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11-30
덕수궁은 1593년 선조가 임진왜란으로 피신을 갔다가 서울로 돌아와 거처하면서 처음 궁의 역사가 시작된 곳이다. 지난 9월 19일부터 덕수궁에서 열리고 있는 ‘덕수궁 프로젝트’는 덕수궁의 풍부한 문화유산을 현대 미술로 재해석한 전시회로 12월 2일까지 계속된다. 덕수궁 안에 겹겹이 쌓여있는 역사를 안고 다양한 분야의 예술가들은 각자 특유의 상상력과 해석을 더하여 조각•설치작품 및 사운드 아트, 퍼포먼스, 미디어영상, 공연 등 다채로운 작업들을 선보였다.
글,사진 | 최영락 기자(rak0703@popsign.co.kr)
수천개의 LED조명으로 한방울의 눈물을 떨어뜨리다.
‘덕수궁 프로젝트’는 덕수궁의 중화전, 행각, 함녕전, 덕홍전, 석어당, 정관헌 등 6개 전각과 후원에서 총 9개의 프로젝트로 진행된다. 또한 덕수궁 미술관의 내부전시는 프로젝트 진행 과정에서 완성된 작품과 영상으로 덕수궁 경내 전시의 연장선상이라 할 수 있다. 한국 현대 미술계의 유명한 작가, 디자이너, 무용가, 공예가, 미디어아티스트 등 12명이 참여한 ‘덕수궁 프로젝트’에서는 전통적인 조각•설치, 사운드아트, 퍼포먼스, 공연 외에도 다양한 영상과 미디어 맵핑을 통한 작업들을 볼 수 있다. ‘덕수궁 프로젝트’에서 LED조명을 이용하여 작업한 이수경작가의 ‘눈물’은 석어당에 전시되어 있다. 석어당은 경운궁의 시원을 이루는 오랜 역사를 지닌 곳이다. 이수경 작가는 덕수궁의 비극적 운명을 상징하는 것처럼 보이는 이 소박한 건물에 눈부신 눈물조각을 설치하였다. 이 조각은 수천개의 LED 조명에 의해 굴절되고 반사되면서 정확히 그 형체를 알아볼 수 없다. 아프지만 아름답고, 빛나지만 잘 보이지 않는 이 역설적인 조각은, 역사적 소용돌이 속에서 한 인간으로서 삶을 꾸려갔던 수많은 궁궐 속 여인들의 운명을 상징한다.
덕수궁 곳곳에 펼쳐진 미디어아트
고종의 침전이었던 함녕전에서 ‘함녕전 프로젝트-동온돌, 덕수궁 함녕전’ 작품을 선보인 서도호 작가는 자료구축 또한 예술의 일부분이라고 생각하여 함녕전을 원형그대로 복원하는 과정을 기록물로 남겨두고 과정예술로서 존재하는 영상물을 함녕전과 미술관 내부에 전시하였다. 덕수궁 미술관 내부에는 함녕전에 온기를 불어넣기 위해 함녕전을 청소하고 도배하는 모습을 모자이크 형식의 영상으로 보여주고 있다. 또한 그는 고종의 침전이었던 함녕전을 무대로 현대무용가 정영두의 퍼포먼스를 기획했다. 고종의 슬픔과 내적 불안을 무용가의 몸을 통해 표현한 영상은 함녕전에선 TV로 재현해 놓고 있다. 미술관 내부에서는 정영두의 퍼포먼스를 담은 디지털 영상을 여러 가지 타임라인을 보여주기 위해 분할하여 전시하고 있다. 덕수궁 미술관 내부와 덕수궁의 연못가 숲에서 빔 프로젝터를 이용해 작업을 보여 주고 있는 최승훈과 박선민 작가의 ‘Daystar1’, ‘Daystar2’, ‘Daystar4-2’작품은 두 작가가 덕수궁을 오랫동안 거닐고 사색하면서, 이 터 위에 겹겹이 흘러간 시간과 자연의 운행을 형상화한 것이다. 빔 프로젝터를 통해 창문 틈으로, 혹은 나뭇잎 사이로 비치는 햇살과 그림자, 빛과 그림자의 경계를 천천히 가르는 사물의 움직임을 보여주는 그림자 놀이 영상을 설치하였다. 두 작가는 이 작업을 통해 ‘하늘에 보이는 우주의 천체지도가 우리 눈에 보이지 않을 뿐 낮에도 존재하는 것처럼, 우리는 이 순간 존재하는 많은 것들을 보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라고 말하고 있다. 류재하 작가는 역사의 영욕을 간직한 중화전의 전면에 미디어 영상을 쏘아 올렸다. 중화전의 단청 색과 건물의 모양, 추상적인 면과 선을 사용하고 웅장한 사운드와 함께 대한제국의 건립과 동시에 무너졌을 때의 허망함, 다시 일어나고자하는 중화전의 모습을 ‘시간’이라는 프로젝트를 통해 보여주고 있다. 중화전의 앞마당인 조정의 박석에는 교차하는 레이저 선들을 가득 깔았다. 바닥에서 2층의 월대를 거쳐 중화전 건물로 이어지는 거대한 영상 효과는 주변을 거니는 관객으로 하여금 환상적인 공간과 초월적인 시간 속으로의 여행을 인도한다. 마찬가지로 덕수궁 미술관 내부의 천장에 수 백 개의 LED모듈과 바닥의 레이저 선들이 전시되어있다. 입체적이고 구축적인 것이 다 해체 되어 일정하지 않은 유기적인 형태를 갖추고 와이어와 전선이 다 드러나면서 그것이 하나의 작품으로 구성된다. 중화전의 ‘시간’ 퍼포먼스와 연관 되어 마치 덕수궁 역사의 단면 또는 기억과 과거, 추억의 편린 같은 분절되고 해체된 모습을 표현하고 있는 듯하다.
국립현대미술관(관장 정형민)과 문화재청 덕수궁관리소는 덕수궁의 풍부한 문화유산을 현대 미술로 재해석한 ‘덕수궁 프로젝트’전을 개최하면서 다양한 분야의 한국 현대미술작가에게 작품을 제작 의뢰하고, 궁궐 곳곳에 설치작업을 시도하여 살아있는 문화유산의 의미를 이번 전시를 통해 되짚어보기를 희망했다. 관람자들은 서울 도심 한복판에 위치한 덕수궁에서 아름다운 문화유산이 작가들의 깊은 사유가 발현된 현대미술로 재해석되는 현장을 함께할 수 있다. 국립현대미술관(관장 정형민)과 문화재청 덕수궁관리소는 이번전시를 통해 깊어가는 가을과 함께 과거와 현재, 미래가 공존하는 특별한 시공간 속에서 ‘살아있는 덕수궁의 오늘’을 경험해 보는 시간이 될 것이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