책인 『동물원』은 미국 영어 교사 협회가 주관하는 2008 우수 그림책에 선정되었으며, 프랑스와 미국, 대만 등 세계 여러 나라에 판권이 팔려나갔다. 이외에도 『거울속으로』,『파도야 놀자』,『그림자놀이』등 이수지의 그림책은 한국, 이탈리아, 브라질, 프랑스, 일본 등 세계 여러 나라에서 아이들뿐 아니라 어른들도 함께 즐기고 공감하고 있는 컨텐츠로 각광받고 있다.
이번 『이수지의 그림책』은 그녀의 그림책 중 일명 경계 그림책 삼부작이라고 불리는 『거울속으로』,『파도야 놀자』,『그림자놀이』의 작업 과정을 작업 노트 형식으로 구성한 책이다. 위 세 권이 경계 그림책 삼부작이라 불리는 이유는 공통적으로 판형과 크기가 같고 ‘경계’라는 아이디어를 품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경계’란 책이 묶이는 지점인 제본 선을 말한다. 보통 그림책에서는 펼침 면을 한 장면으로 그리거나, 양 페이지를 완전히 다른 그림으로 그려 제본 선의 존재를 최소화하기 위해 노력한다. 작가가 말하는 이 ‘경계’는 물리적 ‘경계’이면서 동시에 현실과 환상의 ‘경계’이다. 이는 현실과 환상의 ‘사이’, 어른과 아이의 ‘사이’, 책 밖과 책 안의 ‘사이’로도 이해될 수 있다.
“인쇄 사고였을까요?”라는 호기심 어린 질문과 영국 어느 지방의 책방 아저씨의 에피소드와 함께 시작되는 『이수지의 그림책』은 경계 삼부작 그림책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이미지와 함께 한 컷 한 컷 보여 준다. 그리고 여기에 경계 그림책을 만들게 된 계기와 그림책에 대한 여러 생각들, 그림책 작가로서의 삶과 그림책 만드는 즐거움까지 독자에게 이야기하듯 친근하고 진솔하게 들려준다. 친히 『거울속으로』,『파도야 놀자』,『그림자놀이』의 그림마다 화살표까지 그려가며 말이다. 이수지 작가의 생각이 담긴 숨겨진 이야기가 있는 『이수지의 그림책』을 보고 삼부작 그림책을 다시 본다면, 내 멋대로 상상하며 무심코 책장을 넘겼던 이야기가 다시금 새롭게 다가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작가는 책이라는 무대 장치에 기대어 이야기를 펼칠 준비를 합니다. 게다가 삼부작은 모두 관객이 연극 무대를 바라보듯 대부분 시점이 고정되어 있습니다. 하나의 고정된 공간 안에서 연속된 시간 동안 하나의 극이 막을 올리고 막을 내립니다. 주인공의 작은 변화도 한눈에 감지되는 고정 시점의 모노드라마 같지요. 작가는 이를테면, 배우에게 주어진 소품 몇 개와 좁은 공간을 이용해 할 수 있는 연기는 다 펼쳐보라고 주문하는 다소 인색한 연출자라고나 할까요.
-이수지의 그림책, 108p-
또한 책을 하나의 공간으로 보고 무대에서 이야기를 이어가듯 활용했다는 점도 흥미롭다. 이는 제한된 공간과 평면적 제약을 제대로 활용한 것이다. 무대에서 벌어지는 연극에는 클로즈업도 없고 시점이 변화하지도 않는 것처럼 고정 시점으로 배경과 주인공 아이가 온전히 이야기를 이끈다. 이 이야기에 필요한 최소한의 소품과 배경만이 걸리고 오로지 주인공 아이와 관계를 맺는 것이다.
그렇게 주인공들은 무대 위의 모든 것을 이용해 한바탕 놀고 좁은 공간을 종횡무진 뛰어다니다가 어느 순간, 가볍게, 퇴장해 버리지요, 연극은 끝났습니다.
-이수지의 그림책, 110p-
이렇게 『이수지의 그림책』은 경계 그림책 삼부작을 보면서 상상했거나 추측했을 그 무언가들을 속 시원히 말해줌으로써, 그녀의 그림책이 다른 그림책과는 다르게 느껴졌던 이유를 알려준다. 그리고 책의 마지막에는 “이제 책 밖으로 나가야 할 시간입니다. 그리고, 그러므로,“ 라고 맺으며 이 책 또한 더 많은 상상을 위하고 더 깊은 몰입을 위하여 쓰여진 책이라는 것을 넌지시 말해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