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06-02
네모난 고무판에 밑그림을 그리고 조각칼로 조심스레 파내던 기억. 판화에 대한 우리의 기억은 그러하다. 그러나 판화는 나무나 돌, 금속 등의 면에 그림을 그리고 파낸 후 물감이나 잉크를 칠해 찍어내는 회화의 한 장르이다. 국내에서는 이러한 판화가 다소 낯설지 몰라도 해외에서 판화는 독립적인 예술의 한 장르로서 오래전부터 많은 사랑을 받아왔다. 회화의 화려한 색감과 극사실적 표현은 많은 사람들의 눈을 현혹하지만 그보다 더 정교하고 섬세한 판화작품들이 관람객을 판화의 매력 속으로 이끈다.
에디터 | 최유진(yjchoi@jungle.co.kr)
자료제공 | 공간국제판화비엔날레
올해로 16회를 맞이한 공간국제판화비엔날레는 1980년 ‘작은 것이 아름답다’는 모토로 공간그룹이 마련한 국제적인 판화행사다. 국제적으로 참신하고 유능한 판화작가를 발굴하고 판화를 널리 알리고자 하는 그 취지가 실천되어 온지 어느덧 30여 년. 이 행사는 이제 전세계 판화 작가들을 위한 국제판화축제로 자리 잡았다.
디지털 기술이 발달한 현대 사회에서는 다양한 혼합매체를 활용한 예술의 형태들이 쉽게 눈에 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판화는 어떤 모습일까. 이번 판화비엔날레는 이러한 변화된 흐름 속에서 전통 판화가 지닌 본원적 속성과 미학적 가능성을 탐구하고자 한다.
공간국제판화비엔날레는 지난 2월 응모요강을 발표하고 약 한 달간 응모작을 접수, 전세계 40여 개국에서 출품된 500여 점의 작품 중 판화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100여 점을 선정했다. 이번 심사를 위한 국제심사위원단은 국립대만미술관장인 황차이량, 폴란드 크라코프트리엔날레 디렉터이자 미술작가인 얀 파무아, 한국예술종합학교 곽남신 미술원장,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윤동천 교수, 국림현대미술관 이추영 학예연구사로 구성됐다. 이들은 엄정한 심사를 통해 미학적으로 가장 우수한 작품들을 선별했으며 1차로 선정된 입선작 100점 중 대상 1점, 우수상 2점과 다수의 매입상을 선정했다. 매입상은 공간국제판화비엔날레에서만 볼 수 있는 독특한 제도로 위축되는 여건 속에서도 작품 활동을 하고 있는 판화작가들을 장려하기 위해 시상자가 선정한 작품에 대해 일정한 상금을 후원해 작품을 매입하는 것이다.
대상 수상작은 남천우 작가(한국)의 'We art Here'다. ‘Their Globalization’ 프로젝트 시리즈의 하나인 이 작품은 세계화된 자본주의 아래에서 불완전한 공생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미국과 중국의 이야기다. ‘차이메리카(Chimerica)'라는 모순적 공존의 정체성을 갖고 생존을 위한 불편한 춤을 추는 이 두 나라에서 발생하는 여러 문제들을 작품화했다.
우수상 수상작은 Grzegorz Hańderek(폴란드)의 ‘Cooling Tower I'. Cooling Tower는 공장이나 발전시설의 용수를 냉각시키는 열교환기를 의미한다. 작가 자신이 태어나고 자란 산업도시의 사라져가는 풍경에서 영감을 받아 작업한 것으로 빼어난 아름다움을 지녔지만 생명력을 상실한 무위의 상태를 표현했다.
또 하나의 우수상 수상작인 Yuji Hiratsuka(일본)의 'Garden Posture'는 연극에서 스토리를 설명하는 배우를 연상시키는 자세나 동작의 상태를 차용해 인간적 형태를 재현한 작품이다. 여기에 뒤틀림, 빈정거림, 변덕, 풍자, 역설 등 복잡한 인간의 감정이나 삶 속에서 끊임없이 일어나는 불협화음 같은 상황을 반영한 것이다.
당선작들은 6월 2일부터 23일까지 종로구 수송동에 위치한 OCI 미술관 전관에서 전시되며 매입상 대상작은 6월 3일 전시회 개막식에서 발표된다.
공간국제판화비엔날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