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02-08
색채와 심리(마음) 사이의 관계를 연구하는 학문이 바로 색채심리학이다. 색채심리학에는 우리가 표현하는 색(색상, 혼색, 톤, 배색 등)에 저마다 의미가 숨겨져 있다. 또 자신이 좋아하는 색, 싫어하는 색을 알아내고, 그 이유를 심리학적으로 살펴 이른바 ‘컬러테라피(Color Therapy)’라는 치유를 시도하기도 한다. 색채심리의 방법론으로 왜 특정한 색이 끌리는지, 왜 특정한 색을 피하게 되는지에 대해 살피고, 컬러테라피를 통해 치유하는 게 일반적인 색채심리치유다. 이 과정에서 어떤 특정한 시기에 끌렸던, 또는 멀리했던 색을 조사하다 보면 자신만의 히스토리를 통해 무의식에 내재되어있는 감정의 근원(Root)을 알 수 있다. 이러한 감정의 원인을 발견함으로써 특정 색에 대하여 이해를 하게 되며 그 색을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게 된다. 색에 대한 편견이 없어졌다는 것은 그러한 감정에서 자유로워 졌다는 의미로서 마음이 치유됨을 경험하게 되는 것이다.
글│백낙선 (스에나가메소드 색채심리연구소 소장, 색채심리연구가)
기사 제공│퍼블릭아트
개인의 상태와 혼색의 심리
색채심리의 내용을 필자의 개인적 경험과 색채심리 치료를 통해 살펴보자. 필자는 20대 대학시절에 주로 무채색을 사용하거나 많은 색을 섞어 캔버스에 바르고 닦아내면서 캔버스 올올이 스며들게 하는 기법을 사용했었다. 세상의 모든 짐을 혼자 진 것처럼, 그 시기에는 왜 그렇게 머리가 복잡하고 마음이 힘들었던지….
필자는 그림을 그리면서 ‘무엇을 그릴까?’ ‘어떤 것을 표현할까?’ 라는 고민은 수없이 많이 했지만, 색 선택에 대한 고민은 별로 한 적이 없다. 그냥 손에 끌리는 색, 마음이 가는대로 색을 선택하여 사용해 왔다. 그런데 색채심리학을 공부하면서 색 사용이 우리의 마음(心理)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혼색은 단지 색만 섞는 것이 아니라 감정을 섞는다고 말할 수 있는데, 이것을 색채심리학에서는 “혼색의 심리”라고 한다. 한 가지 색이 한 가지 마음이라면, 다양한 색은 여러 가지 마음을 의미한다. 여러 가지 색을 혼합해 무채색이었던 필자의 그림은, 혼란스러웠던 마음을 그대로 반증한다. 이는 어린 아이들에게 그림을 가르치며 바뀌기 시작했다. 점차 채도가 높은 순색과 다양한 색상을 쓰기 시작한 것이다. 조금씩 안개가 걷히며 나의 작품 속에 색이 부활하기 시작하였다. 대학 졸업 후 유학생활에서 그린 첫 작품이 벌리고 있는 입에서 무지개를 토해내는 작품이었다. 예전에는 유치하게 생각되었던 무지개색이 그림에 등장하면서 내 안에 잠재되어있는 다양한 마음을 솔직하게 표현한 것이다.
무지개(다양한)색의 등장은 뭔가 새롭게 시작하려 할 때, 새로운 세계에 대한 스텝업의 표현 또는 여러 가지 마음의 상태일 때 그림에 자주 등장한다. 어린 시절부터 현재까지 그림을 통하여 나를 표현하면서 살아가고 있지만, 시기마다 선호하는 그림과 선택하는 색상, 톤 등이 다르게 표현되는 것은 왜일까?
최근 진행한 한 색채심리워크숍의 한 경우를 보자. 워크숍에 참가한 30대 초반의 남성은 세 장의 그림으로 자신의 심리를 나타냈다. 처음 그림은 노란색 문 앞에 선 파란색 인물이 검은 생각을 품고 있는 상황을 묘사한 것이었다. 그림 안에는 벗어나고 싶은데 넘어야 할 문들이 함께 묘사되어 있었다. 노란색 문으로 어느 순간 날아가고 싶은 참여자의 의지(파란색)를 표현했다. 또 엄마의 웃는 모습과 꽃을 그려 넣어 옛날의 즐거웠던 때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을 담았다.
두 번째 그림에서는 마치 어느 추상회화 작가의 그림처럼 검은색과 붉은색으로 가득 찬 화면을 그렸다. 이 그림 안에 남성은 암흑 속에 홀로 앉아있다. 구름이 자신을 짓누르고 있지만 벗어날 힘이 없어 뵌다. 그는 “자신이 처한 상황에 대해서 화가 나고, 나를 자기들 식으로 해석하는 사람들에게 분노감이 생긴다”고 그림에 대해 설명했다.
상담을 통해 긍정감정이 드러난 건 마지막인 세 번째 그림에서였다. 기법상 두 번째 그림과 다른 바는 없지만, 검은색과 빨간색이 아닌 노란색으로 가득한 화면을 그렸다. 따뜻한 볕과 봄의 나른하고 행복한 기분, 열심히 일하여 성공한 아버지와 자신보다 무엇이든지 잘하는 누나와의 비교에서 오는 힘든 마음, 과잉보호로 인해 자신감이 떨어지는 현재 자신의 마음을 색채를 통해 표현하였다. 어린 시절 보호받고 행복했던 감정의 노란색, 현재 자신을 짓누르고 있는 감정을 검정과 여러 색이 섞인 혼색을 통해 현재 자신의 심리를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단 하나의 예이지만, 색은 내면 심리를 전달하는 데 더 없이 좋은 수단이기도 하다. 혼색의 심리는 두 가지 이상의 색이 배합됐을 때, 색의 가짓수만큼의 심리가 혼합되어 있다는 의미다. 색채심리학에서 말하는 색이 지닌 심리에 따라서 말이다.
상황과 톤의 심리
‘톤의 심리(명도와 채도가 합쳐진 색조)’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광화문 ‘르네상스’와 명동의 ‘바로크 음악감상실’을 드나들던 고교 시절의 이야기를 하고 싶다. 고교시절 나를 매혹시켰던 그림은 프랑스 여류작가 마리 로랑생(Marie Laurencin)의 초상화였다. 푸른빛이 살짝 감돌면서 회색조의 희뿌연 색조는 작가의 고독감을 나타내는 듯했다. 그러면서도 붉은 빛의 입술과 손톱 또는 한 송이의 장미 빛 꽃으로 생기를 찾으려는 듯, 베일에 싸인 신비스러움은 이상의 세계를 꿈꾸었던 사춘기 시절의 내 심리를 자극했다.
색채심리학을 연구하면서 화가 마리 로랑생이 이런 톤(색조)의 그림을 그리게 된 이유를 알게 되었고 그림에 표현된 색이 심리에 따라 다르게 표현되고 있음에 확신을 하게 되었다. 로랑생은 명도가 높은 색조를 통해 사랑했던 사람과의 이별로 인한 슬픔, 사랑했던 순간을 영원히 간직하고 싶은 ‘비현실감’을 표현한 것이다. 색채심리학에서는 이러한 접근을 “톤의 심리”라고 이야기한다.
이렇듯 색을 통해 마음을 표현할 수 있으며, 이러한 색채표현이야말로 내 안에 쌓여있는, 여러 가지 마음을 안전하게 토해낼 수 있는 마음의 언어라고 볼 수 있다. 색에는 선과 악을 가르는 기준이 없으므로 마음껏 사용하면서 스스로 치유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배색과 인간관계
색채학의 기본적 개념인 색상, 혼색, 톤을 인간의 심리와 연결하여 살펴보았다. 여기서 한 가지 더 중요한 것은 배색의 심리이다. 유치원이나 학교를 다니면서 사회성이 생기기 시작하는 어린아이의 그림에서 배색이 등장하기 시작한다. 배색이란, 색과 색의 조합인데 색채심리학적으로 살펴보면 인간관계를 표현하는 경우가 많다. 어린이들에게 그림을 가르치며 변했던 필자의 색 사용법처럼, 배색은 현재 심리상태를 드러낸다.
필자는 ‘유사배색’을 즐겨 사용하는데, 이 배색법은 색채학에서 색상환에서 바로 옆에 있는 색끼리의 조합을 말한다. 나와 성향이 다른 사람과의 관계보다는 유사한 사람과의 만남을 편하게 생각하고 있으며 다른 성향의 사람과는 가까워지는 데 좀 시간이 걸리는 것처럼 유사배색에는 안정감, 조화로움, 정적임 또는 지루함 등의 심리적 언어가 내포되어 있다.
유사배색의 달인이라고 불리어지는 폴 고갱(Paul Gauguin)은 어린 시절 페루에서 느낀 원초적인 삶을 찾아 결국엔 타이티로 가게 된다. 그곳에서 원주민들과의 융화와 잃어버린 왕국을 되찾은 듯한 해방감의 표현으로 조화롭고 따사로운 유사배색을 그림에 나타내고 있다.
색상환에서 가장 멀리에 위치한 색(보색)을 대비배색이라고 하는데 강조, 역동적인, 활기, 신선함 또는 대립, 갈등, 부조화, 촌스러운 등의 심리적 언어가 담겨 있다.
일반적으로 동생과의 갈등이 심한 어린아이의 그림에서 대비배색이 자주 등장하는데, 이는 심리적 갈등이나 서로 조화를 이루지 못하는 것을 볼 수 있다. 또는 강한 대비배색을 사용함으로 에너지충전을 원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러한 배색표현은 표현하는 사람의 심리상태에 따라, 또는 환경이나 건강상태에 따라 다른 감정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이밖에도 같은 색상 안에서의 변화를 가져다주는 동색 계 배색, 무채색과 유채색 배색 등 다양한 배색표현을 통해 인간관계가 드러나는 편이다.
시각에는 생리적 영향과 심리적 영향이 있다. 인간이 볼 수 있는 영역인 가시광선에서 파장이 가장 긴 빨간색과 파장이 짧은 파란색의 비교실험은 과거 여러 차례 이루어진 바 있다. 대부분 실험에서 파란방에 체류했던 사람보다 빨간방에 체류했던 사람의 맥박수, 호흡수가 증가한다.(생리적 영향) 그러나 오히려 파란방에 체류했던 사람이 증가한 경우도 있었다(심리적 영향). 이러한 실험결과는 특정 색에 대한 기억이 개개인마다 다르기 때문에 나오는 것이다. 실험을 통해 같은 색이라도 다른 마음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 이것을 스에나가 메소드 색채심리학에서는 분모색채(공통적)와 분자색채(개인적)라고 말한다. 분모색채와 분자색채와의 관계를 알아가는 것은 타인과의 커뮤니케이션의 증진을 의미한다. 이러한 연구를 통해 많은 사람들의 분자색채를 알아감으로 타인을 이해하고 나아가 나와 다르다는 것을 인정함으로 자신을 회복하는 길로 이어지는 것이다.
글쓴이 백낙선은 홍익대학교 회화과를 졸업하고, 캐나다 오타와대학에서 판화와 필름, 미국 캘리포니아 주립대학(IRVINE)에서 일러스트와 판화를 전공했다. 일본 동경 색채학교(Heart & Color)에서 스에나가 타미오 박사로부터 색채심리 메소드를 전수받았다. 현재 한국 스에나가 메소드 색채심리연구소 소장과 부설 아틀리에 Color Factory 원장을 맡고 있으며, 한국 Art & Therapy 색채심리협회 회장, 일본 Art & Therapy 색채심리협회 한국 대표, 숙명여자대학교 평생교육원 강사, 색채디자인학회와 커뮤니케이션디자인협회 정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저서로는 「색채심리」(2010)이 있다.