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12-23
글 | 김노암 아트스페이스 휴 대표
문제의 장소
시작은 이렇다. 한국화 관련 세미나나 워크숍에 참여하거나 한국화작가의 전시를 기획 할 경우 작가들로부터 받는 고민은 자신의 작업이 한국화에 적합한 것인지, 또 이런 식으로 작업을 계속할 경우 선생님들이나 동료 선후배들로부터 소외되는 것은 아닌지, 한국화의 영역에서 타의적으로 배제될지 모른다는 불안이 자리 한다. 한편으로 자신은 21세기를 사는 현대미술가로서 오늘날의 삶과 현실의 미감을 담는 한국화를 지향하나 자신의 방향이 올바른 것인지, 대체로 현재 자신의 정체성과 앞으로의 방향에 대한 불안과 걱정들이었다.
미술현장에서 활동하는 이들은 ‘한국화’라는 이름표가 붙는 순간, 상징기계라고 부를 시각문화현상으로 작품들은 광활한 무규정 상태의 이미지의 대륙을 남긴 채 매우 협소한 인식, 미적 담론의 영역으로 축소해버린다. 마치 ‘인디언보호구역’처럼 말이다. 한국화라는 명칭을 부여 받고 새롭게 등장하는 작가들은 다른 명칭으로 불리는 분야에 비해 자신의 능력을 제한받는다고 느낀다. 주제와 소재, 모티브와 오브제를 마음대로 상상하고 응용하며 예술의 표현과 개념의 틀을 바꿀 수 있는 창의력 말이다.
‘한국화’라는 용어와 ‘동양화’라는 용어의 혼용과 그 구별이 분명치 않다. 그러다보니 처음 한국화를 전공하고자 또는 회화를 전공하고자하는 이들의 기본개념을 혼동시키기 일쑤다. 그리고 이러한 혼동은 대학을 졸업하고 오랫동안 작품 활동을 하는 작가들을 괴롭히고 소극적으로 만든다는 것이다. 이상하게도 한국화, 중국화, 일본화라는 이름은 듣기에 어색하지 않다. 그러나 미국화, 영국화, 독일화는 어떤가? 내게는 결코 자연스럽지도 익숙하지도 않다. 이 이상한 현상을 나만 느끼는 걸까?
말이 입 밖에 나가는 순간 우리는 그 말에 의해 좌지우지된다. ‘한국화’라는 말이 주는 이상한 현상이 또한 있다. 기묘한 정체성, 인공적인 느낌을 지울 수 없는 뉘앙스를 갖고 있다. 무엇보다 이 현상이 분명하게 이해되지 않는 한 새로운 세계를 창조하겠다는 작가들의 시도는 그 출발부터 잘못되어 버린다.
한국화의 현대화는 마치 국방부에서 매년 빼놓지 않고 사용하는 국방장비의 현대화처럼 들리기는 하는데, 실제로 전통적인 조선화나 동양화를 근대화 또는 현대화의 시대에 걸맞게 인식하고 위치시키기 위한 프로젝트로서, 현대미술로서의 한국화의 문제가 쟁점이 되어왔다. 그러나 이런 인위적인 프로젝트로서, 현대미술로서의 한국화를 바라보는 인식과 담론이 잘못된 것은 아니다. 오히려 한국사회와 의식의 변화에 따른 자연스런 결과라고 보는 것이 적절하다.
그러나 프로젝트란, 무엇보다 예술과 같은 정신문화와 관련된 프로젝트는 역사적이며 미학적인 선이해와 해석을 반드시 갖추어야한다. 지난 30년간 한국화의 위기론의 맥락에서 제기되어 온 문제의 장소로서 ‘한국화’는 그런 부분에서 매우 취약했다.
한국화 기획자나 비평가가 보이질 않는다.
최근 활발한 활동을 보이는 30~40대 한국화가들의 작업은 현대의 대중문화와 미디어를 기발하고 교묘하게 그리고 과격하지만 기교적으로 사용한다. 우리의 관념이나 인식이 그들의 변화속도를 쫓지 못하고 있는 것이 솔직한 생각이다. 우리는 여전이 과거의 관념과 틀을 현재와 예측불가능 하지만 미래에 시선을 던지는 작가들의 작업에 폭력적으로 갖다 대고 있다고 보인다.
주위를 돌아보면 한국화가들이 전시회를 준비하면서 작품을 표구사나 액자 집에 맡기는데, 근래에는 한국화도 조명이나 작품의 배치나 관객동선 등 전시공간의 연출에 있어서 사진이나 설치 등 다른 현대미술작품들과 같은 모습을 보여준다. 마치 새로운 핸드폰이나 자동차가 출시되면 그 주변기기도 새로운 디자인과 컨셉으로 변해 출시되는 것처럼 말이다. 창작자들과 수용자들을 둘러싼 모든 환경과 조건이 급격하게 변화하고 있다는 것, 예를 들면 인터넷이나 유튜브, 소셜네트워크 등 다양한 네트워크가 창조적으로 작동하기 때문이다. 전통의 정당한 해석을 위한 환경이 가장 밑에서부터 변한 것이다. 이미 한국화의 변화가 내부에서 외부까지 급격하게 변했다는 것을 뜻하는 것은 아닐까?
미술현장에서 활동하는 현역작가들 중에 권기수, 이이남의 예를 보자. 권기수는 대학에서 한국화과를 졸업하고 활동하며, 이이남은 조소를 전공했다. 또 홍인숙의 경우 대학에서 판화를 전공했다. 그런데 그들의 작품이미지를 그들이 전공한 것으로 규정할 수가 없는 것이다. 사람들은 권기수의
<동구리>
시리즈를 이동기의
<아토마우스>
나 강영민의
<조는 하트>
등의 캐릭터를 이용한 팝아트와 한데 묶는데 불편해 하지 않는다. 여기에 손동현도 포함된다. 그의 동양화기법을 충실히 따르는 초상화시리즈 또한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는 면도 있지만 무엇보다 동년배 한국화가들에게 용기를 주었다는 것에 더 높은 평가를 받는다. 손동현 또한 한국화가라는 이미지보다는 전통미술을 이용한 팝아트작가 또는 현대미술가로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한편 김학량, 박병춘, 임택, 이정배, 김윤재 등은 한국화를 전공했고 번듯한 한국화작가로 인정받으면서도 설치와 사진을 병행한다. 공사장에 삐죽 튀어나온 철사를 버젓이 문인화의 난으로 표현하는 김학량이나 ‘라면산수’를 연출하는 박병춘, 엽기적인 ‘뇌산수’를 보여주는 김윤재의 형식 실험과 비교해보면, 조선시대 회화를 컴퓨터그래픽을 이용한 디지털미디어아트로 재해석하는 이이남이나 붉은 산수를 그리는 이세현, 글씨로 산수를 그리는 유승호, 디지털사진 작업을 하는 이상현 등을 함께 묶어놓았을 때 전혀 이상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은 매우 시사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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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밖에도 한국화를 전공하지 않았으나 한국화의 조형요소를 자유자재로 선용하는 작가들을 주위에서 찾는 것은 결코 어렵지 않다. 학부에서 판화를 전공한 홍인숙의 작품이나 회화(서양화)를 전공한 홍지연의 경우가 그렇고 학부에서 서양화를 전공하고 독일에서 현대회화를 전공하고 귀국한 중견작가 이희중이 그렇다. 그의 민화풍의 소재와 형식을 우리는 현대미술로도, 또 한국화로도 볼 수 있지 않은가? 전통적인 무속을 작품으로 끌어온 백남준 선생의 경우도 이와 다르지 않다. 백남준 선생은 한국 고유의 이야기와 정서를 적절하게 인용하고 있는 것에 어떤 선입견도, 구애도 받지 않았다. 요컨대 한국화를 규정하는 것은 동시에 비한국화를 규정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 기준이 모호하고 또 딱히 그런 규정이 미술계의 창조적 활성화나 담론형성에 도움이 되는 것인지도 의문이다.
그러니 현재 활동하는 젊은 한국화가들의 작품을 분석이나 비평하기에 앞서 현재 소통 가능한 맥락과 용어로 번역하고 공감해야 하는 것이 선결과제인 것인데 사정은 여의치 않다. 현장에서 한국화와 동양화를 전문적으로 연구하고 기획하는 기획자와 비평가의 수가 다른 현대미술 분야에 비해 절대적으로 적기 때문이다. 담론을 생산하고 논리를 정교하게 만들 전문가들이 거의 손으로 꼽을 수 있을 정도이다. 창작자들의 작업에 질문을 하고 응대를 해야 할 상대가 없으니 맥 빠질 노릇 아닌가.
그 결과 현대미술의 이름으로 수많은 전시회가 열리지만, 한국화를 둘러싸고는 다른 현대미술 현상에 제기되지 않는 고질적인 쟁점이 나오고, 거기에서 한 발 자국도 나아갈 수 없는 답보 상태가 지겹도록 반복된다. 하는 이도 지치고 바라보는 이도 지친다. 이 악순환의 고리를 어디서부터 끊어야할까?
여기서 한국화의 위기의 실체를 짐작해볼 수 있다. 한국화의 위기란 미술대학에서 한국화나 동양화과를 졸업한 후 미술현장에서 활동하는 30~40대 작가들이 느끼는 위기의식이라고 보는 것이 구체적이고, 그들의 위기의식을 귀담아 듣고 함께 해결할 직업적 파트너가 부족하다는 것이 위기의 실체라는 것이다. 요컨대 한국화의 위기란 곧 한국화를 전공한 화가들의 위기의식이고 그것은 곧 한국화 기획자와 비평가의 위기인 것이다.
당대예술로 가는 길
미술분야에서 가장 기묘한 조어 중 하나로 ‘전통의 창조적인 계승’이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은 마치 ‘전통’이나 ‘창조’라는 말을 하나의 오브제처럼 실체가 있는 구체적인 감각적 경험의 대상으로 만든다.
‘전통의 창조적인 계승’이란 하나의 슬로건이자 삶의 태도, 또는 형이상하적 인생론의 차원에서 나오는 말이니, 적어도 전통이란 용어는 수 백 년 이상의 생각과 경험의 축적과 그 전개를 의미할 것이다. 전통에 대한 인상적인 정의를 미학자 조요한에게서 찾을 수 있다. 조요한에 따르면 ‘전통’이란 ‘과거에 대한 정당한 해석’이다. ‘정당한’과 ‘해석’의 만남. 정당한 해석 이후에는 창조적인 표현이 나온다. 앞서 열거한 작가들이 바로 그런 활동의 사례들이다.
어떤 이들은 그들이 전통적인 한국화의 재료나 형상을 도구적으로 차용하는 것이라 이야기할지 모른다. 그런데 도구적인 차용이 문제가 되느냐 생각해보면 또 그렇지가 않다. 내 것과 남의 것이 만나, 함께 융합되어 무언가가 튀어나오기 때문이니 말이다. 한국화가들이 사용하는 종이부터 물감까지 우리 고유의 생산물이냐 하면 또 그렇지가 않다. 거의 대부분의 석채나 분채는 일본제품이다. 각종 도구는 중국제품도 많다. 서구미술의 대표적인 재료인 아크릴릭도 사용된다.
현실적인 재료나 전통적인 모티브 몇 가지를 수천수만의 한국화가들이 계속해서 반복하고 계승할 이유는 없다. 또 그렇게 되었다하더라도 정상적으로 순화되고 재생산될 관객층도, 시장도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마치 피라미드구조와 같은 것이다. 비약하면 한국화 작가로 나서는 순간 이미 그 또는 그녀는 한국화의 소비자가 되니 말이다.
‘한국화’는 매우 실용적인 수식어이지 자연과학이나 역사가 오래된 인문과학의 어떤 실체가 있는 용어로 보기에는 너무도 그 용어의 역사가 짧고 내용이 빈약하다. 전통미술에서 가져온 모티브들과 재료, 형식적 표현방법들을 고려해 보면 ‘한국화’라는 이름이 얼마나 허구적이고 우리의 언어생활을 교란시키는 지 알 수 있다.
한국화 비평가인 김상철은 70년대 중반 급조된 ‘한국화’의 문제를 정확하게 지적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모 동양화가가 일본을 방문한 후, 일본에는 일본화가 중국에는 중국화라는 자기 고유의 미술에 대한 당당한 명칭이 있는데 우리는 매우 일반적이면서도 정체성이 모호하게도 ‘동양화’라는 이름을 사용하니 이를 시정하고자 ‘한국화’라는 이름을 사용하자고 강력하게 주장하면서 설득력을 갖게 되었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한국화’라는 용어는 이제 막 태동한, 그리하여 그 용어와 전통을 엮는 것은 시대착오적이다. 차라리 한국화는 1970년대 이후 한국사회의 정치, 경제, 문화의 변화와 함께 나타난 우리나라 현대미술의 한 종류나 현상을 보는 것이 합리적이다. 1970년대 이후 변화대 한국 사회의 시각문화의 한 분야나 흐름으로 보자는 소리다.
한국화 위기론이 공상적으로, 그러나 실체를 갖고 우리의 정신을 휘젓는 동안 전국의 많은 예술대학들이 서양화, 동양화, 회화, 한국화를 둘러싸고 전공분야를 마케팅 정책에 따라 편의대로 이리저리 섞어놓거나 분리해 놓으면서 이상한 환경을 만들어 버렸다. 또한 최근 한국 사회에서 벌어지는 대학들의 서열화와 그에 따른 졸업 이후의 인생의 서열화가 병리적으로 진행되는 동안 국제 미술환경이나 국내 미술환경이 급속하게 기존 인정 시스탬과 인프라로부터 벗어나버렸다.
‘한국화’가 70년대 만들어진 프로젝트, 또는 허구가 아니라 실제로 존재하고 시각문화, 당대 미술의 하나라면 그것은 하나의 형태나 그룹 또는 계열이 아니라 다원적이며 다층적이어야 한다. 또한 한국화를 규정하기에 바쁜 것이 아니라 시각문화의 전통, 상징해석의 전통을 어떻게 볼 것이냐에 먼저 집중하는 것이 필요하다. 한 때 서양미술사학계에서 유력했던 도상해석학이 작품의 감상과 해석을 기독교의 성서와 고대 지중해의 신화로 환원해버리는 오류를 범한 것처럼 당대 현실을 담아야하는 시각예술의 하나인 한국화가 시대착오적인 과거의 의식이나 상징체계에 몰입하는 것은 창의적인 예술행위라고 볼 수 없다. 처음부터 새로워야하고 창의적이어야 한다. 그것이 서구문화의 첨병 현대미술이 우리에게 알려준 슬로건이자 아이디어이다.
미술현장에서 벌어지는 비합리적이며 허술한 구분짓기는 결국 전통이나 예술의 논리가 아니라 그밖의 논리와 힘에서 나온다고 본다. ‘한국화’가 그렇다. 이 정체불명의 근대적 명명화, 구분 짓기의 맥락을 벗어나는 것이 ‘한국화’가 동시대미술과 담론의 현장으로 합류하는 길이다.
글쓴이 김노암은 홍익대학교와 동 대학원에서 회화繪畵와 미학美學을 전공했다. 서울프린지페스티벌 운영위원, 광주비엔날레 전문위원, KT&G상상마당의 전시감독 등을 역임했다. 현재 대안공간 아트스페이스 휴의 대표이며 (사)비영리전시공간협의회 대표로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