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02-09
최근 미국에서는 워싱턴 스미소니언박물관의 위성박물관인 국립초상화박물관(National Portrait Gallery)에서 열리고 있는 전시에서 검열된 한 작품을 두고 큰 논란이 일고 있다. ‘Hide/Seek: Difference and Desire in American Portraiture’란 제목의 전시는 지난 100년 이상의 미국 초상화 역사에서 소홀히 여겨진 게이, 레즈비언 바이 섹슈얼리티의 주제를 가지고 주요한 미국 작가들의 작품에 드러난 정체성을 고찰하는 전시이다.
글 | 이혜원 퍼블릭아트 미국통신원
일반적으로 이런 주제의 전시는 관람객들이 흔히 상상할만한 지나친 노출과 동성연애에 초점을 두기 마련이지만, 전시 제목이 암시하듯 성(sex)의 애매성이 어떻게 미술작품을 통해 드러나는지를 새로운 각도로 해석한다. 주목할 만한 점은 그동안 미국 미술사에서 주요한 작가들과 작품들을 해석함에 있어 누락된 부분, 즉 성의 정체성에 대한 해석을 새롭게 부여한다. 역사학자 데이비드 와드(David C. Ward)와 미술사학자 조나단 캐츠(Jonathan Katz)가 기획한 이 전시는 새로운 학문적 배경을 바탕으로 심사숙고를 거듭한 보기 드문 전시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정치인들의 초상화가 즐비한 딱딱한 전시를 전통적으로 많이 해왔던 국립초상화박물관에서 이 같은 전시를 한다는 것은 꽤나 용기 있는 결정이었다.
그러나
13분 분량의 오리지널 비디오를 4분으로 편집한 보이나로비치의 비디오에서 문제가 된 장면은 십자가에 걸려 피를 흘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모형이 땅에 눕혀져 있고, 이 위를 개미들이 지나가는 11초간의 이미지이다. 이 장면에 심기가 불편해진 가톨릭 리그는 를 반기독교적인 작품으로 간주한 것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시각은 작품에 대해 깊이 이해하지 못한 짧은 해석이다. 이 영상은 80년대 당시 미국에서 에이즈(AIDS)에 걸린 동성연애자라는 오명을 쓰고 살았던 자신의 경험을 표현한 작품이었다. 멕시코와 자신의 스튜디오에서 주로 찍은 비디오는 페펫 인형이 춤을 추다가 타격을 받는 장면, 보이나로비치가 직접 자신의 입을 실로 꿰매는 이미지와 반으로 갈라진 빵을 실로 꿰매는 장면이 번갈아 나타난다. 이어 붕대를 감은 손이 동전을 떨어뜨리고 피가 떨어지며 정육점의 이미지들과 자위행위가 편집되어 있는, 시적이면서도 강렬한 이미지들의 연속을 보여준다. 이는 인간의 탐욕, 종교, 이기심이 한 집단(동성연애자들)을 꼬집어 사회에서 관심을 가져주어야 하는 대상에서 배제시킨 것에 대한 격노와 비난을 표현한 것이었다. 또한 에이즈로 죽어갔던 수많은 주변 친구들의 고통을 예수 그리스도의 고통과도 연결 지었다. 실제로 미국 정부는 당시 에이즈로 죽어가는 동성연애자들에게 무관심했으며, 이에 반발한 보이나로비치는 자신이 에이즈로 죽는 그 순간까지 자신의 병과 투쟁했을 뿐만 아니라 사회의 질병과 항쟁했다. 때문에 이 작품은 정치적, 문화적인 배경을 바탕으로 이해해야 하는 것이 당연하다. 그러함에도 그가 작고한지 20년 가까이 되어가는 이 시점에서 미국에서는 아직도 보수파들이 문화정책을 통제하려 하고, 퍼블릭 인스티튜션인 스미소니언미술관이 이에 굴복해 자체적으로 검열한 것은 참으로 터무니없는 일이었다.
이 소식이 알려지자마자, 분노한 문화예술계, 학계, 일반인들이 들고 일어섰다. 국립초상화박물관 앞에 보이나로비치의 유명한 초상화 피켓을 들고 “침묵은 곧 죽음이다”는 그의 메시지를 유포했으며, 스미소니언미술관의 작품철회에 항의했다. 미국 미술관 디렉터협회, 컬리지 아트 협회(CAA) 등 주요 미술계, 문화계 단체들이 비디오 철수에 반대하는 성명을 공식적으로 발표했다. 심지어
학계에서는 이 센서쉽 이슈를 둘러싼, 문화가 정치의 이득을 위해 사용되는 미국의 현주소를 재점검하고 문화정책이 우파에 의해 좌지우지 되는 것에 반발하는 의견을 내놓은 심포지엄이 열리고 있다. 특히 검열 과정에서 결정에 참여할 수 없었던 큐레이터 조나단 캐츠(Jonathan Katz)는 지난해 12월 16일 뉴욕의 ICP(International Center of Photography)에서 열린 패널 토론 자리에서 이번 사건에 대한 자신의 분노를 표출했다. 그는 이 센서쉽 문제가 “더 이상 미학(aesthetic)의 차원이 아니라, 역사(history)의 문제”라고 반박했다. 이어 그는 미술관들이 작품에 드러난 “Queerness”와 관련된 전시 주제를 당당하게 설명하기를 두려워한다며, 현재 미국의 문화 정책이 극심한 우파인 ‘티 파티(Tea Party)’에 의해 컨트롤 되고 있다고 덧붙였다. 토론 끝에는 다른 동성의 주제를 다룬 전시를 하기까지 20년 이상 걸리게 되지 않을까 하는 염려를 청중들과 나누었다.
이러한 센서쉽을 규탄하는 시위는 뉴욕 맨해튼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계단 앞에서부터 스미소니언 미술관의 일환인 91번가에 있는 쿠퍼 휴이트(Copper-Hewitt, National Design Museum)까지 확산되었으며(지난해 12월 19일 오후 1시에 열렸다), 이를 통해 뉴욕 시민들은 편견, 무지, 불평등에 대한 투쟁을 몸 바쳐 했던 보이나로비치의 정신을 이어나가기로 했다. 이후 스미소니언 박물관은 보이나로비치의 비디오를 철회하는 대신 전시를 2월 13일까지 계속 열기로 결정했다.
* 글쓴이 이혜원은 뉴욕주립대 올드 웨스트 베리(SUNY College at Old Westbury)에서 미술사 강의를 하고 있으며, 같은 학교 Amelie A. Wallace Gallery 의 디렉터를 역임하고 있다. 뉴욕을 중심으로 활발한 큐레이팅을 하고 있으며, 현재 뉴욕시립대 대학원(CUNY, Graduate Center)에 미술사 박사(ABD) 과정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